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44화 (24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10. 그들의 실험실(3)

- 이번 계획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톰슨 원장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했다.

- 실패라...

기계음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상황을 보고하던 톰슨 원장은 그의 침묵에 몸 둘 바를 몰랐다.

- 실패는 아닌 것 같군. 이미 실험은 성공한 게 아닌가?

기계음의 말에 톰슨 원장의 표정도 덩달아 풀렸다.

- 그.. 그렇습니다. 실험 자체는 실패한 게 아닙니다만...

톰슨 원장의 말에 기계음이 반응을 보였다.

-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말이로군. 그게 누군지 알고 있나?

기계음의 말에 톰슨은 머리를 숙였다.

- 그.. 그게 그 정보를 아는 놈들과 접촉을 한 한국계 미군이 있는데 미군에서 정보 보호 차원에서 기억을 지웠다고 합니다.

톰슨의 말에 기계음이 낮게 신음 소리를 냈다.

- 음...

톰슨은 뭔가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기계음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 미군은 아직 통제 하에 안 들어왔나 보군.

기계음의 말에 톰슨은 아무 말도 못했다. '미군은 통제 하에 안 들어왔다.'는 말 자체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 안에는 다른 것은 이미 통제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암시하였기 때문이었다. 톰슨은 조직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새롭게 조직을 장악한 '그 분'의 영향력은 자기가 생각한 이상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직 내부에서 들리는 말로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자신이 하는 일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를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톰슨은 그 분의 말 한 마디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 그.. 그럼 나머지 일은 어떻게 할까요?

톰슨 원장의 말에 기계음은 잠시 침묵을 했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이 말을 했다.

- 나머지 일이라... 아니 그 일은 이쯤에서 접어도 되네. 다만 내부에 누군가가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한 일 같군.

기계음의 말에 톰슨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일에 참여한 사람들은 시카고 연구소 사람들 아니면 제 측근들입니다만...

톰슨의 말에 기계음이 크게 웃었다.

- 하하하. 그러니까 아직 자네가 부족한 거야. 이 일은 아무리 은밀하게 진행해도 정보의 교류 때문에 누군가는 새롭게 접할 수 있지. 단순히 연구와 결과 집계는 자네와 시카고 연구소가 했지만 그 결과를 미군에 넘기는 것이나 아니면 시카고 연구소의 누군가 혹은 자네가 측근이라고 믿고 있는 누군가가 정보를 외부로 흘릴 수도 있지.

기계음의 말에 톰슨이 반박하듯 말했다.

-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더욱이 이런 광범위한 집단의 실험은.

톰슨의 말에 기계음이 다세 낮게 웃으며 말했다.

- 자네는 야심만 대단한 사람이지. 그럼 그 야심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기계음의 말에 톰슨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주시했다. 어렸을 적부터 천재라고 불리던 자신이었기에 톰슨은 마음속에서부터 반감이 들었다.

아무리 그 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천재성을 의심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만약 저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톰슨의 반감어린 말에 기계음이 대답했다.

- 모든 이에게 정보를 조각내서 알려주는 것이지.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게 말야. 하다못해 시카고 연구소에도 말야.

톰슨은 기계음의 말에 반문을 했다.

- 이건 종합적으로 분석해야지만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톰슨의 말에 기계음이 대답했다.

- 아니야. 이번 일은 우리의 연구 이론을 시카고 연구소에서 확인하는 일이었지. 그러니까 우리 연구소 내부 인원들을 각각 나누어서 생물학적 연구와 건축학적인 연구 그리고 지역 선정과 실험의 과정을 부여하는 것이지. 미군에게 전적으로 맡긴 건 자네의 게으름 탓이라고 할 수 있어.

톰슨은 그 말을 들으면서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과오를 지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계음은 그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 앞으로 자네에게는 중요한 것을 맡길 수가 없겠군.

기계음의 말에 톰슨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 그것까지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기계음은 톰슨의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서 했다.

- 그리고 자네는 우리의 일을 캐낸 그들을 찾는 게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데 그들이라면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지. 하지만 내부에 스며든 배신자는 우리의 안에서 우리 조직을 좀먹고 있지. 우리 일이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된다는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외부에서 기껏 애써서 알아봐야 드러난 결과 외에는 알 수 있는 게 없지만 내부의 배신자는 우리의 일을 백일하에 드러낼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걸 왜 모르고 있지?

기계음의 말이 이어질수록 톰슨의 손은 점점 떨렸다. 그의 곁에서 일을 하면서 그가 얼마나 냉정하게 일을 처리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는 건 곧 폐기를 의미했다.

- 기회를 주시면 내부에 있는 스파이를 찾아...

기계음은 톰슨의 말을 끊었다.

- 다나카 이치로(田中一朗)는 잘 지내고 있나?

톰슨은 뜬금없는 질문에 어찌 대답할 줄 몰라 당황했다.

- 다나카 님은... 지난 번 일을 마치고 지금 괌에 있는 연구소에 있습니다만...

기계음은 톰슨에게 조금 짜증이 난 어투로  말했다.

- 난 도무지 그 인간을 믿을 수가 없어서 말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톰슨은 기계음의 말을 듣는 순간 살 길이 눈앞에 보였다.

- 제.. 제가 그러면 괌으로 가서...

톰슨의 말을 끊고 기계음이 말했다.

- 톰슨 병원은 어쩌고?

기계음의 말에 톰슨은 우물쭈물했다.

- 병원은 이미 안정적이어서... 괌으로 제가 간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 아니야. 다나카를 병원으로 부르는 게 나아. 그리고 다나카에게 확실하게 내 존재를 각인시킬 필요도 있고.

기계음의 말에 톰슨이 조용히 물었다.

- 그럼 내부에 있는 스파이는...

기계음은 낮게 은밀하게 말했다.

- 우리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 곧 드러날 거야.

그러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얘기를 했다.

- 우리의 도덕적인 스승님이 오시는군.

톰슨은 기계음을 듣고는 의아한 듯이 뒤쪽 문을 쳐다보았다. 웬 노인 하나가 문서를 손에 들고 검은 장막 앞에 섰다.

- 슈뢰딩거 박사, 화가 많이 나 보이는군.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는 안경 너머의 눈을 반짝이며 장막 뒤를 꿰뚫어 보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 화가 난 게 아닙니다. 이젠 어이가 없어서 할 말도 없습니다.

슈뢰딩거는 화를 누르며 얘기를 했다.

- 우리 조직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슈뢰딩거는 공중에 문서를 흔들며 외쳤다.

- 그런 일은 조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빈 공간에는 슈뢰딩거의 목소리만 계속 울리고 있었다. 슈뢰딩거의 말이 허공에 흩어지자 무거운 침묵만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톰슨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옴짝달싹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의 침묵 이후에 기계음이 들렸다.

- 미군과 협조를 하는 건 우리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 미군과 협조하는 일이라구요? 그저 재미있어서 한 일이 아니구요?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대답했다.

- 이제 그럴 나이는 지났다. 조직을 위해 일을 해 나갈 때다.

슈뢰딩거는 기계음이 들리는 곳을 향해 외쳤다.

- 미군과 공조하지 않아도 우리 조직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잠시 침묵을 하다 입을 열었다.

- 슈뢰딩거 박사. 혹시 미래를 아나?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 미래요? 미래가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설혹 미래를 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웃으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