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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43화 (24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10. 그들의 실험실(2)

대테러 진압용 무기 개발 계획.

발신 : 시카고 연구소 미군 특별 무기 실험실

수신 : 톰슨 병원

목적

특별한 지형에 은신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를 색출하여 살상하기 위한 프로젝트. 그들이 은신하고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근처에 미군 공병 부대를 비밀리에 투입하여 비슷한 모양의 은거지를 만들어 그들을 살상함.

방법

이번에 만들어진 CP-21A를 이용하여 살상을 함.

필요 사항

구체적 임상 실험 결과와 결과에 따른 시행 방법 재수립.

대장은 화면에 다른 문서를 띄웠다.

- 이건 톰슨 병원에서 유출된 문서이다. 딥웹(Deep Web)에서 활동하는 어나니머스(Anonymous) 그룹이 해킹한 자료라 신빙성은 있다.

대장이 보여준 화면에는 CP-21A라는 바이오 물질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물론 임 박사가 보여준 것만큼 자세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사례와 부작용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작 충격적인 것은 그 임상 실험 대상자들이었다.

- 인도네시아 무나 섬, 한국 오정리, 마다가스카르 모라라노...

석호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문서를 보며 낮게 읊조렸다.

- 그런데 말야...

철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모니터 쪽을 쳐다보았다. 철구의 말에 모두 철구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 이건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데. 도대체 그런 정보를 톰슨 병원에선 왜 그렇게 손쉽게 유출했을까? 내가 병원 관계자라면 그런 정보는 아무리 뛰어난 해커라도 못 보게 암호화시키거나 할 텐데 말야.

철구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아무리 꽁꽁 감춰놔도 해커들은 그 정보를 빼내서 다시 원상태로 만들 수 있다. 어차피 모든 것이 컴퓨터로 하는 일이니까.

대장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었다.

- 그야 컴퓨터를 잘 하는 대장이니까 자신만만하게 얘기하겠지만, 사실 톰슨 병원, 아니 그놈들이 정보를 더군다나 아무리 아무나 접속할 수 없는 딥웹에 있는 사이트라 해도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냐는 말이지. 만약 그랬다면 대장이 전에 이 정보를 찾았을 거 아냐. 그런데 이번 일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대장도 그 정보를 얻은 거 아냐?

철구의 말에 대장이 말했다.

- 그건 그렇다. 문서를 만든 건 6개월 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건 이상하다.

철구는 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이건 둘 중 하나야. 하나는 혼란을 주기 위해 고의로 흘렸거나 아니면 누군가 내부에서 일부러 흘렸거나.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이런 민감한 정보를 고의로 흘렸을까요? 우리가 확인한 사실과 유사한 게 많잖아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한 마디 거들었다.

- 그럼 내부에서 누군가가 이 정보를 일부러 흘렸다는 말이잖아요.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대장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어이, 대장. 이 정보가 톰슨 병원에서 흘러나온 건 맞아?

철구가 모니터 쪽을 향해 물었지만, 대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이봐.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하던가.

철구의 다그침에도 대장은 말이 없었다. 석호가 모니터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 대장, 무슨 일 있어요?

그런데 그 순간 대장이 화면에 문서를 띄웠다.

- 미안하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서 다운 받느라 대답을 못했다. 그런데 이걸 봐라.

대장이 화면에 띄운 것은 미국 국가 안보국(NSA) 문양이 선명하게 보이는 문서였다.

- 이게 뭐야?

철구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 위키리크스(WikiLeaks)에서 최근에 입수한 정보다. 아직 공개 전 문서인데, 내부적으로는 NSA와 협상 중이라는 말이 있다.

석호는 화면에 나온 문서를 보고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 이거 무서운 계획이었는데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석호를 보며 물었다.

- 무서운 계획이라뇨?

석호는 철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 표면적으로는 대테러 방지를 위한 계획이에요. 알카에다나 IS, 그리고 북한에 미군 스파이를 잠입시켜서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오정리와 같은 방식으로 집을 지어서 그들을 거주하게 만드는 거예요. 물론 아직은 사막 기후나 한대 기후에서 실험을 하진 않았는데 곧 그 실험도 실시할 예정인가 봐요. 그렇게 해서 테러리스트들을 없앤다는 계획이죠.

석호의 말에 철구가 인상을 찌푸렸다.

-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죠. 명목은 대테러 이따위로 말하고 사실은 정적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맘에 들지 않는 인간들을 제거하는 데 이용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테죠.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어쩌면 철구 씨가 말한 게 맞는지도 몰라요.

철구는 그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런데 이 정보가 아무래도 찜찜하단 말야.

철구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내 생각으로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 같다. 엿 먹이려고.

대장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또 만환가?

- 아니다.

대장이 버럭 소리를 쳤다.

- 이번엔 근거가 있다.

대장은 화면에 문서를 코딩한 것을 띄웠다. 그 화면을 보고 철구가 얘기했다.

- 난 컴퓨터 같은 건 젬병이니까 그런 거 보여줘도 몰라.

그러자 화면에서 특정한 문자열에 형광펜처럼 색이 쳐졌다.

- 이건 문서나 암호 코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거다. 대개 해커들이나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남기는 마크 같은 것이다.

'Jegarsahadutha'

그 것을 보고 철구는 더 인상을 찌푸렸다.

- 그게 뭐야? 이상한 알파벳만 잔뜩 늘어놓고 말야.

석호는 그것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이건 창세기에 나오는 아람어에요.

- 창세기? 성경에 저런 말이 나온다구요? 그리고 아람어는 또 뭐죠? 아랍어도 아니도.

철구의 말에 석호가 얘기를 했다.

- 저건 '예가르 사하두타'에요. '증거의 돌 무더기'라는 뜻이죠.

- 증거의 돌무더기?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창세기에 보면 라반과 야곱이 언약을 맺은 것을 기념해서 돌무더기를 쌓죠. 거기에 라반이 거기에 아람어로 '예가르 사하두타'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아람어는 과거에 예수님이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언어에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 톰슨 병원 안에 종교인이 있을 리도 없고 그게 뭐지?

철구가 말을 하는 동안 석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었다. 대화를 듣던 세현이 오랜만에 한 마디 했다.

- 혹시 새로운 해커 그룹이나 그런 게 아닐까요?

세현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톰슨 병원이나 시카고 연구소를 해킹할 실력자는 많지 않다. 만약 새로운 해커 그룹이라면 트위터나 홈페이지로 자신들의 업적을 알릴 거다.  하지만 아직 그런 그룹은 없다.

대장의 말이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석호가 무언가 떠오른 듯이 말했다.

- 해커나 내부인은 아닐 겁니다.

석호의 말에 모두들 석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이 정보는 의도적으로 유출한 게 맞아요. 제 생각엔 '예가르 사하두타'를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는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제가 아는 사람일 겁니다.

석호가 아는 사람이라는 말에 모두 의아한 듯이 석호를 보았다.

- 신부님이 아는 사람이라뇨?

세현의 질문에 석호가 대답했다.

- 최베드로 신부님입니다.

석호의 말에 모두 놀란 눈으로 석호를 보았다. 그리고 철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성경 구절이 나왔다고 해서 최베드로 신부님이라고 추론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이네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단순히 성경 구절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면 무리가 있죠. 하지만 '예가르 사하두타'라는 말 때문이에요. 증거의 돌무더기. 최베드로 신부님의 세례명이 베드로죠.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의미에요. 어쩌면 이건 저를 향한 메시지일는지 몰라요.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저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는 거예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석호의 논리에는 약간 억지스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석호의 남다른 기운을 알고 있는 철구나 세현, 대장은 석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 저 말은 마치 앞으로 최베드로 신부님이 저희에게 증거의 돌무더기를 보여주시려는 마음 같아요. 사실 이성적으로는 이게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느껴지지만 자꾸 그런 마음이 드네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무겁게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최 신부님께서 숨어서 저희를 돕는다는 말씀이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철구를 부드럽게 응시하며 말했다.

-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얘기를 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최베드로 신부님이 아니면 어때요. 어쨌든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누군가가 그들 내부에서 정보를 준다는 게 중요한 거죠.

세현은 석호가 억지로 밝게 말하는 것이 더 가슴이 아팠다. 최베드로 신부가 바티칸에서 파문을 당한 이후 석호가 오랜 시간동안 그를 찾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같았던 스승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석호를 알기에 세현은 그런 석호를 보며 말했다.

- 분명 최 신부님이실 거예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그들의 의도를 깨기 위해 노력하시고 계실 거예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네. 분명 어디선가 저희처럼 그들의 음모를 깨기 위해서 열심히 살고 계실 거에요.

석호의 말에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지 석호를 바라보는 눈길이 따뜻해졌다.

- 아무튼 난 오늘 천석 씨랑 소주 한 잔 하러 가니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철구가 그렇게 말을 하고 일어서자 대장이 '삐삐' 소리를 내며 말했다.

- 서울에 오면 같이 밥 먹기로 하지 않았냐!

대장의 말에 철구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대장이야 신부님하고 밥 먹으면 우리랑 다 같이 먹는 것보다 좋잖아. 안 그래?

철구의 말에 대장이 '삐삐' 소리를 냈다.

- 아니다. 절대 아니다.

대장의 말에 철구가 웃으며 말했다.

- 나 형사였어. 대장은 모르겠지만 거짓말이라는 게 너무 티나.

- 아니.. 아니다.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아무튼 그럼 같이 밥 먹는 건 조만간 날짜 잡고 나 먼저 갑니다.

그런데 그 때 세현이 따라 나서며 말했다.

- 천석 씨한텐 내가 행운의 여신이니까 나도 같이 가요.

철구는 세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 할매는 다 끼려고 해. 어째.

세현이 철구를 보며 말했다.

- 나한테 아무리 할매 뭐라고 해도 누군가한테는 내가 여신이라니까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순진한 산골 총각 홀리...

그렇게 말하려다가 철구는 입을 다물었다. 세현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기 때문이었다. 저 표정은 곧 몹시 화가 나서 폭풍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징조였기에 철구는 하던 말을 끊고 세현에게 말했다.

- 그래. 같이 가자구. 삼겹살에 소주 먹는 거니까 고급스러운 데 생각하지 말라고.

- 어차피 다 똑같은 건데 고급이 어디 있고 저급이 어디 있어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귀를 파고는 석호를 보았다.

- 신부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모니터 쪽을 잠깐 쳐다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 대장 혼자 남잖아요. 그 동안에도 혼자였는데.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네. 그럼 대장 잘 부탁해요.

철구가 석호에게 조용히 말하고는 세현을 향해 소리쳤다.

- 나 간다. 오려면 빨리 와.

철구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자 세현이 소리치며 나갔다.

- 같이 가요!

그리고는 석호를 보고 눈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석호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우린 뭐하고 놀까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 왜 같이 안 갔나?

대장의 어리광에 석호가 웃으며 말했다.

- 대장하고 데이트 하려구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말이 없었다. 석호는 대장 쪽을 보며 말했다.

- 아래로 내려갈 테니까 얘기나 좀 해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대답을 했다.

- 그래. 알았다.

석호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모니터에 글이 하나 떴다.

'데이트...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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