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10. 그들의 실험실(1)
10. 그들의 실험실.
- 임 박사님이 분석 결과를 보내 주셨어요.
서울로 올라온 지 오 일째 되는 날 철구는 석호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구씨 할아버지 자식들과 함께 두 내외와 천석의 어머니와 미옥의 장례를 치르고 천석이 정착해서 살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산삼을 판 돈을 천석에게 돌려줄 때 천석은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지만, 철구의 강권에 못 이겨 돈을 받아들고는 죽을 때까지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수십 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상황이 모두 정리될 무렵 석호가 사무실로 모두를 불러 그 기괴한 집의 실체에 대해 알려주었다.
- 그 집에서 채취한 벽돌하고 시멘트는 놀랍게도 유기물이었어요. 끈끈이주걱과 이끼의 유전자를 가진 기형 돌연변이 식물 구조였죠.
석호는 대장에게 말을 했다.
- 성분 분석표를 띄워주세요.
모니터에 성분 분석표가 나오자 세현이 놀란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 산성 지수가 이렇게 높아요?
- 네. 지구 생태계 내에선 존재할 수 없는 존재에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 그럼 외계인이란 말인가?
철구의 말에 세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생태계 내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연 발생된 게 아니라 만들어진 거라는 말이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귀를 파며 말했다.
- 어려운 말이 너무 많아.
석호는 철구를 보고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이 돌연변이는 특이한 구조가 있다더라구요. 일단 일정한 습도나 온도, 채광도가 맞는 순간 엄청나게 증식을 해요.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피'에 몹시 심하게 반응을 하죠. 왜 그런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더군요.
- 피라..
철구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럼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군요. 일단 그 집들이 아까 말한 습도나 온도, 채광도가 맞고,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세 집에서 '피'를 누군가가 흘렸다는 거네요. 우리가 안에 있을 때는 유 씨가 피를 흘렸고.
철구의 말에 석호가 철구를 보며 말했다.
- 맞아요.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마을 전체가 그랬다는 거죠. 그 재료를 가지고 임 박사님이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영상으로 보내주셨어요.
석호가 대장 쪽으로 쳐다보자 모니터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 흠흠... 어이. 잘 보이나?
임 박사는 어색한 듯이 화면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박 형사 잘 지내나? 나야 보다시피 잘 지내지. 그리고 그 의사 선생, 이름이... 지현인가? 소현인가? 아무튼 잘 지내시나?
임 박사의 말에 세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대화하듯이 말을 했다.
- 세현이라구요.
그런데 그 순간 마치 세현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임 박사가 말했다.
- 아.. 세현 씨지.. 늙으면 기억력이 점점 떨어진다니까.. 하하하.
그렇게 너스레를 떨자 세현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석호와 철구를 쳐다보았다.
- 아무튼 보내 준 그 놈. 아주 아주 특이한 놈이더군. 이놈을 배양해서 뭘 만들었는지 보게.
화면이 뒤쪽에 있는 커다란 유리 상자 쪽으로 움직였다. 거기에는 조그만 동굴 같은 것이 보였다.
- 배양을 하다보니까 이놈이 스스로 동굴을 만들지 뭔가. 그런데 이놈이 아주 특이한 게 이 동굴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부산물들을 만들어낸다는 거야. 그런데 그 부산물들이 아주 특이해. 정말 특이해.
그러더니 카메라를 들고 작은 동굴을 만든 곳 아래쪽을 비춰주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지난번 산속에서 보았던 식물들이 보였다.
-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놈이 산삼을 만들어내더라구. 어허. 이놈만 제대로 관리해도 금방 부자가 될 거야.
그러더니 임 박사는 자신의 얼굴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더니 좀 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산삼 따위가 아니야. 이놈이 스스로 몸을 생성하면서 생체 호르몬을 방출하더라구. 그 호르몬 농도가 얼마나 진한지 조금만 맡아도 아찔할 정도야. 그런데 그 호르몬이 말야. 마약 같은 놈이야. 성분은 페로몬하고 도파민 성분이 대부분이고, 또 라벤다 정유(essential oil) 성분이 있어. 그러니까 이 향기를 맡으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지. 어쩌면 인류 최고의 최음제가 될 거야. 하하하.
임 박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동굴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며 말했다.
- 그런데 그런 부산물 말고 이놈의 정체가 궁금해서 이런 저런 실험을 했지. 일단 이걸 먼저 보여줘야겠어.
그러더니 모니터를 향해 카메라를 가져다대었다.
- 이놈을 잘게 쪼개서 다른 세포에 넣어봤거든. 그런데 말야. 이놈이 마치 암세포마냥 그 세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더라구. 그러더니 이걸 봐. 처음에 넣었던 세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지. 무엇 때문인지 분석을 했는데, 그 분석표 봤나? 같이 보낸 거 말야. 거기 보면 산성 수치가 대단히 높아. 거의 위액 수준이야. 그런데 특이하게 위액 수준의 산성 수치면 다 녹여버려야 하는데, 세포는 녹이지를 않더군. 그러니까 단백질만 분해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생체로 바꾸어버리는 거지. 그런데 말야. 이게 원래 세포의 DNA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자신의 생체로 바꾸지만 원래 갖고 있는 DNA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의 세포로도 활동할 수 있다는 말이야. 만약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야.
임 박사의 말에 세현은 경악의 표정이 되었다
- 그럼 집이 사람의 세포를 그대로 흡수해서 그 사람의 생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말이잖아요. 그리고 그게 원래 사람의 몸에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의 세포처럼 활동하고...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이제 왜 구씨 할아버지 내외가 임신을 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군요.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리고 저 말은 집에 원래 사람의 DNA와 세포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럼 천석 씨의 집에는 천석 씨 어머니의 세포가, 미옥 씨 집에는 미옥 씨의 세포가...
세현의 말에 철구와 석호가 경악의 표정이 되었다.
- 그럼 집이 사람을 품고 있다는 말이야?
- 그럴 수도 있다는 거에요.
세현의 말에도 영상은 계속 다른 걸 보여주고 있었다.
- 이건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거야. 소고기를 잘라서 동굴 안에 넣어봤지. 그리고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촬영한 건데, 이건 뭐.. 아무튼 한 번 봐봐.
화면에는 작은 소고기 덩어리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벽이 젤리처럼 흐물거리며 소고기를 덮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소고기를 녹여버리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 그리고 다음 건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어서 말야...
임 박사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동영상을 재생했다. 동굴 안에 조그만 개구리를 넣자 개구리는 뭔가 두려운 듯이 입을 불룩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벽이 또다시 젤리처럼 흘러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구리는 마치 무언가에 취한 것처럼 멍하니 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분명 자신이 위험하다는 상황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마치 그곳이 편안한 듯이 벽만을 쳐다보며 멍하게 있었다.
벽이 개구리의 몸을 감싸고 몸을 녹이고 있어도 개구리는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자신의 몸이 녹고 있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세현은 영상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에요. 동물들은 죽음 앞에서 피하려는 본능이 무조건 발휘되는데...
임 박사는 화면에서 카메라를 돌려 자신에게 다시 맞췄다.
- 동물이 이런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마치 뭔가 개구리를 강하게 자극하고 있는 것 같거든. 그래서 다른 동물들도 허락하는 한에서 실험을 해 봤는데 다들 마찬가지더군.
임 박사의 영상이 끝나자 철구과 세현, 석호는 마을 전체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집에서 나온 부산물들과 집의 영향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 그런데 미군이 왜 이런 실험을 했을까요?
철구가 입을 열자 모니터 쪽에서 대장 목소리가 들렸다.
- 오늘 낮에 발견한 문서다. 시카고 연구소 미군 특별 무기 실험실 문서인데..
화면에는 시카고 연구서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문서가 하나 보였다. 석호는 문서를 읽어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이게 무기 실험이었다구요? 그리고 톰슨 병원이라..
석호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문서에는 그렇게 나와 있었다.
석호는 문서를 다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