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40화 (240/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9. 끔찍한 상황(3)

철구의 말에 석호는 빙긋이 웃었다. 분명 자신이 살아 돌아온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 물을 것이라고 생각한 석호였기에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자신을 믿어주는 철구가 내심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살면서 이 정도로 누군가를 신뢰한 게 최베드로 신부 외에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철구는 집 앞으로 가서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아까와 다르게 딱딱했다. 철구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짙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철구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살폈다.

- 유골이 있을만한 곳이라... 집이 생물이라면 먹었으면 싸야 되는데...

철구는 눈에 보이는 곳에는 유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일단 벽을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내벽에는 특이점이 보이지 않았다.

- 어디 있지?

그러다가 철구는 보일러실 쪽으로 쳐다보았다.

- 유일하게 안 본 곳이 저긴데...

철구는 왼쪽 벽과 연결되어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벽에 보일러가 걸려 있었고, 그와 연결된 배관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 외에 특이한 점은 전혀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보일러실과 같았다.

- 아닌가?

철구가 보일러실 문을 닫으려고 할 때, 문득 천장 위를 쳐다보았다. 보일러의 연통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옆쪽으로 뚫려 있는데, 그 위로 굴뚝같은 구멍이 하나 보였다.

- 보일러실에 굴뚝? 뭐지?

철구는 집 밖으로 나와 집을 살펴보았다. 한쪽에서 집의 벽돌을 빼고 있던 천석과 세현, 그리고 석호가 철구를 의아한 듯이 쳐다보았다.

철구는 지붕 쪽을 쳐다보더니 창고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사다리를 가져와 지붕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뭐하는 거에요?

세현이 손에 묻은 흙을 털며 철구 쪽으로 다가와서 물었지만 철구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지붕 위에서 이리저리를 살폈다. 그리고는 아래를 보며 소리쳤다.

- 해머같은 거 있나요? 아니면 도끼나 그런 것도 괜찮아요.

철구의 뜬금없는 말에 천석이 창고로 달려가 잔뜩 녹이 쓴 해머를 들고 나왔다.

- 뭐... 뭐에 쓰신데유?

사다리 위로 해머를 올려주며 천석이 묻자 철구는 천석을 보며 말했다.

- 유골을 찾는 데 쓰죠.

그렇게 얘기하고는 받아든 해머를 치켜들고 굴뚝처럼 생긴 벽을 세게 내려쳤다. 그러자 붉은 벽돌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철구는 다시 해머를 들고 벽을 다시 한 번 내려쳤다. 그러자 시멘트로 연결된 부위가 쪼개져 나갔다. 쪼개져 나간 틈 사리오 철구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철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이 새끼. 여기가 똥구멍인가 보군.

철구는 해머로 다시 아래쪽 벽을 내려쳤다. 그러자 천장과 연결된 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천석의 어머니의 유골이 보일러실 안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철구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입었던 옷을 하나 꺼내서 보일러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골을 들어 어머니의 옷 위에 놓았다.

모든 유골이 수습이 되자 철구는 어머니의 옷을 감싸고 밖으로 나왔다. 천석은 자신의 어머니의 옷에 싸인 유골을 보고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엄니... 아이구... 불쌍한 우리 엄니...

천석이 어머니의 유골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리자 세현 역시 눈이 붉어졌다. 석호는 뒤에 서서 천석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철구는 다시 해머를 어깨에 맨 채 말했다.

- 저는 미옥 씨 유골하고, 구 씨 할아버지 내외 유골도 수습하러 갈게요.

철구가 그렇게 말을 하자 석호가 철구의 뒤를 따랐다. 세현은 울고 있는 천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 천석 씨 같은 효자 아들을 두셔서 어머님도 행복하셨을 거에요.

천석은 어머니의 유골이 싸여 있는 옷가지를 잘 갈무리하여 품에 꼭 안았다.

- 이... 그 눔들이... 엄니를...

천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현과 함께 마을 아래로 내려갔다. 철구와 석호는 비슷한 구조의 집이었기에 쉽게 나머지 사람들의 유골을 찾을 수 있었다.

철구가 지붕 위에 올라가 집을 부수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철구와 일행들을 향해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리고 이장은 그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데 막지 않는지 의아해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철구는 세 사람의 유골을 수습하고 내려오며 마을에 소리쳤다.

- 여기서 이 분들처럼 뼈만 남을 채 죽고 싶으면 그냥 그 집에 살면 됩니다. 이장은 도망쳤으니까요.

철구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이 창문이나 문을 열고 철구와 석호를 훔쳐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철구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 믿건 안 믿건 그건 여러분들 자유지만, 여긴 정말 위험한 곳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철구가 그렇게 소리를 치자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와 소리쳤다.

- 너희가 더 위험헝께 언능 마을에서 나가뿌라.

철구는 어깨를 으쓱하고 마을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 뭐 알아서들 하세요.

철구가 그렇게 얘기하고 내려오자 석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다른 집들도 어쩌면 조만간 활동을 할 것 같은데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 전에 성준이 내려와서 강제 퇴거를 시키거나 아니면 급하면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겠죠.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당분간 아래 초소에서 있어야겠네요.

철구가 그렇게 말을 하자 석호가 대답했다.

- 저는 이 샘플을 임 박사님께 보내고 올게요.

철구는 석호가 안고 있는 벽돌과 전해물들이 든 진공팩을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게 하세요. 일단 저와 세현 씨는 유골을 어떻게 할지 상의할게요.

석호가 철구와 떨어져 읍내로 가기 위해 자신의 차로 가자 철구는 걸음을 서둘러 초소 쪽으로 갔다.

그리고 초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색한 표정의 천석과 조금은 뚱한 표정의 세현이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철구가 안으로 들어가자 세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철구에게 말했다.

- 다 찾은 거에요?

철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옷가지에 싼 유골을 내려놓고 말했다.

- 일단 이 유골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데... 어쩌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대답했다.

- 일단 구 씨 할아버지 내외는 자식들에게 연락을 해서 유골을 수습하도록 하구요, 미옥 씨는...

세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천석을 쳐다보았다. 천석은 멍한 표정으로 세현과 철구를 쳐다보았다.

- 천석 씨. 미옥 씨도 어머님과 함께 장례를 지내는 게 어때요?

철구의 말에 천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 일단 여기서 장례를 지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할.. 아니 세현 씨가 천석 씨랑 같이 서울로 올라가서 장례를 치르는 게 어떨까?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철구 씨는요?

철구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일단 여기서 사태를 관망하다가 성준이가 오면 마을 사람들을 내보내야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말했다.

- 한시라도 빨리 내보내야 되지 않아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무겁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일단 성준이가 읍내에 있는 최고 복덕방 주인 구인한 다음 이리로 오기로 했으니까 늦어도 8시 전에는 도착할 거야. 그러니까 그 때 성준이 가져온 차 타고 올라가면 될 거야. 유골을 안고 택시 타는 것도 이상하잖아.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세현은 철구에게 말을 하고 천석을 보며 말했다.

- 천석 씨도 괜찮죠?

세현의 말에 천석이 무언가에 놀란 듯이 대답했다.

- 그... 그럼유..

천석의 이상한 태도에 철구가 천석에게 물었다.

- 천석 씨, 왜 세현 씨하고만 있으면 어색하죠? 여자한테 특별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철구의 질문에 천석이 얼굴을 푹 숙이며 말했다.

- 그거이..

천석은 뭔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더욱 숙였다. 천석의 태도에 철구가 말했다.

- 괜찮아요. 말씀해 보세요.

철구의 말에 천석이 조그맣게 말을 시작했다.

- 실은 말여유... 지가 꿈에서 본 분이 저그 여자 의사 선생님이셨어유. 그거이..

천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세현을 몹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천석이 꾼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세현 역시 알고 있었기에 세현은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군요.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신기하군요. 전에 세현 씨를 본 적이 없잖아요.

- 예. 본 즉이 전혀 읎쥬.

세현은 천석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꿈에서 본 여인과 제가 비슷할 수도 있지만, 그건 그냥 이미지 상으로 비슷한 걸 수도 있어요. 일단 저를 모르셨으니까요.

세현의 말에 천석이 고개를 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