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39화 (239/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9. 끔찍한 상황(2)

그 때 너무나도 아름다운 빛이 석호를 감쌌다. 마치 무언가 석호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 아니.. 전 여기서...

석호는 자신의 얼굴을 누군가 부드럽게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부드러워 이 감각을 계속 느끼고 싶을 정도였다.

- 엄마가.. 엄마가...

그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지더니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 어... 엄마.. 엄마...

석호는 사라진 목소리를 찾기 위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신부님.. 깨어나셨군요.

철구는 석호를 안아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석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 여... 여긴..

석호의 말에 철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신부님하고 같이 있던 유 씨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신부님만 멀쩡하고.

철구의 말에 석호는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철구는 석호는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어쩌면 자신이 겪은 것은 지옥이 아니라 내면에서 꿈틀대고 있는 환각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유 씨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건...

석호의 말에 철구가 집을 쳐다보며 말했다.

- 저 집구석에 뭔가가 있다는 거죠. 신부님도 아시다시피.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돌려 집을 쳐다보았다.

- 설마 이게 실험실이었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석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하자 철구가 집을 보며 말했다.

- 젠장. 뭐 이따위 집이 다 있어!

철구가 짜증난다는 말투로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아까 유 씨가 한 말을 떠올렸다.

- 시멘트가 아닌 다른 걸 넣었다는 게 이거로군.

철구의 말에 석호가 말을 했다.

- 그럼 일부 집만 빼놓고 마을 전체가 그렇다는 거 아닌가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다급하게 말했다.

- 그럼 또 어떤 집이 이렇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일단 천석 씨랑 세현 씨는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켜요.

철구는 주먹을 불끈 쥐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 난 이장을 잡을 테니까. 그 자식이 다 알고 있을 거야.

철구는 그렇게 마을을 하고 마을 아래에 있는 이장의 집으로 뛰어갔다. 철구가 서둘러 내려가자 세현과 천석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신부님 혼자 계실 수 있으세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다리에 힘이 없는 걸 빼고는 괜찮습니다.

세현이 그런 석호를 놔두고 천석과 함께 마을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흩어져서 천석의 집의 상황과 이 마을이 실험실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세현과 천석의 말을 믿지 않았고, 도리어 집 안으로 들어가 말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철구는 이장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한쪽 벽에 몸을 숨긴 채 크게 외쳤다.

- 어이. 이장. 나랑 면담 좀 하지.

철구의 외침에도 집안은 몹시 조용했다.

- 이봐. 총까지 든 놈이 뭐가 무서워서 숨어 있어?

이번에도 철구의 목소리만 집안을 울릴 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철구는 재빨리 움직여 문에 몸을 기대고 문 쪽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 빨리 나오지 않으면 더 큰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철구는 마지막 경고를 하고는 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런데 문이 힘없이 열리며 집안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집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이 새끼. 튄 거야?

철구는 밖으로 나왔다.

- 이 새끼...

철구는 주머니를 뒤져 전화기를 찾았다. 그런데 지난 번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이후 자신의 전화기가 고장난 게 생각이 났다.

- 하필 이럴 때... 젠장..

철구는 재빨리 천석의 집 쪽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 세현을 만나서는 다짜고짜 전화기를 내놓으라고 하고는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장 새끼가 튀었다. 이 새끼를 잡아야 되는데. 수배 때릴 수 없나?

- 잠시만요. 형님...

성준은 컴퓨터로 무언가를 찾더니 말했다.

- ....

한참동안 성준이 말이 없자 철구가 되물었다.

- 무슨 일 있어?

철구의 질문에 성준이 대답을 했다.

- 없는 사람인데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되물었다.

- 무슨 말이야? 얼마 전에 그 놈 정보를 뽑았잖아?

-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경찰청 전산 자료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심지어 주민등록번호로 찾아도 없는 사람이라고 나오는데요?

- 미치겠군.

철구는 성준의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 그럼 일단 읍내에 있는 최고 복덕방 주인 새끼라도 잡아야 돼. 그 자식은 뭔가 알 수도 있으니까.

- 네. 그 쪽에 연락하고, 저도 곧 출발할게요.

- 오케이.

철구가 전화를 끊자 세현이 푸념을 하듯 말했다.

- 마을 사람들이 안 믿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하긴. 나라도 안 믿겠다. 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데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

철구의 말에 세현은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 또 누군가가 집에서 희생되면 어떻게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 경고를 해 줘도 안 믿으면 그 사람들 문제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허리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 강철구 씨! 자기 일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요?

철구는 세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 이 봐.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내가 들어가서 나가라고 지랄을 해 봤자 더 이상한 사람만 되는 거야.

- 강철구 씨!

세현이 버럭 소리를 치자 철구가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아.. 시끄럽게 구네. 이 아래는 천석 씨네 집보다 햇빛이 더 들고, 건조해. 그리고 그 이상한 향기도 덜 하고 말야. 아직은 위험하지 않다는 거야. 그러니까 시간을 갖고 내몰면 된다구.

철구의 말에 세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 진작 그렇게 말하면 되지, 왜 이상한 사람처럼 말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대답했다.

- 그걸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나? 척 보면 똥인지 된장인지 몰라? 의사라는 사람이 말야.

철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먼저 발길을 돌려 천석의 집으로 향해 갔다. 세현은 허리에 손을 짚고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철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 하.. 참나.. 지가 뭐 츤데레인 줄 아나.

천석은 옆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다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두 분이 친해 보이네유..

세현은 천석을 보며 말했다.

- 친하다구요? 천만해요. 저런 몰인정한 인간하구 전혀 친하지 않다구요.

세현은 천석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천석의 집으로 향해 갔다. 천석은 다시 머리를 긁적이고 세현의 뒤를 따랐다. 먼저 도착한 철구는 평상 위에 앉아 있던 석호와 얘기 중이었다.

- 그 가루가 무기물이니까 결국 무기물은 소화를 못 시킨다는 것이군요.

- 그렇죠. 그럼 어딘가에 뼈도 있을 거에요.

- 뼈라...

철구는 석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세현과 천석이 오자 천석을 보며 말했다.

- 어머님은... 돌아가신 것 같아요.

철구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끄떡였다.

- 지도 알구 있구먼유... 집이.. 집이 그럴 줄은 몰랐슈.

- 그런데 신부님 말씀으로는 뼈는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유해는 수습하지 못해도 유골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철구의 말에 천석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녀유.. 저그를 또 들어가는 거는...

천석의 말에 철구가 얘기를 했다.

- 일단 할머니께서 사라지시고 또 집이 활동을 한 기간이 며칠이니까 아마 다시 활동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 전에 들어가서 찾아오면 됩니다.

철구는 천석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세현에게 말했다.

- 그 드론인가 뭔가 또 부를 수 있나?

철구의 말에 세현이 의아한 듯이 철구를 쳐다보았다.

- 드론은 왜요?

- 여기 집 성분 분석 좀 해 보려고.

철구의 말에 석호가 말을 받았다.

- 이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제가 임 박사님께 직접 보내도록 할게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 안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도 모른 채 대장에게 보내 성분 분석 의뢰를 맡기는 게 내심 찜찜했기에 철구 역시 그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석호는 평상에서 일어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까보다는 발에 힘이 많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조금은 힘겨웠다.

- 무리하지 마세요.

세현이 석호 곁으로 다가와 석호를 부축하며 말했다.

- 이젠 괜찮아요.

철구는 석호를 보며 말했다.

- 아무튼 신부님은 대단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네요.

철구는 저 집안에서 석호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왠지 그 힘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 같아 궁금증은 가슴에 묻어두기로 했다. 철구의 말에 석호가 대답했다.

- 하느님을 믿으면 됩니다.

석호의 말에 철구가 석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 신부님은 거짓말을 안 하시니까 저도 아내와 아들을 찾으면 독실한 신자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