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8. 마을의 비밀(6)
- 좆까. 내가 원하는 대로? 방금까지 수족으로 부리던 사람을 죽인 인간의 말을 믿으라고?
철구의 말에 이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건 이거와 다른 문제거든. 대한민국을 걸고 약속하지.
철구는 이장의 말에 비아냥거렸다.
- 왜 미국을 걸고 약속을 하지 그래. 미군하고 친한 것 같던데.
철구의 말에 이장이 얼굴을 굳혔다.
- 이런 실험을 하는데 그냥 미군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대한민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걸?
이장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실험이라... 고맙군.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나 싶었는데 결국 미군 실험이었군.
철구의 말에 이장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풀리면서 말했다.
- 내가 말실수를 했군.
이장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진실을 말해줘서 고맙군. 무슨 실험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면 더욱 고맙고.
철구의 말에 이장이 냉정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 너무 깊이 알면 내가 살려줘도 죽을 걸?
이장의 말에 철구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 대한민국 정부가 죽일까, 아니면 미군이 죽일까? 궁금하군.
철구의 말에 이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말을 꺼냈다.
- 내일까지 시간을 주지. 잘 생각해 보라구.
이장이 돌아서자 철구가 말을 했다.
- 배짱 좋군. 우리만 놔두고 가다니.
철구의 말에 이장이 말했다.
- 그냥 가주면 더 좋으니까.
이장은 철구를 남겨두고 자신의 집 쪽으로 갔다. 철구는 이장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전문가야. 왜 못 알아봤지?'
철구는 이장이 자신 못지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이장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철구는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발밑에서 끙끙거리고 있던, 이후엔 죽은 척 하고 있던 유 씨를 일으켜 세웠다.
철구는 이장이 유 씨를 의도적으로 놔두고 갔으리라 생각했다. 어차피 수족으로 부렸기에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유 씨를 일으키며 말했다.
- 다 봤겠지만 너희는 그냥 이용만 당한 거야.
유 씨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기침을 했다.
- 싸.. 쌍 놈의 새끼...
누구에게 욕을 하는지 모르지만 유 씨는 피를 한 모금 토하며 욕을 퍼부었다. 철구는 유 씨에게 말했다.
- 안에 의사가 있는데 치료 받고 얘기할래 아니면 이장한테 가 볼래?
철구의 말에 유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 알아서 하라고. 나야 손해 볼 거 없으니까.
유 씨는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아.. 알았당게... 얘... 얘기 허믄...
유 씨는 다시 피를 한 모금 토했다. 철구는 그런 유 씨를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 광경을 멀리서 이장이 지켜보면서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조금 있으면 상황이 종료될 것 같습니다.
이장은 전화를 끊고 그 자리에서 철구 일행이 들어간 천석의 집을 쳐다보고 있었다.
세현은 철구와 같이 들어온 유 씨를 살폈다. 다들 곱지 않은 눈으로 유 씨를 쳐다보았다. 유 씨도 그런 눈치를 챘는지 혼자 입을 삐쭉댔다.
- 가만히 계세요. 갈비뼈 쪽이 많이 부었어요. 일단은 응급으로 처치를 했는데 병원에 가야 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유 씨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 자, 이제 얘기를 나눠볼까? 얼마나 솔직하게 얘기하냐에 따라 병원에 빨리 가거나 늦게 가게 될 거야.
철구의 말에 유 씨가 강단을 세워 말했다.
- 그깟 협박에...
그러자 철구가 유 씨의 가슴을 슬쩍 눌렀다. 유 씨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 으.. 으악...
철구는 다시 유 씨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 여기 신부님은 아주 착하신 분이지. 그리고 이 의사 선생은 친절해. 그리고 저기 천석 씨는 마음씨가 곱지. 이 안에서 나쁜 놈은 너하고 나 둘인데... 어쩌지? 난 정말 악질이거든. 불던 죽던 둘 중 하날 꺼야. 난 꼴통이거든.
철구의 말에 유 씨가 다시 입에서 피를 흘리며 말했다.
- 마.. 말 할게...
철구는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 자 니가 알고 있는 얘기들을 이제부터 말하는 거야.
철구가 말을 하자 유 씨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유 씨는 이장과 검찰청에서 만났다고 했다. 구속 후에 검찰에 송치가 된 후 조사를 받는 도중 검사가 은밀한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도와주면 여기서 풀어주겠다고. 그리고 이장이 나타나서 산골에서 자신과 함께 산삼을 캐고 마을 정비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정말 산삼을 캐고 마을을 정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와서 처음 한 일은 산삼을 캐는 게 아니라 집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는 일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원래 직업이 목수였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그 때 새로 온 고 씨나 최 씨도 공사판에서 굴러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집을 지을 때나 보수할 때 기존에 쓰던 시멘트가 아니라 순전 꼬부랑말로 써 있는 시멘트를 가져다 써서 이장에게 산골에 집 짓는 데 뭐 이리 좋은 걸 쓰냐고 했더니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 너그는 거기서 안 살겨.
유 씨는 지난 얘기 끝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말했다.
- 거.. 이상헌 것이 새로 지은 집들 사람들만 마을에서 읎어졌당께. 제일 먼저는 우리랑 같이 왔던 곽 씨였는디 그 너마가 이장허구 사사건건 부딪쳤는디 이장이 미안허다구 그러믄서 잘 혀준다구 전에 지은 넓은 집으루 이사를 보냈는디 글씨 보름만에 가족들이 싹 사라졌당께.
철구는 유 씨의 말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 새로 지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실종되고, 집을 새로 짓는데 영어로 된 시멘트를 가져다 쓰고....
철구의 중얼거림에 석호가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새 집, 실종, 미군, 실험... 산삼.... 냄새... 아!
석호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철구가 소리쳤다.
- 이 집에서 당장 나가야 돼.
철구는 옆에 있는 유 씨를 들쳐 업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콤하면서도 묘한 향기가 몹시 짙어졌다.
- 이게 무슨 일이래유?
천석이 말을 하자 석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 문 쪽으로 빨리 가세요. 얼른.
석호의 외침에 천석은 문 쪽으로 몸을 던졌다. 철구는 유 씨를 등에 업었지만 이미 유 씨의 몸이 바닥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 이게...
철구가 힘겹게 유 씨의 몸을 끌어당겼지만 마치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석호는 문 앞에서 문을 세게 걷어찼다. 그러나 딱딱해야 할 문이 마치 젤리를 차는 것처럼 물렁해져서 석호의 발을 밀어냈다.
- 이게 뭐야.
석호의 외침에 세현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 끈끈이 주걱!
세현의 외침에 철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 이 자식들 집에 뭔 짓을 해 놓은 거야!
그 순간 벽이 녹는 것처럼 점액질의 무언가가 흘렀다. 그 점액질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유 씨에게로 흘렀다.
- 뭐야, 이것들 생각도 하는 거야? 약한 놈한테로 가게?
철구의 말에 세현이 말했다.
- 피에요. 피 쪽으로 먼저 향하는 거에요.
- 피? 피가 없으면 안 죽는 거야?
철구의 말에 세현이 외쳤다.
- 피를 안 흘린 사람은 천천히 녹여서 먹어치우죠. 하지만 피를 흘린다는 건 상처를 입은 거고 그 상처로 저 소화액을 넣어서 먼저 분해하죠.
세현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었다.
- 결국 다 죽는다는 말이군.
그런데 그 때 세현이 천석을 향해 소리쳤다.
- 혹시 집에 베이킹파우더 있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빵 만들 시간은 없어.
철구의 농담 같은 말에 세현이 말했다.
- 소화액은 산성이에요. 그러니까 중화시키면 약해질 거예요.
천석은 점점 흐느적거리는 벽 쪽을 향해 가서는 찬장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점액질 조금이 천석을 덮쳤다.
- 으악...
천석의 팔에 점액질이 떨어지자 마치 살을 태우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점점 붉어졌다.
그리고 점액질의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유 씨의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랍게도 유 씨의 다리가 흐물흐물 하게 녹아버리는 것이었다.
살을 태우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녹이고' 있었다. 철구는 유 씨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향기는 아까보다 더욱 진해져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천석은 팔이 아렸지만 얼른 베이킹파우더를 꺼내야 된다는 생각에 쓰러지듯 하면서 베이킹파우더를 꺼냈다.
그리고는 세현에게로 다가가서 그것을 건넸다. 세현은 천석이 건네준 베이킹파우더를 문손잡이에 뿌렸다. 그러자 흐물거리던 문이 다시 조금씩 딱딱해졌다.
- 지금이에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문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그러자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석호는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 얼른 나오세요.
철구는 세현과 천석에게 눈짓을 했다.
- 빨리 먼저 나가.
그러자 세현이 철구 쪽을 슬픈 눈으로 봤다.
- 빨리 가라구. 나도 여기서 죽을 생각 없으니까.
세현과 천석은 석호가 연 문을 통해 힘겹게 빠져나왔다. 석호가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철구 씨도 얼른...
그러자 철구가 석호를 보며 말했다.
- 신부님 먼저 나가세요. 전 유 씨 데리고...
철구의 말에 석호가 철구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 철구 씨 먼저 나가요. 제가 유 씨를 데리고 나갈 테니까.
철구는 석호를 보며 소리쳤다.
- 지금 아니면 시간 없으니까 신부님, 얼른...
그 순간 석호의 눈이 조금은 붉게 충혈되며 말했다.
- 저를 아시지 않습니까?
철구는 순간 석호의 눈에 흠칫 놀랐다. 철구는 마치 무언가를 밀리듯 석호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 저.. 저 먼저 갑니다. 신부님도 빨리 나오세요.
철구가 다시 흐물거리기 시작한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석호는 바닥에 붙은 유 씨를 보았다. 유 씨의 몸에 베이킹파우더를 뿌리며 떼어내려고 하자 유 씨의 하반신이 마치 물에 녹듯 녹아버렸다.
석호가 유 씨를 보자 유 씨는 힘겹게 눈을 뜨고 있었다. 하반신이 잘려나갔음에도 유 씨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석호 역시 머리가 조금씩 어지러워졌지만 의식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 때 문이 저절로 닫히더니 아까와 같이 끈적한 액체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 신부님! 장 신부님!
밖에서 철구가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했다.
- 젠장.. 뭐야...
세현은 문 밖에서 애타게 석호의 이름을 불렀다. 철구는 건너편 창고로 가서 곡괭이를 하나 들고 왔다.
- 부숴버리면 되지.
철구가 곡괭이를 문에 내려치자 문의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젤리에 빨대를 꽂듯이 곡괭이가 문에 박혀버렸다.
- 이런 우라질..
철구가 곡괭이를 빼려고 힘을 주었지만 마치 본드에 붙은 것처럼 곡괭이가 문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 신부님... 신부님...
밖에서 철구와 세현이 애타게 석호를 불렀지만 석호는 대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