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8. 마을의 비밀(3)
세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석의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풀 무더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철구는 혼자서 툴툴거리며 집으로 걸어왔다.
- 이게 원래 있던 풀인지 아니면 새로 생긴 풀인지 모르겠네. 이렇게 도움이 안 돼서야.. 원..
철구가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현이 들어왔다. 철구를 세현을 보며 물었다.
- 뭐 좀 있어?
철구의 질문에 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게 우리나라에 원래 있는 건가?
세현은 철구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철구는 답답한 듯이 세현을 보며 다시 물었다.
- 뭘 봤길래 그래?
세현은 철구의 물음에 철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 분명 저기 풀 숲 안에 벌레잡이제비꽃이 있었거든요. 그게 고산지대 습지에 사는 건 맞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건지 아니면 아닌지 모르겠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 벌레잡이제비꽃?
- 네. 그게 식충식물이거든요. 꽃은 제비꽃처럼 생겼는데, 아래에서 끈끈한 액체를 내뿜어서 그걸로 먹이를 잡아먹는 식물이에요.
- 식충식물? 거참...
- 네. 우리나라에는 끈끈이주걱이나 통발, 아니면 파리지옥 정도가 있는데, 벌레잡이제비꽃은 처음이라서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물었다.
- 대장한테 검색해 달라고 하면 되겠구만.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외래종들이 많이 들어와서 정확한 분포는 모를 거예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 뭐 그러면 찾으나 마나 아냐?
철구는 그렇게 말하고는 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 그나저나 신부님은 왜 안 내려오시는 거지?
철구와 세현은 집 안으로 들어가 천석이 차려 놓은 밥을 먹었다. 밥을 먹던 도중 석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 어! 신부님,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석호는 손에 흙이 잔뜩 묻은 채 조금은 멍한 표정이었다. 석호는 철구와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어쩌면.. 여기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라요.
석호의 말에 철구와 세현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석호에게 다가갔다.
- 무서운 일이라뇨?
석호는 눈을 돌려 마당을 보았다. 그러다 두 명의 눈도 저절로 마당 쪽으로 향했다.
- 저게 뭐죠?
세현이 마당에 놓인 것들을 보고는 눈이 커다래져서 물었다.
- 산 속에서 발견한 것들인데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지 않는 풀들이에요. 그리고 그 중엔 독이 든 풀도 있고, 또 저 산 위에 미치광이버섯이 잔뜩 있었어요. 그리고 그런데 그 버섯이 이상한 액체에 녹고 있었죠. 그러면서 조금 흐릿하게 냄새를 풍겨왔어요. 그리고 저 끝에 저것!
석호가 가리키는 곳에는 산삼이 한 뿌리 놓여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철구는 산삼을 보며 말했다.
- 저건 산삼이잖아요. 저게 몸에 나쁜 건 아니지 않나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저런 산삼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 산삼이 지천으로 깔려 있을 수도 있나요?
철구의 질문에 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 장뇌삼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거긴 자연적으로 키울 수 있는 곳도 아닐뿐더러 장뇌삼이면 그렇게 강한 향기를 풍기지 않은 거예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인상을 찌푸렸다.
- 왜 저런 게 있을까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가하지 않는 한 저럴 수는 없을 거예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세현이 말을 했다.
- 산삼은 성장 속도가 아주 느려요. 전에 읽은 책에서 봤는데 47년산 산삼의 무게가 고작 58그램에 불과하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 정도 크기라면 못 해도 200년 이상을 되어 보이거든요.
세현의 말에 석호도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는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손을 닦고는 말했다.
- 아무튼 정말 이상한 것들 천지에요.
석호의 말을 들은 철구는 평상 위에 앉아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 실종, 야한 꿈, 이상한 향기, 산삼, 이상한 풀...
철구는 거기까지 적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동안 얻은 정보들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 젠장...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그 때 집 안에서 천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 드.. 들어와 봐유.. 여.. 여그 컴퓨터가...
천석의 말에 모두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모니터에 '긴급'이라는 글자가 떴다. 석호가 모니터를 보고 물었다.
- 무슨 일이죠?
- 전화번호가 어디인지 찾았다.
대장의 말에 철구가 다급하게 물었다.
- 어딘데?
대장은 철구의 성격을 아는지라 결론부터 빨리 말했다.
- 미군부대이다.
- 미군부대?
철구의 반문에 대장이 말했다.
- 그 전화번호는 우리나라 전화번호 명부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 세계 명부를 뒤졌는데, 같은 번호가 모두 235개가 나왔다. 그래서 235개를 각각 조사해 봤는데,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 전화번호가 세 개였다. 그런데 세 개의 번호가 하나는 쿠웨이트, 하나는 일본, 하나는 한국이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모두 미군 군사 지역에 속한 것이었다. 그 번호들은 각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이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미국 인공위성을 이용해서 말이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 도대체 왜 이장이 왜 미군과 연락을 할까요? 대장 말로는 이 지역이 미군 군사 지역으로 지정됐다고 하는데 이장이 그 쪽하고 연결이 된 것 같은데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일단 이장을 한 번 파 보면 되는데... 대장 말로는 이장이란 사람 과거가 불분명하고... 역시 그 자식 뭔가 있었어.
철구의 말에 세현이 조금 우려하는 말을 했다.
- 그런데 이장이요. 그 사람이 이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사람 같았어요. 그냥 동네 이장이 아니라 마치 이곳의 통치자 같아 보였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 둘 중 하나야. 그 사람 키도 크고 덩치도 큰 걸 보니까 힘으로 제압했거나 아니면 동네 사람들의 약점을 잡고 있거나. 대개 양아치들이 이 방법을 많이 쓰지. 그런데 내가 볼 땐 전자는 아니고 후자 쪽 같아. 뭔가 마을 사람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아.
철구의 말에 노트북 모니터가 켜지더니 대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 혹시 실종 사건이 마을 사람들 전체와 관련이 있거나 아니면 이전에 마을 사람들이 작당 모의를 해서 나쁜 일을 한 걸 이장이 알았거나. 그렇지 않을까 한다.
철구는 대장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건 만화야 소설이야?
철구의 말에 대장은 삐삐 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내 조금 작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
- 하나는 소설이고 하나는 만화다.
대장의 고백에 세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철구의 말은 그건 만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생각이라고 한 것이었는데 대장은 뜻밖에도 만화와 소설에서 나온 얘기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심각했던 분위기를 조금 풀며 말했다.
- 어찌 되었건 이번 사건의 열쇠는 이장이 쥐고 있는 게 분명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이장뿐만 아니라 그 밑에서 이장 따까리 노릇을 하는 최 씨하고 고 씨 두 사람도 한 번 조져 봐야 돼.
철구와 세현이 얘기를 하는 동안 석호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는 말을 했다.
- 어쩌면 단순한 실종 사건이 아닌지도 몰라요. 그동안 얻은 정보를 봐서도 그렇고. 더욱이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원한 관계나 아니면 이해관계가 전혀 안 보여요. 이장의 주도 하에 그 사람들을 납치, 감금을 하거나 혹은 살해, 유기를 했더라도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딱히 집히는 데가 없어요. 다만...
석호가 말을 끊자 세현이 궁금한 듯이 말을 했다.
- 다만? 뭐죠?
세현의 말에 석호가 모니터 쪽을 보며 말했다.
- 대장 제가 부탁한 자료는 다 찾았나요?
석호의 말에 노트북 모니터 화면이 켜지면서 삐 소리가 들렸다.
- 미군 부대 정보라서 빼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신부님이 말해준 마을과 관련된 데이터와 인터넷 정보를 찾아 조합한 것이다.
화면에는 인도네시아 마을에 대한 신문 기사와 보고서의 내용이 보였다. 하나는 인도네시아어로 쓰여 있었고 다른 하나는 영어로 쓰여 있었다. 그런데 그 신문 위로 자막처럼 한글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