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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33화 (23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8. 마을의 비밀(2)

- 일단은 성적인 욕망도 있지만, 그걸 뭔가 자극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마치 육체의 쾌락이 전부인 듯한 기분이요. 그 대상이 누가 됐건 내 욕망만 충족시키면 된다는 그런 느낌.

세현의 말에 석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 이런 산골 마을에서 그런 게 가능할까요?

석호의 질문에 세현이 담담하게 얘기를 했다.

- 뭐 연인들이라면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면 아무래도 정신이 리프레시되는 기분이 되어 그럴 수도 있지만...

세현의 말에 석호가 말을 했다.

- 아까 마을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고, 지금 집에 들어오니까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하게 어떤 향이 나는 것 같거든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래요? 하긴 저희는 계속 여기에 있었으니까 그 냄새를 느낄 수 없을 수도 있겠네요. 코는 워낙 빨리 피로해지니까.

세현의 말에 석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했다.

- 혹시 강한 최음 효과가 있는 약품 중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 글쎄요.. 일랑일랑(Ylang-Ylang)이나 치자나무나 자스민에도 그런 성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삼지구엽초나 다미아나 같은 것도 복용했을 땐 그런 효과를 내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내일 일어나서 여기에서 자라는 식물군들을 확인해 봐야겠네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 그런데... 철구 씨도 그런 꿈을 꿨다면 혹시 그 대상이 누군지 아세요?

세현의 질문에 석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 원래 유부남이었잖아요.

석호는 철구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웃었다. 세현은 고개를 끄떡이며 생각했다.

'난 뭐지? 왜... 그리고 석호 신부님이 더 잘 생겼는데? 꿈에서도 금기에 대한 억압이 강한 건가?'

석호는 철구가 있는 바깥으로 나가 철구 옆에 앉으며 말했다.

- 내일은 바쁘겠네요.

석호의 말에 담배를 피우고 있던 철구는 담배를 끄며 말했다.

- 신부님 말씀을 들으니까 더 혼란스럽군요. 사람이 실종이 되었는데, 도무지 그 흔적은 찾을 수가 없으니..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러게요. 저도 단순히 할머니 한 분이 실종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엄청난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 실종 같아 보이지가 않으니.. 이거야 원...

철구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일단 이럴 때는 그냥 자는 게 상책이죠.

철구가 그렇게 말을 하자 석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 네. 아무튼 내일은 산에 좀 돌아다녀봐야 할 것 같아요.

철구와 석호는 천석의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석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아까보다 향이 조금 더 진해진 것 같은데요?

철구는 석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러니까요. 도무지 이 향기가 어디서 나는 건지.. 집집마다 뭘 키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철구가 말을 하자 석호도 고개를 끄떡였다.

- 하수구나 그런 데로 향이 들어올 수도 있죠.

석호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하수구에서 이런 냄새가 올라오면 살만 하겠네요.

철구의 말에 석호도 웃으며 말했다.

- 그렇겠군요.

두 사람은 거실의 소파와 바닥에 제각각 누워 잠이 들었다. 석호는 소파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분명히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는데도 몸이 마치 깊은 물속에 빠지듯이 가라앉았다.

- 저.. 저건...

석호는 자신이 어린 시절 공부했던 바티칸의 강의실에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줄에 앉아 있는 어린 학생이 보였다. 그건 자기의 어린 시절이었다.

- 여.. 여긴 뭐야?

석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린 석호의 뒤로 다가갔다. 어린 석호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석호는 어린 석호가 보고 있는 화면을 보았다.

- 이.. 이건...

모니터에서는 포르노가 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 나오는 사람은 석호의 기억 저편에 있던 사람이었다.

- 이... 이자벨?

석호는 어린 시절 컴퓨터를 가르치던 수도사의 여동생이 출연한 포르노를 수도사의 컴퓨터에서 해킹해서 빼낸 적이 있었다.

수도사는 죽은 여동생의 마지막 모습이었기에 지울 수가 없었고, 석호는 그 일로 인해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모니터 안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던 이자벨이 석호 쪽을 쳐다보았다.

석호는 화면 안의 이자벨과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화면 안에 있던 이자벨은 실제의 모습이 되어 석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석호는 뒤로 물러나려고 발을 떼었다. 그러나 자신의 발이 땅에 붙었는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자벨은 어느 샌가 석호의 눈앞으로 다가왔고, 이자벨은 붉은 입술을 반쯤 벌려 석호의 입술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석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를 시작했다. 입술에 뭔가의 감각이 찾아오고 자신의 몸을 누군가가 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석호는 그런 것을 떨쳐내기 위해 더욱 크게 기도를 했다.

그 순간 어두웠던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듯 석호의 눈앞이 환해졌다. 석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이런 꿈이로군...

석호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어서 그런지 산 너머는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석호는 서늘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마당을 걸었다. 처음으로 이런 꿈을 꾼 석호에게 이 꿈은 너무 이질적이었고, 낯설었다. 석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집을 돌아다보았다.

- 잠은 다 잤군.

석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마당을 서성이다가 조금씩 밝아오자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 빨리 가서 조사를 하고 내려와야지.

석호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산비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철구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석호가 보이지 않았다.

철구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간 꾸지 않았던 이상한 꿈을 또다시 꾸었고, 자신도 모르게 깊이 잠이 든 것이었다.

- 이 동네... 아주 이상해...

철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 희미한 운무가 집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옅긴 하지만 집 안에서 맡던 향이 운무에도 묻어나는 것 같았다.

철구는 기지개를 켜고 마을 아래를 살펴보았다. 마을은 이른 아침임에도 무언가 몹시 분주해 보였다.

철구는 그들이 무얼 하는지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 뭐 하는 거야? 참 나..

철구는 그렇게 몇 분을 지켜보다가 산 위를 쳐다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집을 쳐다보다는 눈초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철구는 어제 석호가 말한 걸 떠올렸다.

- 신부님도 참. 같이 하면 되지. 혼자서 뭐가 그리 급하셔서...

철구는 마당에 있는 수도를 열고 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지하수를 끌어올린 것이라 그런지 몹시 시원했다. 그런데 수도를 처음 틀었을 때, 조금은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 지하수라 그런가?

철구는 세수를 마치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식물에 대해 문외한이긴 했지만, 그래도 주변 군집과 다른 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철구는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풀을 뒤졌다.

- 뭐하는 거예요?

철구가 쪼그려 앉아 풀들을 살피고 있을 때, 세현이 철구를 부르며 말했다. 철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 풀 찾아.

- 풀이요? 무슨 풀?

세현의 말에 철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세현에게 말했다.

- 풀에 대해서 좀 알아?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풀이야 많이 봐와서 알죠. 왜요?

- 신부님이 말 안 했나? 풀들이 이상한 조합의 냄새를 풍긴데. 그것들이 모여서 최음 효과를 낸다는데, 난 도무지 풀에 대해서 몰라서.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럼 신부님은 산에 올라간 거예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 그런 것 같아. 자고 일어나 보니까 없더라구.

철구의 말에 세현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 철구 씨는 원래 잠귀가 밝잖아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러니까. 여기 와서는 지난번에도 그렇고 어제도 그렇고 정신줄을 놓고 자버렸어. 그리고...

철구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닫았다. 하지만 세현은 철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세현은 잠시 딴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 아무튼 집이며 마을이며 이상한 향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이상해지고 있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할매는 그런 거 잘 알 거 아냐.

철구의 말에 세현이 허리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 제가 왜 그런 걸 잘 알아요!

세현의 반응에 철구는 이상하다는 듯이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의사니까.

철구의 의외의 말에 세현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 의.. 의사라고 다 잘 아는 건 아니에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하긴. 의사가 다 알진 못하겠지. 아무튼 할매도 돌아다니면서 이상한 풀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철구는 천석의 집 뒤로 난 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다니며 풀을 살폈다. 세현은 철구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말고 발을 돌려 마당으로 나갔다.

- 왜 또 어제 그런 꿈을 꾼 거야. 이상해...

세현은 지난밤에 또다시 야한 꿈을 꾼 자신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 아무래도 너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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