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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32화 (23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8. 마을의 비밀(1)

8. 마을의 비밀

석호는 밤이 깊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성당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읍내의 좁은 골목에서 주변을 살폈다.

한적한 시골 읍내라서 그런지 밤이 깊자 유동 인구가 거의 없었다. 간간이 택시나 자가용들이 다니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신호등마저 점멸 상태였고 그나마 불이 켜진 곳은 다방 간판뿐이었다. 석호는 이런 시골 마을 다방에 이 야밤에 누가 찾아올까 싶기도 했지만 시골 마을 성매매가 이런 다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냥 쓰게 웃고 말았다.

석호는 빠른 걸음으로 낮에 들렀던 복덕방 앞으로 갔다. 다행히도 자물쇠는 전자식이 아니었다. 석호는 예전에 철구에게서 배운 자물쇠 여는 법을 떠올리며 옷핀을 구부려 자물쇠 구멍 안에 집어넣었다.

- 뭔가 걸린다고 했는데..

석호는 손끝에 무언가가 걸리는 것 같아 앞으로 조금 당겼다. 그러자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너무 쉽게 문이 열리자 석호는 자기도 모르게 당황을 했다.

- 뭐지? 원래 이렇게 쉬운 거야?

만약 철구가 석호의 이 모습을 봤다면 전업을 하라고 추천했을는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물쇠가 그리 쉽게 열리지 않는데 석호는 너무나 손쉽게 연 것이었다.

석호는 자문쇠가 열리자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 이리저리를 돌아보았다. 복덕방 구조야 오전에 봐서 익히 알고 있었다.

석호는 다른 것은 볼 것도 없이 책상으로 가서 장부를 열었다. 이런 시골 마을 복덕방에 도둑이 들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인지 장부는 그대로 책상 위에 있었고 석호는 들고간 플래시를 켜고 장부를 넘겨보았다.

그다지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석호는 몇 장을 넘겨 뒤의 내용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오정리라는 글자가 보였다. 석호는 거기에 적힌 내용을 자세히 보았다.

'한구종 - 55세. 무직. 미상. 9월 19일 예정. 200+300. 3년'

- 이게 뭐지?

석호는 앞으로 몇 장을 넘겼다. 그러자 거기에 또다시 오정리에 대한 내용이 보였다.

'문덕용 - 45세. 아들 하나. 농부. 철원. 10월 23일 예정. 200+의논. 10년'

석호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을 해 봤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자신이 낮에 얘기한 이름이 보였다.

'정준래 - 33세. 무직. 서울. 전화로 확인 필요.'

석호는 장부를 덮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이리저리를 돌아보았다. 책상 아래에 오래된 장부들이 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석호는 조심스럽게 장부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장부를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한 장씩 넘기며 안의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조미옥 ? 25세. 창녀. 서울. 100+80. 병든 병석이 부인으로 보내면 됨. 5년.'

- 이게 뭐지?

석호는 '부인으로 보낸다'는 말과 뒤에 적힌 몇 년에 주목했다. 그리고 플래시를 위로 올려 날짜를 보았다. 그 날짜는 5년 전이었다.

- 이건...

석호는 아래 놓인 장부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빨리 장을 넘기며 '오정리'와 관련된 것들만 찾아보았다.

'최천석 ? 23세. 농부. 어머니. 영동군. 50+30. 10년.'

석호는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 이 자식... 완전 브로커구만.

석호는 장부를 다시 접어 원래 있던 자리에 놓고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대충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밤늦게 죄송합니다. 다른 게 아니고...

석호는 복덕방의 의심스러운 점에 대해 얘기를 하고 가급적이면 빨리 복덕방에 대한 압수 수색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성준은 석호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석호는 복덕방 주인을 취조하다 보면 뭔가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성당으로 가서 잠이 든 고 신부에게 쪽지를 하나 남기로 그 걸음으로 마을로 돌아왔다. 어두운 산길이었지만, 석호는 낮보다 더욱 강한 느낌을 받았다.

낮에는 바람과 온갖 사람 냄새가 섞여 잘 느껴지지 않던 향기가 석호의 코를 자극했다. 석호는 이 알 수 없는 냄새가 모든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반드시 이 동네를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고 마음 먹고는 숙소로 쓰고 있는 천석의 집으로 향했다. 석호가 들어올 때 거실에서 눈을 붙이고 있던 철구가 눈을 뜨고는 석호와 마주쳤고, 철구는 들어오는 석호를 보며 말했다.

- 밤이 늦었는데 내일 오시지 그러셨어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조금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상황이 조금 급박하게 돌아가서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석호를 쳐다보았다. 석호는 마을에 내려가서 겪었던 얘기들을 풀어 놓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철구의 얼굴은 굳어갔다.

- 혹시 철구 씨도 여기 와서 이상한 꿈을 꾼 적이 있나요?

석호의 질문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 대상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은 채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얘기를 했다.

- 아마 그런 꿈은 세현 씨도 꾸었을 겁니다.

철구의 말에 석호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 그걸 어떻게...

그러자 철구는 민망한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제가 꿈에서 깨서 찬물 한 번 뒤집어쓰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세현 씨도 그런 꿈을 꾸는지 몸을 뒤틀더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전 유부남이었잖습니까.

철구의 말에 석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천석 씨도 산삼을 캐러 가기 전에 그런 꿈을 꾸었다더군요. 그리고 산삼을 캐고 내려오니 어머니가 사라졌고, 구 씨 할아버지 댁에서 두 분이 주무실 때 그런 꿈을 꾸고 두 분이 사라졌죠. 어쩌면 미옥 씨도 같을 수 있겠네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혹시 꿈이 사람을 잡아간다는 건가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 그런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그런 꿈을 꾸게 하는 뭔가가 있는데, 그 다음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겠죠.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럼 그 꿈을 꾸게 하는 무언가와 사람이 실종되는 사건 간에 어떤 유사성이 있겠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대답했다.

- 아까 대장에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어떤 풀들이 내뿜는 향기가 조합이 되면 아주 강한 최음제 효과를 낸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건 마약하고 비슷한 성분이어서, 아니 어쩌면 마약보다도 더 강한 효과를 낼 수도 있구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 그럼 그 풀들을 찾아보면 되는 건가요?

- 그게...

석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 정확하게 어떤 풀들이 어떤 조합으로 그런 효과를 내는지는 저희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성분이 조합되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를 알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밖에서 두 사람이 얘기를 하는 소리 때문인지 세현이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나왔다.

- 신부님 오셨어요? 안 주무시고 뭐 하세요?

석호는 세현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 세현을 소파에 앉히며 물었다.

- 세현 씨에게도 물어볼 말이 있는데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의아한 듯이 석호를 보았다. 석호는 철구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 정확하게 확인하는 게 필요해서요.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세현 씨는 의사니까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해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석호의 뜬금없는 말에 세현이 석호를 보며 물었다.

- 무슨 말씀이세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흠흠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철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석호를 보며 물었다.

- 무슨 일 있어요?

석호는 세현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혹시 최근에 세현 씨, 성적인 꿈을 꾼 적이 있습니까?

석호의 질문에 세현은 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석호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으며, 철구가 왜 민망해하는지 갑자기 알 것 같았다. 세현은 얼굴이 몹시 붉어지며 말했다.

- 호.. 혹시 철구 씨.. 철구 씨가 봐... 봤데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그게 아니라 이상한 연결 고리가 있어서요.

석호는 세현에게 낮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말했다.

- 꿈의 내용이 거의 다 성적인 것이어서요. 만약 세현 씨까지 그런 꿈을 꿨다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의사로서 분석을 해 보셨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저는 저만 그런 꿈을 꾼 줄 알고 제 정신 상태에 대해 고민했거든요. 신부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아직 문제가 있잖아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아마 그 문제와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세현 씨의 말이 맞겠지만...

세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잠깐 물었다 떼며 말했다.

- 처음에는 억압된 욕망이 꿈으로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신부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석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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