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7. 알고 싶은 비밀(5)
석호는 계속 이어지는 장면이 몹시 역겨웠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남자의 칼이 허벅지의 살점들을 뼈에서 발라내자 여인의 허연 대퇴부 뼈가 드러났다.
여자는 그런 상태에서도 다리를 들고 있었다. 여자의 다리에서 살점이 툭 떨어졌다. 바위 위로 떨어진 살덩이가 떨어진 충격으로 인해 바위에 튕겨 남자의 발 아래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다른 쪽 다리의 근육을 발라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자의 발 아래로 무언가가 다가오더니 여자의 다리 근육을 덮어버렸다.
- 도대체....
석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마치 백정처럼 살을 발라내는 역할에만 충실한 것처럼 보였다.
남자가 다른 쪽 다리의 살도 다 발라내자 이번엔 여자의 배를 갈랐다. 근육만 여자의 얼굴의 근육이 수축되거나 팽창되어 보였다.
여자의 배를 가르자 시뻘건 피가 마구 흘러내렸고, 장기들은 아직 살아 있다는 듯 꿈틀대며 움직였다. 남자는 여자의 배를 벌리고 위를 끄집어냈다.
조금은 불룩한 살덩이를 보다가 손으로 꾹 누르자 여자의 입을 통해 무언가 노란 액체가 흘렀다. 여자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위를 끄집어내다가 무언가가 걸렸는지 조금 힘을 주어 빼냈다. 그러자 위와 연결된 창자가 딸려 나왔다.
남자는 뭐가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여인의 내장을 꺼냈고, 조금 후에 커다란 가위로 창자 아랫부분과 위와 연결된 식도 부분을 잘라냈다.
그러자 피가 섞인 불순물들이 위아래로 흘러나왔다. 남자는 여자의 몸에서 나온 불순물을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 웩...
아무리 비위가 강한 석호라 할지라도 이 장면은 도저히 그냥 볼 수 없었다.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을 하며 입안에 고인 침을 뱉어냈다.
- 이런 미친 새끼.
석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욕을 내뱉었다.
- 신부님... 무섭다...
그러자 석호가 대장에게 말했다.
- 이건... 뭐... 아무리 여기 증거가...
그런데 그 순간 남자의 아래를 덮고 있던 무언가가 바위 위로 슬금슬금 올라오더니 여인의 시신을 덮었다.
남자는 손에 힘이 빠진 듯이 여자의 위를 놓쳐버렸고, 그런 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사라졌고, 바위 위를 덮은 무언가 역시 한참을 여자의 위에 있다가 마치 햇빛에 녹은 아스팔트처럼 흐물거리며 바위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위에 있어야 할 시신이 흔적조차 남지 않은 채 사라져 있었다. 오직 뼈만 남아 있었다. 석호는 그 영상을 조금 뒤로 돌려 다시 보았다.
- 뭐야? 다 없어진 거야? 뼈만 남고?
조금 후 마틴이란 인간이 나와서 얘기를 시작했다.
- 놀랍죠? 저 영상은 저희 팀이 소백산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발견한 것이죠. 이 영상을 경찰에 보내서 여자를 이렇게 무참히 죽인 그 남자를 잡아들인 거죠. 놀랍게도 그 남자는 아주 멀쩡한 정신이라더군요. 더군다나 대학 병원 의사였답니다. 저희는 이것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백산, 거기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언가가 산다는 것을. 마치 썩은 시신만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어떤 기준에 도달하는 사람을 찾아 산에 있는 무언가가 잡아먹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종이 되었을까요? 확실한 결론은 여러분께 맡깁니다. 그럼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세요.
영상이 끝나자 석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석호는 영상에서 나온 장면이 연출된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상에서 나온 장소는 자신이 가본 장소였고 석호 역시 거기서 정신이 아찔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석호 역시 잠이 들지 않기 위해 나무를 향해 강하게 들이받았지만 그리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만약 그 두 사람이 거기로 갔다면 자신처럼 무언가에 취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에 취했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끔찍한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해부하듯 죽이는 남자나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열락에 취한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여자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 휴..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로군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다음 화면을 보여주었다.
- 이것도 끔찍한 건가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삐삐' 소리를 냈다.
- 저들의 변화와 관련해서 어떤 사람이, 물론 딥웹에 올린 것이니까 익명이다. 아무튼 저런 반응과 관련된 문서다.
석호는 대장이 띄운 화면을 보았다.
- 마약인가요?
석호는 문서를 읽다가 물었다. 그러자 대장이 또다시 '삐삐' 소리를 냈다.
- 러시아어라서 번역기로 번역을 해도 정확하겐 알 수 없다. 난 신부님은 러시아어를 아는 줄 알았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웃으며 말했다.
- 러시아어까지 익히진 못 했어요. 안타깝게도.
- 그렇구나. 잠시만 기다려라.
석호는 문서의 내용 중 약품 성분명만 대강 파악하고 있을 때 다른 문서가 옆에 떴다.
- 이게 뭐죠?
그러자 곧 이어 대장의 기계음이 들렸다.
- 우리 그룹 중 러시아어를 잘 하는 사람이 있었다. 급하게 번역하느라 완벽하진 않다고 했다.
석호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그룹이요? 이상한 건 아니죠?
석호의 말에 대장은 우쭐하며 말했다.
- 이상한 거 아니다. 날 추종해서 만든 그룹이다.
대장의 말에 석호는 희미하게 웃으며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하긴 대장 정도의 해커라면 그 쪽 세계에선 유명하리라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 바티칸 보고서에서도 대장의 해커명인 '퍼핏(puppet)'이 보이기도 하는 걸 보면 대단하긴 대단한 것 같았다.
석호는 모니터에 나온 번역본을 읽었다. 번역 수준이 그리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 자연 반응이라구요? 풀과 나무 그리고 흙에서 나온 성분이 자연스럽게 혼합되어 운무 형태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인체로 들어가면 강력한 최음 성분이 된다는 건 뭔가 이상한데요?
석호는 아래로 읽어 내려갔다. 구소련 학자들의 연구 내용과 함께 실험 결과들이 나왔다.
- LSD보다 3만 배 강하다구요? 이게 무슨...
- 그렇다. LSD가 인체의 7억분의 1만큼으로도 환각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이건 운무 형태를 맡기만 해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석호는 이 특이한 조합에 미간을 찌푸렸다.
- 구소련에선 일부러 그걸 만들었지만 소백산에선 그렇지가 않잖아요.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미군 군사 지역이란 게 혹시 마을 주변에 그런 식물들을 심는 건가요?
석호는 대장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모니터에 나온 화면을 보았다.
- 잠재된 공격 성향의 발현, 극단적인 성적 쾌감, 도파민 과다 분비... 이건 완전히...
석호는 다음에 나온 내용을 자세히 읽었다.
- 자연물에서 추출이 가능하고, 일반적인 화합물이 아니기 때문에 인체에 영향이 없다.
석호는 거기까지 읽고 생각에 잠겼다.
'굳이 이곳에 이런 식물들을 심어서 사람들을 최음 상태로 빠지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미군이 마약을 제조하는 것도 아닐 테고... 도대체 뭐지?'
석호는 러시아의 실험과 지금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결과적으로는 유사한 것 같지만 그 의도는 다를 것이라 추측했다. 마을이 실험실일지라도 굳이 이런 실험을 하고 사람을 잡아 없애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 정황은 대충 알았는데 그 의도는 아직 모르겠군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삐' 소리를 내고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 하.하.하.
석호는 대장이 뜬금없이 웃자 무슨 일인가 싶어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 아까 생체 관련 사이트를 뒤지다가 중국 불임 센터에서 찾은 자료다.
그리고는 화면에 누군가의 진료 기록부가 나왔다. 석호는 그 진료 기록부를 보고는 놀라서 눈이 커졌다.
'Gu jungsik(73), Jo mija(69)'
이건 분명 구 씨 할아버지 내외였다. 거기에는 이 부부의 임신 상황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의 발기부전 상태나 할머니의 폐경 상태, 그리고 어떤 작용인지 모르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다는 것까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자신이 알기엔 구 씨 할아버지 내외가 임신을 했다는 것은 세현이 확인해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보고서는 자신들이 마을에 오기 2주 전 내용이었다.
그건 이미 마을의 누군가는 구 씨 할아버지 내외에게 아이가 생겼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더욱이 중국까지 흘러갔다는 건 보고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 아니. 어떻게...
대장은 그게 자신에게 이 문서를 어떻게 구했는지 묻는 것으로 알고 대답을 했다.
- 의료 정보 검색봇을 해킹했다. 그리고 다양한 검색어를 넣어서 찾은 것이다. 문서에 암호가 걸려 있었지만 나한테 그 정도는 별 거 아니다.
석호는 대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다른 생각에 빠졌다.
- 대장, 부탁이 있는데 그 전화번호가 어디 것인지 좀 찾아줄 수 있나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삐'하고 대답을 했다.
- 일단 우리나라 전화번호가 아니니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검색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석호는 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그리고 하나 더...
석호는 아까 임 박사가 보낸 메일의 내용을 말하며 그것과 관련된 정보도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 대장 미안해요. 자꾸 부탁만 해서.
석호가 모니터를 보며 말하자 모니터에선 웃고 있는 이모티콘이 떴다.
- 대신 나중에 정말 다 같이 밥 먹는 거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물론이죠. 어떻게든 그 자리를 마련할게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삐' 소리를 냈다.
- 그리고... 딴 여자는 안 된다.
대장의 말에 석호는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 전 신부에요.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석호의 말에 대장이 말했다.
- 아무튼 안 된다. 그게 조건이다.
대장의 말에 석호는 이미를 짚었다.
- 알았어요. 허허.
석호는 대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자 이제 복덕방을 털어볼까?
석호는 그러면서 혼잣말을 했다.
- 신부가 복덕방을 털러가고... 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