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7. 알고 싶은 비밀(3)
장 신부.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박 형사 아니 이젠 철구인가? 철구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궁금하군.
지난 번 장 신부가 보낸 메일을 보고 비슷한 사례를 찾아봤지. 그런데 말야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더군.
인도네시아 산골 마을 실종 사건 피해자들을 조사해 보니까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있어서 말야. 그 마을은 생존자가 한 명뿐이더군.
모두 시신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그런지 조사도 변변하게 된 게 없어서 내가 직접 인도네시아로 갔었지. 그런데 그 마을이 통째로 없어졌더군.
뭐 그런 거야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그 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풀들이 특이해서 말야. 허탕이구나 생각하고 나오는데 발아래에 황새풀이 보이더군.
알다시피 황새풀은 우리나라나 러시아나 툰드라 지대에서 자라는 식물 아닌가? 뭔가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까 어처구니가 없더군. 뭔 잡풀 군락이 그렇게 다양한지...
그런데 특이한 건 끈끈이주걱이 상당히 많더군. 그게 마을 실종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쪽 풀들을 확인해 보게나. 그럼 무슨 연관성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네.
아무튼 건강하고 또 연락하겠네.
석호는 메일을 지우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식물 군집이 다소 다르다는 건 자신도 산을 오르면서, 그리고 천석이 말한 곳에 가서 확인을 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도네시아의 마을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많은 것이 비슷하지만, 도무지 두 마을 간의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석호는 크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걸 굳이 되새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우선 전화번호에 나온 복덕방을 먼저 찾아가 보기로 했다. 밖에 나왔을 때 고 신부는 동네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고 신부는 아이들에게 공을 차 주고 석호에게 다가왔다.
- 장 신부님, 하시는 일은 다 되셨습니까?
석호는 고 신부를 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 네. 필요한 일은 다 정리했습니다.
석호의 말에 고 신부는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는 고 신부를 보고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신부님, 죄송한데 혹시 사복 좀 빌려 입을 수 있을까요? 제 사복은 전부 다른 교구에 있어서요.
석호의 말에 고 신부는 흔쾌하게 대답했다.
- 그럼요. 그런데 옷이 다들 조금 낡아서...
고 신부의 말에 석호가 손사래를 쳤다.
- 괜찮습니다. 그런 건 아무 상관없습니다.
석호는 고 신부가 내준 사복을 입고 읍내 거리로 나왔다.
- 안녕하세요.
석호는 '최고 복덕방'이라는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읍내 유일한 복덕방이었지만 마을 주민들 상대로 영업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안에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무료한 표정으로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석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엉거주춤 일어나 석호를 맞이했다.
- 어떻게 오셨습니까?
복덕방 주인의 말투는 마치 이런 곳까지 웬일이냐는 투였다. 아니면 누구 소개로 여기 왔냐는 뉘앙스였다.
- 아.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싶어서 집 좀 알아보러 왔습니다.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은 마치 장사하기 싫은 사람처럼 말했다.
- 아니 손님처럼 젊은 사람이 뭘 찾아먹을 게 있다고 이런 외진 동네로 이사를..
- 귀농해서 농사라도 짓고 싶어서요.
석호의 말에 부동산 주인은 손사래를 쳤다.
- 농사요? 이런 산촌에서 농사는 무슨. 여기 사람들 대부분이 산에서 약초나 캐서 먹고 사는데. 아니면 동네 사람들 상대로 구멍가게나 하던가.
석호는 부동산 주인의 말에 대꾸를 했다.
- 산 개간해서 텃밭이라도 만들어 먹고 살려구요. 아무튼 괜찮은 데 없나요?
복덕방 주인은 벗었던 안경을 쓰고는 책상 있는 곳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 거기 좀 앉으슈. 잠깐 장부 좀 보고.
석호는 소파에 앉아서 복덕방을 두리번거렸다. 딱히 특이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낡고 냄새나는 시골 복덕방의 모습이었다. 뭔가 특별하달 것이 없어 보였다. 복덕방 주인은 석호를 보며 물었다.
- 혹시 땅 사서 집 지으실 거유? 아니면 있는 집 수리해서 사실 거유?
복덕방 주인의 질문에 석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모아 놓은 돈이 많지 않아서요.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 중요한 줄 모르고 쓴다니까.. 쯧쯧.
석호는 복덕방 주인의 태도에 몹시 빈정이 상했지만 석호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복덕방 주인을 외면하고 밖을 쳐다보았다.
복덕방 주인은 장부를 보는 척 하며 석호를 흘끗흘끗 보는 걸 석호는 눈치 채고 있었다. 추천해 달라는 집은 안 알려주고 마치 불청객 내쫓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복덕방 주인의 태도에 석호는 저치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석호는 그 느낌의 정체를 알기 위해 엉덩이를 더욱 소파에 뭉갠 채 창밖을 쳐다보았다. 복덕방 주인은 그런 석호를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했다.
- 잠깐 이리 좀 오쇼. 지도 보믄서 말해 줄 테니까.
석호가 복덕방 주인 옆으로 가자 복덕방 주인은 지도 앞에서 산 속을 찍었다.
- 여기에 한 5년 전엔가 사람이 살다가 나간 집이 있는데 거긴 주소 등록만 하면 들어가서 살 수 있어요.
석호는 복덕방 주인을 보고 볼멘 소리를 했다.
- 거긴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니잖아요. 전 차도 없는데...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 돈이 얼마나 있어요? 뭐 이런 시골에서 집을 구하려고 왔으면 얼마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텃밭이라도 일구고 살려믄 돈 좀 있어야 하거든.
석호는 복덕방 주인 말에 인상을 쓰며 말했다.
- 아저씨 말대로 돈 있으면 여길 왜 오겠어요. 여기서 일하면서 돈 좀 벌려고 왔지.
석호의 말에 순간적으로 복덕방 주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석호는 뭔가 있다 싶어 넋두리하듯 말했다.
- 젊은 놈이 몸 하나 믿고 살려고 하는데... 힘드네요.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은 석호를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 남의 돈 먹는 게 쉽나. 그런데 혼자인가?
복덕방 주인은 석호를 보며 은밀하게 얘기했다.
- 피붙이 하나 없으니까 이런 산골까지 떠내려 왔죠.
석호를 보며 복덕방 주인이 말했다.
- 곱상하게 생겨서 고생이라곤 모르고 산 거 같은데....
석호는 복덕방 주인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 뭐 한 5년 전까지는 떵떵거리며 살았죠. 아버지 회사 망하고 어머니가 쓰러지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군. 어쩐지 좀 귀티가 나 보인다 했어.
- 뭐 그렇게 살다가 이렇게 살려니 에휴...
석호는 낮게 한숨을 쉬며 푸념하듯 말했다. 그러자 복덕방 주인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그럼 여긴 어떤가?
복덕방 주인은 오정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순간 석호는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 거기엔 뭐가 있나요?
그 순간 복덕방 주인은 뭔가 생각이 난 듯이 말을 돌렸다.
- 아니 뭐가 있기보다.. 흠흠.. 여기는 이장님이 워낙 좋은 분이라 살만 할 것 같아서...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먹고 살기 편하다면야...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이 말했다.
- 먹고 살기야 편한데... 그게...
복덕방 주인이 주저하자 석호가 되물었다.
- 뭐 그리 뜸을 들이세요. 속 시원하게 말이나 좀 해 주지.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이 말했다.
- 거기야 좋지. 그런데 거기에 가려면 일단 거이 이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또 몇 가지 서류가 필요해서 말야...
석호는 복덕방 주인의 말에 인상을 썼다.
- 이사 가는 게 아니라 면접 보러 가는 것 같네요.
- 그리고 지금은 이사하기가 조금 그래서 말야. 며칠만 기다리면 되긴 하는데...
복덕방 주인은 석호를 그냥 보내기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석호는 이 두 사람의 연결 고리가 무엇일까 추측하다가 말을 했다.
- 그럼 저기 여관에 며칠 머물 테니까 연락 주세요.
석호의 말에 복덕방 주인은 몹시 기쁜 표정으로 석호에게 말했다.
-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여기 전화번호 하나 적어주고...
석호는 복덕방 주인이 내미는 메모지에 아무 번호나 썼다. 어차피 연락이 와도 자기를 뻔히 알고 있는 오정리에 이런 방식으로 침투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석호는 복덕방 주인에게 꼭 연락을 달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 뭔가 구린 게 있어. 마치 사람 팔아먹는 것 같은 저 표정하고...
석호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밤에 복덕방에 와서 서류들을 한 번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성당으로 다시 들어갔다.
성당 안으로 들어간 석호는 고 신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아까 작업을 했던 사제실 안으로 들어가자 석호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서버에 접속할 수 있으면 접속해라.
석호는 컴퓨터를 켜고 대장과 접속을 했다.
- 아무리 봐도 이상한 내용이라서 연락했다.
- 뭐가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지도를 보여주었다.
- 이게 뭐죠?
- 군사 지도다.
- 군사 지도까지 해킹하면 안 돼요.
석호의 말에도 대장은 군사 지도를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 정말 이상한 거라서 그렇다. 여기를 봐라.
석호는 확대된 지도를 보았다. 오정리가 보이고 그 위에 쓰인 글자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 뭐라구요? 여기가 미군 군사지역이라뇨?
석호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대장이 보여준 지도는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