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7. 알고 싶은 비밀(1)
7. 알고 싶은 비밀.
평상시와 다르게 한낮의 마을이 몹시 소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들 죽은 줄만 알았던 철구가 제 발로 마을 입구에서부터 걸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철구를 발견한 유 씨는 꽁무니에 불이 붙은 것처럼 뛰어 이장에게 보고를 했고, 이장과 그 패거리들은 철구가 마을 입구를 통해 위로 올라가는 걸 쳐다보았다. 철구는 천석의 집을 향해 걷다가 이장 쪽을 쳐다보며 외쳤다.
- 더운데 계곡에 몸 좀 담그니 아주 시원하더군요. 기회 되면 한 번 가 보세요.
철구는 그렇게 말을 하고 다시 천석의 집 쪽으로 걸었다. 그런 철구를 보며 이장과 패거리들은 인상을 썼다.
- 아따, 이장님. 지가 가서 조져불까요? 저 노무자슥 눈꼴 셔서..
유 씨가 말을 하자 이장은 여전히 표정만 굳힌 채 철구를 노려보았다. 철구가 마당에 나타나자 오후에 철구를 찾으러 나가려던 석호와 세현, 천석이 모두 놀란 눈으로 철구를 쳐다보았다. 석호와 세현은 철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천석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쳤다.
- 워... 워찌케... 사... 살아계셨구만유...
천석은 순박한 두 눈에 눈물이 그득 고이며 철구의 손을 부여잡았다. 철구는 그런 천석을 보며 말했다.
-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아요.
철구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세현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철구가 죽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 그리고 직접 눈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 와... 왔군요.
철구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그럼 죽은 줄 알았어? 그냥은 절대 못 죽어. 난.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석호는 철구에게 다가와 조그맣게 말했다.
- 더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네요. 마을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말이죠.
석호는 철구가 돌아왔다는 것에 감격했는지 그냥 그렇게만 말했다.
- 아, 그리고 어제 성준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돌려보냈어요. 그 자식 총장 집합인데도 안 가고.. 그래서 늦게라도 가라고 했습니다.
석호는 성준에게 마을 아래에서 기다려달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경황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철구가 그 상황을 정리한 것이었다.
- 아무튼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석호가 철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이장이 천석의 마당으로 들어와서 소리쳤다.
- 사람이 살아 돌아온 건 축하헐 일이지먼 이제 마을에서 나갔으면 혀는디...
이장의 말에 철구가 말하려고 뒤를 돌았지만 석호가 나서서 말했다.
- 축하할 일이죠. 저희한테 만요.
- 그게 몬 말이데요, 신부님.
석호는 이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 제가 철구 씨 떨어진 곳을 보니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땅을 푸석하게 만들었더군요.
- 산길이야 비 오구 마르구 그러믄 푸석혀지는구먼유. 신부님이라서 모르시겄지만.
석호는 이장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그렇다면 길의 가장자리 전체가 그렇게 되어야 하죠. 비는 위에서 아래로 오니까 위쪽보다 아래쪽이 더 심해야 하는데, 아래는 멀쩡한데 위만 푸석해지는 건 말이 안 되죠. 그건 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한 짓이죠.
석호의 말에 이장이 소리쳤다.
- 그람 우리가 일부러 떨어뜨렸단 말이유? 아따 서울 사람들 요상허네.
이장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 제가 '누가' 그랬다고 했나요? 누군가라고 했지, 마을 사람들이라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그 우리가 마을 사람들인지 아니면 이장님과 가까운 사람들인지 모르지만요.
석호의 말에 이장은 '흠흠'하고는 인상을 썼다.
- 아무튼 이제 나가시는 거이..
그 때 석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 여기가 사유지인가요? 이장님께서 나가라 마라 하실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이장은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 아무튼 저희는 여기서 필요한 만큼 있다가 나갈 겁니다.
석호는 이장에게 단호하게 말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장은 뒤에 서 있던 천석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천석은 민망한 듯이 머리를 긁으며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 어허... 동네에 망조가 드는구먼.. 허이구야...
석호는 마지막으로 들어가다 말고 이장을 보며 말했다.
- 망조는 이미 예전에 들었더군요. 예전부터.
그리고 석호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구는 안으로 들어와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 고마워요. 신부님.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 고맙긴요. 그리고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어요. 저 인간들 아주 인간 말종들이에요.
석호가 그렇게 말을 할 때 모니터 쪽에서 말소리가 나왔다.
- 사..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천석은 컴퓨터에서 말소리가 나오는 게 영 적응이 안 되는지 이상한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석호는 천석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나 이장의 반응으로 보아 천석은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물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천석 씨, 앞으로 어떻게 할 거에요?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석호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저었다.
- 엄니만 찾으믄 지도 여길 뜰 거에유. 더 살 수두 읎구...
천석의 말에 석호가 천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그래서 제가 이 곳 말고 다른 곳을 좀 알아보고 있는데... 일단 천석 씨가 먼저 그 곳에 가 계세요. 저희가 어머님을 찾으면 바로 그리로 갈 테니까요.
석호의 말에 천석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 워떠케 지만 먼저 간데유. 이란 데 모두를 남겨두구유.
석호는 천석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하지만 상황이 격렬해지면 천석을 보호하기 힘들 것 같아 석호가 얘기를 했다.
- 천석 씨의 마음은 알겠지만 저희는 저희 한 몸은 지킬 수 있답니다.
석호의 말에 천석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 아녀유. 지도 여그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믄 도울 거구먼유. 지 때문에... 지 때문에...
천석이 그렇게 말을 하자 석호 역시 고개를 끄떡이고 천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한편 밖에 있던 철구와 세현은 다른 말없이 멀뚱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모니터에서 대장 목소리가 기계음으로 들렸다.
- 걱정했다.
그 소리에 철구는 잠깐 모니터를 보다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고맙군... 그런데 내가 보낸 것들은 다 확인 됐나?
철구의 말에 '삐삐' 소리가 들렸다. 철구가 다음 질문을 하려고 할 때, 모니터에 표와 그래프가 나왔다.
- 이 타이밍에 미안한데 그 때 그 가루 성분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 말에 세현은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 뭐 별 거 없는데요?
세현이 화면에 나온 성분 분석표를 보며 말을 했다.
- 마약이나 뭐 그런 성분은 아니고?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요. 이건 칼슘이고 이건 나트륨.. 이건 철이나 인산 같은 것들이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화학 시간이구만.
철구의 말에 세현이 철구를 보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 여기 있는 건 화학보다는 가정 시간에 많이 배우죠. 아니면 생물 시간이나.
철구가 세현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세현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 여기 있는 건 대부분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들이에요. 굳이 따지자면 전부 무기질이지만.
- 무기질이라니?
세현은 철구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죠? 경찰대는 어떻게 갔나 몰라.
세현의 말에 철구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가정이나 생물 못해도 경찰대 갈 수 있어. 이상한 소리만 하지 말고 알아듣게 얘기해 봐.
세현은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듯 얘기를 했다.
- 우리 몸에서 유기질을 만드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를 제외하고 나머지 원소들을 모두 무기질이라고 해요. 뭐 미네랄이라고도 하죠. 이 미네랄들은 뼈를 만들거나 아니면 이를 구성하고, 효소 반응 등을 하죠. 피에도 미네랄 성분이 많이 들었어요. 인이나 철 같은 거죠. 우리 몸에서 중요한 미네랄들은 칼슘이나 인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 염소 정도구요. 여기 보듯이 황이나 요오드, 망간 같은 것들도 꼭 필요하죠.
세현의 일장 연설이 철구가 세현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 다 끝난 거야? 그래서 이게 뭘 어쨌다는 거야?
철구의 말에 세현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 그러니까 이것들로 뭘 만들거나 그럴 수 없다는 거죠.
철구는 세현에게 반문하듯 물었다.
- 그럼 이걸로 사람이 이상해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이지?
- 이걸로 이상해지면 우리 모두 다 이상해지는 거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 그럼 왜 납치한 놈들은 이 가루를 흘리고 간 걸까?
철구의 말에 세현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 그거야 모르죠. 하지만 더 이상한 건 이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모아서 흘리고 갔다는 거죠. 그냥 흘렸다면 실수로 뭔가를 흘리고 갔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건 완전히 무기물 조합을 흘리고 간 거죠. 보통의 납치범이라면 이런 과학적인 걸 들고 다닐 리도 없을 테고, 만약 이상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런 걸 조합해서 흘릴 리는 없죠.
세현의 말에 철구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 어렵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치밀한 놈인데, 유독 이 무기질 혼합 가루만 흘리고 갔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