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6. 죽음의 위기(5)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놈들 중 대장 격인 놈이 실족을 해서. 확실히 확인을 하겠습니다.
철구는 이장의 말에 혼자 중얼거렸다.
- 그러면 그렇지. 저 새끼 사투리가 이상했어.
철구는 보일러실 안에서 상황을 주시했다. 이장은 자신의 집 안을 휙 한 번 둘러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철구는 이장이 나간 걸 확인하고는 이장의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이장이 채워놓은 자물쇠 정도는 쉽게 열 수 있었기에 철구는 어렵지 않게 이장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장의 집 안은 철구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아무 것도 없었다. 컴퓨터도 TV도, 아니 라디오조차 없었다. 그리고 책이라고 해 봐야 몇 권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별 의미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책을 다 뒤져보았지만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 완벽하군. 도무지 알아낼 게 없어.
밖으로 나온 철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 핸드폰... 그 핸드폰만 얻으면 되는데...
철구는 이장의 집 안에서 장소를 옮겨 몸을 숨겼다. 뒤 쪽 텃밭 옆에 있는 비료 창고였다. 철구는 비료 창고에 숨어 집 안의 동태를 살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몸을 가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보일러실보다 이곳이 안전을 위해서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의 정보를 빼내는 게 그리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틈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더욱이 이곳에서는 이장이 창문을 열면 안방이 보였기에 철구는 은신하기에도 감시하기에도 좋은 장소라고 여겼다.
- 충전할 때야.. 그 때밖에 없어.
이장이 한시도 핸드폰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는다는 걸 안 철구는 그 타이밍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날 밤 철구는 밤이 더운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자신의 몸에 모기들이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고 있었지만, 이장 역시 더운지 창문을 열고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몸을 숨기고 이장의 안방까지 천천히 갔다. 안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철구는 그 자리에 서서 계산을 했다.
대개 깊이 잠이 들면 코고는 소리가 평소 숨 쉬는 것보다 조금 더 느려지기 때문에 철구는 일반적인 숨쉬기와 비교하며 카운트를 했다.
'잠 들었군.'
철구는 창문에 붙어 눈에 힘을 주었다. 희미한 빛이 보였다. 이장은 자신의 발 아래에 핸드폰을 두고 있었다. 핸드폰이 충전될 때 보이는 빨간 빛이 보였다.
철구는 방충망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리고 몸을 훌쩍 띄워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이장이 몸을 옆으로 굴리며 누웠다. 철구는 바닥에 바짝 누웠다. 그리고 느리게 포복을 하듯이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아까 낮에 이장의 침대를 확인해 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장의 침대는 아래가 비어 있었기에 철구는 그 안으로 몸을 숨기고 이장의 발아래에 놓인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이장의 핸드폰은 스마트폰이었고, 거기에는 패턴이 걸려 있었다. 철구는 입술을 깨물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되든 안 되는 어찌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 패턴을 그렸지만 맞지 않았다. 철구는 곰곰이 생각을 했다.
대장이라면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철구는 석호의 핸드폰을 꺼내 아래 달린 증폭기를 이장의 핸드폰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그 순간 석호의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 무슨 일인가?
철구는 핸드폰 화면을 보고 답장을 보냈다.
- 연결돤 핸두퐁 풀ㅇㅓ 보ㅓㅣ.
생각과 다르게 메시지가 갔지만 답변이 금방 왔다.
- 5초만 기다려라.
그리고 얼마 후 철구의 손에 들린 핸드폰 패턴이 풀리더니 데이터 전송 화면이 나왔다. 몇 분 후 다시 메시지가 왔다.
- 다 됐다.
철구는 'Ok'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증폭기를 빼서 다시 석호의 핸드폰에 달았다. 그리고 이장의 핸드폰에 충전기를 꽂아 다리 밑으로 올리려고 할 때 위쪽 매트리스가 덜컥했다.
철구는 얼른 침대 위로 핸드폰을 올리지 않고 바닥으로 밀어 놓았다.
- 여기...
그 순간 방안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철구는 매트리스 밑에서 숨죽이고 누웠다. 여차하면 튀어나가 한바탕 붙을 생각을 했다. 침대 레이스 아래로 이장의 손이 보였다. 철구는 안으로 들어오면 잡아챌 생각으로 손을 노려보았다.
- 있구만...
이장은 바닥에 놓인 핸드폰을 들더니 화면을 쳐다보며 말했다.
- 네 시구만... 하암...
이장은 불을 끄고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철구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장은 다시 잠들려고 노력하는지 계속 뒤척였고, 그 때마다 철구는 움찔하며 침대 위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몇 시간 후 이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철구는 그 틈에 이장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다시 비료 창고로 숨어들었다.
- 그 새끼. 간 떨어지게 하네.
철구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푸념을 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 이제 극적으로 등장하는 일만 남았군.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