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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24화 (22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6. 죽음의 위기(3)

석호는 철구의 반사 신경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그렇게 행동했다는 걸 알고는 혀를 내둘렀다.

- 아무튼 안 다치셔서 다행이네요. 세현 씨가 철구 씨 떨어진 자리에서 울고불고 난리였어요.

철구는 석호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할매도 참.. 어지간하네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만큼 걱정을 많이 한다는 말이겠죠. 아무튼 다행이네요. 저랑 같이 여기서 나가시죠.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물소리만 들리지 아무 것도 안 보여서 막막했는데 잘 됐네요.

철구는 석호의 손에 들린 종이뭉치를 보며 말했다.

- 그게 뭐에요?

석호는 자신의 손으로 눈이 향하는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아, 이거요. 성경이요.

철구는 석호의 말에 의아한 듯이 말했다.

- 성경이요? 성경에서 빛이 나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농담처럼 말했다.

- 성경 시편에 나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철구는 그 말에 크게 웃었다.

- 하하하. 신부님도 참... 나중에 마음이 허락하면 신부님께 전도를 받겠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철구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튼 여기서 빨리 나가죠. 다들 걱정하니까요.

석호가 앞장을 서고 철구가 석호의 뒤를 따랐다. 어두운 동굴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나오자 비로소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 꽤 많이 들어왔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오는 길을 살펴보며 말했다.

- 신부님도 어지간하시군요. 제가 그 쪽에 있는 줄 어떻게 아시고.

철구의 말에 석호가 말했다.

- 뭐 하느님께서 계시를 주신 건 아니지만, 물살의 흐름을 보면 어느 쪽으로 흘러갔는지 대강은 알 수 있죠.

철구는 석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이렇게 잘 생기고 똑똑한 사람이 신부라는 게 철구마저 아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사제가 있어 종교는 믿을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철구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석호에게 말을 했다.

- 신부님은 저랑 따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돌려 철구를 보며 물었다.

- 왜 그러시죠?

- 걸어 나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 상황을 역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 철구 씨는 실종된 상태로 조사를 하신다는 거군요.

- 네. 그렇게 되면 놈들의 눈을 피해서 조사할 수가 있으니까요. 다만...

철구가 말을 흐리자 석호가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전 연기를 참 잘 하거든요. 문제는 세현 씨로군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할매가 믿고 따라 줘야 되는데...

그 말에 석호가 얘기를 했다.

- 일단은 철구 씨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제가 처리할게요. 안 알려주면 원 회장님한테라도 전화해서 총동원시킬지도 모르죠. 하하하.

석호의 말에 철구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은 저를 찾는 것처럼만 연기해 주세요. 그러면 자연히 놈들의 관심이 덜 갈 테니까요. 그동안 제가 동네에 숨어 다니면서 정보를 모아볼게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위험하지 않을까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보단 덜 위험하겠죠. 그리고 저는 바퀴벌레보다 잘 숨어 다니거든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철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 몸조심하세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신부님처럼 잘 생긴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면 설레니까 그만 하죠. 하하하.

철구의 말에 석호는 여전히 빙긋이 웃었다.

- 그럼 저 먼저 마을 안으로 숨을 게요. 신부님도 조심해서 가세요.

철구가 몸을 돌려 가려고 하자 석호가 철구를 불러 세웠다.

- 일단 제 핸드폰 들고 가세요.

그러더니 성경을 찢고는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철구는 성경 책장이 찢어지며 안에서 멀쩡한 핸드폰이 나오자 웃으며 말했다.

- 진짜 주님의 말씀에 빛이 들어 있었군요. 하하하.

철구는 석호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 세현 씨 연락처는 2번입니다. 화면을 열고 통화 아이콘을 누른 다음...

철구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 뭐 대충 비슷하겠죠. 아무튼 먼저 가겠습니다.

철구는 빠른 발걸음으로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석호는 그런 철구를 보며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했다.

- 주여 저이의 앞길에 빛만 가득하게 해 주소서..

석호는 철구가 내려간 후 천천히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해가 져서 어두웠지만 달빛에 의지해 계곡을 바라보자 그럭저럭 내려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석호는 천천히 계곡 아래로 내려와 마을 입구를 지나쳐 천석의 집으로 향해 갔다.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지만, 석호는 개의치 않고 터덜터덜 천석의 집으로 향해 갔다. 천석의 집 앞에 도착하자 세현이 다급하게 마당으로 뛰어 내려왔다.

- 처.. 철구 씨는요? 못 찾았어요?

석호는 여기까지 자신을 주시하는 눈초리가 있음을 알고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의 반응에 세현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 그럼 아... 아무 것도...

석호는 세현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 흠...

석호의 반응에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 그..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 보.. 복수를 한다면서요. 나.. 나도 살아 있는데...

세현이 서럽게 외치며 말하자 석호는 계속 연기를 하는 게 어색했지만 지금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되었다.

석호는 오열하는 세현을 일으켜 세워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의자에 세현을 앉혔다. 세현은 넋을 놓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세현의 모습을 보고 노트북에서 경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 처... 철구 아저씨가... 호.. 혹시..

그러더니 'iogeqrhjqope[]rfklae;v'라는 글자가 보였다. 한 눈에 키보드에 엎드려 자판이 마구 쳐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더니 노트북 화면에 가득 글씨가 보였다.

'내가 죽여 버릴 거다. 꼭 내 손으로...'

석호는 답답한 마음에 대장에게 말했다.

- 일단 워드 화면 좀 띄워 봐요.

뜬금없는 석호의 말에 대장이 말했다.

- 철구 아저씨가 죽었다. 신부님은 안 슬프냐?

그러자 석호가 입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 쉿..

석호가 마우스를 흔들더니 바탕화면에 있는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리고는 세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노트북 모니터 쪽을 쳐다보게 하였다.

'철구 씨는 살아 있어요. 지금 마을 안으로 몰래 들어왔어요.'

노트북 화면에 쓰인 말에 세현의 눈이 커다래졌다.

'대장도 쉿!'

그러자 방 안엔 침묵만이 가득했다. 석호는 조용히 타이핑을 쳤다.

'철구 씨는 실종된 척 하고 마을 안에 의심스러운 사람들 집을 뒤져볼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철구 씨를 찾는 것처럼 해야 되요. 최대한 의심을 받지 않게.'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가 한편으론 마음이 안심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민망했다. 석호는 복잡한 표정의 세현을 보고 말했다.

- 저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 네.. 그러니까요..

석호는 다시 타이핑을 쳤다.

'대장의 마음도 알겠지만 대장도 가급적이면 그런 과격한 생각은 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요.'

석호의 말에 아래 글이 달렸다.

'알.겠.다.'

석호는 다시 워드에 글을 썼다.

'우린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야 되요. 아까 세현 씨가 오열한 것처럼 말이에요.'

석호의 글에 세현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 순간 모니터에 대장이 글을 썼다.

'신부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타이핑을 쳤다.

'철구 씨한테 제 핸드폰을 줬어요.'

그리고는 잠깐 뜸을 들였다.

'철구 아저씨가 최 씨네 집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발견했다고 한다. 연결해서 자료를 그대로 옮겨올 건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다. 사람들 이목을 끌어주면 좋겠다.'

그 글에 석호와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나가죠.

석호의 말에 세현이 따라 일어났다. 집 밖으로 나오자 아래 미옥의 집에 있던 천석이 헐레벌떡 위로 올라왔다.

- 그.. 그기... 서.. 서울서 온 형사님이.. 읎어졌다믄서요..

천석은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천석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산 아래로 실족해서 떨어졌는데 제가 찾아도 안 보였습니다.

석호는 천석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석호의 말에 천석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울먹였다.

- 지 때문에... 지가 일루 오라혀서... 어이구야.. 흑흑...

천석이 땅을 치며 울자 세현은 천석을 일으키며 말했다.

-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저희가 꼭 찾을 거에요.

천석의 마당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천석의 마당으로 모였고, 다들 뭐라 수군거렸다.

- 서울서 온 그 형사가 저 아래로 떨어졌다는구만.

- 거그서 떨어지믄 즉사여. 즉사.

- 시신도 몬 찾았다믄서. 참말로... 얼른 굿을 혀야지..

다들 그렇게 떠들며 천석과 세현, 석호를 쳐다보았다. 세현은 눈물을 흘리며 천석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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