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21화 (221/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5. 수상한 사람들(6)

- 워떠냐고. 와 대답이 읎어?

이장의 말에 천석은 마음을 잡은 듯이 말했다.

- 지는... 지는 그 분들을 믿어유. 우리 엄니랑 천안댁, 그라고 구 씨 할아부지도 찾아줄 거에유.

천석은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마을 회관 밖으로 나왔다. 그 때 뒤에서 이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자 들었는감? 이자부터 천석이는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니여. 알것지?

천석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 회관을 빠져 나왔다. 뒤에서는 천석을 욕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천석은 귀를 막고 뛰듯이 집으로 뛰어 올라왔다. 왠지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천석은 그걸 부정하며 마구 달렸다.

- 아녀. 나가 맞는겨... 그 의사 선상님이 산삼을 점지혀 줬잖여.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걸 해 줬잖여. 그라니꺼 이번에도 해 주실꺼여. 그려. 맞어..

천석은 그렇게 혼자 외치며 집으로 향해 왔다. 철구는 천석이 집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도 마을 회의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묻지 않았다.

천석의 표정이 몹시 슬퍼 보이기도 했지만, 어찌되었건 결론은 자신들을 내쫓으려는 계획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우리가 많이 싫은가 보군.

철구의 말에 세현은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우리가 욕심이 많아 보이나 봐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웃으며 말했다.

- 그런가? 신부님은 종교 때문에, 나는 욕심이 많아 보여서, 그럼 할매는 뭐 때문에 싫어할까?

철구의 말에 세현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 할매라고 하지 마요! 성준 씨나 천석 씨가 들으면...

철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거울을 보라고. 내가 그렇게 불러도 다들 늙어보여서 그런 줄로 알 거라고.

- 뭐라구요!

- 할매, 너무 열내지 말라고. 안 그래도 다들 우릴 주시하고 있는데 말야.

철구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마을 회의가 끝나지 않았는지 계속 느껴지던 감시의 눈초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안에서는 세현이 천석에게 마을 회의에 대해 묻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 굿이라구요?

세현은 천석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의 심정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굿을 해서 실종자를 찾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올바른 일 같지 않았다.

물론 자신도 장군 보살을 만나 무속인들이 어느 정도 영험함을 갖고 있다는 건 인정하였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 굿을 해서 어떻게 알아낸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찾아야겠네요.

세현은 천석의 말을 듣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밖에서 이야기를 들은 철구 역시 뭔가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장하고 그 떨거지들이 뭔가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한데...

철구는 마당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치매 노인, 전직 술집 여성이자 과부, 은퇴한 이후 임신한 노부부...'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연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도무지 관계없는 사람들의 실종은 철구로 하여금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 이거 대장 말처럼 밀실 살인이나 자연 발화 같은 거 아냐?

철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단서가 조합이 안 되니 이상한 생각만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때 집 안에 있던 성준이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 형님...

철구는 성준의 표정을 보고 뭔가 있음을 알았다.

- 뭔 일인데?

철구가 먼저 묻자 성준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서울에서 사고가 터졌답니다. 팀장급들은 다 집합하라고...

철구는 성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이렇게 내려와서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 그럼 올라가 봐야지. 이 먼 곳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네.

- 오히려 며칠 있으면서 같이 조사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올라가서 죄송하죠.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니다. 너 덕분에 많은 걸 알았어. 아무튼 조심해서 올라가라. 서울 가면 연락하마.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저었다.

- 서울에서 터진 사건, 경찰총장의 지시로 집합인데 저는 일단 얼굴만 비치고 바로 내려오겠습니다.

성준의 말에 철구가 성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고생스럽게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상황 봐서 해결하고 올라갈게.

철구의 말에 성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했다.

- 그럼 일단 서울에 올라가서 여기 이장 떨거지들 영장 먼저 받아올게요. 사건 재조사나 아니면 밝혀지지 않은 여죄도 있을 테니까 최대한 엮어서요.

철구는 성준의 그 말에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래. 그렇게 하면 좀 더 정보 뽑기 쉽지.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말했다.

- 아무튼 고생해라.

철구가 그렇게 말을 하자 성준은 안에 나온 세현에게 인사를 했다.

- 저희 형님이 조금 칠칠치 못한 구석이 있으니까 세현 씨께서 잘 좀 봐주세요.

성준의 너스레에 철구는 성준을 보며 말했다.

- 자식. 내 걱정은 나 혼자만 해도 돼.

그러자 성준은 철구를 보며 씩 웃었다. 세현은 성준을 보며 밝게 웃으며 말했다.

- 네. 제가 옆에서 잘 보살필게요.

그러자 철구가 세현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할.... 세현 씨,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철구의 말에 세현이 철구에게 혀를 내밀었다. 철구는 그런 세현을 보며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저었다.

- 아무튼 형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성준이 철구에게 인사를 하자 세현이 말했다.

- 조심해서 가세요. 그리고 시간 되면 미연 씨 보고 놀러오라고 하세요.

세현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철구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할매가 성준이 와이프를 어떻게 알아?

철구의 말에 세현이 철구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 미연 씨요? 전에 산후우울증으로 저랑 상담했잖아요. 성준 씨한테 저를 소개했다면서요? 까먹은 거예요? 저 닮아가나 보네요. 할배 씨~!

세현의 말에 철구는 괜히 목덜미를 긁었다. 예전에 성준이 아내가 산후우울증이 심하다면서 괜찮은 정신과 의사 아냐고 해서 세현을 소개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철구는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산을 휙 둘러보았다. 그 순간 철구의 눈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잡혔다.

- 할매 안으로 들어가.

철구의 말투가 갑자기 경직된 것을 보고 세현이 놀라 철구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세현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다시 말을 반복했다.

- 뭐가 있어. 우리를 노리는...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안으로 들어가.

철구의 말에 세현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이 기지개를 켜는 듯 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자 철구는 세현이 그 반짝이는 것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세현의 옆을 교묘히 막아가며 세현의 옆에서 걸었다.

총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무기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철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세현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철구는 현관 입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아까 무언가가 반짝이던 곳을 쳐다보았다. 반짝이는 빛이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워졌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철구는 최대한 방심하는 척했다.

그래야 더 가까이 다가올 테고, 어느 정도의 거리라면 자신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무심한 척 반짝이는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철구는 이 때다 싶어 몸을 날렸다.

그러자 철구를 주시하던 누군가가 놀란 듯이 산 위로 뛰기 시작했다. 철구는 겁도 줄 겸 해서 최대한 커다란 동작으로 그를 쫓았다. 세현은 창문으로 철구가 산을 향해 뛰는 걸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철구가 가는 쪽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철구가 쫓는 방향 쪽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세현은 점점 철구가 그 사람과 가까워지는 걸 보았다.

- 금방 잡히겠는걸.

세현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 갑자기 시야에서 철구가 사라졌다. 분명 남자의 뒤를 쫓는 것으로 보였는데 아래에 보여야 할 철구가 보이지 않았다.

- 어? 어디로 갔지?

세현은 철구가 달려간 쪽을 눈으로 살폈다. 그 순간 세현의 눈에 믿지 못할 광경이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철구가 산비탈 아래로 구르는 모습이었다.

세현은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 밖으로 튀어나왔다. 방 안에 있던 천석은 세현이 놀라 밖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세현에게 물었다.

- 무슨 일이래유?

세현은 천석에게 노트북에 연결된 전화기를 주며 말했다.

- 신부님께 전화해 주세요. 이리로 와달라고.

세현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천석에게 건네 준 후 철구가 마지막으로 보였던 곳으로 달려갔다.

- 아.. 아니야.. 아닐 거야..

세현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산비탈을 뛰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