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5. 수상한 사람들(3)
철구의 말에 성준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어렵군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일단은 이 노부부의 행방이 우선이야. 만약 실종이라면... 골치 아파지겠군.
철구와 성준이 밖으로 나와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철구는 손에 묻은 가루를 닦기 위해 마당에 있는 수도를 틀었다. 그러자 뭔가 역겨운 냄새가 확 올라왔다. 성준은 잠깐 물에서 피하고 난 후 냄새가 가시자 손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 지하수에서 냄새가 나나?
성준은 손을 닦을 때에도 마치 연수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손이 미끈거렸다. 대충 손을 닦은 후 철구 옆으로 갔다.
- 이 동네는 물도 이상하네요.
- 이상하다니?
- 물에서 조금 역겨운 냄새가 나더라구요. 그리고 손을 닦으니까 조금 미끈거리네요.
- 산 속 지하수라 알칼리 성분이 많아서 그런가?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튼 조금 이상하네요.
철구와 성준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천석의 어머니와 미옥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슬쩍 구 씨 할아버지 내외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구 씨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나 이장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마치 그것이 구 씨 할아버지의 가장 큰 결점인 것처럼 말을 했다.
- 웃기는 마을이네요. 뭐 이장이 거의 신과 같은 존재네요. 대단한 건지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이상한 건지. 참.
- 아무튼 좀 더 상황을 알아보자구.
철구와 성준은 전과자 네 명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에게서는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 이제 그 놈들만 남은 건가?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떡였다.
- 사람들 말로는 거의 이장의 측근들이네요. 그럼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고 씨 먼저 가보죠.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너는 신분 확인 시켜줘.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까.
- 네.
고 씨네는 다른 마을 주민들과 달리 아직 전통적인 초가였다.
- 초가집 오랜만인데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이 자식 뭔 취미지?
성준이 집 앞 사립문에서 크게 외쳤다.
- 안에 계세요?
성준의 부름에 안에서 웬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 누구세요?
분명 고 씨의 나이가 예순 거의 다 되었고, 혼자 사는 걸로 조사되었는데 안에서 젊은 여자가 나오자 성준이 서류를 다시 쳐다보고 말했다.
- 여기가 고광용 씨 댁 아닌가요?
성준의 말에 여자가 얼굴을 안으로 넣고 말했다.
- 아저씨가 고광용이에요?
그 말에 성준과 철구가 동시에 피식 웃었다. 마을에 사람이 실종됐는데 어디서 여자를 불러 같이 자는 비상식적인 행동이 우스워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일이니 상관할 바 아니었겠지만 이런 산촌에서 그렇게 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고 씨는 옷을 대충 입고 밖으로 나왔다.
- 뭔일들 이랴?
그렇게 말을 하다가 뒤에 철구를 보더니 얼굴을 굳혔다.
- 당신헌텐 할 말 없응께 가쇼.
철구는 고 씨의 반응에 이미 이장과 그의 측근들이 철구 일행을 고깝게 보고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걸 서로 얘기했음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제 이 마을에 온 자신을 알아볼 리도 없을 뿐더러 이런 반응을 보일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성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강남경찰서 조 형사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성준이 신분증을 내밀고 말을 하자 고 씨는 조금 흠칫 놀라더니 뒤로 물러났다. 성준은 고 씨를 보며 말했다.
- 성매매 중이셨나 보네요.
성준의 말에 고 씨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 아녀. 서.. 서울서 조카가 왔당께..
고 씨의 어설픈 변명에 성준이 말했다.
- 조카가 아저씨라고 하고 이름을 물어요? 변명을 해도 원... 저 아가씨 데려다 조사해 보면 다 나와요.
성준의 말에 고 씨가 입맛을 쓰게 다시며 말했다.
- 아따 산에 사는 홀애비가 외로워서 기집 좀 품겠다는데 그게 잘못인감. 젠장.
고 씨의 말에 성준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 외롭건 지랄이건 성매매는 불법인 거 몰라! 이 새끼가 날 언제 봤다고 반말 지꺼리야. 산골에서 홀애비로 살면 자기보다 어린 사람한텐 무조건 반말이야?
성준이 세게 나오자 고 씨가 조금 주눅이 들어 말했다.
- 호.. 혼잣말인께 신경 쓰지 마쇼. 암튼 고건 지가 잘못혔응께 한 번만 봐주지라.. 잉?
고 씨의 비굴한 태도에 철구가 앞으로 나섰다.
- 뭐 묻는 말에 성실하게 대답만 한다면...
철구의 말에 고 씨가 철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 다.. 당신도 경찰인거여? 아따... 이거야 원.. 흠...
철구는 자신이 경찰이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성준이 경찰이라는 사실 때문에 경찰이라고 여기는 고 씨를 보며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이 생각됐다.
- 천석 씨 어머니나 미옥 씨, 아니 천안댁을 최근에 본 적이 있어요?
철구의 질문에 고 씨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 그 사람들 본 지 한참 됐당께요. 그라고 마을서 읎어진 사람들이 나 어디 가요허구 읎어진다요? 들응께 사람 찾으러 왔담서 와 우리헌테 묻고 다닌당가요?
고 씨의 말에 철구가 나서서 얘기하려고 했으나 성준이 먼저 선수치고 말했다.
- 당신들이 의심스러워서 말이지.
성준은 서류철을 펼치며 말했다.
- 사기, 성폭행, 특수 폭력 뭐 이런 걸로 전과 7범이네. 이런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이 없어졌다면 당연히 의심받는 게 아니겠어?
성준은 고 씨가 존댓말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반말을 했다. 철구는 속으로 '이 자식 이제 베테랑이군.'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에게 약한 인간은 끝까지 강하게 밀고 나가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중간에 어설프게 배려를 한다고 존중을 해주면 그 틈에 또다시 뻗대고 나서기 때문에 아예 강하게 밀어 붙이는 게 상책이었다. 성준의 말에 고 씨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따 옛날 일 갖고.. 그라고 이제 손 씻고 열심히 사는 사람헌티...
고 씨의 말에 성준이 비웃으며 말했다.
- 그럼. 이젠 성폭행을 하지 않고 성매매를 하니까. 뭐 혹시 모르지. 다른 구린 구석이 있는지.
성준의 말에 고 씨기 펄쩍 뛰었다.
- 아따 착허게 살려는 사람 자꾸 몰지 마쇼.
고 씨의 반응에 철구가 나서서 한 마디 했다.
- 펄쩍 뛰는 걸 보니까 있나보군. 대개 뒤가 구릴수록 그런 반응을 보이지.
철구의 말에 고 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란 거 읎다니께요.
하지만 철구는 그의 반응 따위는 무시하고 성준에게 말했다.
- 조 형사, 넌 마을 다니면서 고 씨 뒤를 캐 봐. 내가 나머지 조사할 테니까.
철구가 일부러 고 씨에게 들리게끔 크게 말을 했다. 성준은 알았다는 듯이 같이 크게 얘기했다.
- 네. 얘기할수록 이상하네요. 아무튼 그럼 전 조사하러 내려가 볼게요. 뭐 없으면 성매매 건으로라도 엮죠.
성준이 발걸음을 돌리자 고 씨가 급하게 담배를 끄고는 성준 앞에 섰다.
- 아따 서울서 온 형사님이 그란지 성격도 급허시네. 물어볼 거이 있으믄 지한테 물으믄 되지라.
성준은 걸음을 멈추고 말을 했다.
- 캥기는 게 있나 보군.
성준의 말에 고 씨가 흠흠하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뭐 좋은 거라꼬...
성준이 고 씨를 쳐다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이장은 어떤 사람이지?
성준의 말에 고 씨는 마치 준비된 답변을 읽듯 말했다.
- 아따 이장님은 좋은 분이지라. 우리헌티 월매나 잘...
고 씨의 말에 성준이 말했다.
- 뭐 낭독문이라도 만드셨나. 다들 앵무새처럼 똑같이 얘기하고. 그런 거 말고 있잖아. 얘기 들으니까 이장하고 아주 가깝다고 들었는데 말야.
성준의 말에 고 씨는 쓰게 입맛을 다시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손을 약간 떨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철구는 고 씨가 손을 떠는 걸 보며 뭔가 그 안에 무서운 게 있다는 걸 감지했다.
그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자에게 아무리 캐물어도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철구는 성준에게 눈짓을 했다. 더 밀어붙이지 말라는 눈치에 성준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 뭐 이장이 좋은 사람이라는데 굳이 물을 필요는 없겠지.
성준의 말에 고 씨는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그 순간 성준이 말을 했다.
- 유 씨가 더 많이 아나? 유 씨한테 가봐야겠군.
그리고는 철구를 보며 말했다.
- 형님 가시죠.
성준의 의뭉스러운 말에 철구가 피식 웃으며 소리쳤다.
- 그래 유 씨한테 가 보자구.
철구와 성준이 고 씨네 사립문 밖으로 나오자 고 씨가 두 사람이 나가는 걸 보고는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갔다. 성준이 철구를 보며 말했다.
- 멍청하지 않으면 다 연락하겠지만 일단 유 씨한테 전화하겠죠?
- 아니 유 씨한테만 할 걸?
철구의 말에 성준이 웃으며 말했다.
- 그럼 가시죠.
성준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자식, 이제 가 컸어. 베테랑 냄새가 나.
철구의 말에 성준이 말했다.
- 형님 밑에서 일한 것까지 합치면 저도 이제 10년이에요. 이제 이 정도는 해야 밥 먹고 살죠.
- 후후. 그렇군.
- 가시죠. 최 씨네로.
성준은 최 씨네 집으로 걸어가다 차트를 보며 말했다.
- 이거야 팔수록 구린 인간들뿐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