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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17화 (21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5. 수상한 사람들(2)

남자의 말에 철구가 나서서 말을 받았다.

-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남자는 문 밖으로 나와 철구에게 미옥의 험담을 해대기 시작했다.

- 고 년. 거 옛날에 술집에도 있었다고 그럽디다. 그런데 저기 위에 김포 할머니 아들이 어디서 요상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한다고 그러더니 2년인가 살다가 그 아들이 산에서 떨어져서 죽었어요. 그리고 그 김포 할머니랑 같이 사는데, 남자란 남자한테는 다 꼬리를 치고 아무튼 그러다가 그 다음핸가 김포 할머니도 덜컥 죽어버렸잖아요. 다 고년 잘못 들여서 그런 거라고 마을 사람들이 쫓아내려고 했는데, 이장님하고 천석이가 나서서 막았죠. 이장님이야 워낙 마을 사람들을 아끼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천석이 고 놈은 천안댁한테 폭 빠져서... 아무튼 사람 잡아먹는 년이라고 다들 손가락질을 해도 뭐 이장님이 그러지 말라고 그래서 뭐...

철구는 마을 사람들이 미옥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이 남자를 통해 대강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런 미옥을 감싼 천석 역시 곱게 보이지 않았으리란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장에 대한 태도만큼은 왠지 그냥 좋은 동네 이장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아, 아무튼 감사합니다.

남자는 뒤로 돌아 들어가면서 말했다.

- 천석이가 신고했네 보네. 그나저나 저 위에 온 놈들은 나갔나?

남자는 철구가 그가 말한 위에 온 놈이란 걸 모르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성준이 수첩에 남자의 말을 대강 메모하고는 돌아서 나왔다.

- 저 위에 있는 사람이 형님인 줄 모르나 보네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경찰하고 같이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우릴 양아치로 보고 있는 것 같아. 아무튼 다른 집도 가 보자.

철구는 성준과 함께 마을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다. 대개는 사람들이 집에 다 있었고, 성준의 말에 대부분 처음 만났던 남자와 비슷한 말을 주절거렸다.

- 이 사람들 짠 것 같이 말하네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이장의 입김이 그만큼 세다는 얘기겠지. 그럼 다른 집보다 저 위에 있는 구 씨 할아버지를 만나보자.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떡이고는 구 씨 할아버지의 집으로 향해 갔다. 문 앞에서 철구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어디 나가셨나?

그런데 그 순간 인터폰을 타고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 으.. 으음...

철구는 귀를 세워 인터폰 소리를 들었다.

- 준비해.

철구의 말에 성준이 가슴에 차고 있던 총을 손에 쥐었다. 철구는 낮은 담벼락을 뛰어 넘었다. 그리고 대문을 열어 성준을 들어오게 한 후 현관 앞으로 가서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대었다.

- 앗...

철구는 마치 벌이 쏜 것처럼 손끝이 아렸다.

- 뭐지?

철구는 다시 손잡이를 잡았다. 아까보다는 덜 했지만 여전히 조금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 혹시 전기?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서 손잡이에 전기를 연결하는 경우는 있지만, 할아버지 내외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철구는 고개를 저었다. 철구는 현관문을 두드렸다.

- 할아버지 계세요?

철구가 다시 현관문을 두드릴 때 왠지 문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뭔가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철구는 할아버지 내외의 안위가 중요했기에 다시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 할아버지. 할머니...

철구가 몇 번을 불렀지만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철구는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문은 열려 있는 것 같았는데 마치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문이 당겨지지 않았다.

- 젠장. 이게 뭐야?

그 때 성준이 뒤에 놓여 있던 도끼를 들고 왔다.

- 형님, 잠시만요.

성준이 문 앞으로 와서 현관 손잡이를 내려쳤다. 그러자 현관 손잡이가 부서지며 문이 열렸다.

- 자식.. 이제 좀 하는데?

철구의 말에 성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철구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중문이 닫혀 있었지만 집 안이 훤히 다 보였다.

- 할아버지?

철구가 중문을 열자 안에서 조금 진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성준이 그 향을 맡으며 말했다.

- 방향제를 너무 진하게 뿌린 거 아니에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저었다.

- 방향제는 아닐 거야. 그런 걸 뿌릴 만한 분들도 아니고, 더구나 할머니가 임신 중이어서 아마 그런 거에 더 민감할 거야.

철구의 말에 성준이 철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 할아버지, 할머니라면서요?

철구는 성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발기 부전의 할아버지와 폐경을 겪은 할머니지. 그런데 임신을 했어. 놀랍지?

철구의 말에 성준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 말도 안 돼요.

철구가 성준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말도 안 되지. 그런데 세현 씨가 돌팔이가 아니라면 임신이 확실한 거지. 세현 씨가 확인해 줬으니까.

성준은 세현이 나름 대단한 의사라는 걸 알고 있기에 조금 놀랐다.

- 진짜 임신인 거에요?

- 뭐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철구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준 역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향기는 아까보다 조금 옅어졌고, 집 안은 아무 흔적도 없이 아주 깨끗했다.

- 할아버지! 계세요?

철구가 방을 향해 소리를 쳤지만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철구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았다. 문을 열어 모든 곳을 확인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부엌에 들어가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철구는 밥상을 쓱 보며 말했다.

- 할아버지께서 닭을 잘 발라 드셨군.

철구가 본 상 위에는 백숙이 놓여 있었는데, 닭의 살이 정말 깨끗하게 발라져 있었고, 뼈만 뚝배기 안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 식사 중이었나 본데...

성준은 집 안을 모두 돌아보았지만 말 그대로 아주 깨끗했다.

- 안 계신가 본데요?

텅 빈 방을 살펴보던 철구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집에 없는 거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 또다시 실종이라면 누군가가 오기 전에 그 흔적을 찾아야 했다.

철구는 안방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나 안방에서는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주방에 있던 성준이 철구를 불렀다.

- 형님, 여기 이상한 게 있는데요?

철구는 성준의 부름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성준이 쪼그려 앉아서 무언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 모두 깨끗한데 여기에만 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더라구요. 처음엔 백숙을 먹느라 소금을 흘린 줄 알았는데 소금이라고 하기엔 입자가 너무 작아서요.

철구는 성준이 보던 희색 가루를 보았다.

- 음... 여기도 똑같아.

철구의 말에 성준이 철구를 쳐다보았다.

- 미옥 씨네 집에서도 이런 게 발견 됐거든. 그래서 성분 분석을 부탁했거든.

철구의 말에 성준이 말했다.

- 혹시 다를 수도 있으니까 이것도 성분 분석을 해 봐야할 것 같은데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거렸다.

- 그래야지.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철구의 말에 성준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러게요. 도대체 왜?

철구는 주방을 서성이며 말했다.

-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먼지가 쌓이기 마련이야. 그런데 여길 보면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방 같아. 분명히 아주 치밀한 놈이야.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으니까. 그런데 왜 이런 가루를 남겼을까?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여길 보면 마치 청소를 한 것처럼 먼지들만 여기로 모아놓았어요.

철구는 성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미옥 씨네 집에서도 장롱 아래에 먼지가 모여 있던데 그 때는 장롱 아래에 먼지가 쌓인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철구는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무언가 빠뜨린 게 없나 살펴보았다. 그 때 싱크대 아래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 저게 뭐지?

철구가 자리에 엎드려 싱크대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옆에서 성준이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고 안을 비춰주었다. 철구가 안에 손을 넣어 꺼낸 것은 반지였다. 그 순간 철구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 퇴직해서 마누라한테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해 줬지.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얘기했던 것이었기에 철구는 반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 소중하게 생각하는 반지일 텐데... 빼놓고 어딜 가진 않았을 테고....

철구의 말에 성준이 반지를 보며 말했다.

- 이거 꽤 좋아 보이는데요? 돈을 노리고 납치하거나 그런 것 같아보이진 않네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돈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걸 노린 것도 아니고...'

철구의 생각을 알기라도 한 듯 성준이 말을 했다.

-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요? 장기 이식이라든가...

철구는 성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실종된 사람들 연령대가 고령인 사람들이 많아. 장기 적출을 하려면 젊은 사람 것이 필요하지.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철구의 말에 성준이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떡였다.

- 저 가루가 혹시 수면제나 그런 거면... 아니다.

철구는 무언가 가능성을 얘기하려다 말았다. 집안을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는 놈이 가루를 떨어뜨리고 갈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그런데 아까 인터폰으로 들린 신음소리는 뭐죠?

성준의 말에 철구가 얘기를 했다.

- 나도 그게 제일 의문이야. 분명히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렸는데 집 안엔 아무도 없어. 그리고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문은 우리가 들어온 문밖에 없거든. 창문으로 두 사람을 빼내갔다면 우리가 알았을 테고. 결정적으로 창문들이 모두 잠겨 있거든. 둘 중 하나야. 우리가 착각을 한 것이든 아니면 정말 밀실 사건이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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