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5. 수상한 사람들(1)
5. 수상한 사람들
다음 날 오전 철구는 아래 초소 쪽에 성준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던 도중 마을 이장이 천석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얘기를 나눈다기 보다 천석이 일방적으로 혼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마을에 외지인들 들이고, 들쑤시고 다녀서 좋을 게 뭐가 있능가 말여.
- 지송허구먼유.. 그란디 어무니를 찾으려믄..
천석의 변명에 이장이 버럭 소리를 쳤다.
- 어무니는 우리가 찾으믄 될 거이 아닌가? 외지인보다 우리가 산 지리도 더 잘 알고 말여.. 외지인들을 그랗게 믿으믄 그들허구 살믄 되잖여.
소리를 치며 화를 내던 이장이 철구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 언능 보내지 않으믄 엄니 찾는 일이구 뭐구간에 다 때려치어 버릴거여. 알겄냐?
이장의 엄포에 천석은 얼굴을 찡그렸다.
- 그랴도...
- 그랴도는 뭔 그랴도여.. 언능 가서 말 허랑게.
철구는 대충 두 사람의 상황을 눈치 채고는 가까이 다가와서 이장에게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철구라고 합니다.
철구가 이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거구의 이장은 헛기침만 하면서 철구를 외면했다. 철구는 손을 빼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 천석 씨 어머니만 찾으면 금방 갈 테니까 걱정 마세요.
철구의 말에 이장은 천석을 쳐다보며 눈짓을 했다. 천석은 안절부절 못하며 철구와 이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때 철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아, 그리고 이 마을에서 두 명이나 실종이 되어서요. 경찰이 오기로 했습니다.
철구의 말에 이장은 눈이 커다래지면서 철구에게 말을 했다.
- 실종이라니, 우리 마을에선 그란 일은 읎어. 천석이 엄니는 치매로 오락가락혀서 잠시 집을 나간 것이구, 또 아까 들으니께 천안댁이 집에 읎다고 혀던데. 천안댁이야 젊은 여자가 워딘들 못 가겠냔 말여. 안 그려? 그랑게 이 마을 신경 쓰지 말고 갈 길 가믄 될 것 아녀.
이장의 말에 철구가 대답을 했다.
- 일단 행선지나 동선(動線)이 파악이 안 되면 실종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경찰이 와서 조사할 일이 있으니까 그 때는 조금만 도와주세요.
철구는 이장이 또 뭐라고 하려고 하자 인사를 하고 마을 아래로 내려갔다. 이장은 철구가 가는 모습을 보고는 천석을 꾸짖으며 말했다.
- 괜히 분란만 만든겨. 마을 시끄럽구, 아주 잘 혔다. 잘 혔어. 헴...
이장의 말에 천석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 사.. 사람만 찾으믄 금방...
- 되얏어.
천석의 말에 이장은 다시 역정이 나는 듯 버럭 소리를 치고 가버렸다. 철구는 뒤에서 이장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마을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 초소에서 성준은 석호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 아! 형님.
성준이 철구를 보고는 손을 들고 철구 쪽으로 다가왔다. 철구는 그런 성준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 바쁜데 내려오라고 해서 미안하다.
철구의 말에 성준이 웃으며 말했다.
- 형님답지 않게 왜 그래요? 그리고 형님이 오라면 와야죠. 경찰 대학에서 그렇게 배웠는데요.
성준의 너스레에 철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 자식.. 점점 말이 느는구나.
성준과 철구가 얘기를 나누는 도중 석호가 초소 안에서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아까 성준 씨에게도 말했는데, 이 마을 원주민은 없네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얘기를 했다.
- 이런 외진 산촌(山村)에 원래 살던 주민이 없다는 건 이상하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잠깐 성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 이건 마을 주민들 신상인데요... 경찰청 자료입니다.
석호가 성준을 눈치를 보자 성준이 웃으며 말했다.
- 경찰청 자료를 못 지킨 경찰 잘못이죠. 하하하.
성준의 말에 석호가 철구에게 다시 말을 했다.
- 이 마을 주민들 구성이 조금 특이해요. 일단 전과자가 4명, 2년 내 사망자 혹은 실종자가 8명, 그리고 이 마을로 전입해 온 사람들도 길어야 10년이고, 대다수는 5, 6년 내외에요.
철구가 석호에게 의아한 듯이 물었다.
- 마을 전체 주민 수가 얼마나 되죠?
철구의 질문에 석호가 문서를 한 장 넘기며 말했다.
- 작년까지는 40명이었는데, 올해 36명이네요. 전출을 간 네 명은 한 가족인데 특이하게도 전입신고가 된 곳이 없어요.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전입신고가 된 곳이 없다면 무적자(無籍者)란 말인데... 뭔가 이상하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리고...
석호의 다음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렸다.
- 전과자 네 명이 모두 최소 전과 7범 이상이에요. 죄목도 사기, 폭행, 강간, 유괴, 살인까지...
- 그런 또라이들이 여기 있단 말이에요?
성준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지금은 회개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마을 분위기랑 여러 정황들을 보면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그리고 이거..
석호는 다음 장을 넘겨 철구에게 보여주었다. 철구는 서류를 받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 매년, 그것도 거의 분기별로 산삼을 채취한다라... 그것도 200년 이상 되는 것들로만..
철구의 말에 석호가 말을 받았다.
- 이 마을 주 수입원이 산삼인 것 같아요. 물론 약초 등도 캐서 파는데 그 액수는 터무니없이 적고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어쩐지...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왠지 산촌치고는 잘 산다 생각이 들었는데, 이거였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나머지 서류들을 보며 말했다.
- 대다수 사람들이 이사 오기 전까지 생활보호대상자인 경우가 많았구요. 그리고 이번에 실종된 미옥 씨의 경우에는 청량리 쪽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주 시점은 5년 전이구요. 결혼을 해서 이리로 온 걸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마을 위에 사는 구 씨 할아버지 내외는 할아버지께서 조그만 회사의 임원으로 있다가 은퇴해서 이리로 정착하신 분이예요. 다른 사람들과 전입한 시점이 다소 다르더라구요. 대부분 10년 전이나 5년 전을 기점으로 이주를 해 왔는데, 그 할아버지 내외분은 3년 전에 이주를 하셨어요.
- 이거 알면 알수록 이상한데요.
성준이 말을 하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 말에 석호가 한 장을 더 넘기며 말했다.
- 여기 이장은 아무런 이력이 없는데요?
철구는 석호가 넘겨서 보는 파일을 석호의 어깨 너머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석호가 파일을 철구 쪽으로 내밀었고, 철구는 파일을 받아 이장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 정말 깨끗하군요. 아니 깨끗한 정도가 아니라 딸랑 세 줄로 인생이 요약되다니. 이건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거죠.
철구의 말에 성준이 피식 웃었다.
- 이 정도면 신생아 수준의 정보인데요? 본적, 주소지, 전입 전 주소지... 출신 학교.. 나머지는 아무 것도 없네요. 하다못해 통장 기록도. 하...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뭔가 있는 놈인 건 분명해.
철구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말을 했다.
- 대강 각이 나오는데. 어쩌면 여기 마을 이장이 힘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군. 못 사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집도 주고, 먹고 살게 해 주니까 말이야. 그런데 왜 그렇게 했을까? 아까 보니까 그리 성인군자 같지는 않았는데 말야.
철구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는 석호에게 말했다.
-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신부님께선 여기서 대장하고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알아봐 주세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웃으며 말했다.
- 저보다 철구 씨가 더 고생이시죠.
석호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저 같은 놈들은 가만히 앉아서 정보를 모으는 게 더 고생이죠. 몸으로 뛰어야 사는 것 같으니까요.
철구의 말에 성준이 말했다.
- 그럼 형님, 저는 뭘 해야 하죠?
철구는 성준을 보며 말했다.
- 마을을 뒤집어야지. 내가 뒤집으면 곤란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철구의 말에 성준이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말했다.
- 자, 그럼 뒤집으러 갑시다.
성준은 석호와 인사를 나눈 후 철구와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초입에 보이는 집부터 조사를 하겠다면서 성준은 그 집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대머리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와 성준을 빼꼼히 쳐다보았다.
- 누구세요?
남자는 자신의 외모와 다르게 하이톤의 목소리였다. 성준은 조금 놀라 남자를 보다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아! 이번 실종 사건 때문에 조사차 온 경찰입니다.
성준은 지갑을 꺼내 자신의 신분증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신분증을 뚫어지게 보다가 성준을 보며 말했다.
- 실종 사건이요? 아! 저 위에 사는 천석이 어머니 말씀이군요.
남자의 말에 성준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 그 아래쪽에 사는 미옥 씨 역시 실종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성준의 말에 남자는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 뭔 놈의 마을이 뻑하면 사람이 없어지고 그러는지 원...
성준은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질문을 던졌다.
- 혹시 그 분들 최근에 보신 적이 있나요?
- 글쎄요... 천석이 어머니는 치매라서 통 보진 못했고... 그런데 미옥이가 누구죠?
남자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철구가 대답을 했다.
- 천안댁입니다.
- 아! 천안댁... 에? 천안댁이 없어졌다구요?
남자는 철구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 네. 현재는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철구의 말에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 그럴 줄 알았어. 고 년 엉덩이를 살살 흔들고 다니더니 웬 놈팽이랑 바람나서 마을 뜬 거지 뭐. 하긴 이 마을에 뭔 미련이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