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4. 황당한 사건(3)
그러나 대장은 여전히 삐삐 소리를 내며 말했다.
- 몸에서 나오는 열기로 몸은 녹였지만 옷은 못 녹일 수 있다. 뼈는 자체로 부서지듯이 되면..
대장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었다.
- 그 말은 결론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는 말 같은데? 그런 사례가 있나?
철구의 말에 대장은 삐삐 소리를 연속으로 냈다.
- 없다. 하지만 인체의 자연 발화 자체가 특이한 케이스다. 그러니까 다양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대장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맞는 소리. 그런데 지금은 아닌 걸. 지금 대장의 말은 인체 발화가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에 설명을 한 것뿐이니까. 만약 인체 발화 사건이 아니면 그러한 것 역시 아무 의미가 없지. 안 그래?
철구의 말에 대장은 한동안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 지금까진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고 본다. 집안에서 갑자기 옷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사라졌으니까.
철구는 그 말에도 고개를 저었다.
- 가령 그것보다 현실적으로 어떤 미친 인간이 옷을 몽땅 벗긴 채 납치했을 수도 있지 않나?
철구의 말에 이번엔 세현이 입을 열었다.
- 그게 성립되려면 납치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잖아요. 천석 씨가 부자라서 돈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어떤 원한 때문이거나 뭐 그런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이유가 없잖아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 하긴 단순히 미친 짓을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긴 하지. 음... 하지만 그런 인체 발화나 그런 건 아니라고 보는데? 무슨 오컬트도 아니고...
철구는 어쩔 수 없이 성준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괜히 자신들이 마을을 들쑤시고 다녀봤자 오히려 의심만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석호가 신부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받지 않았던가? 철구는 전화기를 꺼내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전화를 걸었지만 잘 걸리지가 않았다.
- 아무리 산골이어도 전화는 돼야지. 이거야 원...
철구의 투덜거림을 들었는지 대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 USB 케이블로 핸드폰을 노트북과 연결해라.
철구는 대장의 말에 세현의 노트북 가방에 있던 케이블과 핸드폰을 연결했다.
- 전화해 봐라.
철구가 버튼을 누르자 금방 신호가 갔다. 몇 번의 신호가 가자 성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시간 좀 되냐?
철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준에게 말을 하자 성준이 흔쾌하게 대답을 했다.
- 그럼요. 얼마나요?
철구는 자세한 얘기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다 케이블이 빠졌다.
- 여보세요? 어이...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 이거 뭐야?
그러자 대장이 대답했다.
- 케이블이 빠지면 전화가 안 된다. 다시 연결하고 전화해라.
철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 이런 젠장..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
철구는 다시 성준에게 전화를 걸고 얘기를 했다.
- 시간 좀 되냐?
성준은 철구가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당일로 만나서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 최소 며칠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남은 휴가와 월차를 계산해 보았다.
특별한 사건이라면 사건 확인과 수사 신청을 하면 되었지만 철구의 일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면 안 되는 것과 관련된 것이 많았기에 성준은 개인적인 시간을 쪼개서 철구를 돕는 것이었다.
- 며칠은 될 거에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 일단은.. 실종 사건이거든. 마을 사람들의 알리바이나 행적을 조사하는 일이야.
철구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떡였다.
- 네. 언제쯤 출발하면 되는 거죠?
성준의 말에 철구가 말했다.
- 빠르면 좋지만... 괜찮겠어?
철구의 말에 성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안 괜찮아도 형님의 말이면 무조건 괜찮아야죠. 그런 걸 다 물어보시고 형님 많이 약해지셨어요.
성준의 너스레에 철구는 성준에게 고마운 한편 미안했다.
- 짜식. 고맙다.
- 고맙긴요. 내일 오전에 출발 가능할 것 같아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그래. 고맙다.
철구는 성준과 전화를 끊고 노트북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 그 친구 전화번호는 기록하지 마라.
철구의 말에 대장이 말했다.
- 그런 거 안 한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말을 했다.
- 따뜻한 사람 같다. 마치 다른 사람...
철구는 대장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나 원래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야.
철구의 말에 대장이 '삐삐' 소리를 냈다. 그러자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대장은 가능하다면 마을 사람들 뒷조사를 좀 해줘.
철구는 대장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대장은 흔쾌하게 대답을 했다.
- 뒤를 캐는 건 내 전문이다. 하.하.하.
철구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현을 쳐다보았다. 세현은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 그리고 아까 부탁한 거 최대한 빨리 보내줘요. 그리고 자료 조사 다 되면 연락하구요.
세현이 말을 하자 '삐삐' 소리가 나더니 화면이 꺼지고는 윈도우 바탕 화면이 나타났다. 세현은 노트북 덮개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뭘 보낸다는 거야?
철구의 말에 세현이 대답을 했다.
- 헬기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장난하지 말고.
그러자 세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진짜 헬기요. 사람이 타는 게 아니라 물건 나르는 헬기. 드론이란 건데 성분 조사할 걸 거기로 보내면 돼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피식 웃었다.
- 별 게 다 있군. 세상 참...
철구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나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두 사람 모두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 뭐지?'
철구는 가슴이 조금 울렁거렸고, 마치 꿈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철구는 얼른 정신을 차리려고 밖으로 나왔다. 철구가 밖으로 나가자 세현 역시 얼굴이 붉어지며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서 조우한 두 사람은 아까와 다르게 조금 어색해 했다. 세현은 지난 밤 꿈을 잊고 있다가 방금 전에 이상한 기분이 들자 갑자기 철구와 몹시 어색해졌다. 자신은 분명 철구에게 그런 마음을 품어본 적도, 가질만한 여유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세현의 입장에선 철구가 조금은 두려운 존재였다.
다만 그간의 철구의 모습을 통해 철구가 믿을 만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물론 더 나아가 그의 출중한 실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런 감정과 연결되지는 않았기에 세현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자신의 정신 상태를 분석해 보았을 때 이건 분명히 내적인 욕구 불만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세현은 그간의 경험상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완벽하다고 자부해 왔기에 지난 밤 꿈은 더욱 당혹스러웠다. 물
론 단순히 꿈이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현은 현재 자신의 상태에 냉정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이건 다른 징조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았다.
'난 철구 씨에게 연정의 감정을 품고 있는가?'
세현은 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겠는가?
세현은 이번 일이 끝나면 다른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현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철구가 세현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을 했다.
- 할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철구의 말에 세현은 화들짝 놀라며 철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 할매라고 하지 말랬죠!
세현이 철구를 향해 눈을 흘기자 철구는 그런 세현의 눈초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했다.
- 그나저나 신부님은 왜 안 오시는 거지?
석호는 아침 일찍 천석이 산삼을 캤던 곳을 향해 갔다.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석호에게 연락이 없자 철구가 말을 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쳐다보며 말했다.
- 젠장. 시골이라 핸드폰도 더럽게 안 터지네.
그러다가 세현을 보며 물었다.
- 아까 대장하고는 어떻게 연결된 거야? 핸드폰도 잘 안 터지는데.
세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을 했다.
- 나도 잘은 모르는데 인공위성을 이용한다나 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대단하군. 인공위성까지 맘대로 이용하다니.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요즘 어린애들은 참 똑똑하다니까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뚱한 표정으로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할매가 그렇게 말하니까...
철구의 말에 세현이 또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 할매라고 하지 말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