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4. 황당한 사건(2)
세현은 집안에 앉아 있기 심심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저 아래에서 철구가 뭔가 짐을 잔뜩 짊어지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짐의 대부분이 자기의 것인 것을 알고 조금 미안해졌다.
세현이 철구가 올라오는 쪽으로 내려갈 때 세현은 저 멀리서 세현을 쳐다보는 눈을 느꼈다. 그래서 그 곳으로 눈을 돌리자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린 채 자기 갈 길을 갔다. 세현은 철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자신의 짐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 미안해요. 다 제 짐이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 놀러왔나, 뭔 짐이 이렇게 많아?
세현이 짐을 받으려고 하자 철구는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 얼른 올라가기나 하자구. 사람들이 우릴 아주 짐승 쳐다보듯이 하고 있으니까.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런 것 같아요. 외지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라고만 하기엔 뭔가 이상해요.
철구는 말없이 짐을 들고 천석의 집 마당에 내려놓았다.
- 집 안으로 옮기면 되나?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잘 방이 없다고, 저는 저 아래 미옥 씨네 집에 머물라는데요?
- 미옥 씨?
철구의 반문에 세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 저도 잘 몰라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뭔가 사연이 있겠지. 아무튼 그럼 그 쪽으로 가 볼까?
그런데 그때 아래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천석을 보았다. 천석은 집 마당 앞에 도착해서는 말을 더듬으며 말을 했다.
- 어... 어... 워떠...
철구는 그가 크게 소리만 지를 뿐 뭐라고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천석 씨, 침착하게 말씀해 보세요.
세현이 몹시 당황해 있는 천석을 붙잡고 말을 했다. 그러나 천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중언부언했다.
- 미.. 미옥 씨가... 거기에... 읎어져서.. 집에도 읎고, 어.. 엄니처럼 그렇게.. 말도 읎이... 그렇게....
철구는 천석의 말을 들으며 천석에게 말을 했다.
- 미옥 씨가 없어졌다구요?
철구의 말에 천석은 격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그런 천석을 보며 물었다.
- 그런데 미옥 씨는 누구죠?
철구의 말에 천석은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눈이 커지며 철구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그런 천석을 같이 쳐다보며 물었다.
- 뭐든 솔직히 말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천석 씨 어머니도 그렇고 미옥 씨도 그렇고 찾을 수가 없어요.
철구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끄떡였다.
- 그... 그기...
천석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 미... 미옥 씨는.. 저그 우리 집 아래쪽에 사는.. 과부인데유...
천석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천석의 말에 대강 어떤 관계인지 감이 왔다.
- 그런데 사라지다뇨?
철구의 말에 천석이 대답했다.
- 아... 사실은 아까 아츰에 할 말이 있다구 혀서 아.. 아츰에 뒷산에서 잠깐 보자구 허길래... 거그서 기다리는디 영 안 와서 집으로 갔었쥬. 그란디 지.. 집에 읎더라구유. 길이 엇갈렸나 싶어서 다시 거길 가 봤는디... 읎어서유. 마.. 마을 사람들헌티 물어볼 수도 읎구 혔는디... 마을 회의헌다기에 거기엘 오나 혀서 기다렸는디.. 안 왔거든유... 그리구.. 아까 저 여자분 잘 곳 때문에 미옥 씨네루 내려 갔는디... 또 읎어서 주변을 찾다가... 저 아래 사는 최 씨네 아줌니가 지한테 그라드라구유. 천안.. 아니 미옥 씨 못 봤냐구유. 그.. 그랴서 다시.. 미옥 씨 집으로 뛰어 내려가니께... 그리구 바.. 방문을 열었는디... 글씨... 엄.. 엄니처럼 옷만 방바닥에 있고 사.. 사라졌슈.
천석의 말에 철구는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허공에 혼잣말처럼 말했다.
- 음... 올라오다가 마을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를 모두 경계하는 눈치였는데... 만약 진짜 경계하는 거라면 둘 중 하난데...
철구의 중얼거림에 세현이 철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 둘 중 하나라뇨?
철구는 수첩을 꺼내 뭐라고 적으며 말을 했다.
- 하나는 진짜 납치,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혼선을 주려는 가짜 납치.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우리에게 혼란을 주려고 가짜로 납치하다뇨? 그럴 이유가...
세현의 말에 철구가 세현을 보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 이 마을 사람들 중에 천석 씨를 빼고 우리가 나타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어제 우리한테 잠자리를 줬던 그 노부부도 우리가 여기서 마을을 들쑤시고 다닐 줄 몰랐기 때문에 방을 내 준 거지. 물론 세현 씨가 도와줘서 앞으로도 우리한테 호의적일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 집으로 가봐야겠어.
철구가 말을 하자 세현이 철구의 뒤를 따라왔다. 천석 역시 철구와 세현의 뒤를 따랐다. 천석이 가리키는 집안으로 들어가자 묘한 향기가 났다. 철구는 그 향기를 맡으며 말했다.
- 이게 무슨 냄새지?
철구는 방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방안을 휙 한 번 돌아보았다. 방 한가운데 미옥이 입고 있던 것으로 여겨지는 옷이 놓여 있었다.
- 음...
철구가 방을 살펴볼 때 천석이 철구의 뒤에 서서 말했다.
- 즈.. 즈이 엄니가 없어질 때랑 똑같구먼유...
철구는 천석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이리 저리 둘러보던 철구는 장롱 아래에서 반짝이는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허리를 숙여 그걸 주웠다.
- 반지로군.
철구가 반지를 들고 쳐다보다가 문득 반지에 하얀색 가루가 묻어 있는 걸 보았다.
- 이게 뭐지?
철구는 하얀색 가루를 손끝에 묻혀서 문질러 보았다. 꺼끌꺼끌하니 느낌이 과히 좋지 않았다. 철구는 허리를 숙여 장롱 아래를 살펴보았다.
몹시 어두워 잘 보이지 않자 뒷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장롱 아래를 비췄다. 장론 아래 반지가 떨어졌던 곳에 무언가 가루가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먼지가 한 쪽 구석으로만 쌓여 있었다.
철구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꺼내어 장롱 아래에 있는 가루를 끄집어냈다. 거실을 살피던 세현이 방으로 들어오자 철구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한 장을 찢더니 하얀 가루를 쓸어 담았다.
- 이거 분석할 수 있을까?
철구가 세현에게 말을 하자 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이 집만한 분석기가 있으면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어쩐다... 이게 가장 수상해 보이는데...
철구는 가루를 담은 종이조각을 품에 넣었다. 그러자 세현이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일단 저를 줘요. 대장한테 연락해서 연구소로 보내든지 해 볼게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었다.
- 뭐 헬기라도 띄우려고?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헬기를 띄워도 여긴 못 와요.
- 직접 가게?
철구의 반문에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아무튼 제가 갖고 있다가 대장한테 보낼게요.
철구는 가슴에 품었던 하얀 가루를 세현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천석을 보며 물었다.
- 혹시 어머님께서 없어지셨을 때도 이런 가루가 있었나요?
철구의 갑작스런 물음에 천석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 지는... 지는 잘 모르겠구만유...
천석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집을 한 번 돌아보더니 말했다.
- 여긴 미옥 씨 혼자 살았나요?
철구의 물음에 천석이 고개를 끄떡였다.
- 네.. 사실 여그는 미옥 씨가 시엄니허구 살던딘데요... 미옥 씨가 시엄니 모시구 살다가 시엄니가 3년 전에 죽는 바람에 혼자 살고 있었슈.
천석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군요... 그럼 저희가 당분간 여기서 지내도 되겠네요. 미옥 씨를 찾아보며..
철구의 말에 천석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그기.. 사실은 여그 집은 다 이장님이 배정해 주는 거라서유...
천석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 그렇군요. 하지만 얼마 안 걸릴 테니까 일단 저희가 여기에 짐을 풀죠. 문제가 생기면 저희가 이장님께 말씀을 드리죠.
철구의 말에 천석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그기.. 그럼 차라리 저희 집에 머무시유. 지가 잘 때는 여그서 자고 갈게유.
철구는 천석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네. 알겠습니다.
철구는 세현과 밖으로 나오며 세현에게 말을 했다.
- 뭔가 이상하지 않아? 왜 우리가 이 집에 있는 걸 막지?
세현은 철구의 말에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가 풀었다.
- 글쎄요.. 어쩌면 이장의 힘이 이 마을에서 정말 막강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미옥 씨와 천석 씨 사이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겠죠.
세현의 말을 들은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튼 골치 아프게 됐군.
철구는 천석의 집으로 세현과 올라와서 세현의 짐을 천석의 집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마당에 나와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 여기가 제일 높은 집이군.
철구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미옥 씨를 찾는 게 우선이겠군. 천석 씨 어머니는 실종된 지 꽤 됐으니까 그 흔적을 찾는 데 어렵겠지만 미옥 씨는 얼마 안 됐으니까 말야. 문제는 마을 사람들인데...'
철구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을 때 집 안에서 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철구 씨 잠시 들어와 봐요.
철구는 세현의 목소리에 발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세현이 대장과 노트북으로 연결된 상태였다. 철구가 방으로 들어가서 들은 말을 반복해서 물었다.
- 인체 발화 사건?
철구는 대장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럼 인간의 몸에서 불이 나서 타 버린다는 거잖아.
철구의 말에 대장은 삐삐거리며 말했다.
- 그냥 불 타 버리는 수준이 아니다. 모든 게 다 녹아버리는 것이다.
대장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었다.
- 그렇게 뜨거운 불이면 다른 것도 타야 되지 않나? 그런데 이 할머니는 몸만 사라지고 옷은 그대로였거든. 그렇게 보기 힘들 것 같은데?
철구의 말에 세현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 그리고 방에는 탄 흔적이 전혀 없었어요.
철구와 세현의 말에 대장이 다시 삐삐 소리를 내며 말했다.
- 어쩌면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몸만 불탄 것일 수도 있다.
대장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 불이 골라가며 태우나? 불이 나면 다 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