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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12화 (21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4. 황당한 사건(1)

4. 황당한 사건

- 신부님은 아직 연락이 없나 보네.

철구가 말을 하자 세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아까 대장 말로는 어제 먼저 왔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아침에 천석 씨가 산삼을 캤던 곳을 갔다던데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응? 신부님이 산삼을 캐러 간 건 아닐 테고... 왜 가셨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저도 모르죠.

철구는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떡거리고는 집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아직 마을 회의가 끝나지 않았는지 천석이 집에 오지 않았기에 철구와 세현은 천석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철구가 뭔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 참나, 우리랑 가까운 신부님 소식을 서울에 있는 대장한테 듣다니... 우습군.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워낙 신부님한테 관심이 많아서요. 후후.

철구는 세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이다가 집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세현을 남겨두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벽이나 뒤쪽 텃밭, 그리고 옆에 난 수돗가까지 살펴보고는 옆에 있는 창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중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철구는 밖으로 나왔다.

- 누구시쥬?

천석은 자신의 집 마당에 웬 여인이 있기에 얼른 집으로 와서 세현에게 말을 했다. 세현은 천석을 보며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아! 천석 씨군요. 얘기는 들었어요. 저는 철구 씨랑...

세현이 천석을 보며 말을 하자 천석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순간 창고에서 나오던 철구가 천석을 보며 말했다.

- 아! 마을 회의가 이제 끝났나 보군요.

천석은 철구를 보자 놀란 표정을 풀고 황송하다는 듯이 얼른 철구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했다.

- 먼 질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슈. 누추허지만 안으로 일단 들어가시쥬.

철구는 천석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 아! 이 분은 서울에서 내려오신 의사분이세요. 어머님을 발견하면 혹시 긴급으로 치료가 필요할 지도 몰라서 같이 내려왔습니다.

철구가 그렇게 둘러대자 세현은 철구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천석이 허리를 숙이며 세현에게 인사를 하자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했다.

- 아이구.. 감사허구먼유. 이렇게까지 생각을 혀 주시구..

천석은 문을 따고 철구와 세현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구는 천석이 여는 자물쇠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말 그대로 주먹만한 자물쇠로 어지간한 쇠톱으로도 자르기 힘들어 보였다.

철구는 안으로 들어가 부엌과 연결된 좁은 거실에 앉았다. 크기는 비록 크지 않았지만, 홀어머니와 노총각이 사는 집치고는 무척 깔끔해서 조금은 놀랐다. 철구와 세현이 소파에 앉자 천석이 냉장고를 열어 보리차를 꺼내왔다.

- 드실 게 이것밖에 읎어서...

천석은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으나 철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괜찮습니다. 그런데...

철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천석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 근디... 사실... 아까 신부님이 오셔서...

철구는 말을 꺼내려다가 석호의 이야기가 나오자 천석을 쳐다보았다. 세현 역시 천석을 같이 쳐다보았다. 천석은 조금 주저하며 말을 했다.

-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철구의 말에 천석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기... 사실은... 아까 마을 회의에서 신부님 야그가 나왔는디... 그게...

철구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천석을 보며 부드럽게 말을 했다.

- 네.. 말씀하세요.

철구의 말에 천석은 주저하면서 말을 했다.

- 마을 주민들이 예수쟁이가 왔다믄서... 다들 얼른 내보내라고...

천석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이런 산골 마을은 마을 신앙을 중심으로 뭉쳐 있고, 외지인들에게 다소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욱이 산삼을 캐며 사는 지역 사람들에게 유일신을 믿는 천주교 사제는 자신들에게 부정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겼다.

- 아.. 그렇군요. 휴... 어쩐다..

천석은 머리를 긁으며 말을 했다.

- 사실 신부님이 뭘 좀 확인허신다구 산에 오르셨거든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더...

철구와 세현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천석을 보며 물었다.

- 신부님께서 뭘 확인하러 가신 거죠? 어머님의 실종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철구의 말에 천석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했다.

- 사실.. 그기...

천석은 고개를 슬쩍 들어 세현을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철구는 세현이 있어서 얘기하기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세현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 잠깐 나가 있을래?

- 네. 그렇게 할게요.

철구의 말에 세현 역시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갔다. 세현이 밖으로 나가자 철구는 천석을 보며 물었다.

- 무슨 얘기죠?

철구의 말에 천석은 여전히 얼굴을 붉히며 말을 했다.

- 그기.. 사실은...

천석은 어머니가 사라지기 전날 자신이 꾼 꿈과 그 꿈에 나타난 곳이 산삼을 캔 곳이라는 것을 말했다.

- 워쩌면 그기에 간 거허구 관련이 있을성 싶어서유.

천석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따진다면 전혀 개연성이 없는 조합이었지만, 신부님이 이런 비합리적인 얘기를 듣고 산으로 올라간 다른 이유가 있음을 내심 짐작을 했다.

어쩌면 천석의 어머니가 실종된 사건이 단순 가출이나 납치가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편 철구는 천석의 꿈 역시 어떤 성적인 욕망이 드러난 꿈이라는 걸 듣고 몹시 놀랐다.

이 마을에 와서 할아버지 내외, 자신과 세현, 그리고 천석까지 모두 그런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 왠지 꺼림칙했다. 철구는 천석의 말을 듣고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 일단 어머니를 찾는 일이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일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산 아래에 저희 짐이 있는데 일단 짐을 가지고 와야겠습니다.

철구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란디.. 신부님은...

철구는 천석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산에서 내려오시면 얘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그랴도.. 너무 지송스러워서... 지가 와달라구 부탁을 혔는디...

- 다 이해하실 겁니다.

철구는 천석과의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세현에게 말을 했다.

- 마을 사람들이 신부님을 안 좋게 보는군. 어쩌면 우리도 외지인이니까 곱게 보진 않을 거야.

철구의 말에 세현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 그럼 어떻게 하죠?

철구는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어떻게 하긴. 우린 우리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가서 짐을 좀 가져와야 되니까 할매는 집 안에 들어가 있어.

세현은 조금은 불안한 듯이 철구를 보며 말했다.

- 혼자서 괜찮겠어요?

철구는 그런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오는 지름길을 대충 봐놨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그리고 대장한테 이 지역 지도 좀 구해달라고 해.

- 알았어요.

철구는 세현을 집에 남기고 아래로 내려가는 게 조금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머물려면 짐을 가져와야만 했고, 차도 가까운 곳에 대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철구는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철구가 산을 내려가자 세현은 집안으로 들어왔다. 세현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천석은 무엇 때문인지 화들짝 놀랐다.

- 음마야...

천석이 놀라자 세현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 아. 놀라셨어요? 죄송해요. 갑자기 들어와서.

세현의 말에 천석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 아녀유.. 그냥... 지.. 집에 사람이 읎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니까...

- 네.. 그럴 수 있어요. 불안증 증세인데 크게 심하지 않으면 괜찮아 질 거에요.

세현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려유?

세현이 안으로 들어와 거실에 앉았다. 천석은 방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세현이 천석을 보며 말했다.

- 혹시 어머님 방을 볼 수 있을까요?

세현의 말에 천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여... 여그여유.

천석이 방문을 열자 자그마한 TV와 허름한 옷장과 이불장이 있는 방이 보였다. 할머니의 방치고는 아주 깔끔한 방이었다.

노인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고, 더욱이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병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세현은 방을 보고는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방문을 닫았다.

희미하게 무슨 냄새가 났지만 세현은 그 냄새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문을 닫고 천석에게 말을 했다.

- 혹시 저희가 머물게 되면 어디서 있어야 되죠?

세현의 말에 천석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거.. 거긴 어무니 방이어서 그렇고... 철구 씨는 지 방에서 주무시믄 되는디...

천석이 말을 흐리자 세현이 웃으며 말했다.

- 저는 뭐 아무 방이나 괜찮아요.

세현의 말에 천석이 머리를 긁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이 말을 했다.

- 아.. 그기.. 저그 아래.. 천안.. 아니 미옥 씨 집에 계시믄 될 거에유.

- 미옥 씨요?

세현은 반문을 했다가 무언가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세현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 네. 저는 거기서 머물게요.

세현이 그렇게 말을 하자 천석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 지.. 지가 미옥 씨헌티 가서 야.. 야그 하고 올게유..

천석은 세현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세현은 왜 천석이 자신을 꺼려하는지 뭔가 이상했다.

물론 숫기 없는 시골 노총각이기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었지만, 단지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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