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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10화 (210/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3. 현장에 도착하다.(4)

- 서울에 오시면 제가 전화번호 적어드릴 테니까 그리로 전화하세요. 제가 좋은 산부인과 선생님 소개해 드릴게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쁜 표정으로 세현을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세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고마우이... 이런 분을 내가...

세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니에요.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이렇게 어두운 산 속에서 하룻밤 지내게 해 주셔서 말이에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가 말을 했다.

- 거 봐. 할멈. 착한 일을 하면 이렇게 복은 받는다니까...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가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늙어서.. 주책이지.. 아이구..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말했다.

- 어허.. 애한테 안 좋은 말을 허질 말어.

할아버지의 말에 세현은 빙긋이 웃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세현을 보며 물었다.

- 그런데 저 남자분이랑은 어떤 관계유? 저 사람, 아주 강단있고, 괜찮아 보이는데 말야. 성격도 사근사근하고... 애인이유?

할머니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니에요. 그냥...

세현은 철구와 자신이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동료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어 보였고, 친구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그렇다고 딱히 뭐라 할 수 관계였기에 대답을 못한 채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상한 눈짓을 하더니 말했다.

- 남자가 잘못 했구먼.. 이렇게 이쁜 처자를 말야..

할머니의 말에 세현이 손사래를 쳤다.

- 아니에요. 그런 게..

그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애인은 아니지만 무척 가까운 관계로 생각하고는 고개만 끄떡였다.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밖으로 나왔고, 할머니는 발이 아픈 세현은 자리에 앉히고 방에 이부자리를 깐다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할아버지와 철구가 안으로 들어오자 할머니가 말을 했다.

- 산 속을 걷느라 힘들었을 텐데, 저기서 씻고 좀 쉬시구랴. 그리고 우리 집이 안방 말고는 방이 하나라서 저 방에 잠자리를 봤는데...

할머니가 묘한 눈짓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자 할아버지가 어색하게 말을 했다.

- 흠흠.. 거 뭐시냐.. 우리 거실은 모기랑 벌레가 하두 많아서 방에서 자야 허는데..

그 말에 철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괜찮습니다. 세현 씨가 방에서 자고, 저는 거실에서 자면 됩니다. 걱정 마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철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 손님 대접이 그런 게 아니지. 흠흠.. 그럼 자네가 안방에서 자고, 나랑 할멈이 거실에서 자면 되겠구만.

철구는 당황을 하며 말했다.

- 아.. 아닙니다.

철구는 세현에게 눈짓을 했다. 세현 역시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밝게 웃으며 말했다.

- 할아버지, 저희는 그런...

세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말을 끊으며 말했다.

- 아무튼 우리 손님 대접은 그런 게 아니니까 방에서 편하게 주무쇼. 알것지?

할아버지는 철구를 보며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철구는 난감한 듯이 할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끄떡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자 철구는 세현과 함께 방에 들어와 말을 했다.

-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저 두 노인네가 저래?

세현은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 우리 두 사람이 어떤 관계냐고 묻길래 동료나 친구, 애인 그런 관계가 아니라... 그게 무슨 관계인지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말을 얼버무렸더니 그러시네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렸다. 철구가 생각해도 딱히 두 사람이 어떤 관계라고 정의내리기가 힘들었다.

- 아무튼... 뭐 그냥 여기서 자도 상관없지만, 저 노인네들이 이상한 착각을 할까봐서 말야.

철구의 말에 세현이 발끈하며 말했다.

- 그 착각은 제가 더 피해자거든요.

철구는 세현이 발끈하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뭐.. 아무튼 일단 오늘은 자야겠군. 산길을 좀 걸었더니 피곤하군. 내일은 더 피곤할지 모르니까 할매도 자두라고.

철구는 펴져 있는 이불 한 쪽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자 세현이 말을 했다.

- 안 씻고 자요?

- 먼저 씻어. 난 이따가 씻을 테니까.

세현이 철구를 한 번 보고는 한숨을 푹 쉬고는 욕실로 가서 몸을 씻었다. 세현은 땀에 젖은 옷을 다시 입에 찝찝했지만, 옷을 벗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기에 다시 옷을 입었다. 그런데 옷을 벗어둔 욕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을 때 자신의 체취가 아닌 다른 묘한 향이 났다.

- 뭐지? 이게?

세현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밖으로 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철구는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세현은 철구를 향해 말을 했다.

- 전 다 씻었어요. 오늘 땀도 많이 흘렸는데 가서 씻어야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눈을 감았다 뜨며 벌떡 일어났다. 철구는 묘하게 가슴이 울렁거렸기에 찬물로 대충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철구가 욕실 문을 열자 욕실 안에서 묘한 향기가 퍼졌다. 철구는 세현에게서 이런 향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는 혼자 피식 웃었다.

- 내가 미쳐가는군... 할매한테 이상한 느낌이나 받고.. 후후.

철구는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는 옷을 다시 입었다. 그런데 철구가 옷을 입을 때 아까 맡았던 향보다 조금 더 진한 향이 옷에 묻어났다.

- 뭐지? 향순가?

철구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안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낮게 한숨을 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세현이 이불을 목까지 덮고 옆으로 누워있었다.

철구는 그런 세현을 보고는 낮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세현의 옆에 누웠다.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철구가 농담을 하듯 말을 했다.

- 할매, 난 유부남이야.

철구의 말에 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이봐요. 당신 말대로 난 할매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 역시 피식 웃었다.

- 내일부터 알아볼 게 많아. 좀 자 둬.

철구는 돌아누우며 말했다. 세현은 이불을 끌어 덮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낮고 일정한 숨소리가 들렸다. 철구는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든 세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철구 역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물론 귀로는 무슨 소리가 들리나 신경을 곤두세웠기에 잠이 깊게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철구의 의지와는 다르게 철구 역시 깊은 잠에 빠졌다. 의식적으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마치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잠에 빠져들었다.

- 여긴 어디야?

철구는 사방이 현란한 색깔의 방 안에 있었다. 방의 벽은 현란했지만 조명은 겨우 사물을 알아볼 정도로 흐릿했다. 철구는 눈의 시력을 끌어올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방은 자신이 생각했건 것보다 컸다.

그리고 방 벽으로는 커다란 장롱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다른 한 쪽 벽에는 퀸 사이즈보다 큰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침대 쪽을 보던 철구는 깜짝 놀랐다. 침대 위에는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 누구냐?

철구가 침대 쪽을 향해 소리를 쳤지만 침대 위에 누운 사람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철구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천천히 침대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철구가 침대로 다가갔지만 침대 위에 누운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철구는 침대 앞에 서서 침대 위를 쳐다보았다. 하얀 색 시트를 덮고 누워있는 모습이 여자처럼 보였다. 자신을 등지고 누웠기에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골반부터 허리까지의 굴곡이 완만하였고 허리부터 다시 어깨까지의 굴곡이 있었다. 비록 사방은 몹시 어두웠지만 하얀색 시트 안에 누운 이의 피부가 몹시 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구는 침대 옆에 서서 그 여자를 불렀다.

- 이봐요.

철구가 가까이 여자를 불렀지만 여자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대답이 없었다. 철구는 손을 뻗어 여자를 깨우려다가 손을 거뒀다. 시트 안의 모습이 한 눈에 보기에도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여인이 깰 때 기다리고 마음을 먹고 침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가 철구의 다리를 부여잡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이.. 이게 뭐지?

당황한 철구는 힘을 쓰며 다리를 떼려고 했지만 바닥에 붙은 발은 요지부동이었다.

- 젠장...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의 앞에 누워 있던 여자가 몸을 돌려 자신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러면서 시트가 조금 내려가며 여자의 볼록한 가슴이 밖으로 드러났다. 철구는 고개를 돌렸다. 누군지 얼굴을 보고 확인하고 싶었지만 침대의 머리맡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어두웠고 또한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렸기에 누군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철구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며 빼내려 했지만 여전히 다리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여자가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그리고는 거리낌 없이 철구 앞으로 다가왔다.

시트가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자 여자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자는 철구 앞으로 오더니 철구를 바라다보았다. 철구는 고개를 돌려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누군지 아는 얼굴인데 도대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 누구시죠?

철구가 여자에게 물었으나 여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는 철구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 왜 이러세요?

철구가 놀라 소리쳤지만 여자는 철구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채 가만히 있었다. 철구는 여자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손이 자기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 철구는 자신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도 그 여자처럼 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이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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