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3. 현장에 도착하다.(3)
철구는 할머니가 자신의 앞에서 얘기하기 부끄러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할아버지의 제안에 선뜻 응했다.
할아버지는 냉장고를 열어 막걸리 한 병과 안주가 될 만한 것 몇 가지를 꺼내서 철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할아버지는 평상에 펼쳐져 있는 곳에 불을 켜더니 철구를 그 곳에 앉게 했다.
- 허.. 이것 참.. 남사스러워서..
할아버지의 말에 철구는 세현이 한 말을 반복해서 했다.
- 아닙니다. 아직 정정하신데요. 뭐.
- 허허.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웃고는 그릇에 따라져 있던 막걸리를 한 사발 마셨다. 철구 역시 할아버지에게 맞추느라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할아버지는 막걸리 잔을 비우고는 입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어두운 먼 산을 쳐다보며 혼잣말 하듯이 말을 했다.
- 글쎄.. 그게 참 이상하단 말야.
할아버지의 말에 철구는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뭔가 쑥스러우면서도 의아한 듯이 말을 했다.
- 우리 할멈하고 손도 안 잡았거든. 한 10년 됐나... 그런데.. 이상하게 요 몇 달 동안 이상한 꿈을 꾸더니 말야..
할아버지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회춘하시는 거죠. 하하.
철구가 그렇게 얘기를 하자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런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요 몇 달동안 아주 해괴한 꿈만 꾸더라구. 남사스러워서 할멈한테 말을 하진 않았는데, 요상하게도 할멈도 밤에 자면서 요상한 행동을 하더라구.
할아버지는 다시 잔에 막걸리를 채우고는 한 잔 벌컥 마셨다. 철구는 할아버지의 빈 잔에 다시 막걸리를 채웠다. 할아버지는 무언가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
- 그것이... 참 나... 만약에 막둥이면.. 허허...
할아버지의 말에 철구는 다정하게 얘기를 했다.
- 공기도 좋고, 이런 곳에서 자라면 아마 건강하게 잘 자랄 겁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는 조그맣게 말을 했다.
- 그렇겠지. 그런데 말야...
철구 역시 할아버지의 말을 듣느라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 순간 안에서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할아버님, 잠시 들어오세요.
세현의 목소리에 할아버지는 무언가에 놀란 듯이 얼른 허리를 세웠고, 철구 역시 의아한 듯이 집 안을 돌아보았다.
- 무슨 일이요?
할아버지가 집 안을 향해 말을 하자 세현이 창문을 열고 대답했다.
-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잠시만 들어오세요.
그리고는 철구를 향해서 말했다.
- 철구 씨는 잠깐 밖에 더 있어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할아버지는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철구는 할아버지가 들어가자 먼 산을 쳐다보았다. 어둠에 눈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산등성이가 희미하게 보였다.
- 이상한 동네군. 후훗.
할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오자 세현은 할머니가 앉은 옆에 할아버지를 앉혔다.
- 제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야 돼요. 저는 의사니까 부끄러워하시거나 그럴 필요는 전혀 없어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현은 할아버지를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할머니 말씀으로는 10년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발기부전을 겪으셨다고 들었는데, 몇 달 전부터 갑자기 발기가 되신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이 기침을 한 번 했다.
- 흠흠... 거.. 남사스럽게...
세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남사스러운 게 아니라 할아버지께서는 아주 특이한 경우라서 그래요. 보통 남성의 경우 발기부전이 찾아오면 약물 치료를 시작하거든요. 하지만 그 근원 자체는 해결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특별한 치료를 한 것도 아닌데 회복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서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였다.
- 아마.. 그렇지.. 음...
세현은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을 알고자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 조금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한 번 말고는 말을 이었다.
- 흠.. 그렇니까... 그게 어떻게 됐냐면... 이 집으로 이사온 게 그러니까 10년 전이지. 아마.. 내가 퇴직하고 산에 살고 싶어서 이 곳으로 왔는데, 퇴직할 무렵엔가 스트레스성 발기부전이었지.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어. 뭐 늙은이한테 그게 무슨 소용이랴 싶었지. 그런데 여기 와서 10년 동안 똑같았는데... 그게... 몇 달 전인가? 그 때부터 아주 요상한 꿈을 꿨단 말이지.
세현은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물었다.
- 그 꿈이 구체적으로 어떤 꿈이죠?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얼굴이 조금 붉어지며 말했다.
- 거.. 아가씨가 들으면 좀 거시한 건데...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가 조금 놀란 듯이 말을 했다.
- 당신도 그런 꿈을 꿨단 말이우?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 어떤 꿈이죠? 괜찮아요. 의사와 상담한다고 생각하시고 말씀하시면 돼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 그게 말이지... 꿈에.. 내가 누굴 만났거든.. 그게 누구냐믄... 우리 할멈 젊었을 때였어. 우리 할멈이 지금은 쭈그렁 할머니지만 젊었을 땐 무척 예뻤거든.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 아이구, 이 할아범이 노망이 들었나. 그런 말을 다 허구..
그러자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냐. 동네에서 우리 할멈한테 잘 보이려고 하던 놈팽이들이 꽤 많았어. 그런데 꿈에 젊었을 때 할멈이 나오더니... 그게... 나랑... 거 뭐시냐... 흠흠...
할아버지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군요.
할머니는 세현을 한 번 쳐다보았다. 세현은 할머니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할머니의 꿈은 말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얘기였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동네에 같이 살던, 마음을 깊이 나누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보고 싶던 동네 오빠의 젊은 모습과 자신의 젊은 모습이 나타났다고 했었다. 하도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해서 잠에서 깨어나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할아버지께 미안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손을 끌었을 때 거절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동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세현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얘기를 했다.
- 그 꿈 이후로 다시 발기가 되었다는 건가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럴 리가 있나. 그런데 그런 꿈을 하루가 아니라 매일 꿨어. 거.. 할멈 모르게 팬티에 오줌도 지리고... 흠흠...
세현은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런 꿈이 계속되다 보니 발기가 되었다는 것이군요.
할아버지는 다 털어 놓은 것이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서인지 숨김없이 말을 했다.
- 그게... 석 달 전인가? 아무튼 밤에 자다가 또 그 꿈을 꿨는데, 새벽에 나도 모르게 일어났지. 그런데 또 팬티가 축축한 거야. 그래서 오줌을 지렸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팬티 안이 끈적한 것이... 그리고... 전하고 다르게.. 힘이 있더라구.
세현은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말이 이해가 돼서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말에 호응을 하느라 끄떡인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단순히 야한 꿈을 꾼다고 해서 발기부전이 호전되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발기부전은 아주 쉬운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 그렇군요. 알겠어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 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할머니께서 임신을 하신 게 맞아 보여요. 물론 자세한 검사를 해 봐야 되겠지만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낮게 기침을 했다.
- 흠흠.. 그.. 그런가?
세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아주 좋은 일이죠. 일단 할아버지의 발기부전이 치료가 됐다는 의미이고, 할머니 역시 아직 아주 건강하시다는 의미에요. 다만...
세현이 마지막 말을 흐리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세현을 쳐다보았다. 세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말했다.
- 두 가지가 걸리는데, 하나는 할머니 말씀으로는 벌써 15년 전에 폐경을 맞이했는데 어떻게 임신이 되었는지에 대한 것하고, 또 할머니께서 노산이셔서 아이를 낳을 때 조금 힘드실 수 있다는 것이 문제죠. 물론 앞의 경우는 워낙 특이한 케이스라 좀 더 진단이 필요하지만, 뒤에는 문제가 없어요. 요즘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노산이어도 예전만큼 위험하진 않으니까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은 웃으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말을 했다.
- 축하드려요.
할아버지는 조금 감격한 듯한 표정이 되었고, 할머니는 마치 소녀처럼 부끄러워했다.
- 그리고 할머니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셔야 하니까 여기보다는 산부인과가 가까운 곳에 머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 들으니까 큰 아드님께서 서울에 사신다고 들었는데, 그 쪽에서 잠시 계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세현의 말에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애들 보기 민망해서 어떻게 말을 할는지...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아마 자식분들도 다들 좋아하실 거에요.
- 그... 그럴까?
할머니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