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3. 현장에 도착하다.(2)
- 저긴 사람이 살려나?
철구는 그 집 앞으로 다가가면서 말을 했다. 희미하게 창문 안에서 불빛이 보였기에 철구는 조금 더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걸었다.
- 어쩔 수 없군. 저기에 부탁해 봐야겠군.
철구는 집 문 앞에 서서 큰소리로 불렀다.
- 계십니까? 누구 계십니까?
철구가 문 앞에서 소리를 치자 조금 후에 안에 있는 문이 열리면서 할아버지 한 명이 나왔다.
- 누구슈?
철구는 할아버지에게 정중하게 얘기를 했다.
- 산에서 길을 잃어서요. 죄송하지만 오늘 하루만 여기서 묵어갈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철구의 말에 할아버지는 철구를 쳐다보다가 철구 등에 업힌 세현을 보며 말을 했다.
- 그 아가씨를 업고 산길을 걸어온 거유?
할아버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아이고. 젊어서 그런지 체력도 좋구만. 아무튼 이리로 들어와요.
문 안으로 철구가 들어서자 할아버지는 집 안에 크게 소리쳤다.
- 이 봐. 할멈. 손님 왔어.
할머니는 안방에 누워 있었던지 부스스한 머리로 거실로 나오며 말을 했다.
- 아니 이 야밤에 손님이라니...
할머니는 키가 큰 철구가 세현을 업은 채로 안으로 들어오자 조금 놀랐는지 철구와 세현을 쳐다보며 놀랐다.
- 아이구머니나...
철구는 놀란 할머니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 이 산길이 초행이라 길을 잃어서 하룻밤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여자분이 발목을 다쳐서 제가 업고 가는데 산 아래까지 가기가 힘이 들어서요.
철구의 차분한 말에 할머니가 소파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했다.
- 저기 앉히슈.
철구가 소파에 세현은 앉히자 세현이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 감사합니다. 이 밤에 인가를 찾을 수 없었는데...
세현이 인사를 하자 할머니가 얘기를 했다.
- 다 큰 처녀가 남정네 등에 업혀서...
할머니의 주책없는 말에 세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나무라며 말했다.
- 다리를 다쳤다잖아.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등에 업힐 수도 있는 게지.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뾰루퉁하니 입을 내밀었다. 소파에 앉자 할아버지는 철구와 세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마을에 손님이라곤 온 적이 없었는데.. 여긴 어쩐 일이유?
할아버지의 말에 철구가 대답을 했다.
- 누구 좀 만나러 왔다가 길이 엇갈려서요.
- 음.. 그래요..
그러다가 할아버지는 뭔가 생각이 난 듯이 말을 했다.
- 저녁들은 드셨나? 보니까 아직 식전인 것 같은데...
할아버지의 말에 세현이 손사래를 쳤다.
-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렇게 하룻밤 지내게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세현의 말에 철구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시골 인심이 그런 법이 아니지. 이봐 할멈.
철구는 할아버지가 일어나 할머니에게로 갈 때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조용하게 세현에게 말을 했다.
- 할머니는 우리를 반기는 눈치가 아니던데...
세현 역시 목소리를 낮춰 말을 했다.
- 그러니까요...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저녁상을 차리라고 얘기했다. 할머니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부엌으로 나와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 시골이라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요기라도 해요.
할아버지의 말에 철구와 세현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철구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할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 혹시 얼음하고 수건 좀 있을까요? 발목을 조금 다쳐서요.
철구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며 말을 했다.
- 아, 그럼 그럼.
그러더니 냉장고로 가서 얼음통을 꺼내왔다.
- 이봐 할멈. 수건은 어디 있어?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여전히 불은 얼굴로 안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왔다. 철구는 얼음을 수건에 담은 채 세현의 발목에 가져다 대었다. 세현은 조금 차가웠는지 잠시 움찔했다.
- 이거 대고 있어.
철구가 세현에게 수건을 넘겨주자 세현이 자신의 발목에 수건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그 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면박하는 말이 들렸다.
- 손님들이 왔는데, 표정이 왜 그래?
그 말에 세현과 철구는 몸둘 바를 몰랐다.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상을 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소파 앞으로 와서 앉더니 말을 했다.
- 신경 쓰지 말아요. 오늘 낮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철구는 고개를 한 번 숙이며 말을 했다.
- 저희 때문에 불편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사래까지 치며 말했다.
- 손님 분들 때문이 아니라니까. 저 할멈이 좀 안 좋아서...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할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 뭐 좋은 일이라고...
할아버지는 쓰게 입맛을 다시고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할머니는 상을 다 차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철구와 세현에게 말을 했다.
- 상 다 차렸으니까 저리로 가서 드시구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감사합니다.
세현이 할머니의 뒤 쪽에 그렇게 인사를 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끌끌 혀를 찼다.
- 에잉.. 저 밴댕이 속알딱지 같으니라고..
철구는 민망해 하며 세현을 부축해서 식탁 앞으로 갔다. 아닌 게 아니라 오랫동안 산 속을 걸었더니 배가 몹시 고팠기 때문이었다.
그건 세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을 먹고 아직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기에 몹시 배가 고팠다. 두 사람에 식탁에 앉아 밥을 먹자 할아버지가 말을 했다.
- 이해해요. 원래 저런 할멈은 아닌데,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말야.
철구는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저흰 괜찮습니다. 불편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 아냐 그렇지 않으니까 편히 있다 가요.
할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무얼 생각하는지 표정이 조금 묘했지만 철구는 밥을 다 먹고 세현에게 말을 했다.
- 밤에 조금 차갑더라도 냉찜질을 해야 돼.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알아요. 전 의사잖아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랬군.
'의사'라는 말에 할아버지가 눈을 번쩍 뜨고는 철구와 세현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가 다가오자 철구가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 상은 저희가 치울게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 의사 선생이시라고?
할아버지의 말에 세현이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 네.
그러자 할아버지가 식탁 앞에 앉으며 말을 했다.
- 그렇구만... 그게.. 의사 선생이면 좀 도와줄 수 있나?
할아버지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다 도울 게요.
그러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몹시 밝아지며 말을 했다.
- 다른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얼굴이 붉어지며 머리를 긁었다.
- 그게... 저 할멈이 며칠 전부터 좀 이상해서 말야....
할아버지의 말에 세현이 웃으며 말을 했다.
- 이상하시다면...
- 그게... 원래 저 할멈 성격이 아주 좋은 사람이거든. 이 동네에서 맘씨 좋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글쎄 며칠 전부터 작은 일에도 성을 내고 그러더라고...
- 네...
- 그런데... 그저껜가... 밭에서 일을 하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끊고는 다시 쑥스러운 듯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세현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할아버지를 보았다.
- 글쎄... 헛구역질을 하는 거야. 첨엔 밥을 잘못 먹었나 싶었지. 아니면 밭에서 너무 오랫동안 일을 해서 그런가 싶어서 들어가서 쉬라고 했거든..
할아버지의 말에 세현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얘기를 했다.
- 이 얘긴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께 들어야 될 것 같네요. 아무래도 할머니 자신이 더 잘 아실 테니까요.
세현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겠지? 그럼 젊은 의사 선생께서 알아봐 주실라우?
세현이 고개를 끄떡하자 할아버지는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철구가 물었다.
- 저 할아버지는 할머니께서 임신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할머니 연세가...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보통 폐경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일어나요. 물론 요즘은 조기 폐경이라고 해서 20대나 30대에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60대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요. 할머니 연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드문 확률로 임신일 수도 있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피식 웃었다.
-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건가?
철구의 말에 세현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 노인분들도 성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다구요.
철구는 두 손을 들고 진정하라는 듯이 말을 했다.
- 알겠다구. 뭐 그렇게 정색할 필요까진 없잖아.
안방에서는 한참동안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먼저 나와 식탁 앞으로 와서 말했다.
- 젊은이, 나랑 마당에서 막걸리 한 잔 하려나?
철구는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떡이며 말했다.
-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