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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07화 (20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3. 현장에 도착하다.(1)

3. 현장에 도착하다.

- 신부님하고 연락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어. 우리가 찾아가는 수밖에.

철구는 석호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석호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천석이 적어준 주소는 내비게이션에서 나오지가 않았기에 철구는 감으로 그 곳을 찾아갔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도착 시간이 훨씬 늦어져 오후 늦어서야 마을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여기서부턴 차가 못 올라가는군.

차에서 내린 철구는 세현에게 말했다.

- 일단 짐은 놓고 가라고. 정확히 어딘지 모르니까 위치를 알고 가지고 가.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이봐. 산길 걸어가니까 신발도 편한 걸로 갈아 신으라고. 놀러가는 거 아니니까.

철구의 말에 세현은 입술을 쭉 내밀고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고 가방 안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철구는 그런 세현을 뒤로 한 채 먼저 앞서 걸었다.

- 같이 가요!

세현이 신발을 갈아 신고 철구에게 오면서 말했다.

- 차 문 안 잠가요?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훔쳐갈 것도 없어.

철구의 말에 세현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제 가방도 있고, 거기에 지갑도 있단 말이에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귀를 파며 말했다.

- 에이.. 귀찮게..

철구는 발걸음을 돌려 차로 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세현이 있는 곳까지 빠르게 걸어왔다.

- 어딘지 잘 모르니까 일단 산을 올라가야 돼. 뒤쳐지지 말고 따라와.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이고 철구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철구의 걸음이 워낙 빨라서인지 세현은 자꾸만 뒤쳐졌다. 그럴 때마다 철구는 멀뚱히 서서 늦게 오는 세현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까처럼 타박은 하지 않았다.

워낙 산길인데다가 경사도 가팔라서 웬만한 사람도 오를 때 힘이 들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철구의 체력이야 워낙 타고 나서 이런 길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지만, 세현은 그렇지 않아서인지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힘들다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부지런히 철구를 따라왔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세현은 땀도 닦지 않은 채 부지런히 따라왔다. 철구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세현에게 건네주었다.

- 땀 닦아.

휴지를 받은 세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고마워요.

세현이 얼굴의 땀을 닦자 철구는 다시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현 역시 다시 부지런히 철구의 뒤를 따랐다. 어느 정도 올라오자 산 중턱에 도달했고, 철구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 아무 것도 안 보이는군.

세현이 뒤를 따라 도착했을 때 철구는 멀리 보이는 무언가에 눈을 집중하고 있었다. 세현은 산길을 걸어오느라 조금 지친 표정이었다. 철구는 마을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아주 산골 마을이구만.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러게요.

그러면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

- 그래도 산 속이라 그런지 공기는 좋네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얼마 안 걸었는데, 산 속이어서 그런지 해가 금방 졌다.

- 저녁때가 다 됐는데도 불 켜진 집이 하나도 없군.

철구는 손에는 산길이라며 챙겨온 손전등이 들려 있었다. 철구가 사방을 비춰보자 꽤 떨어진 곳에 집 한 채가 보였다.

- 조사는 일단 내일부터 하자구. 산은 조금만 시간을 지체해도 아주 어두워진다고.

철구가 말을 하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멀리 보이는 집을 플래시로 가리키며 말했다.

- 일단 저 집에 가서 누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는데? 여기에 모텔이나 여관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철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먼저 휘적휘적 걸어갔다. 세현은 발이 아픈지 종아리를 주무르다가 철구가 먼저 가자 소리쳤다.

- 같이 가요!

철구는 고개를 쓱 돌리고 세현을 쳐다보고는 걸음을 늦췄다. 그러다가 세현에게 말했다.

- 저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내가 먼저 가 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철구가 그렇게 말하자 세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네? 싫어요. 여가 혼자 있으면 무섭다구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 할매, 귀여운 척 하지 말라고. 무섭긴 뭐가 무서워? 이런 데에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라고.

철구의 말에도 세현은 발에 힘을 주며 따라 나섰다.

- 할매라고 하지 말랬죠!

철구는 세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앞서 걷기 시작했다.

- 그 앞에 돌부리 있으니까 조심해.

철구는 먼저 걸어가며 뒤에서 힘들게 따라오는 세현을 위해 주의해야 할 것들을 일러주며 걸어갔다. 세현은 철구의 말을 들으며 조심스럽게 철구의 뒤를 따랐다.

한 20분 정도 걷자 눈앞에는 마치 산장처럼 보이는 집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조그만 집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집이 몹시 컸다.

- 이런 산골 마을하곤 어울리지 않는 집인걸?

철구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쯤 뒤늦게 도착한 세현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 혼자 가면 어떻게 해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말을 했다.

- 집이 잠겨 있는 것 같군. 젠장. 잘못 왔어.

철구의 말에 쀼루퉁했던 세현은 실망을 넘어 절망의 표정을 지었다.

- 더 이상 못 가요. 발이 너무 아파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집 주변을 돌다가 와서 말했다.

- 노숙을 하기엔 추은 날씨라고.

철구의 말에 세현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 어차피 늦은 거 조금 쉬었다 가면 안 돼요?

철구는 주저앉은 세현을 보며 말했다.

- 그러니까 아까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참 말 안 들어. 할매는.

세현은 화낼 힘도 없어서 손을 저으며 말했다.

- 산에 혼자 있는 게 무섭단 말이에요.

철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비록 옛날의 기억은 지워졌다고 해도 산 속을 헤매다 자신을 괴롭히던 나쁜 기억을 몸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그럼 조금 쉬었다가 다른 집을 찾아보자구.

세현은 주저앉은 자리에서 아픈 다리와 종아리를 주물렀다. 철구는 산장 앞마당에서 플래시로 집이 있을 만한 곳을 여기저기 비춰보았다.

꽤 먼 곳에 인가가 하나 언뜻 보였다.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 먼 거리를 세현에게 어떻게 가자고 할까 고민했다. 십여 분의 시간이 흐르자 어느새 산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철구는 세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 더 늦기 전에 숙소를 찾아야 되는데...

철구의 말에 세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그럼 빨리 여기서 내려가요. 다른 곳에 인가가 있겠죠.

두 사람은 다시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철구가 앞서 걸었고, 세현이 힘겹게 뒤를 따랐다.

- 아앗...

뒤에서 세현이 쓰러지자 철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 왜 그래?

철구의 말에 세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 앞에 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어요.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세현 쪽으로 걸어갔다.

- 그러니까 조심해서 걸으라고 했잖아!

철구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세현의 다리를 보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조금 까졌지만, 그게 문제가 아닌 듯 보였다. 넘어지며 발을 살짝 겹질렸는지 세현은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 미안해요.

세현이 말을 하자 철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이제 와서 뭔 소용이야! 그러니까 서울에 있으라니까.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숙였다. 철구가 세현을 부축하고 일어나려 하자 세현은 다시 발목을 부여잡고 주저 앉았다.

- 이거야 원...

철구는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세현은 자신의 발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으니까 여기서 조금만 쉬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었다.

- 여기서 더 있으면 아주 어두워진다고. 그리고 이렇게 깊은 산은 밤이 되면 몹시 추워져.

그렇게 말하고는 철구는 세현에게 돌아서 앉았다.

- 업혀!

철구의 말에 세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아니에요. 저 혼자 걸을 수..

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발목이 욱신거렸는지 다시 주저앉았다.

- 업히라고. 고집 부리지 말고.

철구의 말에 세현이 머뭇거렸다.

- 참나, 이 할매. 뭐가 부끄럽다고 그래?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에.

철구의 말에 세현이 말을 했다.

- 뭐.. 뭘 다 봐요?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무튼 얼른 업혀. 여기서 시간 끌면 정말 노숙해야 될지도 모르니까.

세현이 철구의 등에 업히자 철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현은 철구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고, 철구는 세현의 허벅지에 손목을 걸치고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세현의 한 손에는 철구가 들었던 플래시가 들려 있었다. 산길이라 그런지 세현의 몸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철구는 조금 힘에 부쳤다.

- 히.. 힘들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숨을 조금 몰아쉬며 말했다.

- 행군하는 기분이라구.

철구의 말에 세현이 얼굴을 붉힌 채 말을 했다.

- 요즘... 조금 살이 쪄서...

세현의 말에 철구가 말을 했다.

- 무거워서가 아니라 산길이 험해서야. 아무튼 조금만 더 가면 인가가 나올 것 같으니까 거기까지 가자구.

철구는 세현을 업은 채 다시 한참을 걸어서 집을 한 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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