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2. 미궁의 사건(2)
한수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떠났다. 가는 도중에 소나기도 내리고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져 휴게소에 들렀다.
- 뭔 날씨가 이 모양이야.
한수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우동을 하나 먹고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쳐다보며 쪼그려 앉았다.
- 괜히 내려왔나?
혼자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 아니지. 산삼이 얼만데...
한수는 내리는 비를 뚫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 다시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갔다. 두 시간 정도 달리자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10km 남았다고 알려주었다.
- 맞게 왔군. 도착하기만 하면 내가 몽땅 해결해 주지.
한수는 나들목을 통해 고속도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 때부터 내비게이션에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가리켰다.
한수는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가 막힌 도로를 만나서 차를 후진하면서 욕을 해댔다.
- 우라질. 업데이트를 안 해서 그런가? 왜 이런 곳으로 안내를 하는 거야?
한수는 다시 GPS를 잡기 위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소지를 입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갈 수 없는 곳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길 안내마저 사라졌다.
- 젠장. 이게 뭐야!
한수는 억수로 퍼붓는 비와 잡히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원망하며 핸들을 내려쳤다. 한수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쪽 방향은 아닌 것 같았다.
비가 조금 그치기를 기다리며 한수는 DMB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산골이라 그런지 어떤 화면도 잡히지 않았다. 한수는 DMB를 끄고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주파수를 잡기 위해 디지털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지만 어떤 주파수도 잡지 못했다.
- 뭔 놈의 동네가 전파를 못 잡아?
한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보았다. 안테나 부분이 회색으로 떠 있었다.
- 젠장... 전화도 안 돼?
한수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차를 후진했다. 그러나 그동안 비가 억수로 쏟아 부었는지 한수의 차는 제자리에서 미끄러지면서 움직이질 않았다.
- 이런 젠장 맞을..
한수는 다시 차의 핸들을 쾅하고 내려치며 창문을 쳐다보았다. 자동차 라이트가 앞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한 빗줄기에 빛마저 힘을 잃고 그저 코앞만 비추고 있었다. 한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 이거야 원. 비가 그쳐야 뭘 하던가 하지...
한수는 차 안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러다가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어 한수는 자신도 모르게 차 문을 걸어 잠갔다.
- 그 자식은 그냥 준 거면 그냥 받을 것이지, 왜 그 지랄을 해서 사람을 고생시키는 거야. 썩을 놈.
한수는 철구를 떠올리며 욕을 한바탕 퍼부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게 철구의 잘못도 아닌데 혼자서 그렇게 난리를 피운 것이 멋쩍었는지 한수는 입맛을 다셨다.
- 에이 뭔 놈의 비가 이렇게 내리는 거야. 씨발.
한수는 창문을 조금 내린 채 시동을 껐다. 그리고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 잠이나 자 둬야지. 이 야밤에...
한수는 본능적으로 이런 밤에 그리고 비가 이렇게 내리는 산골을 무턱대고 나갔다가는 대책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비가 그칠 때까지 차라리 잠이나 자 두려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쿠구구구구...
한수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 이건 또 뭔 소리야?
한수는 창문 쪽을 계속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시트 위로 누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 쿠구구구구구구...
한수는 고개를 들어 다시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굵은 빗방울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얼핏 보였다.
- 저게 뭐야?
한수는 눈을 모아 그 쪽을 쳐다보았다. 그 때 한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 이런 씨발...
한수는 재빨리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느 쪽 방향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마구 달렸다. 조금 후 빗물과 함께 엄청난 양의 흙이 한수의 차를 덮쳤다.
한수의 차는 물과 흙에 밀리고 깔리어 차체 위만 조금 밖으로 보였다. 한수는 비를 홀딱 맞으며 자신의 차가 흙에 매몰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 이런 우라질... 씨발... 젠장.. 좆같은 비야. 그만 와라!!
한수가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를 치자 커다란 벼락이 한수가 있던 차 위로 떨어졌다. 불꽃이 튀었고 차에 불이 붙더니 얼마 후에 엔진 쪽에 불이 붙었는지 차체가 터졌다.
한수는 나무 뒤에 숨어서 있었기에 차가 폭발하며 날아오는 차량 잔해물이나 흙을 맞진 않았다. 한수는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 젠장...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한수는 그나마 비가 덜 들이치는 나무 사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이 이미 비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그나마 비를 덜 맞기 위해 한수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 아.. 씨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건데...
한수는 나무 아래 몸을 웅크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한편 서울에 남은 철구는 카페에서 의뢰인을 만나 사진을 넘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부류의 인간과 자주 엮이면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곤 했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철구는 애써 웃는 낯으로 의뢰인과 만나 부탁받았던 사진을 넘겨준 것이었다. 철구는 카페 밖으로 나오며 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바빠?
철구의 말에 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글쎄요. 아직 환자가 세 명이 남아서요. 무슨 일 있어요?
세현은 철구가 자신에게 먼저 전화를 건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물었다. 철구는 지나가는 말처럼 얘기를 했다.
- 신부님이 이상한 사건 의뢰를 해서.
세현은 철구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이상한 사건이라... 한 두 시간쯤 후에 사무실에서 봬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낮에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뛰쳐나간 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통화음이 한참 울렸지만 한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철구는 전화를 끊고 혼자 중얼거렸다.
- 이 형 삐진 거야? 참나.
철구는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넣고 차로 걸어갔다. 차 안에 앉아 아까 낮에 자신을 찾아왔던 천석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 일이었다.
-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이라.. 문은 모두 잠겨 있었고, 노인은 치매로 거동이 불편하고...
철구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철구는 차에 시동을 걸고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철구는 모니터에 이상한 글자들이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철구의 눈에는 마치 컴퓨터가 고장 난 것처럼 보였다.
- 어이, 대장. 컴퓨터가 이상한데?
철구가 모니터를 향해 말을 하자 모니터 화면이 싹 지워지더니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철구는 의아한 듯이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
- 바이러스야?
철구의 말에 기계음이 들렸다.
- 하.하.하. 누가 감히 내 구역에 바이러스를 심겠는가? 코딩 작업 중이었다.
- 코딩 작업?
철구는 생소한 말에 모니터 위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스피커에서 또다시 기계음이 들렸다.
- 이번에 연락 방식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서 새롭게 프로그램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철구 아저씨 핸드폰은 구형이어서 철구 아저씨 것만 새로 짜야 한다.
대장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이 봐. 그건 좀 봐주라고. 난 화면 크고 걸리적거리는 거 들고 다니는 게 딱 질색이라고.
그러자 모니터에는 작은 스마트폰들이 보였다.
- 지금 이것들은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만큼 작은 것들이다.
철구는 모니터를 쓱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 난 그냥 버튼 누르는 게 좋아.
그러자 모니터에 새로운 폰이 나왔다.
- 버튼 누르는 방식인데 운영 체제는 스마트폰 운영 체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 주문할 수도 있다.
철구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내 것만 새로 만드는 게 많이 귀찮은 건가?
철구의 말에 모니터 화면에는 마침표만 몇 번 나왔다. 그러다가 기계음이 들렸다.
- 귀찮은 건 아닌데, 구형이다 보니 구현되는 게 적어서 그렇다.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뭐 그리 불편한 게 아니면 바꿔줘. 전화번호는 그대로 쓰고.
그러다가 아차 싶어 말을 했다.
- 아! 아니다. 안 되겠는걸...
철구의 중얼거림과는 상관없이 대장은 핸드폰을 주문했다.
- 어이. 이봐. 그거 주문해도 소용없다니까. 난 가입할 때...
그 순간 모니터에 가입 화면이 나왔다.
- 걱정 마라. 지금 쓰고 있는 폰이 대포폰인 거 알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신분으로 가입하고 있다. 아마 지금 것보다 더 안전할 것이다.
철구는 모니터를 보며 피식 웃었다.
- 하긴, 어디든 다 뚫고 다니는데...
철구의 중얼거림에 모니터 화면에는 웃는 얼굴이 나왔다.
- 이미 대강의 정보는 파악하고 있다. 모두에 대해.
철구는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 너무 깊이 들어오는 건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