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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02화 (20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2. 미궁의 사건(1)

2. 미궁의 사건

- 저희 엄니 좀 찾아줘유.

천석은 철구의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펑펑 울며 철구의 다리에 매달렸다. 철구는 그런 천석을 붙들어 일으켜 세웠다.

- 그렇게 울고 있지만 말고 여기 앉아서 얘기하죠.

한수는 천석이 들어올 때부터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천석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옷차림도 몹시 남루했고 빛이 바랜 노란색 보따리를 안은 채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잔뜩 떡이 져 있었다. 손톱 밑에는 때가 끼어 몹시 지저분해 보였고 신발 역시 밑창이 다 닳아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돈이 안 되는 의뢰인이었다. 만약 자기 혼자 있었다면 윽박을 질러서라도 내쫓았겠지만 철구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컴퓨터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마우스로 똥광을 먹으려고 가까이 가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저희 엄니만 찾아주시믄 이거.. 이거 드릴게유.

천석은 소파에 앉자마자 노란색 보따리를 풀었다. 그 안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해 보이는 산삼이 한 뿌리 있었다.

산삼 한 뿌리에서 줄기가 여섯 개나 뻗어 나온 것이었다. 뿌리까지 완벽한, 족히 200년은 넘어 보이는 엄청난 놈이었다. 한수는 그 산삼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정도라면 최소 1억 원은 넘었기 때문이었다.

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쪽으로 오며 철구에게 말했다.

- 아 이 자식. 손님이 왔으면 커피도 내오고 그러면서 얘기를 해야지.

한수는 천석을 보며, "커피? 녹차?"하고 묻고는 철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커피 타오라는 눈짓을 했지만 철구는 한수를 무시한 채 천석을 보며 말했다.

-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씀 좀 해 주시겠습니까?

천석 역시 한수 쪽으로는 눈을 잠깐 돌렸다가 철구를 쳐다보며 말했다.

- 저희 엄니가 사라지셨슈. 지가 산삼을 캐러 나갔다 온 사이에 말여유. 요새 들어 엄니가 약간 왔다갔다 하셨는디... 날도 춰지는디 워쩐데유?

천석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한수는 그런 둘을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구석으로 가서 종이컵에 커피 두 개를 탔다.

- 그러니까 산삼을 캐러 나간 사이에 어머니께서 사라지셨다는 말인가요?

- 야. 평소에 그리 나가시지 않는 사람인디...

한수가 커피 한 잔을 천석 앞에 놓고 자신이 한 잔 가져가려 하자 철구가 한수를 보며 말했다.

- 여기 놔둬두 되요.

철구는 한수 손에 들린 커피를 뺏더니 자신 앞에 놨다. 한수는 평소 같았으면 '이런 개자식'하고 욕을 했겠지만 손님 앞이라 그런 내색도 못하고 얼굴이 일그러지게 웃었다.

- 그.. 그래...

철구는 다시 천석을 보며 말했다.

- 그런데 저희를 어떻게 알고 오셨죠?

천석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말했다. 동네에서 며칠 간 사라진 어머니를 찾았지만 영 진척이 없자 천석은 읍내로 나와 사람을 잘 찾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천석이 워낙 간곡하게 알아봤는지 읍내를 걸어가던 석호가 천석을 발견하고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이 올라가서 얘기를 해봐야 되지만, 지금은 일이 있어 못 올라간다기에 천석이 단박에 차를 잡아타고 올라온 것이었다.

- 신부님도 참... 전화라도 주시지..

철구는 평소 이런 일이라면 전화를 할 사람인데, 전화를 안 한 것으로 보아 거기서 뭔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신부지만 워낙 종횡무진한 사람이라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석호 신부님이라면 그냥 보고 지나치질 못하셨겠지.

철구는 혼자 중얼거리고는 천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천석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최대한 자세하게 철구에게 얘기를 했다. 철구는 수첩을 꺼내 이런 저런 걸 받아 적다 혼자 중얼거렸다.

- 치매에 걸린 노인이 갑자기 사라졌다? 더구나 문을 밖에서 걸고 나갔는데.

철구의 혼잣말에 천석은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철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중얼거렸다.

-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의 옷만 그대로 남아 있고 어머니만 사라졌다라...

철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 원한이나 아니면...

철구는 금전적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석이 금전적으로 그다지 풍족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란 거 절대 없슈. 쪼그만 동내애서 원한이 있을라구요. 그라고 지가 그리 나쁘게 살지는 않는구먼유.

철구는 천석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여태 장가를 가지 않고 치매에 걸린 칠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남자라면 오히려 이 시대에 드문 착한 청년으로 보였다.

- 그렇군요.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직접 문을 열고 나가셨을 수는 없나요?

철구의 말에 천석이 고개를 저었다.

- 지가 문에 주먹만 한 자물쇠를 걸고 갔슈. 열쇠는 지가 들고 갔으니까 엄니가 밖으로 나올 수는 없을 것이유.

천석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겠군요. 일흔 살이 넘으신 분이 문을 뜯고 나가셨을 리도 없고.

철구는 천석을 의심해 보았지만 칠순이 넘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찾기 위해 일억 원을 호가하는 산삼을 내놓을 만큼 절박했고 더욱이 칠순 노모가 보험에 가입된 것도 아니었기에 철구는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렇다면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누군가 천석의 어머니를 데리고 간 것인데, 그렇다고 보기엔 석연찮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일단은 현장 조사를 먼저 해 봐야 하는데 제가 지금 하는 일이 있어서 마무리가 되어야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가 계시면 제가 모레쯤 방문하겠습니다.

철구의 말에 천석은 애가 닳은 표정을 지었다.

- 어찌게 빨리 안 되것나유?

철구는 안타까웠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 중요한 일이었기에 말을 했다.

- 먼저 가 계시면 신부님께 제가 부탁해 놓을 게요. 신부님 역시 아주 훌륭하신 분이거든요.

철구의 말에 천석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 그라믄 지는 먼저 가 있을게유. 꼭 좀 찾아주셔유.

천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리가 90도가 되도록 고개를 숙였다. 철구 역시 천석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가겠습니다.

천석이 굽실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한수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천석이 놓고 간 산삼을 보며 말했다.

- 기가 막히는군. 이런 산삼은 처음 보네. 어마어마하게 비싸겠지?

철구는 한수를 보며 말했다.

- 이 산삼 가급적이면 비싸게 처분해 줘.

철구의 말에 한수는 놀랍다는 듯이 철구를 쳐다보았다.

- 비싸게? 니가 웬일이야? 비싸게 팔라고 하고. 잠깐 오늘 아침에 해가 어느 쪽에서 떴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한수의 실없는 농담에 철구가 말을 했다.

- 저 천석이란 심마니가 평생에 한 번 캘까 말까한 거야. 우린 사람 찾는 데 필요한 비용만 받으면 되니까 그거 팔고 작업료 빼고 나머지는 돌려줄 거야.

철구의 말에 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야, 이건 사람 찾는 의뢰비로 준 거니까 우리 거지.

한수의 말에 철구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 그럼 형이 찾으러 갈 거야? 그렇다면 다 먹든 팔아먹든 신경 안 쓸게.

철구의 말에 한수는 버럭 했다.

- 내가 찾으러 갈게. 대신에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

한수의 말에 철구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욕심이 과하면 탈나. 알면서 그래.

철구의 말에 한수는 사정하듯 말했다.

-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거냐? 이거 팔아서 반땅 하면 그게 얼마냐? 자식이 굴러온 복에 초치고 그래.

철구는 한수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 형님 그렇게 사는 거 아니요. 그러다 벌 받아.

철구의 말에 한수가 버럭 소리쳤다.

- 받을 벌은 다 받았어. 그러니까 이 일은 내가 접수하겠어.

철구는 한수가 큰소리를 치자 귀를 파며 말했다.

- 형님이 이번 일 해결하면 다 드슈.

철구의 말에 한수는 발끈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내가 아주 보란 듯이 해결하고 올 거다. 이래 뵈도 나도 한가락 하던 경찰이었어. 임마.

한수는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갔다. 철구는 그런 한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한 10초 정도 지나자 사무실 문을 다시 열리며 한수가 들어왔다.

- 젠장. 어딘 줄 알아야 가지.

철구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한수는 철구를 보며 말했다.

- 그 사건 난 위치가 어딘지 불러 봐.

철구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종이에 천석의 주소를 적어서 주었다. 철구의 손에서 주소를 낚아채어 가며 한수가 말했다.

- 니가 오기 전까지 내가 다 해결해 놓을 테니까 그럴 줄 알어.

한수는 철구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철구는 담배를 꺼내 물며 혼자 중얼거렸다.

- 저러다 또 사고 치지.

철구는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한수는 큰소리를 치고 나와 철구가 알려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 이 자식. 날 맨날 무시하는데, 나도 하면 하는 놈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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