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01화 (201/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1. 사라진 어머니(3)

천석은 숨을 헐떡이며 천안댁에게 물었다. 천안댁은 평소 천석에게 마음을 조금 품고 있었지만, 자신이 과부의 신세라는 걸 생각하고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말을 하고 가까워지면 정이 깊어질까 천안댁 역시 천석과는 말을 잘 섞지 않았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석이 나타나 자신의 어머니의 행방을 묻자 천안댁은 몹시 당황을 했다.

- 모... 못 봤는데요..

천석이 다시 달려가려고 하자 천안댁이 천석을 불러 세웠다.

- 저... 저기요..

천석은 앞으로 달리다 천안댁을 돌아보았다. 천안댁은 얼른 한 쪽 구석에 세워진 자전거를 풀고 천석 앞으로 가져왔다.

- 여... 여기.. 이거 타면 더 빨리 갈 수 있어요.

천안댁이 천석 앞에 자전거를 내밀자 천석은 고마운 마음에 천안댁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 고맙구만유.

천석은 자전거를 타고 휭하니 달렸다. 천안댁은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천석이 가는 길을 쳐다보았다. 천석은 자전거를 타고 마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남자들은 모두 산행을 갔기에 마을에는 온통 여자들과 아이들뿐이었다.

천석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천석은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천안댁 집에 들러 자전거를 주고 다시 집 쪽으로 올 때 산 위에서 남자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어머니는 찾으셨어요?

천석은 고개를 저었다.

- 어쩐데요. 이제 날도 저무는데...

천석은 힘없이 천안댁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올 때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따... 꿈도 요상한 걸 꾸더니 여그서 뭘 한댜?

이장이 나서서 말을 하자 다른 남자들이 와하고 웃었다. 저렇게 분위기가 좋은 건 분명 누군가가 산삼을 캤다는 증거였다.

- 어? 천석이. 야그는 들었구만. 얼른 장가가야지. 꿈만 꾸믄 뭘 헌디.

마을 초입에 사는 고 씨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산장지기를 하고 있는 오 씨가 말을 했다.

- 뭘 멀리서 찾는감? 천안댁이 한 번 갔다 왔지만 인물도 좋고, 애도 없고...

오 씨의 말에 다들 또다시 왁자하니 웃었다. 까무잡잡한 천안댁의 얼굴이 몹시 빨개지며 말했다.

- 그런 말마요. 지금 천석 씨 어머니가 없어졌데요.

천안댁의 말에 이장이 천석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그게 뭔 말이여? 엄니가 없어지다니?

천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 다 지 탓이구먼유. 지가 부정헌 짓을 혀서 엄니가...

이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 그란 꿈을 꾼다고 부정헌 건가? 아무튼 엄니가 사라지다니 워찌 된 일이여?

천석은 힘겹게 눈물을 닦고는 말을 했다.

- 글씨 제가 잠깐 집을 비우고 나간 사이에 엄니가 사라졌슈.

- 워디 가신 건 아니구?

고 씨가 나서서 말을 하자 천석이 고개를 저었다.

- 나갈 때 상 차려 놓고 문도 잠그고 갔슈.

천석의 말에 이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 문도 잠갔는디 워찌 나갔댜?

천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기... 제가 집에 와서 보니까 밥상허구 모두 그대로였슈. 그란디 엄니 옷만 덩그라니 남은 채 엄니가 없어지신거유.

천석의 말에 이장과 최 씨의 표정이 굳었다. 고 씨는 나서서 말을 했다.

- 엄니가 치매시니까 옷을 벗고 나가신 게 아닝가 말여.

고 씨의 말에 이장이 고 씨를 타박하며 말했다.

- 말을 못 알아들었능가? 문에 자물통 걸고 나갔다지 않어.

고 씨는 멀수룩해서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이장은 천석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했다.

- 각자 집으로 갔다가 회관으로 모이슈. 좀 피곤혀도 마을 주민 찾는 거닝까 빠지지 말고 나오슈.

이장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 오늘은 좀 이른 시간에 산삼을 캐서 쉬엄쉬엄 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집으로 흩어지자 이장은 천석에게 말했다.

- 천석이, 자네도 집에 가서 준비를 혀두라고.

그리고는 천안댁을 보며 말했다.

- 천석이 녀석 좀 데리고 가서 밥 좀 차려 주쇼. 저 자슥 보니까 한 끼도 안 먹은 거 같은디.

천안댁은 이장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천석을 부축하고 천석의 집으로 향해 갔다. 그 날 밤 마을 사람들이 동네와 산 근처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천석의 어머니의 행적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 오늘은 그만 허자구.

새벽이 다 되어서 이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장의 말에 따라 산 아래로 내려왔다. 천석은 끝까지 찾아보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이장이 천석을 안심시켰다.

- 만약 엄니가 산으로 가셨다고 혀도 지금은 새벽잉께 주무실거여. 그리고 날도 그리 춥지 않으니까 오늘은 그만 혀. 힘을 남겨둬야 내일 또 찾지.

이장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끄떡이고 산 아래로 내려왔다. 천석은 내려오면서 습관적으로 '엄니... 엄니..'하고 내려왔다. 다들 집으로 흩어지고 천석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천안댁이 가지 않았는지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천석이 안으로 들어가자 천안댁이 밥상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 워찌 안 가시고..

천석이 안으로 들어가자 천안댁은 화들짝 놀라 깨며 말했다. 천안댁의 얼굴은 붉은 홍당무처럼 몹시 발그레했다.

- 네? 그게... 아.. 아까 밥을 부실하게 드신 거 같아서... 밥을 더...

천석은 몹시 지친 표정으로 천안댁에게 말을 했다.

- 괜찮아유. 늦었는디 댁으로...

천석의 말에 천안댁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했다.

- 바... 밤이 늦었는데... 저 혼자...

천석은 뒤통수를 긁으며 말을 했다. 온몸이 찌뿌듯했지만, 자신을 위해 밥을 차려 주고 집 청소까지 해 준 천안댁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기에 천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가시쥬. 제가 댁까지...

그런데 그 순간 천안댁의 몸이 천석의 몸 위로 넘어지듯이 쓰러졌다.

- 와... 와 그라유?

천석은 놀라서 천안댁을 부축했다. 그런데 천안댁은 천석의 몸에 자신의 몸을 더욱 밀착시키며 말했다.

- 아.. 안 가면 안 돼요?

- 처... 천안댁..

천석이 천안댁을 향해 안 된다는 거부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그녀를 살짝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천안댁은 더욱 요염하고 색기 넘치는 표정으로 천석을 보며 말했다.

- 미옥이라고 불러줘요. 천석 씨.

미옥은 까무잡잡한 피부가 새빨갛게 물든 채 천석에게로 다가왔다. 천석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곧 두 사람은 불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버렸다. 한바탕의 열풍이 지나친 후에 천석은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가 실종이 된 마당에 아무리 미옥이 자신을 유혹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쉽게 넘어간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 것은 미옥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석에게 아무리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의 어머니가 실종된 상태였고, 천석을 기다리며 요상한 꿈을 꾸었다고 해도 이렇게 그와 같이 몸을 섞게 될 줄은 몰랐었다.

- 미... 미안해요.

미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천석이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 아.. 아니어유. 지가.. 지가 몹쓸 짓을...

천석의 말에 미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천석은 그런 미옥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과부라도 자신에겐 과분한 여자로 느껴졌던 미옥과 이렇게 함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밀려오는 죄책감에 천석은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러다가 미옥의 손을 잡고 천석이 말을 했다.

- 어... 엄니만 찾으믄... 지... 지랑 겨.. 결혼..

천석이 힘들게 입을 열자 미옥 역시 몸을 일으키며 천석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천석의 품 안에서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 저는 나쁜 여자에요. 증말... 나쁜 여자...

천석은 가녀린 미옥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 아녀유. 그라잖아도 언감생심 지가 어찌게 할 수 읎었는디...

천석의 말에 미옥이 천석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 미안해요. 증말로 미안해요...

미옥의 말에 천석은 미옥을 안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다음날 오전부터 마을은 천석의 어머니를 찾는 일로 분주하였다. 마을 사람들끼리 조를 짜서 산행을 떠났고, 몇몇은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며칠 동안 산을 다 훑고 다니고, 마을 바깥까지 나가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마을 사람들도 생업이 있다 보니 한둘씩 빠지게 되었고, 마지막까지 천석의 어머니를 찾는 사람은 천석과 미옥뿐이었다.

천석은 미옥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자기들보다 보다 전문적으로 사람을 찾는 사람에게 의뢰를 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 미옥에게 얘기를 했다.

- 사람을 부리믄 안 될까유?

천석의 말에 미옥은 놀란 표정으로 천석을 쳐다보았다.

- 그... 이장님한테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요?

미옥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이장님 성격에 즐대 안 된다고 허실건디...

천석은 이 동네에 이방인이 들어오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이장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 지가 읍내에 나가서 사람 잘 찾는 사람 한나 구해 올게유. 지랑 같이 다니믄 별 일이야 있겄슈.

천석의 말에 미옥이 말끝을 흐렸다.

- 그래도....

천석은 속이 탄다는 표정으로 미옥을 쳐다보며 말했다.

- 엄니가 어쯔게 됐는지.. 도... 돌아가셨으믄 시.. 시신이라도 찾아야 헐 거 아녀유.

천석은 스스로 무서운 생각이라는 기분이었는지 말을 더듬었다. 미옥은 천석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자 고개를 끄떡였다.

천석은 옷을 갈아입고 싱크대 아래에 있는 보따리를 품에 안았다. 천석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 미옥이 천석에게 물었다.

- 그게 뭐에요?

천석은 미옥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 사.. 사람을 찾으려믄 돈을 줘야 헐 텐디, 근디... 지가 가진 돈이 읎어서유. 캐 놓은 약초라도 드.. 드리려고...

천석의 말에 미옥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천석이 부랴부랴 문 밖으로 나가자 미옥이 천석을 향해 말했다.

- 조심해서 갔다 와요. 늦지 말고..

천석은 미옥의 말에 몸을 돌려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떡이고는 마을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저 멀리 산 중턱에 앉아 천석이 마을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