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1. 사라진 어머니(1)
에피소드 2. 증발
1. 사라진 어머니
온통 풀과 잡목이 가득 차 있는 이곳은 햇빛조차 들지 않아 습한 기운이 가득했다. 한낮이라 그런지 습한 기운과 함께 훈기가 가득 차 있었다. 가뜩이나 덥고 습한데 어디선가 이런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야릇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음이 섞인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것은 고통이나 아픔으로 인한 소리가 아니라 열락에 빠진 소리처럼 들렸다.
남자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쪽으로 가는 길은 푹신한 쿠션을 깐 것처럼 잡풀들이 몹시 푹신했고,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감추려 하지 않아도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잡목들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그 신음 소리는 더욱 커졌다. 가까이서 들리는 그 신음 소리는 더욱 야하게 느껴졌다. 남자의 목울대는 침이 넘어가느라 또다시 불룩해졌다 아래로 내려갔다.
남자가 자신의 눈앞을 가로 막은 나무의 가지를 치워내자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한 여인이 나신의 몸으로 풀밭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홀린 듯이 하늘을 가득 가린 풀 숲 하늘을 쳐다보며 여인은 허리를 들썩이고 있었다. 천석은 눈이 커다래지며 그 여인을 쳐다보았다.
'순백의 나신.'
머릿결을 제외하고는 온통 하얀 그녀의 살결들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와 허벅지, 그리고 엉덩이에는 자그마한 땀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여인은 잡목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지켜본다는 걸 모르는지 자신의 행위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낮게 터지는 낮은 신음 소리.
- 으으음...
비음이 섞여 더욱 요염하게 들리는 그녀의 신음 소리에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인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한 손은 자신의 아랫배를 거쳐 허벅지를 쓰다듬다가 자신의 내밀한 그곳으로 향해 갔다.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신음 소리가 그녀 특유의 비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 아....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다시 한 번 삼켰다. 남자는 그런 여인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남자는 옅은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밥 줘~!
남자는 어디선가 들리는 이질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인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자기만의 행복에 빠져 있었다. 남자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배고파. 밥 줘~!
남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뻗었지만, 어느새 눈앞에는 방금 전의 풍경이 사라지고 웬 노파가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 밥 안 줘? 굶겨 죽일라꼬?
남자는 눈을 뜨자 곧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
꿈이었나부네.'
남자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남자 옆에는 여전히 노파가 칭얼대듯이 밥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남자는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노파를 보며 말했다.
- 알었어유. 쫌만 기다려유. 금방 가져올텡께.
남자는 입맛을 다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날 때 아랫도리가 몹시 불편했다. 남자는 허리를 조금 숙인 채 부엌으로 나왔다.
- 아주 죽갔네.
남자는 꿈속의 상황을 다시 음미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곳은 자신이 아는 곳 같았다.
- 워째서 그란 꿈을..
남자는 내일 동네 사람들과 산을 오르기로 했는데, 오늘 이렇게 요상 망측한 꿈을 꾼 걸 보니 운수가 텄다고 생각했다.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마저 비워야 하는 일에 이런 부정 탈 꿈을 꿨으니 될 일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부엌에서 밥그릇에 밥을 푸다 말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
- 천석아, 밥 안 줘?
천석이라 불린 남자는 뒤를 보며 노모(老母)에게 말했다.
- 드릴께유. 쫌만 참아유. 그리구 밥 먹은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천석은 그렇게 얘기하다가 입을 닫았다. 얼마 전부터 치매 증상이 있는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 기운이 도질 때면 늘상 밥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천석은 밥을 푸고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냈다. 그리고 낮에 먹던 찌개를 데워 상을 차려 어머니 앞에 가져다 놓았다.
- 괴기 줘. 괴기.
천석의 어머니는 밥상을 보더니 고개를 팩 돌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 지금은 없응께 그냥 자시고 이따 사다 드릴께유. 그리구 이도 성치 않은 분이 맨날 괴기 타령이래유.
천석의 말에 어머니는 토라진 채로 소리를 질렀다.
- 이 눔이 밥을 굶기네. 지 에미가 늙었다구..
천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얼른 드시구 이따 저녁 때 괴기 해 드릴 테니까 지금은 그냥...
천석이 말하는 순간 천석의 어머니는 상을 들어 엎었다. 반찬 그릇이며 밥이 담긴 그릇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천석은 순간 울컥 했지만, 아픈 어머니라는 생각에 묵묵히 어질러진 밥과 반찬들을 치웠다. 행주를 가지고 벽을 닦고,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그릇들을 포개서 싱크대 통에 넣었다.
- 밥 줘! 밥 안 줘?
천석은 상을 닦아 놓으며 말했다.
- 그만 해유. 이따 괴기 사다가 밥 해드릴 테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밥 달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천석은 그런 어머니를 놔두고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그리고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워쩌꺼나... 이번엔 가서 산삼을 캐야 되는디... 그래야 엄니 병도 고치는디...
천석은 집 안에서 어머니가 밥 달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으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 천석이 사는 이곳은 소백산 인근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읍내까지 나가는 데에만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외딴 마을이라지만 마을에는 십여 명이 모여 살고 있었다.
70년대 개량 사업으로 새롭게 지어진 집들과 아직 예전 방식 그대로인 집들이 혼재되어 있어 마을은 조금은 어수선해 보였지만, 마을 뒤로 펼쳐진 수려한 소백산의 절경은 그러한 마을을 감싸 안은 채 마치 그것도 소백산의 한 모습이라는 듯이 펼쳐져 있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전기도 최근에서야 겨우 들어왔고, 수도 시설은 대부분 지하수를 파서 생활을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워낙 외따로 떨어져 있어 가끔씩 면사무소 직원이 마을 사람들을 확인하러 들어오는 것 외에는 사람들의 왕래는 거의 없었다. 소백산 줄기를 타고 있는 마을이라 딱히 농사를 지을 수도, 그렇다고 돼지나 소를 키울 수도 없는 이 마을에서 유일한 수입은 산에서 자라는 약초를 캐거나 나물을 뜯어다가 파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마을은 유지가 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산삼(山蔘). 이 마을은 특이하게도 한 해에 한 명씩은 반드시 산삼을 캐곤 했다. 그것도 그냥 잔뿌리 얼마가 아니라 억대를 호가(呼價)하는 100년 이상 묵은 산삼을 캤다.
그렇게 캔 산삼은 마을의 규칙상 반은 그것을 캔 심마니가 먹었고, 나머지 반은 마을 사람들과 공평하게 나누었다. 마을에 있는 이장(里長)은 그러한 수익 배분을 통해 마을을 평안하게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고, 또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쉬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풍요로워 보이진 않았지만, 다들 불만 없이 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산삼을 캐러 가는 날이 바로 내일이었다. 천석은 10년째 산을 올랐지만 아직 산삼 한 뿌리도 캐지 못했기에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산삼을 캐올 때마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이제 자기도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 천석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일어난 후로 치매 기운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쓰였는데, 점심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을 때 꾼 이상한 꿈 때문에 마음이 더욱 뒤숭숭했다.
- 염병할...
천석은 담배를 비벼 끄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천석은 아래에 사는 이장 집을 찾아갔다.
- 이장님, 계셔유?
다들 산행 준비에 여념이 없을 텐데 천석이 찾아온 것에 이장은 의아해 하며 밖으로 나왔다.
- 천석이, 워쩐 일인가?
천석은 머리를 긁으며 말을 했다.
- 죄송헌디유... 내일 산행에 못 갈 거 같어유.
천석의 말에 이장은 안색이 굳었다. 마을 공동 행사이기도 했지만, 젊은 남자 하나가 빠지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 어무니 때문인감? 어무니 때문이믄 동네 아줌씨들헌티 부탁허고 가믄 되는디...
덩치가 190cm가 넘는 거구의 이장이 천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석은 안색을 붉히며 말을 했다.
- 그것도 있지만유...
천석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자 이장은 천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말혀봐. 괜찮응게.
천석은 지난밤에 이상야릇한 꿈을 꾸었다고 얘기를 하며 말했다.
- 지 때문에 다른 사람들헌티 피해가 가믄 안 되잖유.
이장은 천석의 마음 씀씀이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란 일이 있었구만. 워쩔 수 없제.
이장의 말에 천석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 이해해 주셔서 고맙구만유. 에휴...
천석이 깊게 한숨을 쉬자 이장이 다시 천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어무니는 여전하시고?
이장의 말에 천석은 고개를 끄떡였다.
- 더 심해지셨구만유. 요즘은 눈만 뜨믄 밥 달라구 허시는디...
이장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려? 병원으로 옮겨야 허는 거 아닌감?
이장의 말에 천석은 더욱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 이번에 산삼 캐믄 그럴려구 혔는데...
천석이 한숨을 내쉬자 이장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천석이 이번에야 말로 자기가 산삼을 캘 차례라고 막걸리만 마시면 공언을 했기에 그 아쉬움이 더 크리란 걸 이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성이 착한 효자라서 산삼을 캐려는 게 자기가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기에 이장은 천석을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 암튼 이만 가 보겠슈. 내일 산행 조심히들 다녀 오세유.
천석이 이장에게 인사를 하며 돌아서자 이장이 천석의 뒷모습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 갔다 와서 봐. 어무니 잘 보살피고.
천석은 자기 집 건너편에 사는 박 할머니 집에 들러 고기를 조금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니 또다시 어머니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 밥 줘! 밥 안 줘? 에밀 굶겨 쥑일게여?
천석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참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 괴기 해드릴 텡께 조금만 기다려유.
천석은 고기를 볶으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워째서 그란 꿈을 꿨능가 말여..
중요한 일을 앞두고 꿈이 모든 걸 망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천석은 고기를 볶아 어머니에게 드리고 어머니가 밥을 다 먹자 상을 치운 후 다시 방에 드러누웠다. 최근 들어 자꾸 이상한 꿈을 꾸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런데 꿈에서 나타난 여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쾌감과는 차원이 다른 쾌감을 안겨주었다.
- 당췌 모르겠구먼.
천석은 뒹굴 거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이 달아 어찌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오늘 따라 와 이런댜.. 미치겄네.
천석은 밖으로 나가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천석은 수돗가 앞에 앉아 어두운 하늘을 쳐다보았다.
- 내일도 날씨가 좋겠구만...
천석은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 젠장...
천석은 꿈 때문에 모든 것이 망친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방에 들어와 벌러덩 드러누우며 쓰게 입맛을 다셨다.
- 엄니는 주무시나...
천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 방으로 향해 가려고 했지만 왠지 무언가가 자신을 이끄는 것 같아 그 자리에 누워 또다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천석은 또다시 꿈에서 같은 공간 안을 걷고 있었다.
- 여그.. 아는 딘데..
천석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아까의 꿈처럼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그 소리를 따라 걷게 되었고, 아까와 마찬가지의 상황과 마주쳤다.
- 뭐여? 이게 뭐냔 말여?
천석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여인이 절정에 올라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보고는 또다시 흥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맞아.. 거그여.. 맞아..
천석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중얼거렸다. 왜 그런 꿈을 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꿈에 나타난 장소는 천석이 아는 곳이었다. 아니 어쩌면 천석만 아는 곳일지도 몰랐다. 천석은 창밖으로 붉은 기운이 퍼지는 걸 느꼈다. 곧 해가 뜰 것 같았다.
천석은 그 장소를 기억해 낸 이상 한시라도 빨리 이 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 어머니 방 앞에 밥상을 차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구먼.
천석은 집을 나와 산길을 올랐다. 약초를 캐러 가기 전에는 오르지 않는 것이 마을의 원칙이었지만 천석은 자신의 꿈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인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산길을 올랐다.
한참을 오르다가 집 쪽을 쳐다보았다. 오늘 따라 왠지 집 쪽이 이상해 보였고, 천석은 묘한 느낌에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다보았다.
- 젠장... 꿈 때문에 이게 뭔 일이래..
천석은 자신에게 드는 이상한 기분도 모두 꿈 때문이라고 여기고 발에 힘을 주어 산을 올랐다. 묵묵히 산을 오르던 천석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앞으로 조금만 더 오르면 꿈에서 본 곳이 나올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 맞아. 여그쯤이었어.
천석은 심마니 초보 때 무심코 길을 잘못 들어 이 길을 간 적이 있었기에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치 이 산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곳이 나왔다. 그곳은 마치 열대우림에서나 보던 밀림과도 같은 곳이었다.
돌에는 잔뜩 이끼가 끼어 있고, 자생적으로 자란 키가 큰 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잡풀들이 가득 했다. 그리고 나무가 뿌리박고 있는 흙들은 얼마나 고운지 마치 카펫을 밟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어느 순간 산의 여느 곳과 비슷한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 때 천석과 같이 왔던 동료들이 천석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왔었다.
- 어딜 갔다 온겨? 산도 처음 타는 눔이.
천석의 동료 중 나이 많은 이가 천석을 타박하자 천석은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천석은 이 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았지만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마치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심마니들마다 자신만의 비밀 장소가 있긴 했지만 그건 허탕을 치지 않기 위한 약초꾼들이 정한 곳이었을 뿐이었다. 천석처럼 아무 까닭 없는 공간을 비밀로 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천석은 왠지 이 공간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머리를 긁으며 길을 잃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뒤꽁무니 잘 쫓아오라는 핀잔을 듣긴 했지만 천석은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거의 두 시간동안이나 워딜 그렇게 헤매고 다녔댜. 참말로.
투덜거리는 다른 선배 심마니의 말에 천석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자신은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그 곳을 걸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석은 끝내 자신이 발견한 장소를 말하지 않았다.
입에 올리는 순간 왠지 부정이 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첫 산행이라 건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깟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만이 아는 비밀의 공간이 생겼다는 데에 더 큰 만족을 느꼈다. 한동안 천석은 선배 심마니들과 같이 다녀야 했기에 천석은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처음의 강렬했던 기억이 옅어졌다. 그리고는 기억에서도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 곳이 비록 신비경이긴 해도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그 곳이 지난밤 꿈속에서, 그것도 아주 야릇한 꿈으로 나타나다니 천석으로서는 갑자기 왜 그런 꿈을 꿨나 싶어 궁금했기에 아침을 일찍 이 산행을 떠난 것이었다.
천석이 도착한 곳은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천석은 꿈에서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 여그가 맞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