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92화 (19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9. 가려진 진실(3)

다나카 이치로(田中一朗)는 톰슨의 전화를 받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경찰이 이 일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모르겠지만 여유롭게 생각하던 일이 어그러지자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 그 짜증이 원래 자신의 짜증인지 아니면 그냥 짜증을 느끼게 되는 건지 모를 괴리감도 함께 느꼈다. 어느 날부터인가 다나카는 자신에 대한 묘한 괴리감에 일상이 흔들리기도 했다. 검진을 통해 아무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였지만 아무래도 육체가 아닌 정신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곤 하였다. 그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과 같은 느낌이었기에 다나카는 늘상 조금은 짜증이 났다. 더욱이 이번 일은 특별히 '그'의 부탁을 받은 일이었기에 다나카는 다른 일보다 우선적으로 이 일을 했고, 또 특별한 문제점도 없었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되었다. 물론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느꼈던 '위압감'의 정체를 아직까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느껴지는 이질감보다 덜 했기에 다나카는 계속 그런 느낌을 갖고 '그'가 시킨 일을 진행했던 것이었다.

- 톰슨, 이 자식은 일을 어떻게 하길래...

경찰에서 이번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하여 톰슨 병원을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다나카는 고개를 저으며 톰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예의 뚱한 톰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 사람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경찰이...

다나카가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지만, 톰슨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 슈뢰딩거가 왔었습니다.

다나카는 슈뢰딩거라는 말에 인상을 썼다.

- 그 인간이 왜?

다나카의 날카로운 말에 톰슨이 우물쭈물 대답을 했다.

- 이번 일을 알고 왔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톰슨의 말에 다나카는 안 그래도 짜증이 가득 차 있었는데, 짜증이 더 밀려왔다.

- 그 노인네는 죽지도 않고...

다나카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미안하네. 요즘 들어 왜 갑자기 짜증이 많이 나는지...

톰슨은 최근 들어 냉정하기 그지없는 다나카가 왠지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내심 이상해 보였다. 다나카의 성질을 알기에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톰슨이 알고 있는 '다나카'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내심 불안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다나카 스스로가 '요즘 짜증이 많아졌다.'고 얘기를 하자 톰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얘기를 했다.

-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지속적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면...

톰슨의 말에 다나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니네. 그냥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아져서 그런 거야.

다나카는 톰슨의 말에 자기 자신을 의심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짜증나는 현상이 일시적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그런가요? 그렇다면야...

다나카는 다시 본론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 슈뢰딩거와 무슨 얘기를 했지?

톰슨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얘기를 했다.

- '그 분'께 지령을 받아 우리가 이번 일을 했다는 걸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슈뢰딩거가 몹시 화를 내더군요.

톰슨의 말에 다나카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 우리가 따로 일을 한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겠군.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게 볼만 했을 텐데. 후후.

다나카의 말에 톰슨이 조금은 긴장해서 얘기를 했다.

-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슈뢰딩거는 조직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나카는 톰슨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 지금 우리가 새로 준비하고 있는 계획만 성공한다면 슈뢰딩거는 쉽게 축출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게.

다나카의 말에 톰슨은 여전히 조금은 불안하게 얘기를 했다.

- 차라리 '그 분'께 미리 말씀을 드리고...

톰슨의 말에 다나카가 버럭 소리를 쳤다.

- 그 분, 그 분 하지 말게나. 난 아직 인정하지 않았어. 피터만, 피터만 다시 살아나면...

다나카가 흥분을 하여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피터'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그러자 톰슨은 화들짝 놀라며 다나카에게 말을 했다.

- 아니, 그걸 입 밖에 내시면... 사무실에...

하지만 다나카는 느긋했다.

- 괜찮아. 이제 밝혀진다고 해도 어차피 키는 우리가 쥐고 있으니까.

- 아무리 그래도...

톰슨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나 다나카는 여전히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얘기를 했다.

- 이제 기억만 주입한다면 새롭게, 진짜 '그 분'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이제 곧 아닌가!

톰슨은 왠지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분명 다나카의 말은 몹시 위험한 내용이긴 했지만, 이렇게 손이 떨릴 정도로 무서운 내용은 아니었기에 톰슨은 몹시 긴장을 했다. 다나카와 전화를 끊은 톰슨은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 때 톰슨의 핸드폰이 울렸다.

- 나다.

전화기 너머로 기계음이 들리자 톰슨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은 톰슨은 표정이 굳었다.

- 다나카 이치로를 네 사무실로 불러라.

기계음은 단조롭지만, 강한 어조였다. 톰슨의 이마에서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식은땀이 흘렀다. 간신히 대답을 하고는 톰슨은 다시 다나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나카는 사무실로 오라는 말에 몹시 짜증을 냈지만, 피터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으로 눙쳐서 오게끔 만들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다나카는 톰슨의 사무실에 들어오며 조금은 짜증나는 얼굴로 톰슨에게 말했다.

- 도대체 피터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다나카는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따지듯이 물었다. 톰슨은 다나카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우물쭈물하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 그게...

다나카는 톰슨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톰슨에게 따져 물었다.

- 무슨 일이지?

그 때 톰슨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이 왔다. 톰슨은 다나카에게 눈짓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더니 조금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나카에게 말을 했다.

- '그 분'이십니다.

톰슨의 말에 다나카는 인상을 썼다. 결국 이곳으로 자신을 오게 한 것이 톰슨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톰슨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돌렸다. 다나카는 수화기를 받으러 가다가 이상하다는 듯이 톰슨을 쳐다보았다.

- 왜 스피커폰으로 돌렸지?

다나카의 말에 스피커폰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 내가 돌리라고 했다.

기계음의 말에 다나카는 여전히 인상을 쓰며 말했다.

-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다나카의 말에 기계음이 잠시 침묵을 했다. 다나카는 이 풋내기가 자기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을 말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 무언가 준비 중인 것 같던데?

기계음의 말에 다나카는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

- 저희야 늘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지요.

그러자 기계음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 보고 하지 않은 것이 있지 않나?

톰슨은 자신도 모르게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나카는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로 말을 했다.

-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나카의 말에 기계음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대답을 했다.

- 그렇군. 사소한 일이라...

그러자 다나카는 다시 한 번 강조하듯 말을 했다.

- 그렇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죠.

하지만 곧 기계음은 조금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 나를 견제하려는 게 사소한 건가? 아니면 내가 사소한 건가?

기계음의 말에 톰슨은 너무 놀라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다나카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대답을 했다.

- 견제라뇨?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하지만 곧 기계음은 차가운 말투로 얘기를 했다.

- 무언가 새로 만든다고 해서 '완성품'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그게 비록 예전에 다른 인간들보다 조금 큰 그릇을 가진 '피터 스미스'라고 해도 말야.

기계음의 말에서 '피터 스미스'라는 말이 나오자 다나카는 인상을 쓰며 톰슨을 노려보았다. 톰슨은 다나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결코 자신이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나카는 결국 아까의 통화 내용이 '도청'되었음을 깨닫고 말을 했다.

- 맞습니다. 피터 스미스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기계음이 크게 소리를 쳤다.

- 그게 사소한 일인가?

그러나 다나카는 여전히 냉정을 잃지 않고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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