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8. 마지막 연결 고리(3)
철구는 밖으로 나와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준은 경찰서 안인지 목소리를 낮춰서 전화를 받았다.
- 그 녀석 행방은 찾았어?
철구의 질문에 성준은 조금 난감한 듯이 얘기를 했다.
- 그게...
철구는 성준이 뜸을 들이자 말을 꺼냈다.
- 지금 곤란하냐?
철구의 말에 성준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얼마쯤 후에 성준의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일이 틀어졌어요.
철구는 성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와서 일이 틀어지고 자시고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일이 틀어지다니?
철구의 질문에 성준은 조금 허탈한 듯이 얘기를 했다.
- 그 홍성표 녀석, 연쇄 살인범이 됐어요.
철구는 성준의 말에 소리를 쳤다.
- 뭐? 연쇄 살인범?
성준은 조금 난감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네. 병원에서 세 명 죽인 것부터 해서, 홍성표가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들도 죽이고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경찰청이 난리가 났어요. 특수본을 꾸리고, 그 녀석 행적을 파악하고.
철구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특수본이 꾸려졌다면 일련의 과정을 경찰들이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물론 경찰이 투입된다면 더 효과적으로 성표를 잡을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표를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하고 잡을 때이고, 성표로 하여금 일련의 사건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자신들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였다.
- 젠장. 그 자식 왜 갑자기...
철구는 성준에게 웹소설 얘기를 해 주며 말했다.
- 니가 말한 작가의 말. 그거 피보나치 수열인가 그걸로 풀어보니까 말이 나오더라구.
철구의 말에 성준이 무언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
- 그렇군요. 어쩐지 작가의 말이 이상하긴 했는데...
- 아무튼 특수본에서는 어디까지 파악한 거야?
성준은 또다시 난감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아직 거기까지는 모릅니다. 저는 특수본에 못 들어갔거든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푸'하고 바람 빠지는 한숨을 쉬었다.
- 그 자식들 또 성표란 놈 잡아 놓고 그냥 미친놈의 연쇄살인 정도로 끝내겠구만.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뭐 사람의 기억을 조작해서 살인 도구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얘기처럼 들릴 테니까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하긴 내가 경찰이어도 이런 건 못 믿지. 나 참.. 살다보니 별 희한한 꼴을 다 보고 산다.
철구의 말에 성준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니가 파악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파악해 줘. 나도 그 놈 찾으러 좀 돌아다닐 테니까.
성준이 알았다고 대답을 하자 철구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근처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그 녀석의 행방을 찾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대장한테 내 핸드폰으로 홍성표라는 놈들 주소...
그런데 그 순간 철구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 아니 휴대폰 이용 내역하고 장소 좀 알려줘.
철구는 '홍성표'라는 놈들이 마치 계획된 것처럼 자신의 주소지를 향해 가는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을 알았지만, 최근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한 내역을 빠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하고 있다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시사항이 끝나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아 분명 휴대전화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포폰이나 일상생활을 포기한 자라면 찾기 힘들겠지만, 그는 엄연히 '의사'의 신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얼마 후 철구의 휴대폰에 가장 최근 발신 시간과 장소가 나왔다.
- 5분 전?
철구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지난 15일간 사용 내역이 없다가 갑자기 5분 전에 전화를 사용한 목록이 나왔기에 철구의 마음이 조금은 다급해졌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 근처에 가서 탐문을 하거나 아니면 그 녀석 주소지로 찾아갈 텐데 이건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 이 자식.. 서울에 있었어?
철구는 핸드폰에 찍힌 마지막 발신 장소 쪽으로 몸을 옮겼다.
- 이 미친 자식.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 다니면서 전화를 계속 사용하다니. 특수본에서도 금방 파악할 텐데...
철구는 가는 길에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성준아, 지금 애들 나갔냐?
철구의 말에 성준은 다급하게 전화를 받고는 말을 했다.
- 네. 휴대 전화 발신 목록에서...
철구는 알았다고만 대답을 하고는 차의 속도를 올렸다. 특수본 놈들이 먼저 성표를 잡는다면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조금 위험하고, 무리가 따르더라도 자신이 먼저 그 놈을 잡아서 족치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철구는 마지막 발신지인 면목동 쪽으로 가기 위해 잠실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차가 막히는 곳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차가 더 막혔다.
- 젠장...
철구는 핸들을 손으로 내려치며 짜증 섞인 말투로 지껄였다.
- 뭔 놈의 차가 이리 많아.
철구는 틈만 보이면 차를 밀어 넣었다. 뒤에서 빵빵거리고 그랬지만, 철구는 그런 것은 싹 무시하고 앞으로 나가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철구가 서둘러 온다고 왔지만 발신 지역인 면목역 근처에 있는 햄버거 가게 건물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경찰들이 그 안에 진을 치고 있었다.
- 젠장.. 이 녀석들은 이럴 때는 빨라.
철구는 뒷골목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나와 햄버거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햄버거 가게 안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철구는 불길을 피해 얼른 자리에 엎드렸다. 비명 소리와 함께 온몸에 화마를 뒤집어 쓴 남자 하나가 밖으로 뛰어나왔다. 뛰어나간 남자는 도로 앞으로 가다가 달려오는 버스에 그대로 치였다. 햄버거 가게 앞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고, 비명소리와 살려달라는 소리로 가득 찼다. 철구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함정.'
철구는 혼란스러운 그곳에서 벗어났다. 얼마 후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와 소방차 소리가 들려왔지만 철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면목역을 벗어났다. 가는 길에 철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 일부러 흔적을 남겼다?
자신의 휴대 전화의 발신 상황을 체크할 것이라고 알았다 할지라도 불과 5분 전이었다. 물론 자신이 오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경찰은 자신보다 훨씬 먼저 도착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휴대 전화 발신을 남긴 것은 분명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것이 누구를 노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흔적을 따라 누군가는 올 것이고, 누군가가 희생자가 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폭발한 상황만 봐서는 미리 시한폭탄을 설치한 것인지 아니면 적절한 타이밍에 버튼을 누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철구의 머릿속에는 의문점이 하나 강하게 떠올랐을 뿐이었다.
'누구를 노린 것인가? 나인가 아니면 또 다른 홍성표인가, 아니면 경찰들인가?'
철구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등골이 오싹해졌다.
'누구도 아니다. 그냥 자신을 뒤쫓는 모든 이들...'
그러다가 문득 마지막 구절을 떠올렸다.
- 이제는 끝이다. 없애라.
철구는 그것이 그동안 홍성표들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던 것이었다. '없애야 할 대상'은 실패한 홍성표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뒤를 캐고 다니는 이들이었던 것이었다. 목적어가 없기에 일어난 사건으로만 추론하여 '홍성표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 개자식들...
철구는 분해서 핸들을 마구 내리쳤다. 이런 뻔히 보이는 함정에 경찰들이나 자신이 빠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이 새끼. 날 갖고 놀았겠다.
철구는 면목역에서 조금 떨어진 뒷길에 차를 세우고 면목역 쪽으로 걸었다. 분명 자신을 뒤쫓는 누군가를 찾는다면 그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핸드폰을 꺼내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 홍성표라는 의사 새끼 사진 좀 보내줄 수 있냐?
철구의 말에 성준은 바로 철구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주었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화질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 철구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혼자 중얼거렸다.
- 죽었어. 이 새끼.
철구는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는 햄버거 가게 근처에서 기웃거렸다. 그러면서 조금은 어눌하게 옆의 여자에게 물었다.
- 무슨 일 있었어요?
추레한 복장에 수염도 깍지 않은 남자가 자신에게 질문을 하자 여자는 조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여기서 폭탄이 터졌데요.
여자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자리를 떴다. 철구는 그런 여자를 쓴웃음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철구가 여자에게 질문을 한 건 여자가 서 있던 자리가 사방을 둘러보기에 딱 좋은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담배 냄새에 쩔어 있고, 또 옷마저 추레한 자신이 가까이 가면 여자가 자리를 뜰 거라고 생각했기에 철구는 여자 옆으로 가서 괜한 질문을 했던 것이었다. 철구는 그 자리에 서서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웅성거리며 불은 꺼졌지만 연기가 미여져 나오는 가게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철구 역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눈은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한 명 한 명의 행동이나 표정을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철구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길 건너에 있는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 상인들은 놀라운 사고에 수군거리고 있었고, 철구는 그런 상인들 틈 안으로 들어갔다. 시장 상인들이 모두 입구 쪽에 나와 있는 바람에 시장 안은 몹시 한산했다. 철구는 그런 시장 골목을 지나 옆의 길로 통하는 골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옆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건물의 옥상 위로 올라갔다. 옥상 입구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철구는 주머니에서 옷핀을 꺼내 자물쇠를 열고 옥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몸을 낮춘 채 사고 현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주변 건물을 둘러보았다. 이 건물이 주변에서 가장 높았기에 철구는 주변 건물에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밖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 이 새끼 분명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