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8. 마지막 연결 고리(1)
8. 마지막 연결 고리
철구는 성준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모두 '독살'을 당했던 것이었다. 철구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독살? 뭐 눈이 멀거나 눈에서 피가 난다거나 아니면 칼에 난자 당한 건 아니고?
철구의 질문에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 모두 자기 침대에 누워서 아주 깨끗하게 당했어요. 체내에서 바르비투르산(barbituric acid)이 발견되었어요.
철구는 그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 그 의사 놈 신상은 파악됐어?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저었다.
- 상부에서 관리 부실이다 뭐다 언론에서 떠들까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에요. 그래서 수사도 지지부진하죠.
철구는 그 말에 인상을 썼다.
- 맨날 그놈의 언론 눈치는..
철구의 말에 성준 역시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요.
철구는 손에 든 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 도대체 그 소설은 뭐지?
철구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소설의 내용이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연관성을 알 수가 없었다. 성준은 그런 철구를 보며 말했다.
- 그 웹소설 말씀하시는 거에요?
철구는 성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성준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철구는 그런 성준을 흘끗 쳐다보았다.
- 그 소설 제목이 뭐라고 하셨죠?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게... 죽음의 서.. 맞아. 그걸 거야.
그러자 성준이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다.
- 뭐야? 책 제목만 가지고도 찾을 수 있어?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모르셨어요?
철구는 왠지 첨단 기기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인상을 썼다.
- 쉬운 거로군. 참나..
성준이 그 소설을 찾아 읽더니 한 마디 했다.
- 그냥 공포 소설인데요?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아래 부분을 보았다.
- 형님 여기는 보셨어요?
철구는 성준이 내민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 어디? 뭐?
그러자 성준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 여기요. 여기. 작가의 말.
-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이제는 다 끝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멈춰라.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서부터는 평범하게 애도 낳고 잘 살아야 한다. 이제 모든 걸 잊고 편안히 살라.
철구가 그 내용을 읽으며 말했다.
- 이거야 원. 뭐 이제 잘 먹고 잘 살란 얘기잖아?
철구의 말에 성준이 말을 했다.
- 소설 내용하고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얘기네요.
철구는 그걸 보며 말했다.
- 다 끝이니까 잘 살라고 했는데, 왜 죽인 거야?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철구는 다시 한 번 작가의 말을 훑어보았다.
- 이는끝다.... 아닌가? 이다다든...
철구의 중얼거림에 성준이 철구를 보며 물었다.
- 뭐하시는 거에요?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이놈들이 수학적으로 뭐가 있다고 했거든. 뭐 첫 글자들만 연결하면 소설 제목이 된다든가, 아니면 마지막 글자들만 연결하면 뭐가 된다든가 하는 거. 그리고 지난 번에는 한 글자씩 띄어 읽으니까 말이 되었거든...
철구의 말에 성준도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 이는끝다.... 두 개씩 띄면 이다다든... 세 개면...
성준이 중얼거리자 철구는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 이거야 원.. 셜록 홈즈도 아니고. 젠장..
성준은 한참동안 작가의 말을 보다가 조금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 이거 은근히 짜증나는군요. 젠장.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그 성표란 의사 놈 신상 파악되면 좀 알려줘라. 경찰로 끌고 가기 전에 말야.
철구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떡였다. 성준은 철구가 일어나서 가자 인사를 하고는 다시 핸드폰을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 다섯 글자도 아니고... 방정식인가?
성준이 끙끙대는 모습을 보며 철구는 피식 웃으며 전화를 했다. 이 일은 어차피 많은 사람이 알아야 더 쉽게 풀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세현에게 전화를 걸어 '작가의 말'을 얘기해 주고, 그 안에서 뭔가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 그냥 보기엔 잘 모르겠는데요.
철구는 세현과의 전화를 끊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 혼자 앉았다. 오후의 나른한 햇볕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철구는 잠시 눈을 감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아내야 그들이 무언가 실험을 하기 위해, 아니 그들의 말을 빌자면 위대한 전진을 위한 것이라 납치를 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 그냥 미친 과학자들인가?
그렇다고 그냥 미친놈들로 치부하기엔 그들이 벌인 일이 너무나도 엄청났다. 철구는 낮게 한숨을 푹 쉬었다. 벤치에 기대어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다가 눈을 떴다. 그러자 철구와 대각선 쪽으로 조금 먼 곳에 군인 한 명과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군인을 가끔 흘끗 쳐다볼 뿐이었고, 군인은 마치 바깥 공기가 새롭다는 듯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철구는 그 젊은이 둘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의경 중대장 시절을 떠올렸다. 대개 시위 진압이나 교통 관리를 하는 의경들이라 일반 군인들보다는 조금 자유로웠지만, 의무 경찰이건 군인이건 모두 의무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건 똑같았기에 심적 속박감은 같았다. 철구는 벤치에서 일어서며 혼자 중얼거렸다.
- 좋을 때군.
그러다가 문득 다시 군인을 쳐다보았다. 군인은 옆에 앉은 여자에게 무어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 뭐 맨날 똑같지 뭐. 아침에 일어나서 점호하고 구보하고 훈련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 다른 건 못 해?
- 다른 거? 글쎄 짬밥 먹으면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바보 되는 기분이야.
철구는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바보가 되는 기분... 훈련...'
철구는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신부님, 지난번에 병원에 있던 놈 있잖아요. 그 탈출하려고 했던 성표.
철구의 말에 석호가 대답을 했다.
- 네.
- 그 놈 힘이 무척 셌다고 그랬죠?
철구의 말에 석호는 안 보이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저를 밀치는데, 힘이 무척 강했죠.
- 보기엔 그렇게 세 보이지 않던데...
- 그렇게 보였는데, 남자 간호사 두 명을 제압하고, 저마저 밀려 버렸죠. 그런데 왜 그러죠?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 놈들의 의도를 조금은 알 것 같아서요.
- 의도요?
철구는 석호에게 지금 사무실로 좀 오라고 얘기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군인과 여자가 얘기하는 것을 뒤로 하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세현과 석호가 앉아 있었다. 철구가 안으로 들어오자 세현과 석호는 철구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들어오자마자 칠판에 쓰인 내용을 모두 지웠다.
- 자... 일단 우리가, 아니 어쩌면 내가 크게 잘못 생각한 게 있어요.
철구의 말에 세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잘못 생각하다뇨?
철구는 칠판을 모두 지우고 거기에 홍성표라는 이름만 썼다. 그리고는 말을 했다.
- 홍성표는 없었어요.
철구의 말에 석호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 홍성표가 없다뇨?
철구는 석호를 보며 말했다.
- 신부님은 바티칸에 계셨을 테니 군대는 가지 않으셨을 테죠? 군대라는 곳이 그래요. 물론 저 역시 군대가 아니라 의무 경찰, 그것도 중대장으로 있었지만, 아무튼 군대라는 곳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죠.
철구의 뜬금없는 군대 얘기에 두 사람 모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구는 그들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를 했다.
- 군대에 가면 '모두 똑같은'은 규율 아래에서 똑같이 행동해야 되죠. 밥을 먹을 때도, 훈련을 할 때도, 심지어는 걸어갈 때도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잠시 생각에 잠겨서 얘기를 했다.
- 모두 똑같이 행동을 한다...
철구는 석호의 말에 말을 이었다.
- 군인들은 모두 '생각'은 다르지만, '행동'은 같죠. 그것에 불만이 있건, 그것이 자신에게 꼭 맞는 것이건 간에 말이죠. 그런데 군대에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는지 아세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대답을 했다.
- 암시와 각성입니까?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 그리고 공포. 군법은 일반법보다 세죠. 그리고 상명하복에 따른 제약도 심하고, 얼차려나 뭐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구타까지. 그리고 밖에서는 그냥 비난을 받을 일도 군대에서는 군기 교육대를 가거나 영창을 가죠. 결국 군대에 가는 것은 '공포의 일상'을 지내는 것인데, 거기서 같은 행동을 하도록 '암시' 즉 훈련을 끊임없이 하는 거죠.
철구의 말에 세현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 그 말은...
철구는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글들을 보면 모두 '미스터리'라는 장르, 그것도 조금은 공포물에 가까운 내용들이었지. 그리고 그 안에서 암시를 넣은 거지. 물론 그 이전에 그렇게 행동하도록 군대보다 더 심한 암시를 주었겠지. 어마어마한 공포를.
철구의 말에 세현은 무릎을 탁 쳤다.
- 맞아요. 그들 모두 심각한 분열증을 겪고 있었고, 뭔가 몹시 불안한 표정들이었어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