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84화 (18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7. 새로 올라온 소설(3)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좁은 골목에 흐릿한 가로등만 하나 있었고, 그 가로등이 비추는 곳만 환할 뿐 그 나머지 공간은 모두 어두웠다. 그 어두움은 빛이 없는 어둠과는 다른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어둠이었다. 뭐랄까 음습한 기운과 기괴한 느낌이 공존하는 어둠이었다. 죽음의 냄새가 묘하게 피어오르는 공간에 무언가 알지 못하는 것이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앞에 발을 내밀자 어둠이 내 발을 붙잡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발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발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어둠은 더욱 집요하게 내 발을 붙잡고 늘어졌다. 나는 힘겹게 발을 빼냈다. 그리고 나선 발에 힘이 쭉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쳐다본 골목길은 마치 악마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아빠 생신이니 일찍 들어와라.'

나는 눈을 감고 골목길을 뛰듯이 달렸다. 무언가가 내 발을 잡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뛰었고 어느새 골목길을 지나쳐 나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그 골목은 가지 않았다. 그 골목을 지나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고 지나치더라도 낮에만 지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있는가?

그 날은 학교에서 늦게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랫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도 피곤했다. 하루 종일 체육 대회 연습이다 뭐다 해서 몸이 녹초가 되어 그저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그 골목 앞에 멈춰 섰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많이 어둡지는 않았지만 골목 안은 유난히 어둡고 음울해 보였다. 나는 그 골목을 뛰어갈 자신이 없었다.

"귀신이건 뭐건 오늘은 나 좀 그만 놔뒀으면 좋겠다."

나는 골목길을 들어서기 전에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골목 안으로 한걸음 옮기자 무언가 스멀스멀 내 주위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켜지며 골목 중간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조금 오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저 불빛 아래까지 간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내 발은 더욱 무거워졌고, 가로등 아래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어 보였다.

'힘들어도 이리로 오는 게 아니었어.'

혼자 이렇게 생각을 하며 뒤로 돌아 나오려고 했지만 발걸음은 더욱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이럴 바에는 빨리 골목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가로등 쪽을 보며 뛰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그간 내가 무심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골목 자체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작은 쪽문이 하나 보였다.

"저건 뭐지?"

나는 발걸음을 떼고 그 쪽문 쪽으로 걸었다. 일단 누군가라도 있다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쪽문 쪽으로 걸어가 쪽문 앞에 섰다. 쪽문은 내 키 높이만 했고, 특이하게도 나무 격자로 짜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창호지가 발라져 있었다. 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번화했다는 강남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런 게 있었나?"

나는 쪽문을 한 번 살펴보았다. 그런데 쪽문 안쪽에 무언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누구지?'

그런데 쪽문 아래쪽에 조그만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내가 허리를 숙이고 봐야 될 높이였다. 나는 남의 집을 몰래 보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찾아온 호기심은 나의 도덕성을 눌러버렸다. 나는 허리를 숙여 창호지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어? 뭐지?"

분명 방 안이 보여야 하는데, 방 안은 보이지 않고 하얀색, 그러나 무언가 뿌연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은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자세히 보기 위해 아예 쪼그려 앉아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방 안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시력을 돋우어가며 안을 살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으... 으악..."

그 하얀색 무언가, 뿌옇게 안개가 낀 무언가가 움직였고, 그 사이로 실핏줄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분명 '눈'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눈이 아니라 백내장이 낀, 이미 멀어버린 눈이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골목길에서의 불안함이나 육체의 피곤 따위는 이 무서움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쪽문에서 물러나기 위해 손바닥으로 기다시피해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골목길 안의 음습함마저 내 정신을 덮치기 시작했다. 나는 풀린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저 가로등까지만 가면....'

나는 남은 힘을 다해 가로등 있는 곳까지 뛰었다. 몸이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사력을 다해 달렸다. 가로등 앞에 도착하자 나는 긴장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나는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렸다. 앉아서 조금 울고 나니 그나마 기운이 조금 났다. 나는 다시 일어나 집 앞까지 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가로등 아래 서 있는 나는 어두운 골목 입구 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발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골목 안으로 들어온 것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로등부터 집 앞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는데, 저 사람과 같이 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얼마 후 발소리가 멈췄다. 분명 내 앞까지 다가올 만한 시간이 지났는데, 발소리는 멈춰 선 채 내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아무런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런데 그 발소리는 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멀어지는 발소리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맴도는 발소리. 그 순간 나는 발소리에 담긴 적의(敵意)가 느껴졌다. 마치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렸다. 그 가로등에서 벗어나 어둠으로 들어가면 뒤에서 달려들어 나를 어찌 하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왜... 왜..."

내 입에서 '왜'라는 말만 나왔고, 가로등 불빛 아래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순간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를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바닥에 놓여 있는 커다란 검은 비닐봉투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검은 비닐 봉투를 열었다. 병이라도 있으면 그 쪽으로 집어 던지고 도망을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열어 본 검은 비닐 봉투에는 탯줄을 끊지 않은 채 죽어 있는 아기가 두 눈을 뜬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악..."

나는 가방을 앞으로 둘러메고 가방 안을 뒤졌다. 필요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필통을 열었다. 그 안에 작은 칼이 하나 보였다. 나는 칼을 들고 소리쳤다.

"저... 저리 가..."

나는 칼을 휘두르며 골목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발에 힘을 주고 골목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발소리가 급하게 들리긴 했지만, 나는 황급하게 골목길을 달려 나왔다. 그러나 골목길 끝에서 나는 누군가에 잡혔다. 그 순간 내 몸이 뒤로 쭉 끌려갔다. 나는 칼을 뒤로 마구 휘둘렀다.

"놔... 놔... 놔..."

뒤에서 날 잡던 손이 나를 놓쳤다. 나를 잡는 손을 놓자 나는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골목 안쪽을 쳐다보았다.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려왔다.

"헉... 헉..."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집 쪽으로 달렸다. 문 앞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렸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엄마... 문 열어..."

나는 맥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자 '찌잉'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가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앉아 있었다.

"뭐 해?"

거실 안으로 들어가 엄마 아빠 쪽으로 다가가자 엄마가 얘기를 했다.

"아빠가 팔을 다쳤어."

엄마는 팔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아빠의 팔에 소독약을 바르고 있었다. 아빠의 팔은 작은 칼에 긁힌 것처럼 보였다.

"아... 아빠..."

그 순간 엄마가 뒤를 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왔어?"

나는 엄마의 눈을 보는 순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눈은 온통 흰자로 덮여 있었고, 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 있었다. 철구는 소설을 보더니 말을 했다.

- 공포 소설이야? 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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