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81화 (181/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6. 사건의 동시다발(5)

현관문이 열리자 안에는 성표가 벗어놓은 듯한 옷가지가 보였고, 거기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 이 새끼가..

철구는 성표의 허벅지를 세게 밟았다. 그러자 우드득 소리가 들리며 비명을 질렀다.

- 소리 질러봐야 너만 손해야. 일단 같이 가실까?

철구는 성표를 일으켜 세우며 앞세웠다. 절뚝거리며 앞서 가는 남자가 손사래를 쳤다.

- 나... 난... 아.. 아무...

- 닥치고 걷기나 해. 여기서 죽기 싫으면 말야.

철구는 자신의 차 뒤 칸에 성표를 태웠다. 구석에 있는 노끈으로 손과 발을 묶었고, 입에는 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양말을 물렸다.

- 갈 길도 멀고, 할 말도 많으니까 조용히 가자. 응?

철구는 성표에게 그렇게 얘기를 하고 뒤 칸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 새끼 잡았어.

철구의 말에 세현이 반문을 했다.

- 어떻게요? 도망갔을 텐데.

그 말에 철구가 얘기를 했다.

- 이 홍성표들은 연어 새끼들인지 집을 좋아하더라구. 익산에 사는 성표가 알려줬지. 집에 가 보니까 있더라구. 그런데 신부님은 어때?

철구의 말에 세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급하게 수혈을 하느라 약간 부작용은 있는데, 많은 양은 아니어서 그랬는지 큰 탈은 없어요. 그리고 봉합한 건 수술이 잘 됐구요.

철구는 그 말에 뒤 칸을 쳐다보며 말했다.

- 나도 병원으로 가보고 싶은데, 이 놈 때문에 힘들겠는데. 할매가 고생 좀 해.

철구의 말에 세현이 버럭 했다.

- 할매 소리 하지 말랬죠!

철구는 그 말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고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뒤 칸을 향해 소리쳤다.

- 일단 우리 서울로 가서 얘기 좀 하자구. 아주 궁금한 게 많으니까 말야.

철구는 차에 시동을 걸고 서울 사무실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석호가 누워 있는 병실에 들어선 세현은 석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았다. 오늘 하루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아 정신이 없었다. 세현은 자신의 태블릿을 꺼내 일어난 일들과 상황을 정리하였다. 한참을 정리하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 철구 씨 닮아 가나.

세현은 정리를 마치고 태블릿을 자신의 가방에 넣은 후 석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잘생긴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그늘진 과거와 아픔. 그리고 이렇게 몸이 상하면서까지 무엇 때문에 그들을 쫓는지 하는 가슴 아픔이 밀려왔다. 그러다가 어느 샌가 석호의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무언가에 놀라 잠을 깬 세현은 풀리지 않은 피곤함에 목운동을 하다가 석호의 자리가 빈 걸 발견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 혹시 504호 환자 어디 갔죠?

데스크에 앉아 있는 간호사에게 묻자 간호사는 세현을 알아보고 말을 했다.

- 병원 앞에 있는 성당에 가신다고 하셨어요. 안 된다고 해도 신부님이기 때문에 새벽 기도를 반드시 올려야 한다면서...

세현은 간호사의 말을 듣고 병원 밖으로 나와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례식장 건너편에 있는 성당으로 걸음을 옮긴 세현은 성당 본당 안에 앉아 있는 석호를 보았다.

석호는 십자가 앞에 앉아 기도를 올리는 석호는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을 했다.

'거짓은 거짓을 부르고 그 거짓은 결국 본인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거짓이 된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본인만 진실이라고 믿는 거짓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이 어느덧 거짓은 본인을 속이고 마치 세상도 속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진실과 조우하는 순간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던 이는 마주한 진실을 거짓이라고 부정한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거짓에 앞서고 거짓의 본질은 진실 앞에 무력해진다. 항상 그런데도 우리는 본질을 호도한 채 마치 거짓이 진실에 우선한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것이 종교적이건 윤리적이건 항상 진실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그 진실을 찾기 마련이다.'

석호는 많은 성표들이 남긴 행적들이 그들 자의에 의해 남겨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거짓에 의해 그러했으리라 여겼다. 그러는 한편 자신도 어쩌면 수많은 거짓 속에서 자신을 잃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을 했다. 거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하는 소소한 거짓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작은 거짓들이 자신의 진실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석호는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당신 안에서 진실을 깨닫게 하소서...

석호의 눈에서는 진실을 조우한 이의 깨달음 때문인지 아니면 거짓을 회개하기 위한 눈물인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불의를 타도하기 위해 불의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 앞에서 성직자로서의 고난을 느꼈지만 석호는 진심으로 올바른 길을 가고자 마음먹었다. 밖에서 석호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던 세현은 무언가가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픔이라기보다 환한 그 무언가였고 다시 석호를 돌아보았을 때 석호의 몸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빛을 보았다.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신부라는 석호가 아니라 더 거대한 무언가가 공간과 시간을 지배하며 어둠을 몰아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석호가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세현은 석호의 몸에 나타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육체의 강인함이 아니라 더 큰 무언가가 석호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의 티끌도 그를 더럽힐 수 없는 것과 같은, 아름답고 찬란한 빛이 그에게서 퍼져 나왔다.

- 신부님...

세현이 석호를 부르자 석호는 예의 그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무당 피의 힘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왠지 제가 다 나은 듯한 기분이 드네요.

석호가 기도를 하고 나오자 세현은 석호에게 핀잔을 주듯 말했다.

- 아직 환자에요. 신부님.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세현에게 말을 했다.

- 정산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가죠.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아직 다 낫지...

그 순간 석호가 자신의 옷섶을 들어 자신의 배를 세현에게 보여주었다. 붕대가 풀려 있는 석호의 배는 놀랍게도 약간의 상흔만이 남아 있을 뿐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 어떻게 된 일이죠?

세현의 말에 석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지금 가서 치료를 받으면 아마 의사들이 더 놀랄 걸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멍한 표정으로 석호를 쳐다보았다. 석호는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세현 씨는 비밀로 해 주실 수 있으시죠?

석호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은 석호의 놀라운 능력을 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얘기했다.

- 세현 씨나 저나 그들도 모두 있을 수 없는 일들 안에 있는 거죠. 어쩌면 철구 씨가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겠죠.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튼 빨리 서울로 올라가서 이번 일을 마무리 하죠.

앞서 가는 석호의 뒤를 보던 세현은 몸서리가 쳐졌다. 석호의 등 뒤에는 밝은 빛과 그늘진 어둠이 휘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저 신부님은...

세현은 더 깊이 생각해봐야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석호의 뒤를 따라 재빨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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