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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80화 (180/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6. 사건의 동시다발(4)

그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골목 끝 대로에서 칼을 든 남자 하나가 주변을 위협하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이 그를 피해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석호와 세현은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저 사람...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대장이 사진으로 보낸 성표였다.

- 그런데 왜 저러죠?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분열증처럼 보이는데요. 정확하게는...

세현을 자리에 두고 석호가 남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 홍성표 씨!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석호의 말에 성표는 석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머... 머리에 누... 누가... 내 얘기... 아... 아니...

그러면서 머리를 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석호는 그런 성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성표에게 얘기를 했다.

-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지금 성표 씨는 몸이...

그 순간 성표의 눈이 돌아가더니 석호의 배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순간 석호의 배에 칼이 정확하게 그어졌고, 석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 윽...

- 신부님...

세현이 석호 쪽을 향해 달려오자 성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골목 안쪽으로 도망을 갔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고, 세현은 석호를 향해 다가갔다. 석호의 배에는 큰 상처가 있었고, 피가 심하게 흘렀다.

- 병.. 병원으로 가야해요.

- 으... 으...

석호는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세현은 피가 흐르는 석호의 복부를 누르며 다급하게 말했다.

- 조금만 참아요. 신부님..

세현이 얼핏 보기에도 자상의 상처가 깊어 보였다. 내장이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출혈이 몹시 심했다. 그리고 자상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세현은 칼로 베인 상처에 불에 덴 것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석호의 상처가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세현은 마음이 급했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게 더 괴로웠다. 석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은 자신의 블라우스 소매를 뜯어 석호의 배를 압박하도록 감은 후 차에 태웠다. 세현은 시동을 걸고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앞의 차가 막을 때에는 중앙선을 넘어 달렸다. 한적함 시골길이라 그나마 차가 많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현은 조금 번화한 곳에 도착하자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병원을 찾았다. 낡고 허름한 의원이 보이자 세현은 그 앞에 차를 세우고 석호를 부축하고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 어서 오...

프런트에 앉아서 한가롭게 하품을 하던 간호사는 들어오는 세현과 석호를 보며 인사를 하다가 그대로 멈췄다. 복부에서 피를 잔뜩 흘리는 석호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세현은 간호사에게 다급하게 말을 했다.

- 마취제하고 거즈, 붕대, 수술 도구 좀 준비해 주세요.

세현의 외침에 간호사는 의사에게 알릴 생각도 못하고 간호사실 안으로 들어가 세현이 말한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세현은 그동안 빈 병실 안에 석호를 눕혔다. 밖이 소란스럽자 의사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밖에 소리를 쳤다.

- 김 간호사, 무슨 일 있어?

그러나 그 때 의 앞에 나타난 건 앞섶이 피로 잔뜩 물든 세현이었다.

- 히이익...

의사는 놀라 문 뒤로 물러났고 세현은 그런 의사에게 얘기를 했다.

- 응급 환자에요. 복부에 불상의 흉기로 자상을 입었어요.

세현의 말에 의사는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간호사는 세현이 의사인 양 세현에게 준비가 다 됐다고 보고를 했다.

- 말씀하신 것 다 준비 됐어요.

세현은 의사를 보며 말했다.

- RH+ B형 혈액 좀 구해 주세요.

세현의 말에 의사는 뭐라고 하려다가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로 전화를 했다. 세현은 재빨리 석호가 있는 방으로 가서 석호의 상처를 소독했다. 그리고 베인 곳에 재빨리 마취제를 주사했다.

- 옥시코돈 있어요?

세현은 석호의 고통을 줄여주고자 강한 진통제를 물었지만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 시... 시골 병원이라...

간호사는 변명처럼 대답했다.

- 아니면 아무 진통제나 좀 가져 오세요.

간호사는 세현의 카리스마에 눌려 고개를 끄떡이고 약제실 쪽으로 갔다. 의사는 병실 안으로 들어와 세현에게 보고하듯 말했다.

- 긴급으로 와도 30분은 걸린다고 하는데요?

세현은 의사를 쳐다보았다.

-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세현의 돌발적인 말에 의사는 조금 겁먹은 듯이 말했다.

- B형이긴 하지만 혈액검사도 해야 하고 이 병원엔 직접 수혈할...

세현은 다짜고짜 의사의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찔렀다. 그리고 의사의 손가락의 피를 석호의 흘린 피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선 두 혈액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 괜찮아요. 얼른 여기 누워요.

의사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전문적인 검사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했다가 부작용이라도...

세현은 의사의 말에 소리를 쳤다.

- 과다출혈로 죽는 것보다 부작용이 있어도 그게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니까 빨리 눕기나 해요!

세현의 강력한 주장에 의사는 석호의 침대 옆에 누웠다. 세현은 능숙한 솜씨로 의사의 팔뚝에 주사기를 꽂았고, 석호의 팔에 이었다. 그리고 석호 배에 있는 자상을 꿰매기 시작했다. 의식을 잃은 석호였지만,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는지 바늘을 찌를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뒤에 서 있는 간호사에게 세현이 말했다.

- 병원에 있는 항생제 좀 가져오구요, 울산대 병원에 전화해서 응급환자 수송할 수 있도록 전화 좀 해 주세요.

세현의 말에 간호사는 고개를 끄떡이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항생제를 들고 병실 안으로 간호사가 들어와 얘기를 했다.

- 앰뷸런스가 금방 온다고 했어요. 그리고 여기...

간호사가 건네준 항생제를 받은 세현은 석호의 링거에 항생제를 넣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래에서 구급대원들이 올라오자 세현은 의사의 팔에서 주사기를 뽑았다. 그리고 석호의 팔에서도 링거가 아닌 수혈관이 연결된 주사기를 뽑았다.

- 무... 무슨...

구급대원들은 병실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경악을 했다. 하지만 세현은 침착하게 얘기를 했다.

- 울산대 병원까지 얼마나 걸리죠?

세현의 말에 구급대원이 얘기를 했다.

- 마... 막히지 않으면 20분 정도...

세현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을 했다.

- 최대한 빨리 가야 됩니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서 건네주었다.

- 청구할 내역은 이쪽으로 전화해서 하면 되요. 지금은 바빠서...

세현은 멍한 표정으로 세현의 명함을 받아든 간호사와 팔을 문지르고 있던 의사를 뒤로 한 채 서둘러 앰뷸런스에 석호를 태웠다. 정신을 차린 간호사가 명함을 보고 말했다.

- 정신과 의사 최세현.

의사는 폭풍이 지나친 것 같은 병실을 쳐다보다가 간호사의 손에서 명함을 빼앗아 들고 말했다.

- 최세현?

의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아무튼 이쪽으로 다 청구해. 내 피 뽑은 것까지.

앰뷸런스를 타고 가던 중 세현은 철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을 보고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 왜 이렇게 전화를 안...

철구가 뭐라고 하려고 할 때 세현이 더 급한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 신부님이 칼에 찔렸어요.

- 뭐? 어디서? 어쩌다가?

철구의 다급한 목소리에 세현은 도리어 침착한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 저희는 일단 울산대 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철구 씨는 제가 보내는 주소 쪽으로 가보세요. 거기에 용의자가 있으니까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힘을 주어 말했다.

- 신부님 꼭 살려!

철구의 말에 세현이 대답을 했다.

- 조심해야 되요. 그 사람 약간 분열증 같은 증상이 보였으니까요.

- 오케이. 해결하고 병원 쪽으로 갈게.

철구는 전화를 끊고 자신의 휴대폰에 찍힌 주소 쪽으로 차를 몰았다. 철구는 그 주소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경찰들이었다. 핏자국이 보이는 곳에 폴리스 라인을 치고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있었다.

- 이럴 땐 빨라.

철구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핸드폰에 찍힌 주소를 향해 걸어갈 때 무언가 비릿한 냄새를 맡았다.

- 피?

철구는 조심스럽게 골목길을 걸었다. 그리고 주소지에 찍힌 집 앞에 섰다. 새롭게 지어진 빌라들 사이에 낡고 허름한 주택이 하나 보였다. 철구는 그 앞에 서서 내부의 움직임을 살폈다. 안에서는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렸다. 철구는 조심스럽게 그 집의 담을 넘었다. 그러자 비리한 피 냄새가 더욱 진해졌다. 철구는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어 주택 주변을 돌았다. 작은 방 창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철구는 그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내부를 살펴보았다. 얼핏 남자 하나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철구는 다시 밖으로 나와 담을 넘었다. 철구는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철구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철구는 크게 소리쳤다.

- 안에 아무도 없어요?

철구의 외침에도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철구는 다시 크게 소리를 쳤다.

- 택배 왔어요.

철구의 외침에 대문이 열렸다. 철구가 안으로 들어가자 현관문이 조금 열리더니 웬 남자가 얼굴을 쑥 내밀며 말했다.

- 거... 거기 두고...

그 순간 철구는 현관문을 확 잡아 젖혔다. 그러자 현관문을 잡고 있던 남자가 문 손잡이를 잡고 따라 나왔다.

- 너... 뭐....

철구는 넘어진 남자의 허벅지를 발로 누르며 말했다.

- 홍성표?

철구의 말에 남자는 눈이 커다랗게 되며 고개를 저었다.

- 아... 아냐.. 아냐.. 아냐...

- 이 새끼 어디서 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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