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6. 사건의 동시다발(2)
그리고 어지러운 화면이 계속되다가 말소리가 끊기며 들렸다.
- 당신... 당신이 제일 똑똑하니까 알아봐줘.. 우리는... 도... 강원도... 만... 그러...
그러다가 화면이 끊겼다. 화면은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무런 영상이 보이지 않았다.
- 혹시 이 사람들도 성표입니까?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끄떡였다.
- 난... 그리고 내가 알아냈어. 그들이.. 있다는 걸..
철구는 성표를 보며 물었다.
- 그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구요?
철구는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신이 여기를 찾아낼 정도라면 그들도 역시 여기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 왜 여길 안 떠난 겁니까?
철구의 말에 성표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기괴하게 웃었다.
- 도... 도망가도... 정신 차리면 여기... 여기였어... 내가 미쳐서...
그런데 그 순간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성표는 화들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인터폰을 들었다. 그러자 비디오폰이 켜지면서 밖의 화면이 보였다. 어두운데도 그럭저럭 선명하게 보였기에 철구 역시 밖에 와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 저것들 뭐지?
철구는 당연히 성준과 경찰들이 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밖에는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철골을 들어보고 있었다. 그 순간 철구는 무언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철구는 성표를 붙잡고 말했다.
- 이상한 놈들이 와 있군요. 잠시만...
철구는 핸드폰을 꺼내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리 좀 와야겠다. 이상한 놈들이 와 있어서. 올 때 경찰들하고 같이 와라.
철구가 전화를 끊고 성표를 보았다. 성표는 무언가 겁이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밖에서 이상한 말소리가 들렸다.
- 이봐. 이것대로 읽으면 되는 거야?
뒤쪽의 남자가 고개를 끄떡이자 앞에 있던 남자는 종이의 내용을 읽었다.
- 너의 성지인 대구로 향해 가라. 정당한 장군.
철구는 그들이 하는 이상한 말을 듣고 말했다.
- 미친놈들. 그게 뭔....
그런데 옆에 있건 성표의 눈이 뒤집히면서 철구에게 다가왔다.
- 이봐요. 성표 씨!
그러나 철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성표는 여전히 멍한 눈으로 철구 쪽으로 다가왔다. 철구는 다가오는 성표를 제압하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성표는 그런 철구를 지나쳐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철구는 성표의 팔을 잡아챘다. 그러나 호리호리한 몸매의 성표는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발휘했다. 잡힌 손을 뿌리치는데 철구는 그 힘에 밀려 옆으로 내동댕이쳐졌다.
- 윽...
철구가 문 쪽을 쳐다보자 성표는 조금은 슬픈 눈으로 철구 쪽을 쳐다보았다. 그 눈은 마치 자신을 막아달라는 표정처럼 보였다. 철구는 몸을 일으켜 성표를 막으려했지만 성표의 손이 조금 빨랐다. 문이 열리는 순간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철구는 그들의 손에 총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창고 같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 죽여!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소음기를 낀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어 성표의 이미를 뚫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내부에 있던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치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는 것처럼 파란 박스를 들고 와 놓여 있던 컴퓨터며 책, 서류, 비디오테이프까지 몽땅 쓸어 담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놈이라면 나가서 어떻게 해 볼 수 있겠지만, 여러 명이 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 조용히 숨어 있었다.
- 다 챙겼으면 가자!
밖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안에서 물건을 챙기던 남자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철구는 재빨리 구석에서 나와 성표를 살펴보았다. 성표는 이마에 총을 맞아 즉사하였다. 철구는 그 집에서 빠져 나와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성표가 당했어.
순찰을 나갔던 경찰과 같이 오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된 성준은 철구의 말에 깜짝 놀랐다.
- 네? 갑자기 왜요?
철구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걸어가며 말했다.
- 몰라. 그 녀석이 미쳤는지 갑자기 문을 열어 주더라구.
철구의 말에 성준이 무거운 신음 소리를 냈다.
- 일단 넌 거기서 상황 수습 먼저 해라. 난 일단 울산으로 가 볼게.
철구의 말에 성준이 알았다고 대답을 하자 철구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문득 두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성준아, 혹시 그 자살한 성표들 사진 좀 볼 수 있냐?
- 지금은 조금 힘들 것 같은데요? 자료가 서울에 있어서요.
- 그런가?
그러다가 철구가 다시 물었다.
- 그럼 그 두 놈 인상착의는 기억하냐? 혹시 한 놈은 네모진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고, 한 놈은 한 90Kg 쯤 나가는, 턱이 두 개고, 코가 뭉뚝한 녀석이었냐?
철구의 질문에 성준이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을 했다.
- 음... 비슷한 것 같긴 해요. 안경 쓴 놈은 확실하구요. 한 놈은...
- 그래? 알았다.
철구가 그렇게 얘기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성준이 말을 했다.
- 조심하세요. 조사한 내용은 제가 조만간 보내 드릴 게요.
철구는 성준과 전화를 끊고 수첩을 꺼내 다시 내용을 적었다.
홍성표 1 ? 칠곡군에 살던 인간(실존 여부 모름)
홍성표 2 ? 정신 병원에 입원 중
홍성표 3 ? 미려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경찰에 잡혀 있음
홍성표 4 ? 미려를 죽이고 도망친 놈
홍성표 5 ? 총기 자살(안경 쓴 놈)
홍성표 6 ? 총기 자살(뚱뚱한 놈, 현재 확인 불가)
홍성표 7 ? 익산에 사는 정신 나간 놈(총 맞아 죽음)
그러면서 '홍성표 4 ? 미려를 죽이고 도망친 놈' 옆에 '울산'이라고 썼다. 그리고 시동을 걸며 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한참을 울려도 세현이 전화를 받지 않자 철구는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던 세현이었기에 더욱 기분이 이상했다. 철구는 석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석호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 뭔 일이지?
철구는 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신부님이란 할매가 간 곳 좀 알려줘.'
그러자 금방 내비게이션에 위치가 떴다.
'고마워.'
철구는 메시지를 보내고 차를 몰아 울산 쪽으로 향해 갔다.
울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세현이 석호에게 물었다.
- 이 일도 그들이 꾸민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문득 그동안 생각한 바를 얘기했다.
- 어쩌면 무서운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은 인간을 복제하고 기억을 수집하는 일이었다면 이번 일은 멀쩡한 인간을 통제하려는 것이니까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얘기를 했다.
- 인간을 통제한다는 게 단순히 기억을 주입한다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통해 무언가를 한다는 말이겠군요.
석호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지금까지의 행태로 봐서는 기억을 통해 무언가를 행동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전부 살인과 연결이 되어 있군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무거운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 그렇다면 기억과 암시를 통해서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도한다는 말인데... 결국 불특정 다수에게 그런 기억을 주입한다면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부정적인 행동을 하도록 암시를 건다면... 생각만 해도 무서운 얘기네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무서운 얘기죠. 그런데 제 생각엔 그 실험이 일부만 성공한 것처럼 보여요.
- 일부만?
세현의 반문에 석호는 자신의 가정을 얘기했다.
- 제 생각으로는 그들의 실험이 완벽했다면 철구 씨에게 의뢰를 한 홍성표 씨나 자살을 한 홍성표 씨는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실험이 완벽했다면 많은 홍성표보다 완벽한 홍성표 하나만 있으면 되는 거였죠. 실험이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홍성표를 만들어 낸 것이고 또 그들에게 적절한 암시를 주기 위해 웹소설을 이용한 것으로 보는데요.
석호의 말을 들은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겠군요.
앞을 주시하던 석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했다.
- 그런데 그 암시라는 게 지금 가장 골칫거리죠.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글의 내용이거든요. 죽음의 서라는 소설은 그들의 기억을 각성하게 만드는 계기라고 생각되는데 그들을 행동하게 만드는 그걸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소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제가 본 건 노래...
석호는 그 얘기를 하다가 문득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 어쩌면 그들은 글자 그대로나 아니면 글자에서 어떤 패턴을 통해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
석호는 세현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 핸드폰을 들고 대장에게 연락을 했다.
- 대장! 혹시 홍성표들의 직업이나 나온 학과나 그런 걸 알 수 있을까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삐삐거리며 투덜댔다.
- 삐삐.. 모른다. 아니 몰르겠다.
그러자 석호가 다정한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 어쩌면 이게 제일 중요한 일일 수도 있어요. 꼭 알아봐줘요.
그러나 대장에게서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대신 세현의 태블릿에 일곱 명의 인적 사항이 나왔다.
- 고마워요.
- 삐삐... 중요한 거라고 해서 한 거다.
- 이따 봐요!
석호가 전화를 끊자 세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 심통이군요. 후훗.
- 아직 소통하는 법을 잘 모르니까요.
세현은 태블릿에 뜬 정보를 읽었다.
- 직업은 다양하네요. 학교 선생님, 애널리스트, 세무사, 대기업 총무과 사원, 대학원생...
그리고 그들의 학과들을 살펴보았다.
- 학과도 크게 일치하는 부분은 없어 보이는데요? 경영학과가 한 명, 수학과가 한 명, 물리학과, 기계 공학과가 두 명... 다양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