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5. 성표의 본색(5)
한수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렸다.
- 그렇게 됐수다. 일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바람에.
철구의 말에 한수는 입맛을 다셨다.
- 뭐 그렇다면야...
한수는 철구가 자신의 딸을 치료하도록 도와주고 있고, 또 집까지 사주는 바람에 철구에게 끽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한수를 보며 철구가 소리쳤다.
- 형! 어깨 좀 피쇼!
철구가 버럭 소리를 치자 커피를 마시던 한수가 펄쩍 뛰다가 커피를 옷에 흘렸다.
- 야! 나 요즘 심장이 안 좋단 말야... 이 자식이...
옆에 앉아 있던 레지도 깜짝 놀랐는지 커피를 흘렸다. 그러더니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철구를 쏘아보았다.
- 저 오빠는 맨날 무섭게만 해.
레지의 말에 한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원래 재수없는 놈이라서 그래.
한수의 말에 철구가 한수에게 얘기를 했다.
- 의뢰 들어온 건 없어요?
철구의 말에 한수가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그게 말야... 요즘 니가 바빠서 내가 알바 좀 두고 하고 있거든...
철구는 한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한수는 철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지 못했지만, 철구가 바쁠 때에는 최대한 철구를 찾는 일을 자제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날랜 애들을 고용하여 일을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 철구의 핸드폰이 울렸다. 철구가 핸드폰을 받으며 말했다.
- 뭐? 홍성표? 알았어. 내가 금방 갈게.
철구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다시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 형, 문단속 잘 하고 가쇼.
철구는 한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한수는 그런 철구의 뒷꽁무니에 말했다.
- 다치지 마라!
철구가 나가자 한수는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 마시며 중얼거렸다.
- 무정한 놈.
한수 옆에 앉은 레지는 눈치없이 한수에게 안기며 말했다.
- 오빠, 아까 하던 얘기 있잖아. 그거... 계속...
한수는 레지를 밀어내며 말했다.
- 오늘은 그만 가라.
한수가 그렇게 얘기를 했지만, 레지는 몸을 꼬며 말했다.
- 아잉. 오빠.. 오늘...
그러자 한수가 레지를 보며 소리를 버럭 쳤다.
- 오늘은 그만 가라고!
한수마저 소리를 치자 레지는 샐쭉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커피잔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한수는 창가에 서서 담배를 입에 물고 말했다.
- 새끼. 오늘 생일이라고 소주나 한 잔 하려고 했더니... 불쌍한 놈.
한수는 지갑을 열어 사진을 보았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성형 전 철구의 얼굴, 지훈의 얼굴이 보였다. 호봉이 파에서 철구의 집을 팔 때, 철구와 관련된 것이라면서 물건들을 갖고 이 사무실에 왔었다. 한수는 뭔가 싶어서 상자를 열자 예전 박성철 형사와 함께 찍은 지훈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박성철 형사가 찾아다니던 일이 떠올르며 대강 철구와 지훈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훈의 생일, 즉 철구의 생일을 알게 된 것이었다. 오늘 같은 날엔 그래도 집에라도 데리고 가서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싶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자 철구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이 놈은...
한수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휑한 사무실을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철구는 달리는 차 안에서 성준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 그 자식 신원 조회해 봤어?
철구의 말에 성준이 뭔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말을 했다.
- 이 자식들 뭐죠?
성준의 말에 철구가 가만히 있자 성준이 말을 이었다.
- 사진하고 남아있는 지문 조회를 해 봤는데, 이 자식 이름도 홍성표에요.
- 뭐?
철구는 성준의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
- 이거야 원...
그리고 성준이 말을 이었다.
- 그리고 형님이 조사해 보라고 한 홍성표들을 찾아보았는데, 총 일곱 명이었어요. 이름만 같은 건지 아닌지는 조사해 봐야겠지만.
- 뭐? 홍성표라는 인간이 일곱 명? 이거 미치겠군.
철구는 갓길에 차를 세우며 말을 했다.
- 그 놈들 주소는 확인해 봤어?
철구의 말에 성준이 말을 했다.
- 주소 불명이 한 명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확인했어요.
성준은 철구에게 각각의 주소를 불러주었다. 철구는 수첩을 꺼내 한 명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 그래. 일단 거기 조사 마치고 한 번 보자.
철구는 전화를 끊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상관관계를 알기 힘들었다. 철구는 차를 돌려 사무실 쪽으로 차를 옮겼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사무실 안에는 세현과 석호가 열심히 소설을 보며 분석을 하고 있었다.
- 암시라면 무언가 암시를 주는 단어나 문구가 있을 거에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말을 했다.
- 그냥 단어나 문구라면 너무 막연한 거 같아요.
두 사람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소설의 내용들을 분석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 때 문이 열리며 철구가 안으로 들어왔다.
- 왔어요?
세현이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철구는 고개만 끄떡이고는 칠판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칠판에 홍성표라는 이름을 나열했다. 그러더니 그 옆에 각각 내용을 쓰기 시작했다.
홍성표 1 ? 칠곡군에 살던 인간(실존 여부 모름)
홍성표 2 ? ZEN 심리치료실에 입원 중
홍성표 3 ? 미려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경찰에 잡혀 있음
홍성표 4 ? 미려를 죽이고 도망친 놈
홍성표 5 ┓
홍성표 6 ┫ 현재 알 수 없음.
홍성표 7 ┛
- 이거 미치겠군. 이거 봐봐.
철구가 칠판에다 쓴 이름들을 보며 말했다. 세현은 칠판을 보며 말했다.
- 일곱 명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짜증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러니까. 미친놈들. 성표란 놈이 일곱이라고 하더라구.
철구의 말에 세현은 문득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 성준에게 전화가 왔다.
- 뭐? 이거 점점 꼬이는데.
철구는 성준의 전화를 받고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이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인간을 마치 장난감처럼 여기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자 몹시 화가 났다.
- 그래서 그 두 놈은 어떻게 됐어?
철구가 묻자 성준은 조금 당혹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 자살했어요.
- 자살이라...
철구는 성준이 말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앞뒤가 맞지 않는군.
철구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성준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철구는 상황을 정리하듯이 성준이 말한 내용을 되짚었다.
- 성표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 또 있어서 찾아갔는데, 거기서 찾아간 성표라는 사람 외에 또 다른 성표가 있었다는 거지? 그런데 그 놈들이 집에 없어서 수소문하던 중에 철원 지역에서 군부대에 침투해서 총을 훔쳐 달아난 놈들이 그 놈들이라는 걸 알았는데 얼마 후에 강원도 버려진 산장에서 총으로 자살한 두 놈이 발견됐다는 거잖아.
철구의 말에 성준이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철구는 조금 짜증나는 듯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그 놈들 행동이 이상하잖아? 자살을 하려면 다른 방법도 많은데 군부대에 침투해서 총을 가지고 나와서 자살을 했다는 것도 그렇고 두 성표라는 놈이 왜 의기투합해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는지도 그렇고 말야. 총을 훔치고 다른 사건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말야.
성준은 철구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아무튼 좀 더 조사해 봐. 수고해라.
철구가 전화를 끊자 세현이 칠판 앞으로 와서 칠판의 일부를 지우고 다시 썼다.
홍성표 1 ? 칠곡군에 살던 인간(실존 여부 모름)
홍성표 2 ? ZEN 심리치료실에 입원 중
홍성표 3 ? 미려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경찰에 잡혀 있음
홍성표 4 ? 미려를 죽이고 도망친 놈
홍성표 5 ? 총기 자살
홍성표 6 ? 총기 자살
홍성표 7 ? 현재 알 수 없음.
철구는 세현이 수정을 한 내용을 보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세현이 말을 했다.
- 그렇다면 한 명은 지금 경찰에 잡혀 있고, 한 명은 추적 중이고, 이 병원에 한 명이 있고, 두 명이 자살을 했으니까 이제 한 명이 남았군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런데 그 한 놈의 행방이 묘연해. 경찰 후배 녀석 말로는 어떤 식으로 어떻게 숨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종적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는군.
철구마저 난감해 하는 상황에서 세현이나 석호 역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컴퓨터 화면에 지도가 하나 떴다. 그러더니 기계음이 들렸다.
- 지난 한 달 동안 홍성표라는 이름으로 카드가 결재된 곳과 금융 거래가 있던 곳이다.
세 사람은 동시에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대부분의 점들이 서울과 경기도 근교에 집중이 되어 있었다. 그 때 철구가 모니터를 향해 말을 했다.
- 지도를 아래로 내릴 수 없어?
그러자 화면의 지도가 아래로 내려갔다.
- 잠깐!
철구의 외침에 지도가 멈추었다.
- 여긴 왜?
철구는 익산에서 점이 보이자 그 점을 쳐다보며 말했다.
- 지금까지 익산과 관련된 놈은 없었거든. 갑자기 익산에 놀러가고 싶을 리도 없고. 익산에서 사용된 건 언제지?
철구의 말에 모니터 화면이 바뀌면서 거래 명세서와 위치가 나왔다.
- 3일 전이다.
철구는 대장에게 얘기를 했다.
- 여기 지도 하나만 뽑아줘. 여기군.
철구의 말에 세현이 말을 꺼냈다.
- 왜 거기라고 확신하죠?
철구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일단 칠곡군에 살던 놈은 죽었고, 여기 있는 놈이나 경찰에 잡힌 놈은 3일 전에 카드를 쓸 수 없지. 그리고 자살한 두 놈은 3일 전에 죽었지. 그러니까 여기서 카드를 쓸 수 있는 놈은 미려를 죽인 놈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홍성표겠지.
그리고는 다시 모니터를 보다가 석호가 말을 했다.
- 그렇다면 여기도 가 봐야겠군요.
석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울산이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카드를 사용한 내역이 나왔다. 철구는 거기를 보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거긴 제가 가 보겠습니다.
석호의 말에 세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저도 같이 가요.
그러자 철구와 석호가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그리고 병원에 있는 환자도...
그러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병원에 있는 홍성표 씨는 일단 더 큰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어요. 여기에 있기엔 저희도 그렇고, 홍성표 씨 자신도 위험할 수 있거든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 할매는 위험하니까 대장하고 같이 여기 있지 그래?
철구의 말에 세현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말을 했다.
- 할매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전 신부님하고 다닐 거니까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석호를 잠시 쳐다보고는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석호는 세현을 보다가 철구를 보며 말을 했다.
- 그냥 행적만 조사할 거니까요. 뭐.
석호의 말에 철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했다.
- 좋을 대로 하세요. 아무튼 전 먼저 익산으로 떠납니다.
철구가 나가자 세현이 석호를 보며 말했다.
- 저희도 출발하죠.
세현이 그렇게 말을 하자 갑자기 모니터에 삐삐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할매~~'라는 글자가 흘렀다. 세현은 그런 모니터를 조금 째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석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모니터를 향해 말을 했다.
- 중요한 일 하러 가는 거예요.
그러자 모니터에서는 '우는 이모티콘'과 함께 '나쁜 신부님'이라는 글자가 흘러갔다. 석호는 그런 모니터를 보며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