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5. 성표의 본색(4)
- 뭐라고?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
성준과 만나 얘기를 하던 철구는 미간을 찌푸렸다.
- 글쎄요. 물론 이름이 같은 사람이야 널렸겠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 그러게. 참 나.
경찰에 잡혀 있는 홍성표를 조사하던 성준은 그가 얘기하는 내용이 철구에게서 들은 내용과 같다는 걸 알고는 경악을 했다.
- 기억이 똑같단 말이지?
성준이 고개를 끄떡이자 철구가 말을 했다.
- 신부님 말이 맞는 거네. 이런 거라면 그냥 기억이 유사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기억이 주입된 거로군.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그게 가능한가요?
철구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 나도 모르겠지만, 미친 인간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철구의 말에 성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 그럼 이런 기억을 가진 홍성표라는 사람이 드러난 것만 두 명이군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 아! 왜 홍성표를 그 놈들뿐이라고 생각했지?
철구의 말에 성준이 놀란 표정으로 철구를 보았다.
- 그렇다면 혹시...
철구는 다급하게 성준에게 말했다.
- 너 들어가서 홍성표라는 이름을 가진 놈들 좀 찾아줘. 난 미려라는 여자한테 가 봐야 될 것 같아.
성준도 그제야 철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지 대답도 없이 몸을 돌려 경찰서로 향했다. 철구는 자신의 차에 몸을 싣고 미려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 최미려 환자 병실이 어디죠?
철구가 미려가 입원한 병원에 도착하여 안내 데스크에 물었을 때, 안내 데스크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아! 최미려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는데요?
- 이송이요?
안내 데스크 여자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 네. 그저께 남자 친구라는 분하고 어머니가 오셔서 집중 치료를 받으신다고...
철구는 다급하게 물었다.
- 어디로 이송됐나요?
철구의 질문에 여직원은 당황하며 말했다.
- 그건 개인 정보...
그러자 철구가 책상을 탕 치며 말했다.
- 그 여자 목숨이 오가는 일이에요.
철구의 말에도 여자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철구는 여기서 더 이상 소란을 피워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고는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최미려가 사라졌어.
- 네?
- 네가 와서 어디로 이송됐는지 알아봐야...
철구는 그러다가 문득 대장이 생각이 났다.
- 아니다. 이따 다시 전화하마.
전화를 끊고 철구는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보안 문자로 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성 병원 최미려 환자가 어디로 이송됐는지 알아볼 수 있어?'
철구가 문자를 보낸 지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문자 메시지가 떴다.
'경기도 오산시 최강 병원'
철구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걸며 혼자 중얼거렸다.
- 빠르군. 참나...
철구는 메시지에 나타난 병원이 오산시에 있다는 것만 들었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차에 있는 내비게이션이 켜졌다. 한 번도 켜본 적이 없는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켜지더니 '최강병원'까지의 경로가 나타나 있었다.
- 이거 내 말소리가 들리는 거야?
철구는 차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 아무튼 빨리 가 봐야겠군.
철구가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위치로 차를 몰았다. 한 시간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자 최강병원이 보였다. 철구는 차에서 내려 병원 입구로 들어섰다. 그런데 철구가 들어섰을 때 병원 안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철구는 그들을 쳐다보다가 한 의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 최미려 환자 상태가 어떤대?
철구는 미려의 이름을 듣자 그 의사에게 다가갔다.
- 미려 씨가 어떻게 됐는데요?
난데없는 철구의 말에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철구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 미려 오빠입니다.
철구의 말에 간호사가 얼굴이 조금 창백해지며 말했다.
- 그게... 그게...
철구가 간호사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간호사는 당황하며 말을 했다.
- 아까 환자 상태 확인하려 들어갔는데... 칼에 찔...
간호사의 말에 철구가 소리를 쳤다.
- 병실이 어디에요?
- 506호요...
간호사의 말이 떨어지자 철구는 계단을 뛰어 5층으로 올라갔다. 그 안에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모여 있었다. 철구가 그들을 헤집고 들어가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 당신 뭐요?
철구는 그 목소리를 향해 소리를 쳤다.
- 미려 오빠입니다.
'오빠'라는 말에 한 의사가 철구 앞으로 다가와서 말을 했다.
- 지금 상태가 몹시 좋지 않습니다. 잠시만...
그러나 철구는 그 말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은 몹시 처참했다. 침대 시트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고, 미려는 눈으로 보기에도 몇 군데의 자상(刺傷)이 보였다. 철구가 그 상태를 보며 옆의 의사에게 물었다.
- 환자가 이 상태가 될 때까지 뭐했습니까?
철구의 말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주눅이 든 얼굴로 말을 했다.
- 아까 점심 먹을 때까지는 괜찮으셨는데, 오후 상태 체크하러 왔는데...
철구는 그 간호사에게 물었다.
- 중간에 온 사람은 없습니까?
철구의 말에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남자 친구라는 사람이 항상 붙어 있긴 했는데... 지금...
철구는 그 중 책임자인 듯한 의사에게 말했다.
- 이 병원에 CCTV 있죠? 거기에 보면 이 병실에 들어온 사람이 나올 겁니다. 흘린 피의 양으로 봐선 칼에 찔린 지 30분 정도 되어 보이니까 그 전후를 살펴봅시다.
철구의 말에 의사가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 미려 씨 오라버니의 직업이...
철구는 의사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형사요. 그러니까 얼른 CCTV 확인합시다.
철구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더니 보안 책임자를 불렀다. 철구는 미려의 상태를 대충 눈으로 확인해보았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철구는 보안 책임자와 아래로 내려가 CCTV를 확인하였다. 1시간 전부터 찍은 5층 CCTV를 돌려보자 약 35분 전쯤 남자친구라고 한 남자가 유유히 병실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 병실에 들어가지 않았고, 10분 전 화면에서 간호사가 놀라서 병실에서 뒷걸음질 쳐 나오는 장면이 나왔다. 철구는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기 오산시 최강병원인데, 미려 씨가 죽었어.
철구의 말에 성준이 놀라서 소리를 쳤다.
- 죽어요?
- 어제 오성병원에서 이리로 이송될 때 남자친구하고 어머니하고 왔다는데, 네가 와서 조사 좀 해야겠다.
철구가 전화를 끊자 보안 책임자가 철구를 보며 말했다.
- 미려 씨 오빠가 아니신가요?
철구는 보안 책임자를 보며 말했다.
- 오빠 맞아요. 친오빠는 아니지만.
철구의 말에 보안 책임자가 철구를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 이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안 책임자의 말에 철구가 말을 했다.
- 수사 중 참고인이어서 조사 중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조금 이따 오는 경찰한테 물어봐요.
철구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최강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차에 타서 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현이 무어라고 얘기하기도 전에 철구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 최미려가 죽었어.
철구의 말에 세현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 네? 언제요?
- 한 시간쯤 전에.
철구의 말에 세현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 한 시간이요?
- 그래.
그러자 세현이 말을 꺼냈다.
- 한 시간 쯤 전에 홍성표 씨가 탈출하려고 난동을 피웠어요. 다행히 신부님이 제압을 하긴 했는데...
- 뭐? 한 시간 전에? 갑자기 왜?
세현은 성표에게 웹소설을 보여주었고, 그 이후 갑자기 행동이 변했다는 것을 얘기했다.
- 새로운 소설이었어?
철구의 말에 세현이 얘기를 했다.
-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소설인지 아닌지. 제가 전에 보던 소설을 보여주니까 갑자기 태블릿을 달라더니 제게 얘기를 했어요. 즐겨찾기 들어가서 '죽음의 서'를 보여 달라는 거예요.
- 알겠어. 아무튼 그 녀석 잘 살펴보고. 여기 정보가 나오면 또 연락할게.
철구는 전화를 끊고 차 위에 엎드렸다.
- 뭐가 이렇게 어수선한 거야.
철구는 단순히 어떤 미친 인간이 한 의뢰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일이 복잡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철구는 서울로 올라가며 성준에게 전화를 했다. 최강병원에 거의 다 도착했다며 거기서 상황 파악 끝나면 전화를 준다고 했다. 철구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오랜만에 심부름센터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한수가 다방 레지와 앉아 노닥거리고 있었다. 철구는 그 모습을 보고는 책상 쪽으로 가서 앉았다. 철구가 들어온 모습을 보자 한수가 푸념인 듯 아니면 불만인 듯 한마디 했다.
- 요즘 얼굴 보기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