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74화 (17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5. 성표의 본색(3)

- 이 사람이 그 증거죠.

석호의 말에 세현이 화들짝 놀라며 말을 했다.

- 그럼 홍성표 씨의 기억이 이식된 거라는 건가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기억을 조작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기존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었을 수도 있죠. 아마 홍성표 씨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을 거에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무릎을 탁 쳤다.

- 아! 아예 다른 성격을 만들어 새로운 인물의 기억을 주입한다...

세현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들이 하고 있는 실험이 그거였어요. 누구의 기억을 어떤 사람에게 주입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은밀하게 그런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말을 이었다.

- 그러니까 도플갱어라는 게 원래 인격이 만나는 도플갱어가 아니라 주입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도플갱어를 말하는 거군요.

그러면서 철구를 쳐다보았다.

- 그 미려 씨를 죽이려고 했던 '또 다른 홍성표'가 있잖아요. 그리고 칠곡에 원래 살던 홍성표.. 그러니까 단순하게 도식화해보면 칠곡의 홍성표가 '원래 인물'이고 그 홍성표의 기억을 아래 있는 홍성표 씨와 잡혀간 홍성표에게 주입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세현의 말에 침묵을 지키던 철구가 입을 열었다.

- 그럼 가장 근원적인 문젠데...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철구의 질문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그놈들의 의도까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기억을 조작하고 기억을 이식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석호의 말에 철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기억을 조작하고, 이식한다라... 그런데 어떤 목적인지는 불분명하고...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럼 그 인터넷에 올리는 소설은 뭘까요? 그게 행동 지령 같은 건가요? 그리고 그 소설을 읽는다고 그렇게 행동하라는 세뇌를 받은 걸까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대답을 했다.

- 어쩌면 저 홍성표 씨는 웹소설로 '각인'을 받은 게 아닐까 해요. 제가 들어갔을 때는 '오아시스' 노래였어요. 어쩌면 오아시스 노래가 그들에게 어떤 걸 환기시키지 않을까 하는데요...

철구의 말에 세현 역시 심각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철구가 제기한 근원적인 의문, 사실 그것을 모른 채 어떻게 되었는지만 안다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철구가 책상을 탁 치며 말했다.

- 골치 아프니까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 생각합시다. 일단은 그 녀석들 원래 신상이나 털어보고, 또 그 웹소설이 뭘 의미하는지나 알아봅시다. 신부님 말씀대로 무슨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의미 없는 건지.

철구의 말에 세현과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느니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먼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했다.

- 신부님은 대장하고 그 웹소설을 좀 분석해 주세요. 가능한 한 언제 시점에 어디서, 누가 올렸고, 그 내용에서 이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해 주세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세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

- 할매는 저 아래 홍성표라는 미친 인간의 원래 성격이 어떤지 좀 알아봐줘. 할 수 있으면 저 녀석 신상을 알아봐주면 더 좋구.

철구는 세현을 보지 않은 채 일어나며 말했다.

- 난 미려라는 여자를 죽이려고 했던 또 다른 홍성표를 캐볼게.

철구가 그렇게 말을 남기고 나가자 모니터에서 '삐삐' 소리가 들리며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 대장은 난데. 자기가 대장처럼 행동한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래서 대장은 어떻게 하려구요? 저는 웹소설 분석을 할 건데.

석호의 말에 모니터에는 '바보 신부님'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는 성표가 접속했던 웹소설 목록과 내용들이 나왔다. 세현은 그 둘을 보다가 석호에게 말을 했다.

- 일부러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게 만들다니 무서운 놈들이군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 그놈들에게 인간은 그저 실험 대상일 뿐이라는 게 더 무서운 일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

세현은 석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저는 아래 내려가서 홍성표 씨에 대해 더 조사해 볼 게요.

세현이 밖으로 나가자 석호는 모니터를 확인해 보며 홍성표가 읽은 웹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대장은 수시로 삐삐 소리를 내며 석호의 관심을 유도했지만, 한번 몰입한 석호는 그런 소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대장은 웹소설들을 올린 IP를 찾고, 그 IP와 관련된 정보와 ID를 통한 신상 파악을 시작했다. 한동안 웹소설을 읽던 석호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이전 화면으로 넘겼다.

- 이게 홍성표 씨가 본 소설의 전부인가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삐삐 소리를 내며 다른 화면을 두 번째 모니터에 띄웠다.

- 고마워요.

- 별.말.씀.을.

석호는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마치 문장 하나하나를 기억하듯이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대장은 이미 어느 정도의 신상을 파악한 이후였기 때문에 심심했다.

- 뭐가 있나?

대장의 말의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그냥 일반적인, 아니 일반적인 소설보다 더 못 쓴 글 같아 보이네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지루한 듯이 말을 했다.

- 이쪽도 비슷하다. 톰슨 병원하고, 외국인 'Homer Jay Simpsons Junior'이란 이름밖에 안 나왔다.

석호는 'Homer Jay Simpsons Junior'이란 이름을 듣자 피식 웃었다.

- 호머 제이 심슨이요? 그 만화 영화 주인공 아저씨?

석호의 반응에 대장이 말을 이었다.

-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런 이름이 있다.

그러더니 화면에 호머 제이 심슨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사진을 늘어놓았다. 놀랍게도 미국에만 네 명이 그런 이름을 갖고 있었다.

- 하... 그렇군요. 만화인 줄만 알았는데...

그러다가 화면에 나온 얼굴 중 하나에 눈이 갔다.

- 잠깐만요!

석호의 반응에 대장은 화면을 멈췄다.

- 이 사람에 대해 더 알 수 있나요?

석호가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자 대장은 곧바로 그 사람과 관련된 내용을 화면에 띄웠다.

- 호머 제이 심슨 주니어,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West Point Academy) 졸업...

내용을 읽던 석호는 다음 화면에서 보이는 한 줄에 시선이 갔다.

'에어리어 51 복무'

석호는 그 구절을 보면서 말했다.

-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석호는 대장에게 그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봐달라고 하고 나머지 글을 읽었다. 그리고 다른 글을 읽으려고 할 때였다. 석호의 핸드폰이 울렸고, 석호는 전화를 받았다.

- 이리 좀 와 주세요.

세현의 다급한 목소리에 석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자 아래에서 세현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 무슨 일....

석호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병실 안의 상황에 몹시 놀랐다. 건장한 간호사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한 사람은 성표와 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석호는 재빨리 달려들어 성표를 부여잡으려 했다. 하지만 압박복을 입은 성표는 몸으로 석호를 밀쳐냈고, 그 힘이 대단했다.

- 홍성표 씨!

세현은 성표의 이름을 힘껏 불렀지만, 성표는 마치 의식을 놓은 듯이 행동을 했다. 석호는 다시 성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성표는 미친 듯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 잡아야 해요!

세현이 크게 소리쳤지만 이미 성표는 병실 밖으로 뛰어나온 상태였다. 석호가 재빨리 뛰어나가다가 세현의 손에 들린 주사기를 들었다.

- 진정제죠?

세현이 고개를 끄떡이자 석호는 성표가 뛰어간 곳으로 달려갔다. 성표는 복도 끝 막다른 지점에서 계단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두 손이 묶인 상태여서 어찌할 수 없었는지 앞에 보이는 유리창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유리창을 향해 몸을 던졌다.

- 안 돼!

석호가 소리를 쳤다. 그러나 성표는 유리창에 몸이 튕기며 뒤로 넘어졌다. 석호는 재빨리 달려가 넘어져 있는 성표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고, 약을 밀어 넣었다. 몸부림을 치느라 주사기가 빠져 나왔지만, 이미 주사액이 주입되었는지 몸부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 휴...

석호는 넘어져 있는 성표를 놔두고 유리창을 손으로 통통 쳐봤다.

- 강화 유리로군.

뒤늦게 따라온 세현은 넘어져서 잠든 것처럼 있는 성표를 보고 고개를 돌려 석호를 보았다.

- 주사를 놨어요.

석호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강화 유리로 해 놓으셨네요. 잘 하셨어요.

세현은 같이 온 간호사들에게 성표의 다리와 몸도 묶어 놓으라고 지시하고는 석호에게 얘기를 했다.

- 안 그러면 뛰어내릴 사람이 많아서요. 저를 포함해서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피식 웃었다.

- 아무튼 저 녀석이 왜 그런지 알아야겠군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을 했다.

- 태블릿을 보여주었어요. 그 전까지는 아주 멀쩡했거든요. 그런데 웹소설을 읽더니 갑자기 저렇게 변해버렸죠.

세현의 말에 석호는 의아한 듯이 말했다.

- 웹소설이요?

- 네. 다른 인격이 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고 다른 인격을 웹소설로 끌어낼 수 있을까 해서 읽힌 거예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얘기를 했다.

- 어떤 건지 볼 수 있을까요?

석호와 세현은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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