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5. 성표의 본색(2)
- 이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잖아.
세현은 철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와 봐야 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얼마 후 부리나케 사무실로 달려온 철구에게 세현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했다.
- 홍성표 씨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어요. 흔히 말하는 이중인격이라는 거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럼 미친놈이구만.
세현은 철구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었다.
- 그런데 놀라운 건 제가 알아낸 인격 외에 인격이 더 있다는 거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 그럼 삼중인격, 사중인격, 뭐 이런 건가?
세현은 철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대개 해리성 인격 장애는 유년 시절과 관련이 있죠. 홍성표 씨 역시 어린 시절 본인이 좋아했던 김광민이라는 의사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그렇게 된 것처럼 보여요. 성표 씨는 그 김광민의 아들이었던 '김철민'이 되고 싶었지만, 김광민이란 사람의 실체를 알게 된 다음 본인이 되고 싶었던 '김철민'은 김광민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던 자아로 분리시켜 버린 거에요. 그런데 중요한 건 '김철민'의 성격이 원래 성표 씨의 성격이었고, 지금의 '성표 씨'의 성격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거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이거 되게 복잡하군. 그런데 칠곡에 갔을 때 찍은 사진에는 성표가 다른 애였잖아. 그건 또 뭐지?
철구의 말에 세현은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 그럼...
세현의 돌발적인 행동에 철구는 조금 놀라 세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조금 후에 세현의 입에서 조금은 회의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세현의 중얼거림을 들은 철구는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할매 혼자만 알지 말고 얘기를 해줘. 답답하니까.
세현은 '할매' 소리를 듣자 철구를 한 번 노려보더니 말을 꺼냈다.
- 사실 진짜 중요한 건 성표 씨가 '철민'이라는 이중인격을 갖고 있다는 게 아니였어요. 아까 대화 도중에 보니까 '또 다른 성격' 나왔다는 거죠.
- 그건 아까 얘기 한 거잖아.
세현은 철구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런데 그 성격은 최면 요법으로 찾을 수 없던 거였어요. 갑자기 튀어나왔다고나 할까?
세현의 말에 철구는 귀를 파며 말했다.
- 그거야 최면 요법인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거 아냐?
철구의 말에 세현은 발끈하며 말했다.
- 저 말고도 다들 전문가들이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뭐 그렇다면야. 아무튼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젠데?
세현은 종이를 한 장 꺼내 그려가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 지금 저기 있는 사람은 '홍성표 A'라고 해요.
- A?
- 네. 헛갈리니까 일단 그렇게 이름을 정할 게요.
그러더니 세현이 무언가 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 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에요.
병원 홍성표(A) ─ 칠곡 홍성표(B)
│ ┃
김철민 인격 현재 알 수 없음.
그러더니 세현은 철구를 보며 인물들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 지금 병원에 있는 홍성표 A는 칠곡에 있던 홍성표 B를 김철민으로 생각하죠. 그런데 웹소설 내용은 칠곡 홍성표 B가 겪은 내용이거든요. 사실 지금 병원에 있는 홍성표 A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죠. 그런데 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본인이 그 홍성표라고 주장을 하고 있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 그게 무슨 문젠가?
철구의 말에 세현은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지금까지 밝혀진 건 홍성표 A 안에 들어 있는 홍성표 B의 인격과 김철민의 인격뿐이에요. 그렇다면 홍성표 A의 인격이 또 있다는 말이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참 복잡하게 미쳤군.
세현은 그러더니 병실을 비추는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 어쩌면 제 3의 인격, 홍성표 A의 인격이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허리를 탁자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 그럼 홍성표 B랑 김철민의 인격은 저 인간이 어떻게 안 거지?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철구의 질문에 세현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그게 제일 큰 의문이에요. 저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기억이 생겼는지가.
세현의 말에 철구는 농담처럼 얘기를 했다.
- 미친놈이라서 초능력이 있는가 보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는...
세현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돌려 세현을 쳐다보았다. 세현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 어쩌면 기억을 '이식' 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었다.
- 기억을 이식 받다니? 그게 뭐 장기야?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뇨. 그럴 가능성도 있어요. 장 신부님이 그 내용을 확인했으니까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만약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억을 이식하겠어.
철구의 말에 세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거야 아직 모르죠.
철구는 세현의 행동에 의자를 뒤로 하며 말했다.
- 이거야 원. 다 공상 과학 영화 같은 얘기뿐이니...
그 때 문이 열리며 석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 아! 신부님.
오랜만에 보는 석호의 모습에 철구 역시 반갑게 손을 올렸다. 석호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모니터에서 '삐삐' 소리와 함께 기계음이 들렸다.
- 오.랜.만.이.다.
대장의 반응에 석호는 조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 조금 바빴어요. 그리고 대장한테 틈틈이 얘기를 들었는데...
석호는 말을 하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접혀 있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세현은 석호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했다.
- 이게 뭐죠?
석호는 대장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아까 보낸 자료 있죠? 그거 모니터에 띄워 주실 수 있어요?
석호가 말을 하자 모니터에는 사진 한 장과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글자가 보였다. 모니터를 보던 철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도플갱어? 똑같은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만나면 죽는 뭐 그런 거?
철구의 말에 화면이 바뀌면서 '도플갱어'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도플갱어란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이지만 간단하게 그냥 더블(Double : 분신, 복제)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자신'을 만나는 일종의 심령 현상인데, 이름만 독일어일 뿐이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보이는 자신의 환영을 가리켜서 레이드(Wraith), 혹은 페치(Fetch)라고 부른다. 현대 정신의학 용어로는 오토스카피(Autoscopy : 자기상 환시)라고 한다."
철구는 그 화면을 보면서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 심령 현상? 귀신 얘기까지 나오는 건가?
철구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원 회장님께 어떤 정보를 하나 받았는데, 그게 바로 이 도플갱어와 관련된 것이었어요. 물론 심령 현상으로 도플갱어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도플갱어였어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허리를 세우며 석호 쪽을 쳐다보았다.
- 만들어지는 도플갱어?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바티칸에 계신 임 박사님께서 '기억을 지우고, 새로 쓰는 기술'이 그들에 의해 이미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그 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톰슨 병원에 잠입했었습니다.
철구는 임 박사라는 말이 나오자 마음이 조금 숙연해졌다. 세현은 그런 철구과 석호를 쳐다보다가 말을 꺼냈다.
- 기억을 지우고, 새로 쓰는 기술이라는 게 사실 특정 부분에 대한 기억을 조작하는 것일 뿐이잖아요. 그런데 도플갱어는 또 다른 나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석호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하고. 그런데 중국에서 그런 표본이 발견되었고, 제가 잠입했을 때에도 그런 실험체들이 몇몇 보였어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실험체라구요? 그럼 사람을 만들어서 기억을 집어넣는다는 건가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백지 상태의 뇌에 기억을 집어넣는 것은 이미 했던 일이구요. 이번 일은 그것과 조금 성격이 다른 겁니다. 이미 기억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죠.
석호의 말에 세현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을 했다.
- 그런데... 그게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게, 기억이 있는 상태에서 기억이 들어가면 기억들이 섞이죠. 우리 뇌는 하드디스크 같은 게 아니어서 기억을 지우고, 그 위에 덧쓰는 게 불가능해요. 기억이 있는 상태에서 기억을 집어넣는다면 분명 기존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뒤섞여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죠.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죠. 당연히 기억이 있는 상태에서 기억을 주입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요.
철구는 두 사람의 대화에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요는 기억이 있는 상태에서 기억을 넣으면 기억들이 뒤섞여서 안 된다는 건가요?
석호는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일단은 그렇죠. 하지만 제가 톰슨 병원에서 본 것은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석호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말도 안 되요. 어떻게 그렇게 하죠?
석호는 그러다가 뜬금없이 홍성표가 있는 병실의 CCTV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