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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69화 (169/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4. 의심(3)

- 저 원숭이는 어디서 데리고 온 거죠?

석호의 질문에 미연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얘기를 했다.

- 콩고에 있는 리저브 데 파운 데 트울루(Reserve de Faune de Tsoulou) 국립공원에서 데리고 왔어요.

- 음...

- 원숭이가 지금 몇 살이죠?

- 지금 23개월 됐죠.

- 여기에 온 지는 얼마나 됐나요?

석호의 질문에 미연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한 6개월 정도 됐는데요. 왜 그러시죠?

석호는 미연의 말에 자신이 생각한 가정을 얘기했다.

- 콩고에서 왔다면 배를 타고 이동했을 테고, 오는 길에는 차를 타고 이동했겠죠? 그리고 저 원숭이가 23개월 중에 6개월을 여기에 있었다면 17개월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르죠. 그리고 추출한 기억이 어느 시점의 어떤 기억이라는 걸 알 수 없지 않나요? 사람도 어떤 기억을 저장할 때, 그 기억만 저장되는 게 아니라 다른 기억의 간섭을 받죠. 어쩌면 이 원숭이도 추출했던 시점의 기억이 아니라 다른 시점의 기억의 간섭을 받은 걸 수도 있겠죠.

석호의 말에 미연은 그럴 듯 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음.. 그렇겠군요.

석호의 말에 달평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똑똑하시네요. 제가 생각해봐도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그 때 연구실 문이 열리면서 동진이 들어왔다.

- 다들 인사는 했나요?

동진이 연구실 안에 들어왔을 때 모두 컴퓨터 앞에 모여서 즐거운 표정으로 있자 의아한 듯이 모두를 쳐다보았다. 이 도깨비 같은 팀이 이렇게 모여서 화기애애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두 즐거운 모습이었다.

- 아! 센터장님!

석호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미연이 동진에게 다가오며 말을 했다.

- 원숭이 실험 성공했습니다.

미연의 말에 센터장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 그런가?

센터장의 반응에도 미연은 신나서 떠들었다.

- 지난 번에 콩고에서 데려온 원숭이한테 뇌파....

동진은 미연이 얘기를 손을 들어 끊었다.

- 알겠어.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를 통해서 보고, 최 박사님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니까 다들 친해지라고.

동진의 말에 달평이 얘기를 했다.

- 똑똑한 박사님이더라구요. 프로젝트가 뭐든 최 박사님이라면 성공할 겁니다.

달평의 말에 센터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 뭐 그건 그럴 테고. 아무튼 원숭이 실험 다음 계획은 잠깐 멈추고 이 프로젝트 먼저 진행해야 하니까 조금 서두르라고. 나야 느긋하지만 윗분은 그렇지 않으니까.

센터장이 그렇게 얘기를 하자 미연이 말을 했다.

- 아무리 바빠도 오늘은 회식을 하고 퇴근을 할 거에요.

미연의 말에 센터장은 미연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프로젝트 기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알아서 하고. 물론 이 최 박사님도 한 달만 파견 나오신 분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석호를 쳐다보았다. 석호는 센터장을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 그렇죠. 하지만 오늘 하루는 쉬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석호의 말에 센터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그러시죠.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최 박사님이시니까요.

센터장의 말에 미연이 센터장과 석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 책임자라뇨? 팀장은...

센터장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 프로젝트 책임자에 대한 알력 다툼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하고. 나는 이만.

센터장을 무책임한 말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석호는 조금 민망한 듯이 미연과 동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 조금 어이없군요. 책임자가 저라니.

석호의 말에 미연이 석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 무슨 말인지...

석호는 미연과 팀원들을 그 앞에 있는 탁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 내부에서 아무런 사전 교감이 없었던 것 같아서 조금 혼란스럽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윌슨 재단의 연구 자료입니다.

석호의 입에서 윌슨 재단이라는 말이 나오자 미연과 팀원들은 모두 조금은 놀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윌슨 재단은 전세계 석학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로 그 회원은 고작 10명 내외였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어떤 단체보다 대단했다. 그들의 연구 내용과 결과는 언제나 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 혹시 윌슨 재단 소속이세요?

달평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소속이긴 합니다만 정식 회원은 아직 아닙니다. 뭐랄까... 아직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 정도?

석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이 그들에게는 몹시 충격적이었다. 윌슨 재단의 정식 회원이라면야 이미 세계 최고의 권위자들이었지만, 윌슨 재단과 함께 일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이미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를 다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렇군요...

달평의 말에 미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래서 센터장님이 책임자 운운한 거로군요.

미연의 조금은 날카로운 말에 석호가 미연을 보며 말했다.

- 책임자는 없습니다. 이 연구는 공동 저자로 등록이 될 테니까요.

석호의 말에 미연은 관심없다는 듯이 말했다.

- 뭐 그런 건 상관없어요. 단지 재미없으면 곤란해요.

미연의 말에 달평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 그러니까요. 연구는 뭐니뭐니해도 재미죠. 하하하.

석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둘을 쳐다보았다. 철기는 뚱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그럼 저는 이제 돌아가야 되는 건가요?

철기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저었다.

- 어차피 데이터 분석이나 보관을 하는데 엔지니어 한 명이 필요했어요.

석호의 말에 철기의 표정이 풀리며 말했다.

- 그래요? 다행이네요. 저도 이 팀에서 일하면서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석호는 이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이 생각한 '그들'과 사뭇 다르다는 걸 느꼈다. 이들은 단지 연구가 좋고, 재미있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이들이 사람을 갖고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단편적인 경험이었지만, 석호는 그들에게서 인간을 경시하는 듯한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아무튼 오늘은 이만 접고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죠.

석호의 말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오늘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실 테니까 그런 줄 아십시오.

달평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연구복을 벗었고, 미연은 그런 달평에게 말을 했다.

- 어디 코가 삐뚤어지는지 아닌지 한 번 볼까?

다들 밖으로 나갈 때 석호는 탁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일단 잠입까지는 성공했는데, 다음이 감이 안 잡히는군.'

석호는 일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고자 했다. 석호는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밤이 늦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물론 석호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며 음료수만 마셨지만, 음료수만으로도 취하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 아주 무서운 얘기가 있더라구요. 큭..

달평이 술에 얼큰하게 취하자 미연을 보며 말했다.

- 무서운 얘기?

미연이 달평을 보자 달평은 다시 철기를 보며 말했다. 철기는 술에 취했지만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 네? 왜 나를... 그게...

철기가 당황하며 말을 하자 미연이 소리를 쳤다.

- 뭔데 사람을 궁금하게 해?

미연의 말에 철기가 움찔하며 말했다.

- 그게... 사실은 저도 인터넷 해커 그룹에서 들은 얘긴데... 기억을 조작하고, 주입하는 기술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철기의 말에 미연이 피식 웃었다.

-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미연의 말에 석호는 미연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들은 모르나 본데?'

석호는 그러면서 그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다.

- 그렇죠? 저희가 하는 일도 대단한 건데, 사람의 기억을 마음대로 주무르다니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철기의 말에 달평이 고개를 저었다.

- 모르는 일이야.

달평이 그렇게 얘기를 하자 미연과 철기가 달평을 쳐다보았다. 달평은 석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 최 박사님, 박사님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기억을 저장하는 일이라고 했죠? 전기적인 신호인 기억을 데이터화한다...

석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달평은 그 말에 트림을 커억하고 하더니 말을 이었다.

- 기억을 왜 저장하죠? 다시 풀어 보려면 당연히 하드웨어가 필요한데, 기억에 대한 하드웨어는 인간 아닙니까? 그러면 이미 인간에게 기억을 주입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요?

달평은 취한 상태에서도 아주 정확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얘기했다. 석호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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