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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68화 (168/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4. 의심(2)

- 의사를 하시기엔 지나치게 잘 생기셨군요.

동진의 말에 석호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외모가 직업을 정하진 않으니까요.

석호의 말에 동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그렇겠군요. 제 꼬라지를 보면 저는 서울역 노숙자가 딱이니까요.

동진은 푸념인지 아니면 넋두리인지 모를 말을 하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며 석호를 돌아보았다. 석호는 동진을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뭐 저랑은 이따 다시 만날 테니까 안쪽에 있는 연구실로 먼저 가시죠. 저도 사무실에 들렀다가 바로 연구소로 가겠습니다.

동진은 그렇게 자기가 할 말만 남기고 자신의 사무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석호는 그런 동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 뭐야, 저 사람.

석호는 연구실 쪽으로 몸을 돌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 실례합니다.

석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조용히!

석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그 목소리에 멈췄다. 그리고 소리없이 몸을 연구소 안으로 들였다. 연구소는 상당히 넓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 넓은 장소에 여러 동물 우리가 있었고, 한쪽에 모여 있는 모니터에서는 끊임없이 뇌파의 진동을 표시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른 쪽에는 마치 컴퓨터 서버실처럼 커다란 서버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연구실은 뇌를 연구하는 의학 실험실이라기보다 마치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보는 미치광이 공학자의 연구소 같은 느낌이었다. 석호가 안으로 들어왔지만, 안에 있는 세 명의 연구원들은 석호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우리 안에 있는 원숭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 실패 아닌가요?

한 연구원이 조금은 맥이 빠진 말투로 얘기를 하자 아까의 날카로운 목소리의 여자가 그를 노려보다 다시 원숭이 쪽을 쳐다보았다.

- 끼... 끼이.. 끼이익...

원숭이가 조금 힘겨운 듯한 소리를 내자 여자 연구원은 눈이 반짝였다.

- 오! 출력 화면!

여자의 목소리에 여자 뒤에서 숨죽여 원숭이를 지켜보던 빼빼 마른 남자 연구원이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앉아 무어라 열심히 자판을 쳤다. 그러자 곧 화면에 놀라운 장면이 나왔다. 흐릿하긴 했지만, 다른 원숭이의 모습이 보였다. 화면 안의 원숭이는 몹시 힘이 든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모니터 화면 쪽을 흐뭇한 표정을 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 OK! 일부 추출 성공입니다.

빼빼 마른 남자가 소리치자 앙칼진 목소리의 여자는 얼굴 표정이 조금 풀리며 그제야 석호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 어? 여긴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석호는 그런 여자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오늘 파견 나온 최태현이라고 합니다.

석호가 그렇게 대답을 하자 여자 연구원은 갑자기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표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구석에 세워놓고 나몰라라 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석호는 조금 얼떨떨 했다.

- 아! 최 박사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러더니 석호의 위아래를 살피며 말했다.

- 유병렬 박사님과 공동 연구자라고 해서 나이가 있으신 분인줄 알았는데 꽤 젊으시군요.

여자 연구원의 말에 석호는 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보기보다는 나이가 좀 있습니다.

석호의 말에 여자 연구원 옆에 있던 뚱뚱한 남자 연구원이 말을 했다.

- 나이가 있다구요? 제가 볼 때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데요. 하하하.

뚱뚱한 남자의 너스레에 석호는 웃으며 말했다.

- 그렇게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석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 연구원이 석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사이언스지의 논문에서요...

석호는 여자 연구원의 질문이 난감했다. 그리고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보다 궁금한 점을 먼저 묻다니.

- 여기 분위기가 자유분방하군요.

석호가 돌려서 얘기를 하자 여자 연구원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조금 자유롭긴 하죠. 그런데 그 사이언스 논문에서요. 뇌의 활성화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죠?

석호는 갑작스런 질문에 여자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 뇌의 활성화는 비활성 부분을 찾아내서 산소와 전기적 자극을 주어서 활성화시키는 계획이지요. 닥터...

석호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 연구원은 그제야 자신들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는지 말을 했다.

- 아! 저는 오미연 연구팀장이에요. 인사가 늦었네요.

미연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뚱뚱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석호를 보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조달평 연구원입니다. 팀장님보다 더 예쁘게 생기신 남자분이시네요. 하하하.

달평은 그렇게 말하고는 별로 우습지도 않았는데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모두의 눈이 컴퓨터 앞에 앉은 빼빼 마른 연구원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빼빼 마른 연구원은 그런 눈초리랑 상관없이 방금 전의 데이터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자 미연이 나서서 얘기를 했다.

- 저 연구원은 성철기 연구원이에요. 데이터 정리를 담당하고 있죠. 그러니까 저 연구원은 의학 분과가 아니라 공학 분과 소속이에요.

석호는 미연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석호를 보며 미연이 말을 했다.

- 센터장님은 만나 보셨나요?

석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구동진 센터장님은 만나 뵈었습니다.

석호의 말에 미연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여기는 뇌 과학 센터 3분과에요. 주로 기억과 관련된 정보를 분석하고 있어요.

석호는 미연을 말을 듣고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 특이한 화면이군요.

석호의 말에 미연은 당당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네. 방금 역사적인 순간이었거든요.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석호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미연을 쳐다보자 미연이 입을 열었다.

- 방금 원숭이의 기억을 이미지로 추출한 겁니다.

미연의 말에 석호는 크게 놀란 표정으로 미연을 쳐다보았다.

- 원숭이의 기억이요? 원숭이도 이미지로 기억을 하나요?

미연은 그런 석호를 보며 말했다.

- 이미지라뇨?

석호는 미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얘기를 했다.

- 동물의 뇌에 대해서는 연구한 적이 없어서요.

석호의 말에 미연은 알았다는 듯이 얘기를 했다.

- 인간의 뇌만 연구하셨군요. 원숭이는 유인원에 해당되는데 인간과 유사하게 기억을 저장하고 있어요. 물론 오랑우탄이나 고릴라가 원숭이보다 더 똑똑하긴 하지만 그만큼 저항도 세거든요. 그런데 저 일본원숭이한테서 기억을 추출하는 데 성공을 한 거죠.

석호는 그 말에 흥미를 느끼며 말을 했다.

- 원숭이의 뇌에서 기억을 추출한다는 게 흥미롭긴 하지만, 원숭이가 기억하는 건 단편이 아닐까요?

석호의 말에 미연이 고개를 저었다.

- 저희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원숭이 역시도 '무의식'의 영역이 있더라구요. 물론 아직 연구 초기 단계라 확증할 수는 없지만, 오늘 실험으로 원숭이도 오래 전 일을 기억하고 있고, 그것을 이미지로 추출할 수 있다는 걸 알아낸 거죠. 아무튼...

그러더니 미연은 몹시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 이렇게 성공했으니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술을 마실 수 있겠어요.

미연이 그렇게 얘기를 하자 달평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면서 말했다.

- 그럼 오늘은 퇴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미연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뭐 센터장님의 재량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을까?

석호는 왠지 적응이 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그럭저럭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뒤에 앉아 있던 철기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 으아....

철기의 비명 소리에 모두 철기 쪽을 돌아보았다. 철기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 이... 이게 뭐죠?

미연과 달평, 석호가 모니터 앞으로 다가갔다. 화면에는 마치 악마와 같은 얼굴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미연이 다시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 앞으로 돌려 봐.

그러자 철기가 조그 셔틀을 천천히 돌렸다. 화면이 앞으로 천천히 돌아가자 앞 화면에서 무언가 섬뜩한 이미지가 스치고 지나갔다.

- 멈춰!

미연의 목소리에 철기가 조그 셔틀을 멈췄다. 화면에는 마치 악마와 같은 형상의 모습이 보였다. 미연은 그 화면을 보며 말했다.

- 방금 추출한 기억 이미지 맞아?

미연의 말에 철기는 고개를 끄떡였다. 미연과 달평은 그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 저게 뭐야? 악마인데... 좀 웃기게 생겼는데...

석호는 그 이미지를 한참 쳐다보다가 말을 했다.

- 코덱스 기가스(Codex Gigas)에 나오는 악마 사진입니다.

석호의 말에 미연과 달평, 철기는 모두 석호를 쳐다보았다.

- 코덱스.. 뭐요?

미연이 석호를 향해 묻자 석호는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 흔히들 악마의 성경이라고 하는 코덱스 기가스에 나오는 악마의 그림이죠. 손가락이 네 개씩이고, 머리에 뿔이 나 있고, 웃고 있는 형상이죠. 물론 여기에는 흑백으로 나타났지만, 얼굴은 녹색을 띠고 있습니다.

석호의 말에 달평이 석호를 놀랍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 사탄의 성경이라구요? 혹시 사타니스트(Satanist)에요?

달평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저는 크리스챤입니다. 그것도 독실한.

- 그럼 왜 그런 책을...

석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악마의 성경이라고 불리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답니다. 다만 거기에 악마의 그림이 있고, 그와 관련된 전설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이죠.

석호의 말에 달평은 입술을 쭉 내밀며 말했다.

- 이 그림보다 최 박사님이 더 놀랍네요. 하하하.

달평이 웃으며 말을 했을 때 미연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 도대체 이 영상이 여기서 왜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요?

미연의 말에 달평과 철기는 고개를 저었다. 석호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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