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66화 (166/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3. 알 수 없는 정황(3)

- 저는 멀쩡합니다.

그러나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전문의로서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망상증도 있는 것 같고요, 분열증 증세도 보여요.

세현의 말에 성표는 크게 도리질을 했다.

- 아니라고. 난 그런 게 없다고.

세현은 소리를 치는 성표에게 말을 했다.

- 이건 본인을 위해서도 필요한 검사에요. 본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잖아요.

세현의 말에 성표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어쩌다가 이렇게...

세현은 그런 성표를 놔두고 밖으로 나와 남자 간호사들에게 얘기를 했다.

- 저 환자 어디 못 가게 해 주세요.

세현이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생각을 했다.

- 도대체 뭐지? 그리고 신부님은 뭐하길래 요즘 볼 수가 없는 거야.

세현은 혼잣말처럼 지껄였다.

밖으로 나와 한남대교 쪽으로 향해 가던 철구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7시 25분. 그리고 소설 구절을 떠올렸다.

'미려는 목이 졸리면서 그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자신이 어쩌면 처음으로 사랑을 한 남자인 성표가 자신을 죽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성표 뒤에 보이는 시계는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어서 그런지 차가 몹시 막혔다. 이리저리 끼어들면서 앞으로 전진을 하고 있었지만, 차가 너무 막혔다. 제 시간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다른 방법을 취할 도리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철구는 호봉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너 강북 쪽에서 힘 좀 쓰냐?

철구의 질문에 호봉이는 조금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럼요.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철구는 거두절미하고 얘기를 했다.

- 종로구 운니동 쪽인데, 거기에 애들 좀 풀어라.

철구는 주소를 얘기해 주면서 거기에 있는 여자를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철구는 호봉이와 전화를 끊고 다시 전면을 주시했다.

- 젠장, 그 소설 진짜야, 구라야. 이거야 원. 미치겠네.

철구는 핸들을 손으로 내려치며 중얼거렸다. 한남대교를 빠져나오고도 꽤 오랫동안 길이 막혔다. 그러나 남산 터널 쪽에 이르자 정체가 어느 정도 풀렸다. 철구는 최대한 빨리 달렸다. 그러면서 시계를 보았다. 8시 20분이었다.

- 늦겠네.

철구는 다시 호봉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애들 풀어 놓고, 여자 섭외했어?

철구의 질문에 호봉이가 주저하며 말했다.

- 애들은 풀어 놨는데, 여자는 찾지 못했습니다.

호봉이의 말에 철구가 다시 다그치듯 말했다.

- 여자 반드시 찾아야 된다. 그 여자 이름이 '미려'니까 애들 시켜서 찾아보라고 해.

철구는 전화를 끊고 속도를 더 올렸다. 아무리 이름을 알려준들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그들에게는 한강에서 김 서방 찾기나 다름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번이라도 마주친 자신이 가야 해결될 것 같았다. 철구는 종로 3가를 지나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시계를 보았다. 8시 55분이었다. 철구는 주소지 근처에 대충 차를 박아놓고 뛰어 내려 그 집 주소 쪽으로 향해 달렸다. 군데군데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보였다.

- 이 새끼들 완전히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구만.

철구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번개가 철구 쪽으로 향해 왔다.

- 형님, 무슨 일 때문인가요?

철구는 시계를 쳐다보며 번개한테 말했다.

- 일단 어떤 놈이 여자를 목조를...

그 순간 철구는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 집 안 조사해 봤어?

철구의 말에 번개가 말했다.

- 초인종도 눌러보고, 다 했는데 아무 소리도 없었습니다.

철구는 그 순간 미려의 집으로 몸을 돌렸다. 분명 문이 잠겨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서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철구는 번개한테 소리쳤다.

- 문 따!

철구의 말에 번개는 자신의 별명처럼 번개같이 대문을 땄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문도 순식간에 열었다. 그러자 철구는 번개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철구는 그 순간 건넌방 쪽으로 몸을 돌려 문을 걷어찼다. 그리고 철구는 어두운 방 안에서 보이는 희미한 인영(人影)을 향해 몸을 던졌다. 번개가 뒤따라 들어와 불을 켰다. 그러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철구는 그 어두운 곳에서 웬 남자의 허벅지를 밟고 있었고, 바닥에는 두 손이 묶인 채 입이 청테이프로 막힌 여자가 누워 있었다. 번개는 여자의 입에서 청테이프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그 때 철구의 입에서 몹시 화가 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너 이 새끼, 어떻게 나왔어?

철구에게 밟혀 있는 놈은 성표였다. 성표는 철구를 보고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너... 마음에 안 들어.

철구는 성표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이 새끼 뭐야?

철구의 말에 성표는 이상하게 눈을 굴리며 말했다.

- 그냥.... 무슨 소설가라고...

철구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의 멱살을 쥐었다.

- 그게 뭔 개소리야?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그냥 철구를 쳐다볼 뿐이었다. 사실 철구가 집 안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도 바로 그 '시계'였다. 보통 외부일 경우에는 '시계'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않는다. '시간'에 대해서만 말을 할 뿐. 그런데 시계를 밝힌다는 건 '시계'가 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철구는 집 안이 범행 장소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철구는 성표의 말에 허벅지를 더 세게 밟았다. 하지만 밟혀 있는 성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 헛소리를 해 댔다. 옆에 있던 번개가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여자는 병원으로 옮겨야 될 것 같습니다.

철구는 번개를 향해 고개를 끄떡였다. 번개는 119를 불렀고, 철구는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 또라이 새끼, 여기서 사고 쳤어.

성준과 전화를 끝내고 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할매, 어떻게 지켰길래 이 새끼가 여기 와 있어?

철구의 말에 세현이 놀란 듯이 소리쳤다.

- 말도 안 돼요. 성표 씨는 지금 병실에 있어요.

철구는 아래 밟혀 있는 성표를 보았다. 환한 빛 아래에서 보니 성표와 조금 다르게 생긴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외모가 성표와 쌍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똑같았다. 철구는 밟혀 있는 놈의 지갑을 꺼냈다. 거기에는 신분증이 있었다. 그 신분증은 놀랍게도 '홍성표'의 것이었다.

- 이 새끼들 뭐야?

철구는 엎드려 있는 성표를 향해 소리를 쳤다. 하지만 성표는 아무런 대답이 없이 미친 듯이 웃고만 있었다.

- 아, 씨발... 이게 뭐지?

성준이 오자 철구는 넘어져 있는 성표를 인계하고 말했다.

- 꼬이고 있어.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러게요. 그냥 정신 나간 놈 얘긴 줄 알았는데 일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네요.

철구는 성준의 어깨를 툭 치고는 가면서 말했다.

- 저 자식 조사하고 특이 사항이 있으면 말해줘.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전부 특이 사항이네요. 아무튼 저 놈 털어보고 연락드릴게요.

철구는 성준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향했다. 성표를 취조하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철구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세현은 성표와 같이 있었다. 철구는 성표의 병실 안으로 들어가 성표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소리를 쳤다.

- 너 솔직히 말해. 너 뭐하는 새끼야?

철구의 뜬금없는 말에 성표는 철구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왜 보자마자...

그러나 철구는 성표의 말을 끊고 얘기를 했다.

- 왜 너랑 비슷한 '성표'라는 놈이 있지? 그리고 그 새끼 묘한 말을 중얼거리던데. '쓸데없이 자세하게 써서.'라고 그러던데 그게 뭐야?

철구의 질문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 나도 모르는 일이에요. 도대체 저한테 왜? 그리고 저랑 비슷한 성표라뇨?

철구는 양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 너 소설 다음 회 읽었냐?

철구의 질문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 여기 이렇게 갇혀 있는데 소설을 어떻게 읽어요?

성표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거기 너랑 아주 비슷한 놈이 하나 있었어. 미려 씨를 죽이려고 했지.

철구의 말에 성표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미.. 미려 씨가요?

철구는 성표를 보며 말했다.

- 혹시 네 과거의 기억 속에 '미려'라는 여자가 있었는지 생각해 봐. 일단 '광민'이란 사람의 고리는 알았는데, '미려'라는 여자는 너무 뜬금이 없어서.

철구의 질문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런 이름의 여자는 몰라요. 그런데 미려 씨는...

철구는 성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 병원에 갔는데 괜찮을 거야.

철구의 말에 성표는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철구는 그런 성표를 쳐다보며 말했다.

- 미려라는 여자는 아니지만, '광민'이라는 사람의 살해 혐의는 여전히 너가 가장 유력해.

철구의 말에 성표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 저는 아니에요.

철구는 성표의 말에 픽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 그렇게 백날 말해도 여전히 경찰은 '너'를 유력한 용의자로 찾고 있어. 널 경찰에 넘길 수도 있지만, 우선은 그 '어처구니없는 일'들 먼저 해결해야겠지?

철구의 말에 성표는 철구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철구는 그런 성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 지금부터 너와 관련된 모든 걸 빠짐없이 말해줘야겠어. 알겠지?

철구는 성표를 조금 더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세현 역시 철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철구는 뒤따라 나오는 세현에게 얘기를 했다.

- 할매는 이 자식이 얘기하는 내용들을 빠짐없이 기록해줘. 그리고 대장한테 이 자식 뒤를 제대로 한 번 털어보라고 얘기 좀 전해주고.

철구의 말에 세현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 다 좋은데, 할매 소리 좀 그만 할래요?

철구는 사무실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 할매라고 안 하면, 당신이 할매라는 걸 까먹거든.

철구가 그렇게 말하고 나가자 세현은 철구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 이러다 내가 미치지. 에이 신경 쓰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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