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63화 (16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2. 흔적을 찾다(3)

철구는 칠곡으로 내려가면서 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칠곡으로 가는 중입니다. 신부님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석호는 한국에 들어와서 가급적이면 은밀하게 행동을 했다. 특히나 지금처럼 그들이 지하로 숨은 상황에서 두드러지게 그들을 조사하고 다닌다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신분이 노출된 최베드로 신부가 어떻게 그들에게 당했는지 이미 충분히 보았기에 석호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더욱 은밀하게 행동을 했다. 예전처럼 동시다발적으로 그들이 일을 진행했다면 어떤 한 부분을 파고들어도 그들이 쉽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 때와 많이 달랐다. 석호는 독일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그들의 일에 접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철구가 의뢰받은 일이 석호가 독일에서 받은 정보와 매우 흡사해 석호는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발설해서 오히려 현재 상황에 혼선을 줄까봐 석호는 혼자 은밀히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철구의 전화를 받은 석호는 일단은 거절을 했다.

- 지금 제가 알아보고 있는 정보가 어쩌면 철구 씨가 쫓고 있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톰슨 병원 쪽과 접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석호의 말에 철구는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철구는 괜히 석호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전과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 더욱이 무언가 은밀하게 혼자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가끔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도 대강 얼버무리고 넘어갔기에 철구는 막연하게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일이라는 게 철구가 느끼기엔 대단히 위험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도대체 석호는 무슨 원죄(原罪)를 타고 태어났기에 저런 위험한 일만 하는지 불쌍하게도 느껴졌다.

- 뭐 조만간 알 수 있겠지. 뭐.

철구는 차에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리고는 밤이 늦어서야 칠곡에 도착했다. 철구는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갔다. 띄엄띄엄 보이는 인가들 사이를 지나 사고 현장에 도착하자 철구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편리하구만. 참나 이렇게 쉽게 찾고.

철구는 대장이 보내 준 사고 현장의 지도를 보았다. 대장이 직접 프로그래밍한 내이게이션은 대장이 직접 목적지를 입력하면 그 곳까지 가는 최단 길을 알려주었다. 어느 장소이건 최소 20m 이내로 알아내기 때문에 철구는 위치를 탐문하는 것 같은 불필요한 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철구가 내려서 바라본 집터는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불탄 채 그대로 있었다.

- 흉가가 따로 없군.

철구는 모두 불타버린 집을 쳐다보았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 그런지 빛 하나 없이 몹시 어두웠다. 철구는 차 안을 뒤져 플래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집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불에 몽땅 타버렸지만, 아직 건물 자체는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철구는 플래시로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몽땅 불 타버려서인지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10년 간 그대로 방치된 건물이었기에 그 훼손 정도도 심해 무언가가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철구는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소설에 나온 2층 비밀의 방이 어디일까 하고 여기저기를 훑어보았다. 문도 모두 불이 타 있었기에 방 안이 훤히 보였다. 플래시로 이리저리를 비춰보았지만 딱히 발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1층보다 2층이 덜 타서 이런 저런 것들이 보이긴 했다. 철구는 2층 끝 방으로 걸어갔다. 다른 곳과 다르게 2층 끝 방은 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 이건 뭔데 문이 있는 거야?

철구는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돌렸다. 그런데 손잡이가 녹슬어서인지 '끽끽' 소리만 나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철구는 힘껏 문을 발로 찼다. 그러자 부식된 문의 나무 조각이 깨지고 안에 덧댄 얇은 철판이 보였다.

- 나무문에 철판이라... 뭐야 이건.

철구는 주머니에서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꺼내 열쇠 구멍을 긁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열쇠 구멍을 움직여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괴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안은 놀랍게도 예전의 방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철구는 플래시로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들, 장난감과 어린 아이의 옷이 보였다. 철구는 플래시로 사방을 비춰보았다. 그곳은 전형적인 어린 아이의 방이었다. 부서진 책상이나 벽에 붙은 지도며, 희미한 그림만 남아 있는 벽지까지.

- 어린 아이 얘기는 안 나왔는데? 이게 뭐지?

철구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 이거야 원.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만.

철구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위층을 한 번 훑어보았다.

- 낮에 다시 와 봐야겠군.

철구는 차를 몰고 그 폐건물에서 나오면서 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밤늦게 미안하다.

철구의 말에 성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 뭘 그런 걸로 그러세요?

- 부탁 하나 할 게 있는데...

철구는 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며 성준에게 얘기를 했다. 성준은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철구는 읍내로 나와 방을 잡았다. 다음 날 아침 철구가 눈을 뜬 것은 성준의 전화 때문이었다.

- 형님, 어디쯤 계세요?

철구는 성준의 뚱딴지같은 말에 대답을 했다.

- 잠깐. 팩스 받을 수 있는 데 가서..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성준의 말에 철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저 칠곡군에 왔어요. 어디쯤이세요?

철구는 여관에서 나와 성준을 만났다. 성준은 서류 봉투를 하나 들고 철구에게 다가왔다.

- 여긴 왜 온 거야?

철구의 말에 성준이 대답을 했다.

- 어제 형님 전화 받고 이 사건 파일을 봤는데, 개판이더라구요. 그래서 한 번 보려구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피식 웃었다.

- 이런 시골에서야 뭐...

철구의 말에 성준이 철구를 이끌고 근처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해장국을 시키고 마주 앉은 성준은 철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못 본 사이에 형님 몸이 많이 상했네요.

성준은 면도도 하지 않아 까끌한 철구의 얼굴을 보더니 측은한 표정으로 얘기를 했다. 철구는 자신의 얼굴을 쓸며 말했다.

- 쨔샤. 홀애비가 다 그런 거지 뭐.

철구의 씁쓸한 말에 성준은 쓰게 웃었다. 철구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성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서류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보여주었다.

- 화재로 인한 사건인데, 발견된 시신은 불에 탄 성인 시신 한 구였는데, 두개골 부분이 함몰되었죠. 검시 기록에는 2층에서 떨어져서 두개골이 깨진 것으로 나왔어요.

철구는 해장국을 한 입 떠서 먹다가 성준을 보며 말했다.

- 성인 시신 한 구? 어린 아이 시신은?

철구는 서류를 몇 장 넘기면서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 성인 시신 한 구밖에 없었다는 데요?

철구는 밥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 혹시 동거인이나 그런 사람은 없었어?

철구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 그런 말은 없는데요?

- 그래?

해장국을 다 먹은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준에게 얘기를 했다.

-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나 좀 도와주라.

철구의 말에 성준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그러려고 내려왔어요. 형님이 냄새 맡은 사건인데 뭔가 있겠죠.

철구는 성준을 데리고 지난밤에 갔던 집으로 갔다. 성준도 그 곳이 사건 현장임을 대번에 알았다.

- 10년이나 지났는데 그대로 놔뒀군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대답을 했다.

- 사유지니까. 뭐 그런 것보다 일단 저 위로 올라가 보자구.

철구는 성준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지난밤에 들어갔던 방을 향해 갔다. 문을 열자 밤에는 느끼지 못했던 곰팡이 냄새가 퍼져왔다.

- 이 방은 뭐죠?

방 안으로 들어온 성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 이건 마치 어린 아이 방 같은데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지? 분명 성인 남자 시신 하나만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이상하지?

철구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 그냥 어린 아이 방인데요? 이게 사건하고 무슨 관련이 있죠?

성준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었다.

-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이 방은 아주 이질적이야. 그래서 이상하지.

성준도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긴 한데요. 글쎄 저는 이 방이 뭔지는.

철구는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성준 역시 철구 뒤를 따라 나왔다. 철구가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걷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돌려 그 앞방으로 들어갔다. 성준은 철구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그냥 지켜보았다. 철구는 그 방을 쓱 둘러보더니 바깥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성준과 함께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 별 특이한 게 없군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성준은 그런 철구에게 말을 걸었다.

- 그럼 일단 마을 탐문을....

그런데 그 순간 철구가 갑자기 건물 안으로 뛰듯이 걸어 들어갔다. 성준은 그런 철구를 쳐다보다가 같이 따라 들어갔다. 철구는 2층에 있는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벽을 손으로 두드려보았다. 돌 벽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만 들렸다. 뒤따라 들어온 성준은 그런 철구를 지켜보았다.

- 분명 뭔가 있어.

철구는 벽을 이리저리 두드리다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책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여기 아니면 없는데...

철구의 중얼거림이 뭔지 궁금했지만, 성준은 꾹 참았다. 그러다가 철구가 소리를 질렀다.

- 이 자식. 여기구만.

철구가 책상에 앉아 발을 옆에 있는 서랍장 뒤로 넘기더니 발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런데 그 순간 소리도 없이 벽이 뒤집혔다. 그런데 그 앞에 펼쳐진 광경에 철구나 성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이거 완전히 쓰레기 같은 새끼잖아.

철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성준 역시 이걸 만든 놈은 미친놈이라고 생각을 했다. 철구는 전화기를 꺼내 세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성표, 그 새끼 아직 병원에 있어?

철구의 말에 세현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한다면서 갔는데요?

철구는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광경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았다. 벽 가운데 커다란 실린더 안에는 어린 아이 시신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포르말린이 가득 차 있었고, 아이는 부패되지 않은 채 여전히 그 실린더 안에 둥둥 떠 있었다. 실린더 아래에는 '사랑하는 철민이'라는 태그가 보였다. 그리고 벽에는 그 아이로 보이는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한쪽에는 그 아이가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초등학교 교복과 체육복, 그리고 옷가지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았을 것 같은 장난감이 보였다.

- 이 새끼 완전 사이코였잖아.

철구의 투덜거림에 성준은 인상을 쓰며 철구 옆에 서서 물었다.

- 이런 게 있는 줄 어떻게 아셨어요?

성준의 말에 철구 역시 인상을 쓰며 말했다.

- 밤에 봤을 땐 몰랐는데, 낮에 보니까 방 구조나 크기가 거의 같더라구. 그런데 이 방만 유독 조금 작게 느껴졌거든. 그래서 바깥에서 대충 눈으로 크기를 가늠해 보니까 얼마쯤 공간이 비는 것 같았지. 그래서 아주 고전적이지만 이런 장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거야.

성준은 철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보고 지나칠 법한 것이었다. 보통의 눈썰미가 아니라면 이 큰 집에 이런 작은 공간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성준은 그런 철구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 형님, 아직 죽지 않으셨군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니가 죽은 거야.

철구는 그 실린더 있는 쪽을 보면서 말했다.

- 여기 조사한 놈들은 뭐야?

철구의 말에 성준이 얘기를 했다.

- 저한테 하시는 말씀 같네요. 저 같아도 못 찾았을 것 같은데요?

철구는 그런 성준을 흘끗 보고는 입을 닫았다.

- 아무튼 이거 문제가 많아 보여.

철구와 성준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성준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일단 여기는 폐쇄할 예정이에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차에 올라탄 철구가 자신이 의뢰를 받은 성표에 대한 얘기를 성준에게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성준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그 자식이 의심스러우니까 한 번 조사를 해 보죠.

그렇게 얘기를 하고 철구와 성준은 자료철을 보면서 차를 몰아 성표와 관련된 내용을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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