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1 - 2. 흔적을 찾다(2)
- 미려 씨, 오늘은 일단 들어가세요. 제가 해결할 일이 있어서요.
성표의 말에 미려는 놀란 눈으로 성표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귀를 파며 그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미려는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성표에게 얘기를 했다.
- 괘.. 괜찮겠어요?
성표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철구에게 말했다.
- 일단 장소를 옮기시죠.
성표의 말에 철구도 고개를 끄떡였다. 성표와 철구는 미려와 헤어지고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깨끗한 건물 모습에 성표는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철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철구는 불을 켜고 탁자 앞에 앉았다. 성표 역시 철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와서 앉았다.
- 자, 여기는 다 괜찮은 곳이니까 이제 편하게 얘기해 봅시다.
그리고는 철구가 인터폰을 눌러 세현을 불렀다. 세현은 평상복 차림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안으로 들어와서 성표를 보고는 세현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 이 분은...
성표의 말에 철구가 말을 이었다.
- 정신과 의사. 당신의 의뢰랑 그 소설 내용, 그리고 당신의 정신 상태를 분석해 줄.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 저는 사람만 찾고 싶을 뿐입니다.
그 말에 철구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성표를 쏘아 보며 물었다.
- 그 소설이 사실인가요?
철구의 질문에 성표는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 역시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럼 그 소설과 관련된 내용이 사실이란 걸 당신과 그 글을 쓴 사람, 그러니까 김철민로 생각되는 사람, 둘만 알고 있는 거죠?
철구의 말에 성표가 고개를 또다시 끄떡였다. 철구는 탁자를 손으로 치며 말했다.
- 그런데 그 김철민은 죽었고, 당신만 알고 있고. 그런데 그게 소설로 올라왔다.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성표를 쏘아보며 말했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그 글을 올린 사람은 당신일 수밖에 없잖아요?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겠죠. 자신의 치부(恥部)와 관련된 내용을 본인이 올릴 이유가 없죠.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숙였다. 철구는 그런 성표에게 얘기를 했다.
-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그 글을 올린 곳은 뭐 여러 경로를 거쳤지만, 송도에 있는 톰슨 병원이라고 하던데요? 혹시 톰슨 병원에서 일하십니까?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 저는 이름만 아는 병원입니다. 그리고 제가 병원을 가더라도 굳이 송도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지요. 그럼 이제 단순명료해지죠.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들었다.
- 그 소설은 거짓말이고, 어쩌면 성표 씨의 공상(空想)이 마치 그걸 사실로 받아들였다면 어떨까요? 물론 현재 일어난 일은 아직 판단할 수는 없지만.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오. 그건 사실입니다. 확인해 보시면 될 겁니다.
그 말에 철구가 허공을 향해 소리를 쳤다.
- 대장, 김철민하고 그 아버지 신상 좀 털어줘.
철구의 뜬금없는 말에 성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그게 무.. 무슨...
그런데 그 때 컴퓨터 화면이 커지면서 철민의 아버지 김광민의 신상이 나왔다.
- 삐삐. 화면에 나왔다. 그런데 김철민 신상은 찾을 수가 없다.
화면에는 철민의 아버지 사진이 먼저 떴다. 그 사진을 보자 성표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뺐다.
- 저... 저건..
그리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자 김광민에 대한 기록이 나왔다.
김광민
1955년 출생
중간 기록 소실
1974년 OO대학교 의과대학 입학
1979년 OO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1979년 육군 OO부대 군의관 복무
1982년 육군 OO부대 제대
1984년 결혼
1985년 득남
1988년 서울 OO병원 전문의
1999년 서울 OO병원 과장
2002년 이혼
2002년 서울 OO병원 사직
2002년 경상북도 칠곡군 보건소
2003년 사망
범죄 기록 : 없음
철구는 그 화면을 보며 말했다.
- 입양 기록은 안 남았군.
철구의 말에 또다시 삐삐 소리가 들리며 기계음이 들렸다.
- 입양 기록은 현재 전산 상에 남아있지 않다.
철구는 그 화면을 보며 물었다.
-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럼 그 김광민 부인은 어떻게 되었어?
철구의 말에 김광민의 부인에 대한 신상이 떴다. 그다지 이상한 것은 없었지만, 2002년 김광민과 이혼한 후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 이거 뭐 이렇게 냄새가 많이 나?
철구가 혼자 중얼거리다가 성표를 쳐다보았다.
- 당신이 보기에도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철구의 말에 성표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라면 충분히 이상한 걸 느꼈을 테지만, 현재 성표는 조금은 넋이 나가 있었다. 세현이 그 화면을 보더니 철구에게 물었다.
- 이상하지 않아요? 왜 직업도 의사인 사람이 모든 걸 팽개치고, 시골로 이사를 갔을까요. 게다가 소설에 따르면 흉가로 소문이 자자한 흉가를 골라서 말이죠.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냐. 일단 아들하고 관련된 내용이 없잖아. 분명히 아들을 낳았으면 아들하고 관련된 내용이 나올 텐데 말야.
- 그렇군요.
철구는 그 말에 또다시 말을 이었다.
- 어렵군. 아들과 관련된 내용, 입양과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하고 갑자기 모든 걸 그만 두고 떠난 것. 뭐 하나 의심스럽지 않은 게 없는 인간이군.
철구는 성표를 쳐다보았다.
- 그럼 이제 그 소설의 내용을 자세히 얘기를 해 주시죠. 도대체 뭐가 뭔지 알아봅시다.
성표는 철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그... 그게 전부에요. 다른 감추는 게 없어요.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럼 같이 그 곳에 한 번 가볼까요? 그 불탄 집에.
철구의 말에 성표는 철구를 보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싫... 싫어요. 그 집은... 그...
철구는 성표의 태도에 피식 웃었다.
- 왜요? 귀신이 나올까봐?
철구의 말에 성표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 그... 그게 아니라... 그 집... 그 집에 살던... 철민이 아버지는... 괴... 괴물이었어요.
성표는 갑자기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치 간질을 하듯이 그 자리에 쓰러져 몸을 떨었다. 세현은 그런 성표에게 다가가 눈을 까뒤집었다. 그리고는 철구에게 얘기를 했다.
- 발작 같아요. 철구 씨 이 사람 좀 잡아줘요.
철구가 성표를 부여잡자 세현이 서랍을 열고 진정제를 꺼내 성표에게 주사를 했다. 덜덜 떨던 성표는 의식을 잃듯이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철구는 그런 성표를 보더니 세현에게 말을 했다.
- 이 놈 뭐야?
철구의 말에 세현이 말을 했다.
- 과거에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이 겪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인한 발작 같아요.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들한테 나타나는 증상이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입맛을 다셨다.
- 복잡하군.
철구는 성표를 안아들고 옆에 있는 병실로 옮겼다. 성표를 침대에 눕히고 세현에게 얘기를 했다.
- 이 놈 조금 정신 나간 놈 같아 보이던데. 어때?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특히 '철민'이라는 이름보다 '광민'이란 이름에 더 크게 반응을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세현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음... 그럼 이 자식이 진짜 또라이일 수도 있겠군.
철구의 말에 세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 평소에는 잠재되어 있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죠.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문득 세현을 보며 물었다.
- 그.. 소설에서 현재 죽은 사람 이름도 광민 아니었나?
세현은 그 말에 문득 떠오른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맞아요. 그 사람 이름도 광민이었어요.
철구는 관자놀이를 비비며 말했다.
- 광민... 그 이름이 문젠가? 할매, 아무튼 난 이 놈 말이 맞는지 칠곡군으로 가볼 테니까 이 놈 좀 잘 봐죠.
철구의 말에 세현이 철구를 흘겨보았다.
- 할매라고 하지 말랬죠!
철구는 그 말에 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세현은 그런 철구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