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10. 어둠 속으로(3) (完)
소라는 일기장 파일을 저장하고 어둠을 응시했다.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엄마...
소라의 눈에서 피고름이 섞인 눈물이 흘렀다. 그랬다. 소라는 자신이 살아온 것이 어쩌면 엄마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이렇게 아픈 자신을 보듬어줄 수 있는 엄마를 예전처럼 돌려놓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을까? 소라는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사라진 지금 살아갈 이유가 없었지만 왠지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다. 단순히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아니었다. 어쩌면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마음, 자신의 틀 안에서 전부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이제 그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마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 것이리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맹목일 수 있지만, 그 사랑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 받았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소라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죽기는 쉽지만 살기는 어렵다.'
소라는 아무 것도 아닌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 이 한 목숨 끊는 것이야 그리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산다는 것. 그건 소라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살아가고 있다. 소라는 무릎을 세운 채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오후에 세현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 소라가 입을 열었다.
- 서버와 백본망이 필요해요.
소라의 말에 세현은 무슨 소린가 싶어서 소라를 쳐다보았다.
- 그 놈들에 대한 정보를 다 모을 거예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정보를.
소라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래요.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휴식과 식사에요.
세현의 말에 소라는 고개를 저었다.
- 밥은 이제 먹을 게요. 치료도 열심히 받을 거구요. 하지만 이 일은 지금부터 시작할 거예요.
세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필요한 게 있으면 여기에 적어놔요. 내가 사다 줄게요.
그러자 소라는 고개를 저었다.
- 카드를 주세요. 한도가 조금 큰 걸로요. 제가 금방 벌어서 갚아드릴게요.
소라의 말에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지갑에 있는 카드를 꺼내 주었다.
'하긴 아까 얘기한 서버, 백본망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소라는 세현의 카드를 받고 노트북을 켜더니 재빨리 이것저것을 주문을 했다. 주문을 하는 동안 세현의 휴대 전화에는 결재 메시지가 떴다. 세현은 소라의 눈이 빠르게 돌아가고 손이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고 몹시 놀랐다. 붕대를 감은 손이었는데도 타이핑 치는데 전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한 20여 분이 지나자 소라는 세현에게 카드를 주며 말했다.
- 한 3000만 원쯤 썼어요. 그 돈은 제가 다음 달 내로 드릴게요.
세현은 소라의 아무렇지도 않은 말에 놀랐다. 3000만 원을 쓴 것도 놀라운 일인데, 병실 안에서 어떻게 3000만 원을 준다는 것인지도 이해가 안 갔다.
- 아.. 아니 안 줘도 되요.
소라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아니에요. 이건 내 싸움이니까 내가 꼭 대가를 지불할 거예요.
그러더니 세현이 가져온 식판을 받아들더니 음식을 입에 마구 넣었다.
- 천천히 먹어요. 체해요.
하지만 소라는 뭔가 의지를 다지듯이 입속에 음식을 채워 넣었다. 세현은 그런 소라를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소라가 주문한 물건들이 도착했고, 소라의 병실 옆쪽에 온갖 기계들이 설치가 되었다. 그리고 소라의 병실 안으로는 기다란 선 하나만 뽑아져 나왔다. 세현은 알지도 못할 기계들이 설치가 되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고, 소라가 긴 연결선을 자신의 노트북과 연결할 때 입을 열었다.
- 저것들은 다 뭐에요?
소라는 어제부터 갑자기 식욕이 폭발했는지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 저 옆에 있는 건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하고, 서버(Server)랑, 프록시(Proxy)... 그리고 여기 연결선은 선더볼트(ThunderBolt) 단자에요. USB나 그런 걸로 하면 속도도 느리고...
세현은 소라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냥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는 게 아니구요?
세현의 말에 소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전 세계에 있는 그 놈들 정보를 다 모으려면 이 정도로도 부족해요. 뭐 지금은 이걸로 일단 시작을 해야죠.
세현은 멀찍이서 소라의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알던 컴퓨터 바탕화면이 아니라 검은 화면에 영어와 숫자들이 마구 늘어서 있었다.
- 난 봐도 모르겠군.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석호에게 전화를 걸어 소라의 심리 상태나 상황이 전보다는 나아졌음을 알렸다. 그리고 철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상이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철구는 밖으로 나갔고, 그 이후로 연락 한 번 없었다. 세현이 몇 번 전화를 했지만, 그 때마다 바쁘다면서 전화를 끊곤 했다. 철구가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자 세현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 의자에 몸을 기댔다.
- 뭐 하고 다니는 거야?
며칠 후 세현은 병원에서 오늘 환자가 누구인가 차트를 살피다가 갑자기 소라의 호출을 받았다. 세현은 놀라 얼른 뛰어 내려갔다.
- 무슨 일이에요?
소라는 모니터를 확인하면서 뭐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 혹시 신아 맥컬리 병원 아세요?
소라의 말에 세현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소라는 몇 번 타이핑을 치더니 화면을 돌려 세현에게 보여주었다. 세현은 거기에 나온 내용들을 읽어보았다.
- 이거 어디서 얻은 자료에요?
세현의 말에 소라는 마우스를 스크롤하더니 얘기를 했다.
- 미국 맨해튼 대학 연구소인데요?
세현은 소라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의 극비 문서를 이렇게 손쉽게 얻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 자... 잠시만요.
세현은 얼른 전화기를 꺼내 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호가 전화를 받자 세현이 다급하게 얘기를 했다.
- 그들 조짐이 이상해요.
세현의 말에 석호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 이상하다뇨?
- 소라 양이 얻은 정보인데... 맥컬리 병원을 폐쇄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거기서 일하던 연구원들은 모두 에어리어 51(Area 51)로 모이도록 하구요.
- 네?
- 그리고 한국에서도 톰슨 병원만 유지하고 연구소는 폐쇄를 할 예정이래요. 새마음 병원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세현의 말에 석호가 잠시 침묵을 했다.
- 저도 여기서 알아볼 수 있는 대로 알아볼게요.
석호와 전화를 끊고 세현은 소라에게 얘기를 했다.
- 이것 말고는 현재 알 수 있는 게 없어요?
소라는 이런 저런 화면을 번갈아보더니 얘기를 했다.
- 홈페이지나 FTP나 모두 폐쇄했어요. 그냥 데이터를 지운 수준이 아니라 디가우저(Degausser)로 완전 삭제한 수준인데요?
소라의 말에 세현이 손톱을 물었다.
-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데...
세현의 말에 소라가 얘기를 했다.
- 그래서 말인데요...
소라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얘기했다.
- 저도 병원에서 제가 받는 치료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어쩌면 저희 엄마도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익명으로 누군가 의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글을 올리는 사이트를 하나 만들어 보려구요. 그러면 그들의 행동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소라의 말에 세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 글쎄요. 저는 그런 분야는 잘 몰라서. 그리고 익명으로 올리면 누가 올리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 말에 소라가 얘기를 했다.
- 아무리 익명으로 글을 올려도 컴퓨터의 IP 주소나 MAC 주소는 남거든요. 그걸로 개략적인 위치를 파악해서 만나는 거죠.
소라의 말에 세현은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런 걸 한다면 장난으로 올리는 사람도 많을 테고...
그 말에 소라가 고개를 저었다.
- 일단 장난이나 속임수 같은 건 제가 어느 정도 필터링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그들하고 연결되어 있느냐는 저도 확실하게는 파악할 수 없으니까... 제가 어떤 정보를 받으면 모두에게 메시지를 전송할게요. 그러면 좋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잖아요.
세현은 소라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떡였다.
- 일단 장 신부님이나 철구 씨와 얘기를 해 볼게요.
세현의 말에 소라는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은 밖으로 나오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 후 석호가 한국에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세현과 석호, 철구가 사무실에 모였다. 세현은 그간의 일을 석호와 전화를 하면서 알려주었기 때문에 석호는 대략적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지만, 철구는 세현과 전화 연락이 없었기에 감감 무소식이었다.
-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귀를 파며 말했다.
- 할매 같은 의사야 앉아서 먹고 살지만, 난 몸으로 뛰어야 한다구. 그리고 또 맥컬리 병원에서 정보를 얻으려고 정보원들 풀어서 돌아다니느라 바빴어.
철구의 말에 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허탕 쳤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염장 지르지 마. 안 그래도 그 녀석들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니까.
그러자 세현이 문서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철구에게 넘겨주었다. 철구는 그 문서를 눈으로 쓱 보더니 말했다.
- 이게 뭐야?
- 철구 씨가 허탕 친 이유요.
철구는 그 문서를 읽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연락을 했어야지.
그 말에 세현은 뚱한 표정으로 철구에게 말했다.
- 전화를 안 받았잖아요.
철구는 문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 젠장... 한 달 동안 삽질만 한 거네.
세현이 그 말에 석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 그래서 말인데요..
세현은 철구에게 조심스럽게 소라가 했던 얘기를 꺼냈다. 옆에서 석호 역시 그 일이 나름 필요한 일이라고 얘기를 거들었다.
- 그들이 숨어버린 상황에서 우리가 정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석호의 말에도 철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 인터넷에서 나온 말을 믿고 행동을 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철구는 석호마저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동조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불쌍한 어린애 장난에 동참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회의실 모니터가 켜지면서 커다란 글자가 나타났다.
- 난 대장. 들리나?
세 사람은 난데없는 기계음에 모두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 들리면 대답하라. 오바.
철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소리쳤다.
- 장난은 그만 해라.
그러자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의 이모티콘이 나타났다. 철구는 모니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고작 이런 거나 하는 애랑 뭘 하겠다구요?
그 순간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면서 철구의 얼굴이 나타났다.
비슷한 인물이 나타난 곳 : 맥컬리 병원 응급실 앞 CCTV(99.4% 일치)
강남역 12번 출구 CCTV(99.3% 일치)
인물 정보 : 강철구(1973년 생)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 2동....
OO 초등학교 졸업
OO 중학교 졸업
OOO 고등학교 졸업
OO대학교 미술대학교 졸업
프랑스로 유학. ....
철구와 관련된 정보들이 주르륵 나열이 되었다. 철구는 모니터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뭐 하는 거야!
그러자 기계음이 다시 들렸다.
- 현재 하는 일과 어울리지 않는다.
철구는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모니터에는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고, 조금 후에 기계음이 다시 들렸다.
- 알고 싶은 정보는?
철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 니가 뭘 할 줄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애들 장난으로 이 일을 얕보면 안 돼!
그 말에 기계음이 재빠르게 들렸다.
- 내가 뭘 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장난이 아니다. 절대.
철구가 몹시 화를 내자 석호가 일어나 철구에게 얘기를 했다.
- 바티칸을 해킹한 실력이에요.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정보를 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석호의 말에 철구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비웃듯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맥컬리 병원에서 나간 것들도 알 수 있어? 뭐 다 안다고...
철구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자 몇 초 후에 바로 화면이 바뀌었다.
- 맥컬리 병원에서 나온 것들은 정확히 세관에 등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비밀 물품이라고 쓰인 것이 총 네 가지 있었고, 전세기를 통해 출발했다. 도착하는 곳은... 네바다 주 에어리어 51(Area 51)...
그 말에 세현과 석호가 동시에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에어리어 51?
- 그렇다.
세현과 석호의 반응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신이 한 달을 뒤집어 파도 알 수 없었던 것을 단 몇 초 안에 알아내는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실력이 있는 건 인정하겠는데, 우리가 왜 다른 사람들의 일을 해결해 줘야 하는 거지?
철구의 물음에 세현이 나서서 대답을 했다.
- 다른 사람의 일을 해결해 주는 게 아니에요. 우리 일을 해결하는 거죠.
철구는 그런 세현을 보며 말했다.
- 할매나 신부님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내 아내하고 아이만 구하면 된다고.
석호는 철구와 같은 합리적인 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 일에 대해 이렇게 쌍심지를 켜고 반대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석호는 철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 철구 씨의 말은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이여서 조금 놀랐습니다.
석호의 말에 철구는 담배를 입에 물고 얘기를 했다.
- 저는 오히려 신부님께서 이 일을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요.
철구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위험한 일이어서 그런 겁니까?
철구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 특히나 아픈 어린 아이한테는 더 위험한 일이죠.
철구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제가 항상 가르침을 받는군요.
그러다가 석호가 말을 꺼냈다.
- 그럼 제가 정보를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소라 양의 도움을 받겠지만, 최소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철구는 그간의 사정을 대략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런 위험한 일에 소라와 같은 어린 아이가 참여하는 것이 왠지 불안했다. 못미더운 것도 있었지만, 위험한 일에 또 누군가가 발을 들여놓는 것이 철구는 마음이 아팠다.
- ...
철구가 말이 없자 석호는 다시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럼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일도 그렇고 다른 일도 그렇고 저희 세 사람의 동의가 없으면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석호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구는 담배를 비벼 끄고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거리를 걸었다. 조금은 칼바람이 불고 가을 냄새가 나는 계절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연속되는 사건들로 인해 계절 감각이 무뎌진 것처럼 느껴져 서글퍼졌다. 떨어지는 낙엽도 감흥을 주지 못 했고 차창에 비치는 석양빛도 밤이 오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저 차가운 바람만이 옷깃을 여미게 했고 감기에 걸리지 않게 두꺼운 옷을 꺼내 입을 뿐 겨울이 온다는 기대감이나 설렘 따위도 사라진지 오래 됐다. 문득 고개를 들어 구름조차 몸을 떨며 흩어지는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하늘은 하늘색이 아닌 조금은 뿌연 회색이 덮인 우울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사방을 둘러보니 걸음을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보다 보는 기이한 일을 하는 사람은 혼자뿐이란 걸 알았다. 모두들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디로들 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들도 다만 그들이 안식을 느낄 어떤 곳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 순간 외로움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과 이 외로움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자신이 모두 감싸줄 수 없듯이 자신의 외로움을 그들이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잔인한 한 해가 저무는 쓸쓸함과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앞에 펼쳐질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극복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럴 때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몸이 저릴 만큼의 외로움이 철구를 힘들게 했다. 아내와 아이의 흔적을 찾았다 싶으면 어느 순간엔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철구로 하여금 그러고 싶지 않은 절망에 빠지게 했다. 슬픔도 그 정도를 넘어서면 감정이 아닌 본질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철구 그 자체가 알 수 없는 불행에 젖어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철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철구는 그런 감정에 빠지는 자신을 추슬렀다.
'지금 포기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철구는 전화기를 들어 세현에게 얘기를 했다.
-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철구의 전화에 세현은 소라에게 얘기를 했고, 소라는 각각의 전화로 프로그램을 하나씩 전송을 했다. 스마트폰이 아닌 철구는 이상한 프로그램이 핸드폰에 설치되는 게 싫었지만, 문자가 자기가 지우지 않아도 저절로 지워지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 대단한 애군.
철구는 걸음을 돌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세현과 석호가 모니터를 보다가 철구를 쳐다보았다.
- 이거에요.
세현이 모니터 화면을 돌려 철구를 보여주었다.
당신이 경험한, 그러나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일들.
믿을 수 없지만, 당신에게 일어난,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라.
철구는 골치가 아픈 듯이 고개를 저었다.
- 알아서들 해.
그러자 기계음이 다시 들렸다.
- 곧 완성된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일단 암호화하고...
기계음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던 철구가 갑자기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그런데 너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철구의 말에 기계음은 당황한 듯이 말했다.
- 그.. 그게... 이건 내가 해킹 그룹 리더일 때, 조합한 거라 반말밖에 안 나온다. 마이크를 통해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곧 바꿔 놓을 거다.
기계음에 철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놔둬. 괜히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고. 대장!
철구가 '대장'이라고 부르자 세현과 석호가 철구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무안한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아까 지가 지 입으로 대장이라고 했잖아.
철구는 그러더니 문을 열고 나가면서 소리쳤다.
- 난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할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쇼!
철구가 그렇게 소리를 치고 나가자 세현과 석호가 그런 철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석호는 시계를 보며 세현에게 말했다.
- 저는 잠깐 소라 양을 만나고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세현이 석호와 같이 나섰다.
- 같이 가요.
스피커에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얘기를 들은 소라는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석호와 세현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소라는 목을 빼고 두 사람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계단에서 걸어내려 오면서 석호가 세현의 손을 잡아 주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소라가 소리쳤다.
- 신부님은 저 아줌마 좋아하는구나!
아래로 내려온 석호는 세현을 옆에 세워두고 말했다.
- 내려오다가 세현 씨가 발을 헛디뎌서 잡아준 거예요.
그러자 소라는 침대에서 일부러 손을 헛디뎌 떨어질 뻔 했다. 석호는 재빨리 소라를 잡았다.
- 그런 장난은 위험해요.
세현의 말에 소라가 퉁명스럽게 얘기를 했다.
- 내가 병 다 나아서 예뻐지면 아줌마하곤 비교가 안 될 거예요. 신부님은 내 거라구요.
석호는 그런 소라를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세현 역시 이상한 표정으로 석호와 소라를 쳐다보았다.
- 뭐... 장애물이 많겠지만... 열심히 해 봐요.
세 사람은 그간 못 했던 얘기들을 나누고 헤어질 시간이 되어 석호와 세현이 밖으로 나왔다. 건물 입구에서 세현은 석호에게 얘기를 했다.
- 잘 보듬어줘야겠네요.
석호도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여린 아이니까요.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잘 견뎌줘서 다행이네요.
석호가 그렇게 얘기를 하고 세현과 인사를 하며 돌아설 때 세현과 석호의 스마트폰에 문자 하나가 떴다.
'신부님은 제 거예요.'
세현은 어이가 없어 웃었고, 석호는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으며 차에 올랐다. 흥신소로 가던 철구는 어처구니없는 문자에 혼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쥐똥만한 게 수작이야! 그것두 신부님한테...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완결 공지]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3장 완결
안녕하세요. 글쟁이 구라도사입니다.
어느덧 길고 길었던 1, 2, 3장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1년 간 연재를 하다 보니 어떤 부분은 날림이고, 어떤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 글을 읽으신 분들도 마찬가지의 마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주제 넘게 어려운 주제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자문을 해봅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써 나아가는 게 글쟁이의 천형이겠지요.
이렇게 해서 프롤로그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라고 하면 제 친구들도 다들 '미쳤다'고 그러더라구요. 하하하.) 프롤로그 치고는 참 길죠? 무려 900페이지 분량이 프롤로그니까요. 더군다나 에피소드 중간에 축계 0장인 프리퀄이 있으니까 참 어처구니 없죠?
하지만 정작 에피소드에서 빌빌 대면 프롤로그건 프리퀼이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겠지요. 그래서 에피소드에 더 공을 많이 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에 대한 평가는 독자님들의 몫이니까 제가 열심히 썼으니까 재미있게 봐달라고 앙탈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제가 좋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이 글의 마무리인 축계 파이널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답니다. 그러니까 에피소드들은 결국 그 파이널을 향해 가는 가는 간이역인 것이죠. 결국 그 간이역이 눈길을 끄느냐 아니냐는 얼마나 특색이 있느냐겠지요.
에피소드와 관련된 것들은 약 10여 개 정도 스토리라인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구성하느냐도 관건이겠지요. 에피소드 중에는 지금처럼 다소 음울한 이야기도 있고, 머리를 쓰는 이야기도 있으며(이건 구성만 있을 뿐인데 쓸 때, 저도 미칠 것 같답니다. ^^;;), 조금은 황당한 코믹한 얘기도 있고, 아주 슬픈 이야기도 있답니다. 어떤 이야기가 되었건 강철구, 장석호, 최세현, 대장이 잘 해결하겠지요.
에피소드 역시 완결이 되면 연재를 시작할 것입니다. 현재 에피소드 1을 쓰고 있는데 에피소드들은 동시에 진행하는 것들이 꽤 되어서 금방(이라고 쓰고 오랜 시간이라고 풀이합니다.) 올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사람 일은 모르는지라...
에피소드를 연재하다가 소재가 떨어지거나 힘이 빠지면 바로 파이널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많이 노력해야겠지요. ^^;;
200페이지 정도 되는 장편은 몇 번 써 봤지만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건 저도 처음이랍니다. 물론 이야기를 늘리고 줄이는 건 이야기꾼들의 재능 여하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지기도 한답니다.
앞으로도 독자님들께서 많은 격려와 질책을 해 주신다면 제가 더욱 분발을 해서 글을 연재할 수 있겠지요. 지금과 같은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광대가 관객의 호응에 신이 나듯 저 역시 여러분들의 호응에 신이 난답니다. *^^*
마지막으로 제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일일이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지만, 제 기억력의 한계로 이 자리를 빌려 인사를 드립니다.
항상 좋은 댓글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연재를 중단하지는...
우선 이런 공지를 띄워 죄송합니다.
그간 축계를 사랑해 주신 많은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아 많이 아쉽지만 이쯤에서 연재를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제가 얼마나 역량이 부족하고 실력이 모자라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제 깜냥으로 이만큼 해 온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지만 사실 독자분들께서 아주 많이 모자라다는 걸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이렇게 도망치듯이 연재 중단을 해서 진심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그동안 축계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더 역량을 쌓아 돌아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이 만우절인 건 아시죠?
저도 뻥을 한 번 멋지게 쳐보고 싶어서... ㅜㅡ
내일은 제목을 바꾸어서 장난 공지로 남겨둘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