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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42화 (14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7. 벗어날 수 없는 그늘(3)

그러더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베네딕토는 흐려진 눈으로 감찰국 책임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 슈... 슈테판 추기경을 불러 주시겠나?

베네딕토의 말에 감찰국 책임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떡이고는 감찰국 요원을 슈테판 추기경에게 보냈다.

슈테판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분노하여 책상을 탕 내려쳤다.

- 네 녀석들이 한 짓은 단순히 그들에게 정보를 내줘서 바티칸에 혼란을 일으킨 것만은 아니야. 바티칸에서 중요한 사람...

슈테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항상 이성적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던 슈테판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주변 사람들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의 눈물의 의미가 최베드로 신부와 마르티노 신부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고, 또한 그러한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일에 결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는 일이었기에 슈테판은 마음 놓고 소리를 칠 수도 없었다. 슈테판은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책상을 내려쳤다.

- 당신들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처벌할 것이오. 내가 벌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슈테판에게 잡힌 사제 두 명과 보안 요원은 슈테판의 말에 경직되어 있었다.

- 이들을 잘 감시하게. 이 녀석들은 여차하면 목숨을 끊는 놈들이니까 입에 재갈을 물리고 모두 밀착해서 감시를 하도록 해.

그 때 취조실 안으로 감찰국 요원이 들어와 슈테판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슈테판은 고개를 끄떡이고 숨을 골랐다. 얼마 후 슈테판은 베네딕토가 앉아 있는 취조실 안으로 들어가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 그들이 확실합니까?

베네딕토는 모든 것을 포기한 말투였다. 슈테판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아우렐리우 정보국장은 엑서더스와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가 난치병에 걸려 돈이 많이 필요했고, 그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의 임무는 아우렐리우 추기경을 축출해 낸 저와 최베드로 신부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베네딕토 추기경님을 이용한 것이지요. 추기경님을 회유하여 심복이 되어야 했지요. 그런데 정보국장은 이전에 계획했던 일이 모두 실패해서 그들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매튜와 에드워드를 통해 저와 최베드로 신부를 옭아매려는 계획마저 실패해서 증거 인멸을 위해 자신의 심복 두 명과 취조관 2명을 죽이고 자신은 자살을 하게 된 것입니다.

베네딕토는 인상이 굳어지며 말했다.

- 그런데 내 수하들은 그들과 어떻게 연결이 된 겁니까?

베네딕토의 말에 슈테판이 대답을 했다.

- 죽은 다섯 사람의 행적과 여러 상황을 조사하다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아우렐리우 정보국장이 사용한 총기가 조금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총알을 멀리 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몸에 총알을 들어가게 할 정도인. 그리고 총알은 몸 안에서 녹아버리는, 엄밀히 말하면 총알의 흔적이 남지 않는 총이었지요. 그런데...

베네딕토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내 수하들에게서도 발견된 것이로군요.

슈테판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 그들이 이번에 최베드로 신부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것 역시 그들에게 흘렸습니다. 그들이 최베드로를 옭아맬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이지요.

슈테판의 말은 차분했지만, 베네딕토는 부끄러움에 눈을 감았다.

- 모두 내 불찰이요. 공명(功名)에 눈이 멀어...

슈테판은 고개를 저었다.

- 추기경님을 의심하는 이는 없습니다. 감찰국에서는 연계 여부를 조사한다고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그들과 결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슈테판의 말에 베네딕토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오. 그들의 관계의 여부가 아니라 나는 사제로서 자격이 없는 짓을 한 것이오. 큰 깨달음을 주어서 고맙구려. 슈테판 추기경.

베네딕토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전과는 다른 차분한 표정이 되었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소. 도와주시겠소?

베네딕토의 말에 슈테판은 고개를 저었다.

- 추기경님께서 하실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토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니오. 나 같은 이가 무얼 한다면 오히려 더 큰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오.

그러면서 조용히, 그러나 힘을 주어 말했다.

- 내 고향인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신부 생활을 마무리 짓고 싶소이다. 허락해 주시겠소?

슈테판은 베네딕토의 표정에 나타난 결연한 의지를 보고는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베네딕토는 슈테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하느님의 이름으로 앞날을 기원하겠소이다. 감사하오.

슈테판은 취조실에 남아 있는 베네딕토를 뒤로 하고 최베드로가 있는 수용 시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티칸에 온 지 이틀이 지났지만, 얼굴은커녕 안부조차 알 수 없었기에 슈테판은 마음이 아팠다. 최베드로가 있는 독방 앞에 슈테판이 섰을 때 보안 요원이 슈테판 옆에 서 있었다. 슈테판은 보안 요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 잠시만 비켜 주겠나?

보안 요원은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슈테판은 보안 요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 내 친구라네. 아주 잠시면 된다네.

슈테판의 말에 보안 요원은 고개를 끄떡이고 복도 끝으로 물러났다. 슈테판이 독방 문을 열자 초췌한 모습의 최베드로가 앉아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최베드로를 보고 슈테판이 다가가 말했다.

- 이게 무슨 꼴이야!

슈테판의 목소리를 들은 최베드로는 고개를 들었다. 최베드로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커졌고, 슈테판은 미안해하는 표정이 되었다.

- 죄송합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이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대강의 상황은 알고 있지만, 자네에게 듣고 싶었네.

슈테판의 말에 최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 알고 계신 그대롭니다. 저는 어린 여자 아이를 간음했고...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그 말을 듣고자 한 게 아니지 않나!

하지만 최베드로는 여전히 표정을 같이 하면서 말했다.

-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어린 여자 아이를 간음한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슈테판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간음이 중요한 게 아니잖나. 예수님 또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네.

최베드로는 그 말에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저는 사제입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건 하느님의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슈테판은 최베드로의 말에 답답함을 느꼈다.

- 자네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위원회에서 밝히겠네.

슈테판의 말에 최베드로는 강하게 거부 의사를 보였다.

- 안 됩니다. 절대로.

최베드로는 이번 일로 인해 슈테판이 간음한 신부를 감싸는,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는 사제라는 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슈테판은 모든 가톨릭 신자를 이끌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에 대한 처분이 관대할 경우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바티칸의 위신이 추락할 것이라고 여겼다.

- 자네는... 고집 그만 피우게.

슈테판의 말에 최베드로는 다시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저는 사제로서 충분히 살았습니다. 이제 힘이 듭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의 눈빛이 돌변하면서 최베드로에게 얘기를 했다.

- 거짓말! 자네와 같은 사람이 이렇게 물러나는 건 옳지 않아! 결단코.

하지만 최베드로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 이제 놓아 주십시오.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최베드로가 눈을 감자 슈테판은 그 앞에서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 난... 자네가 이렇게 가는 걸 원치 않아!

최베드로는 여전히 눈을 감고 말했다.

- 저는 자유롭고 싶습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슈테판은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최베드로는 슈테판이 나가자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 슈테판 추기경님께 힘을 주시옵소서....

최베드로의 눈에서도 한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며칠 후 중국에서 보고서가 올라오자 최베드로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어린 여자 아이에 대한 간음이 있었고, 여자 아이는 악령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정신병을 앓고 있던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약물 중독으로 인한 중증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보고되었다. 그 보고서를 받은 슈테판은 절망했다. 슈테판은 어떻게든 최베드로에게 최악의 상황이 오는 것을 막아보고 싶었다. 슈테판은 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은 석호는 한숨을 내쉬며 조사 위원회의 책임을 맡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추기경에게 갔다.

- 최베드로 신부님이나 마르티노 신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석호의 강한 주장에 바티칸에서 파견 나온 조사관들은 조금 움찔했지만 여전히 그들 눈에는 햇병아리로 보이는 석호의 주장은 쉽게 묵살되었다. 석호는 답답한 마음에 그들의 앞을 가로 막으며 말했다.

- 좀 더 면밀한 조사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총괄하는 수석 사제는 석호 앞에서 고개를 저었다.

- 이 정도로 명명백백한 일을 다시 조사할 수는 없네. 이미 보고서도 바티칸으로 보냈다네.

그러나 석호는 안타까운 마음에 수석 사제의 소매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 아우구스티노 추기경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아우구스티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자네 심정은 잘 알지만 이번 일은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이야. 단순히 외교 분쟁의 소지가 아니라 바티칸에 대한 위상의 문제도 있어.

석호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 바티칸의 정치 문제 때문에 그들의 숭고한 행동을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석호의 말에 아우구스티노는 미간을 찌푸렸다.

- 자네가 슈테판 추기경과 가까운 건 알지만 지금 이러한 행동은 월권이야.

하지만 석호는 이대로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일주일입니다. 딱 일주일만 연기해 주십시오. 제가 나서서 알아보겠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노였다.

- 지금도 빨리 해결하라고 위에서 난리야. 일주일이 아니라 일곱 시간도 힘들어.

석호는 주먹을 쥐며 분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 저는 결단코 그들을 이 추악한 싸움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석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아우구스티노는 그냥 말을 멈췄다. 석호는 조사단에서 빠져나와 홀로 밤길을 걸었다. 이미 결정된 일이었기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석호는 자신의 스승인 최베드로 신부가 그런 짓을 그냥 저지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었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구의 전화로 부리나케 중국에 들어왔지만, 정작 만난 것은 원 회장과 철구가 아니라 바티칸에서 파견된 사제들이었다. 원 회장과 철구를 만나 진상을 듣고 싶었지만, 조사 위원회에 속한 사람은 함부로 전화도 할 수 없었기에 속만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바티칸으로 모두 귀국하기로 한 것이었다. 석호는 답답한 마음에 밤길을 걷다가 누군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을 느꼈다. 석호는 그런 낌새를 느끼고 아무렇지 않게 걷다가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자신을 미행하는 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골목 안으로 끌어들여 목을 부여 잡았다.

- 넌 뭐냐!

그런데 석호에게 목이 잡힌 사람이 손사래를 치며 중국어로 뭐라고 얘기를 했다. 석호가 목덜미에 힘을 조금 풀어주자 그 남자는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얘기를 했다.

- 32본지 가게로 오쉐여.

석호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남자의 목덜미를 놓아 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재빨리 도망을 갔다. 석호는 '32번지 가게?'하면서 길을 따라 걸었다. 번지수가 뒤죽박죽이었지만, 5분 정도 걷자 '32번지'라고 쓰인 조그만 잡화상이 보였다. 석호는 그 앞에 서서 이런 저런 물건을 보았다. 그러자 주인인 듯한 남자가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 장 신부님?

석호는 그 질문에 고개를 돌려 주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 그렇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주인인 듯한 남자는 조용하게 얘기를 했다.

- 원 회장님의 지시로 대장님이 아래에서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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