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41화 (141/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7. 벗어날 수 없는 그늘(2)

베네딕토는 마음이 분주했다. 무언가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슈테판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은 더욱 공고해졌다. 특히 이번에 자신의 정보원들이 가져온 정보를 통해 더욱 확신이 짙어졌다.

- 내부의 누군가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고 알력 다툼으로 아우렐리우 추기경이 쫓겨나게 된 겁니다.

베네딕토는 알력 다툼이라는 얘기에 주목했다. 교황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던 아우렐리우 추기경이 파문을 당하게 된 것이 슈테판의 폭로로 인한 것임을 바티칸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우렐리우가 쫓겨난 이유가 내부 세력 간의 알력 다툼이라면 결국 슈테판과 아우렐리우가 그들과 결탁하여 일을 벌이다가 알력 다툼으로 인해 아우렐리우가 쫓겨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베네딕토는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정보원의 정보만으로 공세를 펴기에는 증거가 너무 빈약했다. 베네딕토는 어떻게 해서든 슈테판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꼬리를 잡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곧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 여기서 찾을 수 없다면 그리로 들어가는 수밖에.

최대한 은밀하게 일을 진행하였고, 최대한 그들 중 고위층의 사람과 접촉하고 싶었다. 어차피 자신이 그들과 접촉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협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부 세력을 찾아 발본색원할 목적이었기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다만 그들에게도, 이쪽에게도 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럴 때 자신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게 통탄스러웠다. 그들과 접촉은 최대한 은밀하게 일을 진행해야 했기에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베네딕토는 자신의 정보망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그들과 연락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파고들려고 할수록, 접근하려고 할수록 자취가 뿌옇게 흩어졌다. 그러던 중 베네딕토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베네딕토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당장 사제단 회의를 소집했다. 슈테판은 베네딕토가 사제단 회의를 소집하자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 기어코 일이 벌어졌구나.

슈테판이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베네딕토가 성토하는 모습이 보였다.

- 사제로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바티칸의 얼굴에 먹칠을 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베네딕토는 문 안으로 들어오는 슈테판을 흘끗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미성년자 간음(姦淫)이라뇨!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슈테판은 베네딕토의 말에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베네딕토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렇게 단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슈테판의 말에 베네딕토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자신의 충실한 심복이 그런 일에 연루되었다고 지금 두둔하시는 겁니까?

슈테판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최베드로 신부가 바티칸으로 돌아온 후 심문하여 확인해야 하는 일입니다.

슈테판의 말에 베네딕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슈테판 추기경께서 혹시 최베드로 신부가 돌아 왔을 때 연민을 느끼고 증거를 조작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베네딕토의 말에 추기경들이 술렁거렸다. 슈테판은 그런 베네딕토를 보며 말했다.

- 최베드로 신부 조사는 베네딕토 추기경님께서 하시지요. 그렇다면 모든 의심이 다 풀리지 않겠습니까?

슈테판의 말에 베네딕토는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요. 어제 중국 외교부 쪽에 부탁을 했으니 아마 오늘이나 내일 정도에 도착하겠지요. 그럼 제가 모든 죄상을 낱낱이 밝혀내도록 하지요.

베네딕토의 말에 슈테판의 표정이 굳어졌다. 베네딕토는 그런 슈테판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다른 신부들에게 얘기를 했다.

- 최베드로 신부의 일을 좀 더 소상히 확인하기 위해서 중국에 조사단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추기경님들께서도 동의하시죠?

그러자 다른 추기경들이 슈테판을 한 번 쳐다보고는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베네딕토는 일사분란하게 조사 위원회를 꾸렸고, 거기에 마치 선심을 쓰듯이 '장석호 신부'를 포함시켰다.

- 최베드로 신부의 제자가 있다면 좀 더 균형 잡힌 조사를 할 수 있겠지요.

베네딕토의 말에 슈테판은 눈을 감았다. 장석호 신부를 포함시킨 것은 슈테판으로 하여금 그 일의 결론에 반박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조사는 베네딕토가 꾸린 사제들이 할 것이고, 장석호 신부는 결국 구색을 맞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회의가 끝나자 베네딕토는 조사 위원회에 소속된 신부들을 모았고, 현재 한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석호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으로 들어가 조사를 하게 했다. 중국에서 바티칸으로 돌아가려다가 전화를 받은 석호는 최베드로가 바티칸으로 압송된다는 말을 듣고 바티칸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슈테판의 메일을 읽고 한숨을 쉬며 중국에 남았다.

'최베드로 신부가 악령을 퇴치했다는 증거를 찾아보게. 그렇다면 그건 엑소시즘을 거행한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있어.'

석호는 공항으로 나가 조사 위원회 사제단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최베드로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편 바티칸으로 압송되어온 최베드로는 취조실에 앉아 베네딕토 추기경과 몇몇 사제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최베드로 신부는 모든 것을 초월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베네딕토 신부와 그를 둘러싼 신부들은 그런 최베드로 신부를 보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 어린 여자와 간음을 하다니. 왜 그랬나?

최베드로는 베네딕토를 쳐다보며 말했다.

- 저의 잘못입니다. 모두.

그 말에 베네딕토 신부는 책상을 내려치며 말했다.

- 그런 말을 들으려고 사제들이 여기 모여 있는 게 아냐! 네 놈이 저지른 일은 단순한 간음이 아니었을 거야. 그렇지 않아?

최베드로 신부는 베네딕토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간음이었습니다. 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그러자 베네딕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 아니야. 자네가 그럴 사람은 아니지. 내가 다 알고 있어. 그깟 육체적 욕망 따위에 굴복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베네딕토의 말에 다른 사제들이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베네딕토를 쳐다보았다. 최베드로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베네딕토는 고개를 숙인 채 은밀하게 말을 했다.

- 자네 같은 사람이 간음을 할 정도라면 누군가의 부탁이나 사주를 받은 것이겠지. 거역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최베드로는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베네딕토를 쳐다보았다. 베네딕토는 무언가 욕망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최베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베드로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 제 욕망에 사로잡힌 간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토는 이미 예상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렇겠지. 그렇게 얘기해야 충실한 부하인 거지.

베네딕토는 그렇게 비웃음을 날리며 얘기를 했다. 그러더니 일어나 사제들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사제들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모두 취조실 밖으로 나갔다. 사제들이 모두 나가자 베네딕토는 크게 소리를 쳤다.

- 녹화를 멈추게!

베네딕토의 말에 조그맣게 들리던 기계음이 멈추었다.

- 자, 이제 자네와 나 둘뿐이야. 그리고 어떤 녹음도 녹화도 되지 않고 있지.

베네딕토는 은밀한 목소리로 최베드로에게 얘기를 했다. 최베드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하나 주지. 슈테판 추기경이 아우렐리우 추기경과 알력 다툼이 생기자 아우렐리우 추기경을 제거했다고 들었네. 그 알력 다툼이 바티칸 안에서의 알력 다툼이 아닌 그들에게 협조하는 상황에서의 알력 다툼이라는 거야.

베네딕토의 말에 최베드로는 비웃음을 흘렸다.

- 그 정보는 잘못된 것이군요.

최베드로의 말에 베네딕토는 입술을 아래로 내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가 모르는 한 가지가 있지. 슈테판 신부의 행적 말일세.

최베드로는 베네딕토의 말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베네딕토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이었다.

- 슈테판 추기경은 원래 의사였었지. 말라위(Malawi)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신부가 되겠다며 신학 공부를 했다네.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말라위 수도인 릴롱궤(Lilongwe)에 있는 병원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최베드로는 베네딕토의 말에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들어 베네딕토를 쳐다본 것이었다. 베네딕토는 이제 됐다는 생각으로 말을 이었다.

- 슈테판 신부는 그 릴롱궤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였지. 물론 지금은 어떤 의료 행위를 했는지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베네딕토의 말에 최베드로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베네딕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를 했다.

- 자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의 평판이 어떻던 상관이 없어. 바티칸 안에서 그들과 연계된 사람들을 쫓아내고 신앙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네. 나도 내가 가끔은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고, 좋은 않은 인식을 주는 말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네. 하지만 그놈들, 엑서더스를 몰아낼 수만 있다면 더한 일도 할 수 있다네.

그러면서 최베드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네만... 안 그런가?

최베드로는 고개를 들어 베네딕토를 쳐다보았다. 베네딕토는 인자한 표정으로 최베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 저도 추기경님과 같은 생각이긴 합니다. 하지만 슈테판 추기경님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최베드로의 말에 베네딕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증거가 명확한데도 자네는 단순히 그간의 친분으로 그걸 부정할 생각인가!

- 친분으로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최베드로가 베네딕토의 말에 강하게 소리를 쳤다. 베네딕토는 최베드로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 자네는 그들과 결탁한 슈테판 추기경의 사주를 받아서 중국으로 들어가 악령이 든 것처럼 꾸며진 여자 아이를 간음을 하는 실험에 동참한 거지. 물론 자네는 몰랐겠지만. 이게 사실이야!

최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슈테판 추기경님이 저를 보내지도, 사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네딕토는 그런 최베드로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이내 얼굴을 펴고는 얘기를 했다.

- 그래. 그렇게 부정을 해 보게. 조만간 조사 위원회에서 결과를 보내오면 그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리고는 취조실 문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 잘 생각해 보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내가 파문(破門)까지는 막아주겠네.

베네딕토가 취조실 밖으로 나가자 최베드로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모두 끝난 일이었다. 하지만 최베드로는 왜 자신이 마르티노처럼 죽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마르티노는 죽게 만들었고, 자신은 죽지 않게 했는지. 그것을 미처 조사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남았다.

'모두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야. 두려워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어.'

최베드로는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밖으로 나온 베네딕토는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어떻게든 이번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할 때, 갑자기 감찰국 요원들이 베네딕토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 무슨 일인가?

감찰국 요원들을 보며 베네딕토가 거칠게 물었다. 그러자 감찰국 요원 중 책임자인 사람이 베네딕토 앞으로 다가와 얘기를 했다.

- 추기경님이 외부 세력과 결탁한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베네딕토는 뜬금없는 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무슨 말인가! 내가 외부 세력과 결탁을 하다니? 슈테판의 짓인가?

그러나 감찰국 요원들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베네딕토의 양 겨드랑이를 낀 채 감찰국 쪽으로 향해갔다. 베네딕토 추기경은 놓으라고 소리를 쳤지만, 어느 누구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네딕토 추기경의 목소리만 복도를 울릴 뿐이었다. 감찰국 취조실에 앉은 베네딕토는 책임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 만약 이것이 나에 대한 모함이라면 자네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네.

베네딕토의 말에 감찰국 책임자는 고개를 끄떡인 채 말을 했다.

- 모함이 아니라 사실일 겁니다.

그러면서 베네딕토 앞에 몇 장의 사진과 서류를 내려놓았다. 베네딕토는 사진을 들어서 보았다. 자신의 수하들의 사진이었다.

- 이들이 왜?

그리고 서류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읽는 동안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끝내 서류를 떨어뜨렸다.

- 이... 이게 사실인가?

베네딕토의 말에 감찰국 책임자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 좀 더 정확한 결과는 용의자들을 취조한 후에 알 수 있습니다만, 현재 그들의 집에서 발견된 총기와 계좌를 통해서 볼 때는 거의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추기경님께서 계시고요.

베네딕토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기가 지난 20년간 믿고 지내던 사제와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수행비서가 모두 그들과 결탁했고, 두 명의 정보국 보안 요원을 이용하여 그들을 죽인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 이게 무슨...

베네딕토의 망연자실한 표정에도 감찰국 책임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베네딕토를 쳐다보며 말했다.

- 조사할 내용이 많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