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40화 (140/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7. 벗어날 수 없는 그늘(1)

7. 벗어날 수 없는 그늘

- 어떻게 된 거야?

원 회장은 공안에서 만난 일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옆에 공안들이 서 있었기 때문에 일남은 얘기하기를 주저했다. 원 회장이 최베드로를 중국으로 입국시켰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엮으려고 노력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 다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남은 굳은 표정으로 원 회장에게 얘기를 했다. 원 회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공안에게 다가가 무어라고 얘기를 하고는 일남에게 다가왔다.

- 아마 오늘 저녁 때 풀려날 거다. 그 때 만나서 자세히 얘기하자.

원 회장이 일남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면회실 밖으로 나왔다. 면회실 밖에는 네이멍자치구 공안국장이 원 회장을 맞았다. 원 회장은 활짝 웃으며 공안국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 ??。(고맙습니다.)

그러나 공안국장은 표정이 다소 굳으며 원 회장에게 아무 말 없이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원 회장은 서류를 받아들고 눈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류의 내용은 바티칸에서 파견된 신부 하나가 어린 소녀를 치료한다는 미명 하에 간음을 자행하고, 공안에 협조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일남'은 공범 내지 조력자로 나와 있었다. 서류의 내용대로라면 일남은 큰 처벌을 피하기 힘들 것 같아 보였다. 원 회장은 서류를 공안국장에게 건네주고 말을 했다.

- 他?自己的部下。(그는 제 부하입니다.)

원 회장의 말에 공안국장이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 眼多了,我??解?。(보는 눈이 많아서 제 선에서 해결하기 힘듭니다.)

원 회장은 공안국장에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 我?解??。(제가 해결하도록 하죠.)

원 회장의 말에 공안국장은 조금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원 회장은 공안국 밖으로 나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더니 얼굴에 슬쩍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차에 올랐다. 안에서 기다리던 철구는 원 회장을 쳐다보았다.

- 일단 일남의 일은 해결이 됐습니다만, 최베드로 신부님의 일이 걱정이군요.

원 회장의 말에 철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탐문을 하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막막하군요.

원 회장도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 철구 씨 같은 분이 나선다면 손쉽겠지만, 제가 갖고 있는 정보망을 최대한 이용해야지요.

철구는 중국에 와서 가장 걸리는 것이 의사소통 문제였다. 그리고 앞으로 원 회장의 제안에 흔들렸던 마음도 어느 정도 추스르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기에 오히려 한국에서 정보를 모으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 회장은 그런 철구의 생각을 하는지 그 이후로 중국에서 같이 일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 일단 일남이 나오면 자세한 얘기를 들어봅시다.

원 회장은 가까운 호텔로 방향을 잡았고, 가장 꼭대기층 전체를 빌렸다. 늦은 밤, 일남은 호텔로 들어왔다. 며칠간 고초를 겪어서인지 몹시 수척한 모습이었다. 원 회장은 그런 일남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일남은 자신보다 최베드로의 상황을 더 걱정하며 얘기를 했다. 그 집에서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들과 실랑이를 하며 들은 얘기들도 했다.

- 그들이 어떻게 신부님이 있는지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은 다 알고 있더라구요. 아예 집에 들어올 때부터 '신부가 엑소시즘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 여자 아이에게 나쁜 짓을 할 거라고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그 부모는 저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방 안의 사정을 몰랐거든요. 그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 원 회장이 말을 꺼냈다.

- 신아 메디컬 쪽 사람이겠지. 나쁜 놈들.

철구는 그 말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 단순히 신아 메디컬 쪽만도 아닐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그 약물에 중독된, 마치 악령에 사로잡힌 행동을 한다면 주술사나 무당 같은 사람을 부르지 신부를 부르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들어올 때부터 신부가 엑소시즘을 한다는 말을 했다는 걸 보면 신아 메디컬뿐만 아니라 신부님이 이쪽으로 파견되어 온다는 걸 아는 사람들 짓일 겁니다.

철구의 말에 원 회장과 일남은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가 원 회장이 일남을 보며 말했다.

- 넌 당분간 쉬도록 해라. 내가 대충 손을 봐두긴 했지만, 이 일이 조금 잠잠해질 때까지 가급적이면 행동을 조심하게 좋아.

원 회장의 말에 일남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 최베드로 신부 같은 분이 위험에 빠졌는데 제가 도울 수 없다는 게 한스럽습니다.

원 회장은 일남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도 일남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최베드로 신부는 같이 있던 짧은 시간에 그런 신뢰를 보낸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 그래. 내 욕심이었지.

원 회장은 한스러운 말을 했다. 하지만 철구는 원 회장을 위로하기 보다는 좀 더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일단 이 일대를 먼저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신아 메디컬에서 빠져나올 때 막막했습니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힘들 테고, 또 공안에서 추적하고 있으니까 이동 수단을 이용하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낮에는 보는 눈들이 있으니 밤에만 이동을 해야 하니까 이동이 더 더딜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 이 주변을 뒤져서 공안보다 먼저 최베드로 신부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철구의 말에 원 회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일남이 전화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무어라고 얘기를 하더니 원 회장에게 다가와 얘기를 했다.

- 일단 만주 지역에 있는 아이들까지 오라고 얘기는 해 두었습니다.

원 회장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일남에게 얘기를 했다.

- 피곤했을 텐데 가서 쉬거라.

일남은 원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철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했다.

- 장 신부님께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철구의 말에 원 회장은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 난감한 일입니다. 하지만 장 신부님께 알려야 하겠지요.

철구는 원 회장의 말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세현에게 석호가 심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베드로 신부 일까지 알리면 더 힘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알리지 않고 나중에 얘기를 해도 되겠지만, 최베드로 신부를 아버지와 같이 생각하는 석호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철구는 회장의 방에서 나오면서 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후 조금은 기운이 없는 석호의 목소리를 듣자 철구는 석호의 상황이 어떠리라는 걸 대강 짐작할 수가 있었다.

-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철구의 말에 석호가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 철구 씨께서 곤란한 일이라고 할 정도면...

세현에게 대강의 얘기를 들었기에 석호가 바티칸으로 가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다.

- 놀라지 마십시오. 최베드로 신부님께서 실종되셨습니다.

철구의 말에 깜짝 놀란 석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최베드로 신부님께서요? 마르티노 신부와 같이...

석호의 말에 철구는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 마르티노 신부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철구의 말에 석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철구였는데, 그가 전하는 소식은 아주 비현실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 마르티노가 죽다니요?

석호의 반문에 철구는 침착하게 대답을 했다.

-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드리겠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중국으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철구는 회장에게 중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물어보았고, 현재 자신들이 있는 퉁랴오시(通?市)로 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전화를 끊은 철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의 기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철구는 몸도 찌뿌둥했고 머리가 몹시 아팠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단순히 피로가 겹쳐서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철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지만, 머리가 핑핑 돌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 어....

철구는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굴렀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자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무슨 일입니까?

일남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철구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노크 소리도 들리고, 발소리도 들렸지만, 철구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을 놓아버렸다.

- 철구 씨....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 회장님, 철구 씨가 쓰러졌습니다.

원 회장은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있다가 일남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철구 씨가?

- 응급차를 부르긴 했지만, 여기 병원들은...

원 회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어허...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원 회장은 일남에게 이 일을 맡기고 철구가 타고 갈 응급차에 같이 올라탔다. 의사 한 명이 철구를 보살피고 있었다.

- 去机??。(공항으로 가주시게.)

원 회장의 말에 의사와 응급 대원들은 이상한 눈으로 원 회장을 쳐다보았다. 원 회장은 의사와 응급 대원들에게 간단하게 얘기를 하고 바로 차를 공항으로 돌렸다. 공항에 도착한 원 회장은 최대한 빠르게 이륙 허가를 받고는 상해로 갔다. 상해에 도착하자 원보 병원 의사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철구를 응급차에 싣고 병원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원 회장은 계속 철구의 곁에서 있었다.

- 내가... 내 욕심이...

원 회장은 회한의 말을 내뱉었다. 철구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고, 얕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원보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들은 재빨리 철구를 이동시켰고, 응급 처치를 시작으로 이런 저런 검사를 했다. 원 회장은 초조하게 병원장과 같이 앉아 있었고, 얼마 후 의사 한 명이 병원장실로 들어왔다.

- ??了? (어찌 되었나?)

의사는 철구가 특이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보인다고 얘기를 했다. 현재 성분을 분석 중이지만,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약물이라고 했다. 바이러스나 다른 특이 사항은 없고, 과로와 약물에 의한 중독으로 신체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 약물 중독이라...

원 회장은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 그 물!

원 회장은 지난번에 성분 분석을 맡긴 물의 결과를 재촉했고, 성분 분석실에서 가져온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 멜라토닌(melatonin)과 도파민(dopamine) 변형 물질?

분석관은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하는 물질이고, 도파민은 운동 조절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 호르몬 성분?

분석관이 나가자 의사는 멜라토닌은 수면제로 사용되고 있고, 도파민은 마약으로 활성화되는 호르몬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철구의 현재 증상과 결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 그렇군. 알겠네.

원 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 회장은 소파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결국 신아 메디컬이 만든 약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약이었고, 그 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머지 성분들이 물로 흘러들어가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때 기형아를 낳는 것이었다.

- 이런 미친 인간들...

원 회장이 분노로 소리를 치자 원보 병원장이 놀라서 원 회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원 회장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했다.

'그 놈들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은 확실해.'

원 회장은 일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호의 도착 여부를 물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고는 철구가 있는 병실로 갔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철구가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 깨어났습니까?

원 회장의 말에 철구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 볼 품 없는 꼴을 보여드렸네요.

철구의 말에 원 회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의사 말로는 그렇게 버틴 것이 대단하다더군요.

원 회장의 말에 철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원 회장은 그런 철구를 제지하면서 말을 했다.

- 당분간은 치료에 전념해야 합니다.

- 모두들 바쁜데 저만 누워 있을 수는 없지요.

철구의 말에 원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 철구 씨는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부인과 아이를 찾았을 때 그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지요. 그리고 우리는 긴 싸움을 하게 될 겁니다.

원 회장은 철구를 눕히고 신아 메디컬과 그간 일어난 일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다. 철구는 그 얘기에 몹시 놀랐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 것에 한스러웠다.

- 단순히 신아 메디컬과 중국에서 일어난 일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그 젊은 신부와 여자 아이는 미라처럼 말라서 죽었는데, 최베드로 신부와 여자 아이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여자 아이는 오히려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조만간 네이멍구에 있는 여자 아이를 조사할 예정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러니까 그 때까지 푹 쉬면서 몸을 추스르세요.

원 회장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고맙습니다.

철구의 말에 원 회장이 철구를 보며 말했다.

- 고맙긴요.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원 회장은 철구의 손을 잠시 잡았다 뗐다. 철구는 원 회장의 표정에서 예전 자신을 아련하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 회장은 철구의 시트를 올려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 ?有什?事就是?系。(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게.)

원 회장은 원보 병원장에게 얘기를 하고 원보 호텔 쪽으로 차를 돌렸다. 그 때 일남에게 전화가 왔다.

- 뭐라고? 최베드로 신부가 공안에 잡혀?

원 회장은 차 시트에 등을 기댄 채 한숨을 내쉬었다.

- 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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