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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138화 (138/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3장 - 6. 의식의 분열(4)

- 나가 신녀님하고 같이 즈 신부님 어렸을 때 있는디... 글씨 어느 날 밤이덩가 그 때 사단이 나부렀지.

- 사단이요?

- 그 쬐꼬망 게 글씨 잘 벼려 논 작두 위에 올라갔당께. 그 띠만 생각허면 지금도...

석호가 네 살 무렵 작두에 올라가서 노는 모습을 본 석호의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며 석호를 끌어내렸다.

- 근디 그 때 쬐끄만 놈이 힘이 항우 장사맹크롬 세서 버티는 바람에 손을 놓쳤지. 그래서 작두 위로 떨어졌는디... 글씨 이마에 쬐그만 흉터만 남고 말짱혔당께. 보통은 그라면 접신하지 않구서는 크게 다치는디...

그 모습을 본 석호의 어머니는 두려운 마음에 석호를 이 집에서 떨어져 지내게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절이며 온갖 곳에 다 보냈지만, 석호는 예전보다 더욱 상황이 심해졌다. 그래서 석호 어머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석호와 산에 들어가 산다고 했고, 장군 보살 역시 그 귀여운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 자신이 석호 어머니를 이어받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그러라고 했는데, 그날 밤 석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때문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 네 년이 운명을 막아?

네 살짜리 어린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볼 수 없는 섬뜩한 말이었다. 석호의 어머니는 아들의 그런 운명을 저주하며 아이에게만은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이리 저리 알아봤지만, 자기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었단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무슨 조화 속인지 석호를 몰래 어디다 가져다 버렸다는 것이었다. 장군 보살이 다시 데리고 오자고 했지만, 맨발로 정신을 놓은 채 미친 사람처럼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는 것이었다.

- 미친 사람맹코롬 걸어서 어디론가 갔당께. 그라고 몇 달 후에 아주 말짱하게 돌아왔는디... 그 때부텀 아주 이상하게 되었당께. 보통은 괜찮았는디, 굿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항상 미친 사람처럼 넋을 놓고 아들을 불렀쟈... 그란디... 어느 날부텅가 진짜로 미챠 버렸지.

세현은 그 순간 예전에 석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저희 어머니를 죽였어요.'

- 장 신부님께서도 어머니를 알고 계시지 않나요?

세현의 질문에 장군 보살은 고개를 저었다.

- 글씨... 나는 모르겄는디, 아마도 모를틴디... 원체 쬐끔헐 때 성당 앞에 버려졌응께.

- 그렇군요.

장군 보살과 세현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는 석호와 장군 보살을 돕는 아주머니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완강하게 얘기하는 석호 때문에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이 무당복을 내어 주었다. 석호는 무당복을 들고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복도를 걸어오는 석호를 본 장군 보살과 세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기어코....

무당복을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간 석호는 지수 앞에 섰다. 뒤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장군 보살과 세현이 있었고, 이것을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고 있는 원호가 있었다.

- 자, 이제 이 옷을 갈아입으면 되는 건가?

석호의 말에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 히히히. 이 년이 네 놈한테 뭔데 그렇게 살리려고 하지?

지수의 말에 석호가 지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 너 같은 존재가 '어머니'라는 사람을 또다시 죽이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석호의 말에 지수가 깔깔대며 웃었다.

- 재미있어... 재미...

그러다가 갑자기 눈이 뒤집히더니 석호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네 놈이 하늘의 분노를 받으려고 환장했구나.

그런 지수의 태도에 석호는 표정의 변화 없이 지수에게 얘기를 했다.

- 하늘의 분노가 내게 떨어져도 나는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이 너 같은 존재한테 사라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석호의 말에 지수는 석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 네 놈이 아직 깨닫지 못했구나.

지수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몸이 뒤틀리면서 뼈가 어긋나는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 그만 해!

석호의 외침에 지수의 몸이 풀썩 떴다 가라앉았다. 석호는 사제복을 벗어던지고 무당복을 입었다. 그러자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가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석호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수 쪽으로 다가갔다.

- 네 말대로 내가 무당복을 입었다.

석호는 지수의 앞으로 다가가자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말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 한울님, 이 보잘 것 없는 몸에 내리시어, 그저 죄 많은 육신으로 한울님을 모시어...

석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에 장군 보살과 세현, 원호는 모두 놀랐다. 석호는 표정까지 바뀌며 지수를 윽박지르듯이 소리를 쳤다. 지수는 놀란 눈이 되어 석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석호가 더욱 윽박지르자 지수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장군 보살은 이런 신 내림은 보질 못했기에 더욱 큰 놀라움이었다. 접신이나 치성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런 큰 신을 내림해준다는 게 전혀 믿기지 않았다. 그 모습이 믿기지 않은 것은 세현도 마찬가지였다. 석호의 표정은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 같기도 했고, 천상의 천사 같기도 했다. 그러나 행동은 평소 유하던 석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 네가 언제까지 이렇게 괴롭힐 거냐? 내가 내쫓아주랴, 아니면 그 년 몸뚱이에서 조용히 살아갈테냐?

석호의 말에 지수는 몸부림을 쳤지만, 석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안타깝게 석호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 어허...

석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수가 갑자기 몸을 뒤틀더니 눈이 까뒤집혀졌다. 석호는 그런 지수의 몸을 쳐다보며 외쳤다.

- 마지막까지 발악이구나.

그 순간 지수의 얼굴이 그대로 돌아왔다. 얼굴은 마치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었고, 피부는 부풀어 올라 있었다. 장군 보살은 놀라서 석호와 지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순간 석호가 장군 보살을 돌아보며 말했다.

- 네 년이 막지 못했구나...

석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장군 보살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석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 시... 신녀님...

그러나 그 순간 석호는 피를 한 웅큼 쏟아내며 기침을 시작했다. 세현은 놀라서 석호의 곁으로 다가왔고, 세현이 석호를 부축하자 석호는 붉게 물든 얼굴로 세현을 쳐다보았다.

- 우... 우리 아들을 부탁해.

그리고 석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세현은 놀라서 석호를 다른 병실로 옮기며 원호에게 말했다.

- 진정제 준비해.

세현의 말에 원호는 화들짝 놀라 사무실 쪽으로 뛰어가서 진정제를 들고 왔다. 세현은 석호를 부축하여 옆 병실에 눕혔다. 장군 보살은 멍하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수는 의식을 잃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세현은 원호가 가져온 진정제를 석호에게 주사를 하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원호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죠?

세현은 원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세현은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러다가 병실에 장군 보살과 지수만이 있다는 걸 알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세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장군 보살이 지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 네... 네 년은 죽어야 한당께...

세현은 장군 보살에게 달려들어 떨어뜨리려 했다.

- 보살님, 안 돼요!

그러나 장군 보살은 강한 힘으로 세현을 밀어내며 말했다.

- 이 년은 죽어야 한당께요. 시... 신녀님께서...

세현의 외침에 원호도 병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세현과 같이 장군 보살을 지수에게서 떼어냈다.

-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원호가 외치자 장군 보살은 허탈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저 년은 살아서 어려 사람을 귀문관살(鬼門關殺)에 빠뜨릴텡께... 한울님이 아녔어... 나가 실력이 모지라서... 저 년은 그냥 귀신이랑께... 원래 있던 년이 아녀...

장군 보살의 말에 원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원장님, 이 노인네 당장 내쫓으세요. 미친...

세현은 장군 보살을 부축하면서 일어났다.

- 보살님, 오늘은 여러 가지로 힘이 드셨으니까 집에 가셔서 좀 쉬세요.

장군 보살은 세현을 보며 한스러운 말을 했다.

- 다 늙은 것의 마즈막 일이었당께요... 흑흑...

세현은 장군 보살을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장군 보살을 보살피는 아주머니께 인도를 하고 얘기를 했다.

- 제가 내일 찾아뵐게요. 오늘은 가셔서 쉬세요.

세현이 차에 태우자 간다는 인사도 없이 차가 출발했다. 세현은 떠나는 차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 전라도로 가불자...

장군 보살이 아주머니에게 얘기를 하자 아주머니는 놀라서 장군 보살을 쳐다보았다. 장군 보살은 모든 것을 놓은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차의 방향을 돌려 전라도 쪽으로 향해 갔다.

한편 안으로 들어온 세현은 석호가 있는 방으로 갔다. 석호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고, 세현은 석호가 입고 있는 무당복을 벗겼다. 그리고 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잠들어 있는 석호를 향해 조그맣게 말했다.

- 제가 어떻게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돕겠어요.

세현은 누워 있는 석호를 놔두고 지수가 있는 방으로 갔다. 원호가 지수 옆에 있다가 세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 혈압도 정상이고, 맥박도 정상입니다. 그런데 온몸에 멍투성이입니다.

세현은 원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이제 그만 쉬세요. 원장님도.

원호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세현의 말에 원호는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솔직히 저는 이 상황이 모두 거짓말 같습니다. 휴....

원호의 말에 세현도 낮게 한숨을 쉬었다.

-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원호가 밖으로 나가자 세현은 지수 옆에 앉았다.

- 도대체 당신은...

세현이 무어라고 얘기하려고 할 때 지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지수를 쳐다보았다.

- 괘...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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